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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시황은 영웅인가 폭군인가
-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장성이 처음 구축되고 1만리나 되는 변경이 안전해졌다.” 성(城)이 인류문명의 지표이던 때가 있다. 문명의 실질적인 내용은 바로 국가정권의 탄생이다. 성벽과 성지는 최초의 군사방어 장치였다. 그 1만리 장성을 완성한 이가 있다. 영성 진씨, 이름은 영정. 조정 또는 여정이라 불렸다. 기원전 260년 조나라 도성 한단에서 태어났으며 기원전 210년 사구평대에서 사망했다. 12세에 진나라 왕위를 이어받고 21세에 친정을 시작했다. 여섯 제후국을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한 후 스스로를 진나라의 시황제로 칭했다. `진시황`이다. 중국 고대 정치사 전문가가 진시황을 `현상`으로서 분석했다. 현상으로 짚은 이유는 하나다. 수천년간 이어온 역사성이다. 30년 짧은 통치기간 동안 진시황이 이룬 통치력과 방식은 시대를 바꿨다. 아니 관통했다. 2000년 중국역사에 `진나라 제도`는 내리꽂혀 있다. 일단 진시황이 확립한 천황제도가 그것이다. 이는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중국정치사에 이어졌다. 문자와 도량형 통일, 천하를 통일한 첫 황제, 만리장성, 아방궁, 병마용갱. 책은 이 모두와 얽혀 있는 진시황과 진제국에 대한 거의 전부를 망라했다. 특히 영웅과 폭군, 야뉴스처럼 얽힌 진시황이란 인물이 형성된 구조를 파헤치는 데 방대한 기술을 할애했다. 먼저 진시황 자체에 내포된 사회역사적 의미가 강조됐다. 그는 세계사에서 최초로 국가와 법 이론체계를 현실화했고 유라시아 대륙에서 제국을 세운 대표적 인물이다. 춘추전국의 사회적·역사적 변혁을 완성한 주인공이면서 선진시대의 군주라는 관념을 집대성해 황제라는 호칭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 `삼재도회(三才圖會)`에 실린 6국을 통일하여 대국을 이룬 진시황(사진=글항아리)다만 신화적 인물로 진시황을 부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반대다. 그는 평지돌출의 인물도 아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도 않았다. 춘추전국시대 이미 각 제후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한 것을 완성한 것이 만리장성이며, 법가의 황제라는 세간의 평가도 의문이다. 사실은 잡가적인 황제였다는 거다. 잔인한 황제? 이것도 아니다. 한나라 황제들은 그보다 더했다고 단언한다. 진시황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는 폭정이다. 불로장생을 위한 선약을 구하는 데 수많은 인력을 동원했고, `시경` `서경` 등 서책을 불태우는 분서와 학자를 생매장하는 갱유를 행했다. 그러나 책에는 전제정치를 위해 폭정이 불가피했다는 논지가 서 있다. 개인보다 여건을 보라는 거다. 사회적·시대적·제도적·개별적 폭압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혹은 진나라 제도를 폭압이라고 막연하게 폄하하면 중국 군주제도와 관련된 역사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장장 1100쪽이 넘는 분량에 세세하게 담았다. 하지만 주눅들 필요는 없다. 성장배경, 사회·경제·법제, 교만과 사치로 얼룩진 사생활 등 관심 가는 곳을 집중적으로 읽어낼 수 있게 배치했다. 신선을 찾고 죽지 않는다는 불사약까지 구했지만 진시황의 명은 50년에 그쳤다. 단명만큼 진 제국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2대 황제에서 막을 내리고 덧없이 사라졌다. ▶ 관련기사 ◀☞`남는 시간`이 세상을 바꾼다☞[새 책] 튜더스 외☞[클립_한국문학] 새남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