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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익성의 저니맨④]인생을 바꿔 준 피묻은 한방
- ▲ 삼성 시절 최익성(오른쪽). 그의 출발은 사진처럼 주변인이었지만 점차 팀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야구의 격언 중에 매우 유명한 것 중 하나. "한 경기서 최소 3번의 찬스는 옵니다." 실제로 야구를 보다보면 그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경기를 열심히 쪼개 살펴보면 아무리 강한 상대와 붙어도 3번 정도는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인생과 매우 닮아 더 매력적이라는 야구. 때문에 인생에서도 3번의 기회는 찾아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막상 살다보면 선뜻 이 말에 동의하기 어려워진다. 돈 없고 빽 없는 평범한 우리네 삶에서 '역전의 찬스'는 언감생심. 그저 버텨내기만해도 용하다 싶을 때가 더 많다. '최익성의 저니맨'은 이제 잠시 성공을 이야기 하려 한다. '지독한 불운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그에게도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최익성의 인생에서 기회가 있었다면 우리네 삶 속에서도 한번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 2군 첫해, 난 시즌 막판까지 2군 타격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루는 감독님이 물으셨다. "2군 타격왕 하면 소원이 뭐냐." 난 거침없이 대답했다. "1군에서 한 타석이라도 서 보는 것입니다." 타격왕이 확실시되던 어느날, 감독님 호출이 있었다. 그리고 단 한마디. "오늘 1군 가라." 난 정신이 없었다. 꿈같은 현실이었다. 1군 경기 전 훈련이 끝난 뒤 나는 탈진 상태였다. 내겐 너무도 긴 하루였기 때문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에 있어야 할지도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삼성은 해태 이강철 선배의 역투에 막혀 0-10으로 지고 있었다. 8회였나 9회였나,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렸다.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이었다. 구름을 걷는 듯 했다. 하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여전히 이강철 선배. 눈 감고 떠 보니 볼 카운트 2-0였다. 그리고 3구째 나름 대비하고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포수 파울 플라이. 어디선가 "뛰어"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덕아웃에 돌아온 뒤 코치님께 치고 달리지 않았다며 꾸지람을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2군행 통보. 나중에 알고보니 김충 2군 감독님이 "2군에서 타격왕 하는 선수가 있는데 1군서 뛰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간청해 이뤄진 1군행이었다.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이제 다음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다. 다들 내 1군 경험은 그걸로 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일단은 어쩔 수 없이 군에 입대해야 했다. 난 지금은 사라진 6개월 단기사병이었다. 홀어머니 모시고 산 덕(?)에 혜택이 주어졌던 것이다. 이것 역시 아버님의 선물이라 생각했다. 짧은 군 생활을 마치고 팀에 복귀한 나는 다시 2군에서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 흘러가며 시즌이 끝나고 말았다. 시즌이 끝나면 2군 선수들에겐 인생이 걸린 기로에 서게 된다. 정리되는 선수들의 명단이 발표되는 날이다. 삼성은 95시즌이 끝난 뒤 미국으로 교육리그를 보냈는데 그 명단에서 빠진 선수는 해고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먼저 투수가 호명되고 이어서 포수. 내야수를 거쳐 외야수의 이름이 불렸다. 그리고 마지막 한명. "최익성". 내 인생이 늘 그렇듯, 난 맨 마지막에서야 선택을 받으며 선수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평소 동경하던 미국 야구를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난 그렇게 치열한 45일을 보냈고 '교육리그 최고 유망주'라는 멋진 타이틀을 거머쥐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사이 한국에선 큰 변화가 있었다. 삼성에 백인천 감독님이 부임하신 것이었다. 1996년 첫 팀 미팅. 난 매우 익숙한 한 마디를 듣게 된다. "난 여러분을 똑같이 평가하고 지켜보겠습니다. 이름이나 이전 성적은 중요치 않습니다. 경쟁에서 이긴 선수가 경기에 나서게 될 것입니다." 순간, 내 머릿속엔 '바로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난 나만의 방식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진 않았다. 객관적인 내 위치는 60명 중 50등 정도였다. 아무리 이름값을 따지지 않는다해도 그 차이는 너무 크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백 감독님은 훈련이 끝나면 선수 한명을 지목해 선수들 앞에서 파이팅이나 구호를 이끌어내도록 시켰다. 이 순간만은 모든 선수에게 반말을 해야 했다. 난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그날, 난 선수들 앞에서 큰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감독님께 물었다. "감독님, 제 이름 아십니까." 백 감독님은 약간 당황하신 듯 하더니 껄껄 웃기만 했다. 난 외쳤다. "너희들, 감독님이 내 이름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 내 이름을 목청 높여 10번 부르고 끝낸다." 그날 삼성 훈련장에선 처음으로 "최익성"이란 이름이 멀리 울러 퍼져나갔다. 내가 조금이라도 감독님께 더 다가갈 수 있는 순간이었다. 전지훈련 초반, 난 한차례 고비를 맞았다. 타격보다 더 엉성했던 내 캐치볼을 비웃는 선배의 농담 한마디에 흔들려 버렸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조바심이 날 약하게 만들었던 탓이다. 그러나 이철성 코치님의 도움으로 고비를 넘길 수 있었고 무사히 캠프를 마칠 수 있었다. 시범경기서는 잠시 2군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결국 이름만 보고 뽑는건가'싶어 또 한번 좌절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빠르게 기회가 왔다. 1군 주전 선수의 부상이 생기자 내가 가장 먼저 1군에 불려올라갔다. 1군 합류 첫날, 난 선발 출장의 기회까지 얻었다. 상대는 당대 최강 좌투수 이상훈선배였다. 결과? 두타석 내리 삼진. 그리고 세번째 타석은 내야 플라이였다. 다행히 이후로도 기회를 제법 얻었다. 내 보직은 좌완 투수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한동안 난 이상훈 송진우 조규제 구대성 등 최강의 좌완 투수들과 맞서야 했다. 빙그레와 경기였다. 0-1로 뒤진 8회. 구대성 선배를 상대로 1안타에 묶인 상황. 난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불같은 강속구에 움찔한 사이 볼 카운트 2-0. '또 이렇게 삼진을 당하는구나' 싶었다. 그 짧은 순간, 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보고 쳐도 못 치는거 눈 감고 쳐보자. 날 만만히 볼테니 정면승부 하겠지. 하나,두~울,셋 타이밍 맞혀 배트나 힘껏 휘둘러 보자.' 이것 저것 아무 생각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딱'. 공이 배트에 맞았다. 순간 손에서 감각이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 내가 구대성을 상대로 홈런을 친 것이었다. 그것도 프로야구 1군 첫 안타를 말이다. 기쁨도 잠시. 10타수 1안타 1홈런 1타점. 난 아무것도 아닌 성적표를 들고 다시 2군으로 내려왔다. 실망이 컸다. 솔직히 아프다는 핑계로 한동안 훈련도 게을리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1군 복귀 콜이 떨어졌다. 더 이상 기회를 놓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LG와 잠실 3연전이었다. 첫 경기서 대타로 나서 2루타. 2차전은 3만 관중이 들어찼다. 우리가 1-3으로 뒤진 9회초 2사 만루. 감독님 목소리가 들렸다. "대타 최익성" 마운드엔 내 데뷔전을 망쳐(?)버린 이상훈 버티고 있었다. 또 2스트라이크에 몰렸다. 그러나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계속 파울을 쳐내며 저항했다. 라인쪽으로 파울 타구를 날리고 1루로 달려나가는 순간, 왼쪽 장딴지에 경련이 생기며 그대로 끄러지고 말았다. 잠시 훈련을 게을리했던 탓일까. 짧은 순간, 후회를 했다. 하지만 그대로 쓰러져 있을 순 없었다. 트레이너가 달려와 나를 업고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바늘로 찌르면 경련이 멈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달라"고 외쳤다. 긴급 처방 후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이미 내 정신이 아니었다. 좌측으로 날아가는 파울. 1루로 달려나가던 난 또 쓰러졌다. 이번엔 오른쪽 장딴지였다. 다시 트레이너에 업혀 덕아웃으로 돌아와야 했다. 난 감독님을 향해 외쳤다. "저 빼지 말아주세요. 칠 수 있습니다." 심판들까지 덕아웃으로 와서 빨리 선수를 교체하라고 했다. 그러나 감독님은 날 기다려줬다. 다시 바늘로 허벅지를 수차례 찌른 뒤 타석에 섰다. 그게 몇번째 공이었을까. 난 이상훈 선배의 공을 받아쳐 유격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동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트레이너 부축을 받으며 덕아웃에 들어온 난, 한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무슨 일이 스쳐간 건지, 좋은 건지 나쁜건지도 몰랐다. 숙소에 돌아와서야 기쁨이 몰려왔다. 며칠 뒤 김용철 타격 코치님이 날 불렀다. "너 1번타자 칠 수 있겠냐. 감독님이 너 1번 타자로 쓰고 싶다신다. 1번 타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있어라." 다른 선수들은 이럴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난 세상을 모두 얻은 듯 했다. 그리고 곧바로 1번타자가 무엇인지 공부를 시작했다. ▶ 관련기사 ◀☞[최익성의 저니맨③]내가 늘 몸을 날려야 했던 이유☞[최익성의 저니맨②]내 기본기가 부족했던 이유☞[최익성의 '저니맨'①] 최익성이 책을 낸다고?
- 최동원·이만수·김용희·한대화… 전설의 선수들 아쉽게 밀려
- [조선일보 제공] 최동원 현 KBO(한국야구위원회) 경기감독관은 우완투수 부문에서 선동열(6표)에 이어 3표를 얻었다. 7명의 감독 중 2명이 선동열과 최동원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며 중복 투표를 한 결과이다. 롯데와 삼성에서 활약한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유일하게 혼자 4승을 일궈냈다. 투수 로테이션을 철저하게 지키는 현대 야구에선 꿈도 꾸지 못할 기록이다. 그는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1984년에 27승을 올려 재일교포 장명부(전 삼미·30승)를 뺀 국내 투수 최다승 기록 갖고 있다. 한 시즌 최다 탈삼진(223개) 기록도 함께 세웠다. 좌완 선발로는 송진우(한화)와 재일교포 김일융(전 삼성)이 2표씩을 얻었고, 현역 '영건'인 김광현(SK), 류현진(한화)이 한 감독으로부터 복수추천됐다. 최고 우완 선동열과 최고 좌완 이상훈은 최고 마무리로도 1표씩을 얻었고, 구대성·송진우(이상 한화), 정대현(SK), 임창용(야쿠르트)이 최고 마무리에 이름을 한 차례씩 올렸다. 이승엽이 5표를 얻은 1루수 부문에서 해태에서 활약한 김성한(KBO 기술위원)과 김태균(한화)이 각각 1표를 얻었다. 김성한은 지명타자로도 1표를 받았다. 포수 중에선 삼성의 간판스타로 타점왕 4회(1983~1985, 1987년), 홈런왕 3회(1983~1985년), 타격왕 1회(1984년) 관록의 이만수 현 SK 코치가 2표를 얻어, '제자' 박경완에게 밀렸다. 두산 김경문 감독도 1명의 감독으로부터 최고 포수로 인정받았다. 2루수에선 김성래(전 삼성) 현 SK 타격코치가 2표, 김광수(전 OB) 현 두산 수석코치가 1표를 얻어 박정태(4표)에게 밀렸다. 롯데에서 2차례나 올스타 MVP로 뽑혔던 김용희 프로야구 해설위원과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3점 홈런을 때린 한대화 삼성 수석코치는 각각 2표를 얻어, 3루수 1위 김동주에 1표 뒤졌다. 외야수 부문에선 2차례(1991~1992년) 타격왕에 오른 '악바리' 이정훈(현 천안북일고 감독)이 좌익수와 중견수로 각각 1표, 심정수(은퇴)가 좌익수와 우익수로 1표씩 얻었다. 이종범(KIA)은 유격수 2표, 중견수 1표로 표가 분산됐다. 지명타자 부문에선 3루수 부문 3표로 최다득표를 한 김동주를 비롯, 김봉연·김성한(이상 은퇴), 페타지니(LG)가 1표씩을 얻었다. ▶ 관련기사 ◀☞7개 구단 감독들이 꼽은 역대 프로야구 '최상의 라인업'
- [과연 그럴까]한화 지금이 리빌딩 적기다
- ▲ 김인식 감독 [사진제공=한화이글스][이데일리 SPN 백호 객원기자] 확률적으로 따져도 10연패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승률이 3할밖에 되지 않는 팀이라 하더라도, 10경기를 내리 질 확률은 2.8%밖에 안 된다. 1년에 치르는 133경기를 곱하더라도 3.73%. 즉 아무리 실력이 떨어지는 팀(승률 3할)이라도 한 해에 10연패를 경험할 확률은 4%가 채 되지 않는다. 한화의 승률은 3할보다 높으므로, 한화가 10연패를 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한화는, 달가울 리 없지만, 10연패를 해냈다. 그 결과 1일 현재 4위 롯데에 실질 승차로 11.5경기차 뒤지게 되었다. 7위 LG에도 실질적으로 7경기차 뒤진다. 현실적으로 올 시즌 전망은 극히 불투명해졌다. 이제 한화는 리빌딩을 마음에 두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김인식 한화 감독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음을 언론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물론 스포츠맨십을 고려할 때 ‘포기’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더 큰 승리를 위한 전략적 ‘후퇴’는 필요할 때도 많다. 한화로서는 올 시즌 4강 진입에 대한 꿈을 거두는 대신, 전성기가 지났으나 아직 활용 가치가 있는 베테랑을 내주고 내년 시즌 이후를 기약할 수 있는 젊은 선수를 받는 거래를 꾀해야 한다. 다행히 트레이드를 통한 리빌딩을 한다고 할 때, 한화 입장에서 유리한 몇몇 조건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화를 제외한 7개 팀이 모두 치열하게 순위경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3위 SK, 두산, KIA가 3강 구도를 형성하여 항쟁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팀들은 모두 전략 강화를 꾀하고 있다. 4위 롯데와 7위 LG간의 격차는 실질적으로 3.5경기차밖에 되지 않는다. 역시 4~7위 팀들 모두 4강 진입을 위해 전력 수혈을 원한다. 한화 입장에서는 유일한 판매자로서 7개 구매자를 상대할 수 있다. 또 하나는, 한화에 올 시즌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고 있는 베테랑이 몇몇 있다는 점이다. 올해 성적이 좋기 때문에 당장 순위 경쟁을 하고 있는 팀들에는 도움이 될 선수들이다. 한화의 미래를 위해 투자해볼 수 있는 자원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명타자 겸 포수인 이도형이다. 이도형은 현재 타율 3할4푼6리에 8홈런 31타점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54경기, 178타석에만 나섰기 때문에 규정타석에는 들지 못 하고 있지만, 현재 규정타석인 224타석에 많이 부족하지도 않다. 그의 OPS는 무려 9할6푼9리다. 이진영(LG) 이택근(히어로즈) 홍성흔(롯데) 최희섭(KIA) 같은 각 팀 주축타자들보다 OPS가 더 좋다. 또 하나의 매력적인 카드는 외야수 강동우다. 그는 타율 3할1리 8홈런 30타점 49득점 13도루를 기록 중이다. 규정타석에 들어, 타격 공동 15위에 올라 있다. 도루는 공동 9위. 출루율도 3할6푼1리로 괜찮은 편이다. 1~2번 타순이 허전하고 주전 외야수들(김원섭, 김주찬)이 전력에서 이탈해 있는 KIA나 롯데에 특히 좋은 자원이 될 수 있다. 투수 중에서는 사실 매물을 찾기 어렵다. 구대성(방어율 6.38), 최상덕(6.75), 정민철(9.87), 최영필(10.13) 같은 투수를 사갈 구단은 없을 것이다. 다만 마무리 토마스를 원하는 구단이 만약 있다면, 한화는 주저 없이 한국인 선수를 받고 내줘야 할 것이다. 한화는 투수진의 세대 교체에 실패했다. 젊은 투수를 키워내지 못했고, 나이든 선수를 내주고 젊은 투수를 데려오는 거래를 하지도 못했다. 사실 최근 몇 년간은 한화가 꾸준히 정상권에 도전했기에, 그런 트레이드를 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4강 탈락이 일찌감치 유력해진 올해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순위 다툼에 몸이 달아오른 다른 팀들을 살살 부추겨 내년을 위한 최상의 거래를 빚는 데에, 한화 구단은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 (게임르네상스)진짜 야구선수 나온다 `슬러거`
- [이데일리 임일곤기자] 학창시절 전자오락실에 다녀봤다면 `스타디움 히어로`란 야구게임을 기억할 것이다. 장타력이 있는 뚱뚱한 캐릭터와 키가 작지만 발이 빠른 선수가 등장하는가 하면 사라지는 마구, 회오리 마구 등 다양한 구질이 등장하던 추억의 게임이다. 동네에 따라 다르지만 한판에 3회말까지 할 수 밖에 없어 끝을 보려면 동전 여러개로 정성을 들여야 했다. ▲ 일본 비디오게임사 `데이터이스트`가 만든 `스타디움 히어로`는 1990년대 전자오락실에서 인기를 끌었던 야구게임이다.네오위즈게임즈(095660)가 서비스하는 `슬러거`는 고전게임 `스타디움 히어로`에 사실적인 요소를 결합한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등장해 스타디움 히어로처럼 친근한 느낌이 들면서도 실제 야구 선수들의 세세한 특징을 그대로 살렸다. 선동열 등 유명 투수들의 투구폼도 100% 재현했으며, 김태균 선수가 방망이를 흔드는 특유의 자세도 똑같이 만들어 야구 매니아들에게 인기가 높은 게임이다. ◇ 마우스로 쉽게 조작..사실적 선수묘사 눈길 슬러거는 온라인 야구게임에선 처음으로 마우스를 이용해 쉽고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다. 마우스를 이용한 다양한 구질, 타격, 수비 등의 조작이 가능하도록 구현한 것. 야구를 좋아하는 유저라면 누구나 손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 김태균 선수 캐릭터를 고르면 특유의 방망이 흔드는 폼을 볼 수 있다.캐릭터 마다 특징이 다르다. 캐릭터는 미니(Mini), 노멀(Nomal), 파워(Power) 세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체형에 따라 능력이 제각각이다. 게이머들은 각각의 캐릭터의 특성을 고려한 전략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선수들의 능력치를 고려해 팀을 구성해야 높은 승률을 달성할 수 있다. 각 선수들의 바이오리듬에 따른 컨디션 시스템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때그때마다 게임 양상이 달라진다. 선수들은 포지션과 라인업에 따라 성장치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등 전략적인 재미 요소가 반영돼 있다. 5등신 캐릭터를 사용해 실제와 같은 야구적인 표현을 강조했다. 선동열이나 구대성, 손민한, 최동원 등 유명 투수들의 특징적인 폼을 재현한 것도 눈길을 끈다. ▲ 5등신 캐릭터를 사용해 실제 선수들의 특징을 그대로 재현했다.◇ KBO와 라이센스 체결..실제선수 등장슬러거는 게이머가 야구 감독이 돼 상대방 팀과 게임을 붙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라이센스를 체결했다. 전국 57개의 고교 야구단과 8개 프로야구 구단이 그대로 나온다. 최근 2009 프로야구 최신 데이터도 반영돼 있어 올해 시즌 선수 이적현황과 신인 선수들도 기용할 수 있다. 김동주, 류현진, 이대호는 물론 이승엽 등 유명 선수들을 자신만의 선수로 키울 수 있는 육성모드도 특징이다. 선수들의 능력치 등을 상세히 적용해 플레이 할수록 선수의 능력이 증가한다. 특히 자신이 키워보고 싶은 선수를 집중적으로 육성할 수 있어 성장하는 캐릭터를 볼 수 있다. 프로야구를 기반으로 팀 생성 매커니즘을 그대로 게임에 옮긴 것도 눈길을 끈다. 슬러거는 야구팬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적극적으로 플레이 할 수도록 했다. 실제 슬러거에선 올해 두각을 보인 롯데 자이언츠를 선두로 기아 타이거즈나 삼성 라이온즈의 유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 야구구단과 제휴 마케팅도 활발 슬러거는 작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와 마케팅 제휴를 맺고 공동 프로모션도 진행하고 있다. 롯데 거포 이대호 선수를 홍보대사로 기용해 다양한 홍보 마케팅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동 마케팅은 구단의 새로운 팬은 물론 슬러거 유저 확대에도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따라 올해에는 구단과의 제휴를 더욱 확대해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 등 4개 구단과 함께 야구장을 통한 현장 이벤트와 대규모 광고로 슬러거를 적극 홍보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