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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바람이 키운 산수국, 사려니숲길
  • [진서우의 제주살이]④ 바람이 키운 산수국, 사려니숲길
  • [이데일리 트립 in 진서우 기자]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라는 드라마의 대사처럼 숲과 함께하는 모든 날이 좋았다. 햇살이 따스해서, 날이 흐려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서, 눈이 내려서, 숲은 모든 게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사려니숲길’이라는 이름은 사려니오름 가는 길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동안은 사려니오름을 오르지 못한 채 사려니숲길을 걸었는데 드디어 오늘, 사려니오름 가는 길 위에 있다. 길이 평탄해서 걷기 좋은 숲길은 입구부터 삼나무가 피톤치드를 뿜어내며 맞이한다. 고도가 높은 지대라 5월의 마지막 날인데도 활엽수들이 연한 초록으로 물들어 있어 숲은 더 생생하고 더 깊다.사려니숲길의 화산송이는 자연적으로 깔려있던 것이 아니다. 숲길을 조성하면서 깔았다고 하는데, 색감도 예쁘지만 사그락 사그락 나는 소리가 음악소리처럼 들린다. 비가 와도 물 빠짐이 좋아서 질퍽대지 않는다. 화산송이길과 함께 사려니숲길의 산수국은 환상적이다. 파랗고 하얀 산수국이 길 양쪽을 따라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꽃봉오리만 잔뜩 맺힌 채 아직 피지 않아서 2주만 늦게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입구에서 3.6km 지점에 있는 월든삼거리이다. 옆 길로 빠지면 사려니오름 가는 길이지만 물찻오름을 향해 직진했다. 한낮인데도 햇빛은 숲을 장악하지 못한다. 초록 잎새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청량하다. 하늘을 이불 덮고 살아가는 사려니숲에는 오래된 침묵이 있다. 때로는 침묵보다 더 큰 위로는 없을 것이다.드디어 물찻오름 입구다. 남조로 쪽 입구에서 5.4km 떨어져 있다. 뱀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고 안내판이 떡하니 있지만 여행자들은 사진 찍는데 열중하고 있다. 이곳에서 모여 30분 간격으로 물찻오름에 오른다. 일 년에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즐거운 표정으로 모여 있다. 물찻오름은 전체 길이가 1.42km이고 50분 정도 소요되는 작은 오름이다. 분화구에 물이 고인 화구호를 가지고 있다. 물찻은 ‘물이 차있는 성’이라는 뜻이다. 오랜 세월 분화구의 화산송이(스코리아)가 점토질로 바뀌면서 물이 고이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라고 표현했지만 겨우 몇 십만 년 전일까? 아님 겨우 몇 만 년 전일까? 내 머리로는 느낌이 오지 않는다. 물찻오름에 들어서자마자 박새꽃이 기다리고 있다. 숲을 여행한다고 해서 단번에 모두와 친구가 되는 건 아니다.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이름을 알아가야 하고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 걸 안다. 이 아이도 ‘박새꽃’이라는 것을 아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추위가 물러가지 않은 이른 봄, 사려니숲길에 연둣빛 잎을 피워내는 모습이 신기했었는데 이제야 이름을 알았다.물찻오름 탐방로는 두 사람이 지나가기에 매우 좁다. 그래서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따로 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야자수 매트 위로만 걸었다. 숲은 나무와 조릿대로 빽빽하고 빛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물찻오름의 화구호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호수에 하늘이 잠겨있다. 봄에 새로 깨어난 초록들도 잠겨있다. 마음이 설레었다. 호수로 내려가는 길이 있지만 통행로가 제한 구역으로 되어 있다. 올해부터는 평상시에도 개방하려고 했는데 심하게 훼손된 오름의 복원 속도가 늦어서 어쩔 수 없이 개방이 연기되었다고 한다.물찻오름 정상이다. 어둡고 깊은 숲을 한참을 지나온 후 바라보는 한라산이 눈부시다. 이 느낌이 좋아서 오름을 오른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숲, 알콩달콩 모여 있는 오름들과 바닷가 마을까지 모두 내게 주어진 선물이다. 보라. 한라산 자락을 타고 내려온 초록의 원시림에 마음이 설레지 않나? 저 끝없는 깊은 숲은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물찻오름에서 내려와 월든삼거리 쪽으로 갔다. 사려니오름 가는 길을 평소에는 갈 수 없다니 아쉽다. 해마다 초여름에 열리는 에코힐링 체험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길은 넓지만 공중 위에 천막이라도 쳐놓은 듯 시원하다. 사려니숲길은 여름에도 걷기 좋다.사려니오름으로 가는 월든삼거리이다. 사려니오름까지 8킬로미터를 가야 한다. 이미 8킬로미터를 걸어왔는데 앞으로 걸어온 만큼 더 걸어야 하고, 오름까지 올라야 한다. 이때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숲길인 지라 어떻게든 걸어야겠지.사려니오름 가는 길에 접어들자 평평한 곳부터 찾았다. 아까부터 몰려온 허기를 채우려 돗자리를 깔고 김밥과 김말이 튀김, 닭강정을 꺼내놓았다. 막걸리로 목부터 축이니 행복한 기분이 두 배로 부푼다. 지나가는 어느 부부가 맛있겠다며 말을 건넸다. 시선이 돗자리 위에 잠시 머물렀다. 몇 초 후에 같이 먹자는 말을 하지 못한 걸 후회했다. 행동과 생각이 엇박자가 잘 나는 편이라 굼뜨고 곧잘 후회가 뒤따른다.화산송이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동영상을 찍어도 배경음악이 따로 필요 없다. 화산송이의 노래가 더 근사하니까. 때때로 내가 사려니숲길을 걷는 건지 사려니숲길이 나를 걷는 건지, 집에 돌아와 누우면 내 마음을 오래도록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그 길이 생각난다.숲길을 걷다 보면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을 향해 걸어갈 때도 있고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향해 걸어갈 때도 있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지금 나도 어두운 곳을 통과해 가고 있다. 다섯 달 전, 상실감에 망가진 마음으로 제주에 내려왔다. 숲에서 울고 또 울었는데, 뿌려진 눈물만큼 숲은 나를 위로했다. 마음이 가득 채워져서 제주를 떠나는 날에는 더 이상 슬프지 않겠지. 그리고 제주에 다시 돌아오는 날에는 강해진 모습으로 숲을 여행하겠지.오래되어 갈라진 표피층과 이끼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 나무는 몸통을 봐서는 알아보기 쉽지 않다. 잎을 보니 후박나무 같다. 이 정도 굵기가 되려면 아마 백 개의 나이테를 몸에 숨기지 않았을까. 봄이 되면 내면에 잠들어 있는 연둣빛 싹을 깨워서 사려니 숲을 온통 초록으로 뒤덮었을 테지. 후박나무를 어루만지며 빛나고 있는 저 태양은 백 년 동안 교감을 나누고 있는 친구일 테지. 사약의 재료로 쓰였던 천남성이라는 독초가 숲에 널려있다. 머리를 쳐들고 있는 독사의 형상이라 더 신기하다. 작년에 치유의 숲에서 빨간 천남성 열매가 예뻐서 손에 들고 걸었던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열매의 맛이 궁금했는데 먹어보지 않은 것은 조상의 은덕이다. 거문오름에서 만났던 한 해설사의 말이 생각난다.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여 이 독초로 어떤 불치의 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지 모르므로 자연이 키우는 대로 그대로 두는 게 옳다고.나는 직선의 길보다 굽은 길이 좋다. 저 길을 돌면 뭐가 있을까 상상할 수 있으니까. 때로는 구불구불한 길이 우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숲에 들면 하늘을 향해 나뭇잎 사진 찍는 일에 열중하기도 한다. 빛 때문에 나뭇잎의 농담이 수묵화를 그려놓은 것 같다. 사려니오름 가는 길에는 하천이 몸의 혈관처럼 여기저기 뻗어 있다. 제주 화산섬의 특징상 평소에는 건천이지만 오늘은 이틀 전 내린 비로 물이 고여 있다. 제주 산간지역은 비가 오면 하룻밤에도 몇 백 밀리미터씩 폭우가 쏟아지기도 한다. 그 빗물이 거대한 물길이 되어 온 숲길을 적시며 지나간다.월든삼거리에서 4km 정도 걸었을 때 여행자들을 태운 트럭이 지나갔다. 세워 달라고 손짓 한 적 없는데, 트럭이 저 앞에 멈춰 서 있다. 두 다리의 애원에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트럭에 올라탔다. 뚜벅뚜벅 걷다가 트럭을 타고 숲길을 달려가니 편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건성으로 보고 지나쳤을 숲이 궁금하다. 트럭은 사려니오름 앞에서 멈추었다. 제주의 숲길에는 삼나무가 많다. 하지만 사려니오름에 있는 삼나무는 보기에도 아찔하다. 심한 경사 지역에서 자라고 있어서다. 화산체에 우뚝 버티고 서서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계단의 경사가 꽤 가파르다. 계단이 모두 770개다. 작년에 올랐던 물영아리오름의 계단은 천 개가 넘고 경사도 훨씬 가팔랐다. ‘이 정도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계단 사이에 좁은 오솔길이 있다. 흙길을 밟는 게 좋아서 오솔길로 걷는다. 급경사를 크게 지그재그를 그리며 완만한 길을 걸어 올라가는지라 고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빽빽하게 자라는 삼나무 때문에 하늘이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삼나무 아래 세상에는 다양한 식물이 형성되지 못한다. 어린 나무가 큰 나무로 자라지 못하고 스러진다. 삼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새와 벌과 나비의 접근도 막는다. 삼나무 숲에 들면 새소리가 안 들리는 이유다. 그런데도 사람에게는 피톤치드가 좋다고 하는데, 과학을 잘 모르는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결코 끝나지 않을 듯 뻗어있더니 계단 끝에 하늘빛이 보였다. 조금 후에 정상에 서 있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정상에 오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다. 그냥 오른다. 숲을 떠나면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나는 아주 조금 성숙해져 있을 테지.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먼 바닷가 마을에는 창백한 하늘이 내려앉아 있다. 그러면 그런대로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에 빠져든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제주의 숲이 더 이상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기를 빌었다. 숲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울창한 숲을 걸어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먼 길을 걷고 또 오름을 두 개나 올랐으므로 전체 여정이 19km쯤 되었을까? 트럭 타고 온 거리를 빼도 대략 15km 이상 걸은 듯하다. 관리사무소를 지나면 셔틀버스를 타는 곳이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십여 분을 못 참고 고사리 서너 주먹을 따다가 버스 한 대 놓치고 마지막 버스를 잡아탔다. 사려니숲에 아침 10시에 들어와서 오후 5시에 떠났다. 나는 숲에 어떤 이로움도 주지 못하고 숲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숲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내 몸의 세포들이 숲이 주는 시원으로 인하여 깨어나는 순간들은 기쁨이다. 내 안의 아픔을 강물처럼 흘려보내라는 숲의 이야기도 들었다. 다음에 사려니숲에 가면 오랜 친구처럼 진한 포옹을 해 주어야겠다.[여행 Tip]사려니 숲길은 비자림로 쪽보다 남조로 쪽에서 진입하는 것이 편하다.사려니 숲길을 끝없이 수놓을 산수국은 6월 중순 이후 활짝 필 것으로 기대된다.
 바다를 가로질러 매력넘치는 섬으로 '고고'
  • [여름을 달리다①] 바다를 가로질러 매력넘치는 섬으로 '고고'
  • 선재도와 영흥도를 잇는 영흥대교[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섬 여행은 왠지 멀게 느껴진다. 배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로 다리를 건너 자유롭게 오간다면? 바다 위를 내달려 언제든 섬의 정취를 누릴 수 있으니, 오히려 더 매력적인 여행지로 다가온다. 인천 영흥도는 수도권에서 한두 시간이면 닿는 섬이다. 바다에 가로질러 놓인 다리를 두 번 건너야 하는데, 안산 대부도와 연결된 선재대교를 지나면 영흥대교까지 약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선재도와 영흥도를 잇는 영흥대교◇육지와 이어진 섬 ‘영흥도’2001년 말에 개통한 영흥대교는 길이 1250m, 너비 9.5m 왕복 2차선 다리다. 국내 기술로 처음 건설한 해상 사장교로 꼽힌다. 영흥대교가 세워지면서 인천과 영흥도를 오가던 한 시간 뱃길이 대부도와 선재도를 거쳐 영흥도까지 육로로 이어졌다. 영흥도는 차로 한 바퀴 둘러보는 데 40~50분이면 충분하지만, 도심과 가깝고 뭍과 다리로 연결된 편리함 덕분에 사시사철 여행객이 끊이지 않는다. 바닷가 쪽에 입소문 난 숙소가 많아 주말 여행지로도 인기다.십리포해수욕장 해안 산책로섬에는 해수욕장이 두 곳 있다.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십리포해수욕장이 나온다. 십리포해수욕장은 규모가 아담하고, 해변에 무료 야영 시설이 있어 캠핑족과 가족 여행객에게 인기 만점이다. 특히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인천국제공항과 바다 위로 길게 뻗은 인천대교 풍경이 인상적이다. 하늘 위로 떠가는 비행기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밤에는 이들이 밝히는 야경이 멀리 보인다. 십리포해수욕장은 해수욕과 갯벌 체험을 모두 즐기는 재미가 있다. 밀물 때 모래밭이 보이지만, 썰물 때는 모래밭 너머로 갯벌이 드러난다. 직접 캔 조개와 바지락으로 시원한 탕을 끓여도 별미다. 섬 곳곳에 바지락칼국수를 내는 식당이 많다. 십리포해수욕장의 또 다른 명물은 해변 뒤쪽에 조성된 소사나무 군락지다. 150년 전 방풍림으로 하나둘 심어 가꾼 것이 아름다운 숲이 됐다. 예전에는 나무 그늘 아래서 야영도 했다는데, 1997년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되며 나무 주위에 철책을 둘렀다. 소사나무 군락지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로 활용된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배경이 된 한국 해군 첩보부대의 비밀 작전이 영흥도를 거점으로 펼쳐졌으며, 소사나무 군락지에서 야전을 했다고 한다. 섬 남단에 이들을 기리는 해군영흥도전적비가 있다. 해변 끝에 조성된 해안 산책로는 길목마다 싱그러운 초록빛 기운을 머금었다.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도 여유가 스민다.장경리해수욕장◇즐길거리, 볼거리 넘치는 드라이브 코스영흥도 서북쪽에는 장경리해수욕장이 있다. 너른 해변에 캠핑과 야영 시설이 잘 갖춰졌다. 이곳 야영장은 유료로,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 시설도 운영한다. 해변 뒤로 숙소와 식당, 카페, 편의점 등 부대시설이 많아 휴가철과 주말에는 늘 북적인다. 해변 끝자락에는 조개와 고둥을 캐는 갯벌 체험장이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재미난 추억을 만들어보자.국사봉 정상에 오르면 섬을 둘러싼 바다와 아름다운 주변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무의도와 자월도, 용유도 등 크고 작은 섬이 그림처럼 바다에 점점이 박혀 있다. 국사봉에는 고려 말기 왕족인 익령군 왕기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국사봉에서 바라보는 전망국운이 기울어가는 시기에 환란을 피해 영흥도에 은신한 왕기는 이곳에 올라 왕도가 있는 북쪽을 향해 절하며 고려의 번영을 기원했다고 한다. 국사봉 아래 통일사라는 절과 왕기가 국사봉에 오르기 전에 목욕재계했다는 샘터가 있다. 아이와 떠난 가족 여행이라면 영흥에너지파크에 들러보자. 전기와 에너지를 주제로 한 실내 전시관, 생태 연못과 공룡 모형, 꼬마기차 등으로 꾸민 야외 체험 테마파크가 흥미를 끈다. 1층 전시관은 전기가 만들어지는 원리와 과정을 다양한 에듀테인먼트 전시물로 재미있게 관람하도록 꾸몄다. 대규모 정전 사태인 블랙아웃(Black Out)도 체험할 수 있다. 2층 전시관에서는 우리나라 전기의 역사, 화력발전의 원리 등을 배운다. 발전소를 축소한 모형과 영흥발전본부 중앙제어실을 재현한 공간이 눈길을 끈다. 영흥도에 조성된 한국남동발전 영흥발전본부는 석탄 화력발전소를 주축으로 풍력 단지와 해양 소수력, 태양광발전소를 고루 갖춘 친환경 복합 발전 단지다. 수도권 전력 수요의 약 23%를 공급할 정도로 에너지 생산 규모가 크다.바닷길이 열리는 목섬◇모세의 기적 ‘목섬과 측도’영흥도의 관문 격인 선재도는 ‘모세의 기적’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목섬과 측도가 유명하다. 썰물 때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바다가 갈라지듯이 섬으로 이어진 모랫길이 드러난다. 작은 무인도인 목섬까지 약 1km 거리로, 가볍게 산책 삼아 다녀올 만하다. 섬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는 데 30분 남짓 걸린다. 바다를 가로질러 걷는 기분이 독특하고 새롭다. 목섬에서 바라보는 선재도 풍경 역시 이색적이다. 측도는 섬 안에 작은 마을이 있을 만큼 규모가 크고, 모랫길 위로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선재대교 아래 소박한 벽화 골목이 있다. 섬 남단에 옹기종기 모인 집 사이로 정겨운 그림이 그려졌다. 골목 담벼락마다 알록달록한 꽃이 늘 화사하게 피어나고, 돌고래와 만선을 이룬 고깃배가 춤을 추듯 출렁인다. 골목을 지날 때 마음이 따뜻해진다.시화나래 조력문화관 달전망대 유리데크선재도를 지나 대부도 시화방조제를 건너간다면 시화나래조력문화관 방문이 필수다. 시화나래조력문화관 옆에 세워진 달전망대가 명소다. 전망층(75m)에 오르면 서해와 시화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끝없이 이어진 시화방조제와 바다 끝에 자리한 송도국제도시가 신기루처럼 느껴질 정도다. 전망대 한쪽에는 바닥이 투명한 유리 데크를 설치해 아찔한 스릴을 맛볼 수 있다. 시화나래조력문화관과 달전망대 이용은 모두 무료다.◇여행메모△여행코스= 십리포해수욕장→영흥에너지파크→해군영흥도전적비→ 장경리해수욕장→국사봉→목섬→시화나래조력문화관 달전망대△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목감 IC에서 제3경인고속화도로, 인천국제공항 방면 오른쪽→제3경인고속화도로→정왕 IC에서 월곶·시흥스마트허브 방면 오른쪽→정왕교차로에서 오이도·배곧 방면 오른쪽→서해안로→북동삼거리에서 영흥도·선재도 방면 우회전→대부고교교차로에서 영흥도 방면 우회전→대선로→영흥대교→영흥도△잠잘곳= 영흥도에는 작은 규모의 숙박시설이 많다. 영흥남로 9번길에 있는 ‘미스터와이펜션’과 영흥로 757번길의 ‘인썸호텔’이 시설이 좋ㄷ. 글램핑이나 캠핑을 원한다면 ‘블랙트리글램핑&하우스블랙트리캠핑’이 좋다. △먹을곳= 서해안의 풍부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곳들이 곳곳에 있다. 영흥북로의 바다고양이횟집은 회정식과 양푼바지락칼국수가, 영흥도바지락해물칼국수는 칼국수가, 본토칼국순느 바지락손카국수가 유명하다. △주변 볼거리= 양로봉, 농어바위, 용담바다낚시터, 유리섬박물관, 바다향기수목원, 방아머리해수욕장 등시화나래 조력문화관 달전망대에서 보는 풍경
2019.06.08 I 강경록 기자
 푸르고 고요한 숲, 장쾌한 폭포…올곧은 선비와 같아라
  • [여행] 푸르고 고요한 숲, 장쾌한 폭포…올곧은 선비와 같아라
  • 경북 영주 소수서원 주변에는 수백년 된 멋진 적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학자수림’이라고 부른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유교의 시작은 중국이었다. 춘추 시대의 공자(孔子)가 만든 사상이다. 하지만 유교문화를 꽃피운 나라는 ‘조선’이었다. 조선은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고, 예를 바탕으로 국가질서를 확립했다. 정확하게는 유교의 한 갈래인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은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바탕으로 인격의 수양과 실천을 강조했다. 그 바탕이 된 것이 바로 서원이다. 지금으로 치면 사립학교인 셈이다. 이 서원이 곧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예정이다. 조선 사회의 전반에 널리 보편화된 성리학의 탁월한 증거이자, 지역 전파에 이바지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중국을 제치고, 조선의 서원 9곳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있는 경북 영주를 찾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소수서원 앞 취한대와 백운하◇조선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영주 여행길에서 비켜갈 수 없는 것이 있다. 조선 선비 정신의 뿌리를 둔 유교 이념과 그 유산이다. 대표적인 곳이 순흥면의 소수서원과 선비촌이다.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때 풍기 군수를 지낸 주세붕이 세운 사당이었다. 이듬해에는 이곳의 이름은 ‘백운동 서원’이라 짓고 유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후 조선 최초로 사액을 받았다. 왕이 직접 서원의 이름을 내렸다는 말이다. 그 이름이 바로 ‘소수서원’이다. 조선 명종 때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오면서였다. 이후 조선 말까지 4300여명의 유생을 길러냈다. 참고로 도산서원이 배출한 유생은 257명이니, 소수서원의 위상을 알 수 있다.소수서원 주변에는 수백년 된 멋진 적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학자수림’이라고 부른다.서원 주변에는 수백년 된 멋진 적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학자수림’이다. 추위를 견디며 푸른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처럼, 어려움을 이겨내고 참선비가 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입구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이 지점에서 지면은 한 단 높아진다. 서원 경내임을 알리는 일종의 표시다. 출입문인 사주문(四柱門)으로 통하는 길 왼쪽으로는 성생단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죽계수가 내려다보이도록 지은 경렴정이 있다. 경렴정은 원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 ‘경렴정’은 북송의 성리학자인 염계 주돈이를 경모하는 뜻으로 그의 호에서 빌여왔다고 한다.소수서원 입구에 있는 소수서원 비석경렴정 죽계수 건너편에는 물가로 튀어나온 경자바위가 있다. 거기에 새겨진 ‘경’자는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창건하고 쓴 글씨이다. ‘경’은 성리학에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수양론의 핵심이자, 선비의 지침. 퇴계는 이곳에 송백과 죽을 심어 ‘취한대’라고 이름짓고, 또 ‘경’자 위에 ‘백운동’ 석 자를 새겼다. 서원 안쪽으로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초기 서원이기 때문에 다른 서원들에 비해 건물을 자유롭게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학생들이 머물며 공부하는 일신재와 직방재가 연속으로 서 있다. 강당 좌우에 대칭으로 동재와 서재를 두는 일반 서원의 건물 배치와 다르다. 이 서원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맑고 차가운 선비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소수서원 입구 죽계수 건너편에는 물가로 튀어나온 경자바위가 있는데, 거기에 새겨진 ‘경’자는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창건하고 쓴 글씨이다부석사 범종루◇부석사의 선비화와 희방사의 희방폭포풍기읍 수칠리에 있는 희방사 오르는 길에 만나는 희방폭포. 소백산 연화봉에서 흘러나온 물이 희방계곡을 흘러내리다가 28m 높이의 수직암벽을 타고 쏟아진다.부석사 또한 빼놓고 갈 도리가 없다. 가는 방법은 너무 쉽다. 부석사 후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집으로 들어서면 바로 범종루 아래다. 부석사에는 무수한 시간을 뿌리 삼아 자라는 나무도 있다. 무량수전 뒤편의 조사당 뒷마당에 뿌리를 내린 선비화(골담초)다. 행여 다칠세라 촘촘하게 철사로 엮은 울타리 안에서 자라는 이 나무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고 전한다. 의상대사가 천축국(인도)으로 갈 때 꽂은 것이라기도 하고, 열반을 앞두고 세상을 뜨기 전에 제자를 시켜 꽂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나무가 지내온 시간이 1300여년이 넘는 셈이다. 조선 광해군때 경상감사가 지팡이를 만들고자 이 나무를 잘라갔다가 훗날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고, 퇴계가 이 나무를 기리며 남긴 시(詩)도 전해진다. 그래봐야 높이는 2m가 채 안 되고 굵은 뿌리 부분이 엄지손가락 굵기 정도인 이 작은 나무에 매달린 시간과 이야기는 참으로 많다.희방폭포에서 희방사 가는 길은 온통 초록세상이다영주에는 부석사만 있는 건 아니다. 소백산의 남쪽 골짜기마다 절집이 들어서 있다. 그중 풍기읍 수철리의 희방사는 늦은 봄날 딱 맞는 절집이다. 신라 때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지만, 6·25 전쟁으로 모든 건물이 다 소실돼 다시 지었다. 희방사에서 보아야 할 것은 절집과 어우러진 자연미다. 희방사까지는 산 아래 절집 입구의 매표소에서 20분쯤 걸어야 하는데, 딱 절반쯤의 거리에 희방폭포가 있다. 소백산 연화봉에서 흘러나온 물이 희방계곡을 흘러내리다가 28m 높이의 수직 암벽을 타고 쏟아진다. 기나긴 봄 가뭄에도 폭포의 위용도, 으러렁거리는 물소리도 장쾌하다. 폭포수가 공기를 밀어내면서 만든 바람과 분무기로 뿜어낸 듯 비산하는 물방울의 서늘한 기운에 늦봄 한낮에도 금세 소름이 돋는다. 폭포 아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이 대단하다.여기서 10분쯤 더 오르면 희방사다.희방사는 자연림으로 뒤덮인 절집. 비록 어마어마한 위용의 거목은 아니지만, 건강한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숲을 이루고 있다. 극락보전을 둘러싸고 느티나무와 전나무가 치솟았고, 요사채와 지장전, 범종각 주위에는 버드나무, 벚나무, 박쥐나무가 초록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국립산림치유원 프로그램 중 하나인 마실치유숲길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인 해먹 체험.◇숲에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다안동산림치유원 밸런스 테라피숲을 테마로 한 치유원도 있다. 소백산 서쪽의 옥녀봉(807m) 자락에 있는 국립산림치유원 ‘다스림’이다. 시설 부지만 2889ha(874만여평). 서울 여의도 전체 면적의 10배 수준이다. 다스림은 휴양림도 산림욕장도 아닌 산림치유원이다. 이름 그대로 산속에서 치유를 경험하는 시설이다. 산림청에서 1400여억원을 들여 2016년 8월 개장했지만, 아직 아는 사람이 드물다. 기존 휴양림과 다른 것은 시설과 프로그램 때문이다. 휴양림이 숙소만 빌려주는 곳이라면, 이곳은 숙소와 함께 숲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대신 이용자들에 대한 제한도 적잖다. 객실에는 TV가 아예 없을 뿐 아니라, 무선인터넷(WIFI)도 사용할 수 없다. 일체의 일회용품도 사용할 수 없다. 음주와 흡연은 물론이고, 숙소에서 취사나 바비큐도 금지하고 있다. 대신에 삼시세끼의 건강식과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프로그램은 짧게는 1박2일부터 길게는 4주까지 다양하다. 가장 이용객이 많은 1박2일 코스는 도착 당일 오후 방문자센터에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이후에 요가와 숲 트레킹 등을 즐기는 일정으로 짜여져 있다. 가장 매력적인 프로그램은 스트레칭과 숲 트레킹이다. 스트레칭은 1시간가량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이뤄진다. 소도구(트윈롤러나 폼롤러)를 이용해 전신에 자극을 주고 근육을 이완시킨다. 숲 트레킹도 인상적이다. 치유원 내에는 트레킹 코스가 모두 7개가 있다. 이중 6개는 도보용, 나머지 하나는 산악레포츠용 숲길이다. 그중 마실 치유숲길은 5.9km 가량 이어지는 도보 코스다. 절반에 좀 못 미치는 2.3km 구간을 나무 데크로 조성했다. 장애인이나 노인 등 보행 약자도 쉽게 걸을 수 있다. 길은 200~300여m마다 쉼터가 있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자연과 교감한다. 숲바람쉼터는 풍욕을 즐기는 곳. 사방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푸르뫼쉼터에서는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 등 맞은편에 있는 소백산 봉우리 3개를 건너다볼 수 있다. 나무가 구부러져 자라는 이유를 배우고, 키 큰 나무에 둘러선 채로 눈을 감고 명상하며 소망이 이뤄지길 기원하는 시간도 갖는다.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잣나무숲에서의 해먹 체험이다. 20여분 동안 해먹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게 전부다. 그러다 보면 숲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여행메모△가는길= 수도권에서 가자면,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대구 방면으로 가다가 풍기 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풍기에 내려서 931번 지방도를 타고 부석 방면으로 향하면 소수서원이 있는 순흥에 가닿는다△먹을곳= 한우 갈비에 쌉싸름한 인삼을 섞은 달큼한 양념을 버무려 내오는 ‘풍기 인삼갈비’(사진)의 갈비는 전국적인 명성을 누린다. 풍기에서는 또 ‘정도너츠’의 생강도너츠가 명물로 꼽힌다. 종류도 허브, 초코, 녹차, 들깨, 고구마, 사과, 인삼 등 다양하다. △여행팁= 내달 8일은 ‘글로벌 웰니스 데이’다. 2012년 터키에서 시작된 비영리 이벤트로, ‘단 하루가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One day can change your whole life)’라는 슬로건 아래 매년 6월 둘째 토요일에 열린다. 스스로에게 더 건강하고 윤택한 삶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묻고 이런 생각을 사회적인 가치로 인식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올해는 약 130개국 5000여개 지역에서 이벤트가 열릴 예정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31개 웰니스 관광지 중 영주 다스림, 서울 티테라피(행랑점), 충주 깊은산속 옹달샘 등 8곳이 참여한다. 운영시간, 예약방법 등 자세한 내용은 웰니스 관광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에 모셔져 있는 ‘소조여래좌상’
2019.05.24 I 강경록 기자
5월 가정의 달, 핫스팟 거제도 여행지
  • 5월 가정의 달, 핫스팟 거제도 여행지
  • [이데일리 트립in 심보배 기자] 봄의 기운은 하얗고 노랗고 붉은 꽃으로 피었다가 초록으로 대지를 물들이며 사람의 마음에도 생기를 불어넣는다.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국내여행지를 찾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다. 그중 거제도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해 가족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다. 의미 있는 핫 플레이스 매미성거제시 복항마을에 위치한 매미성은 2003년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시민 백순삼 씨가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 홀로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성벽이다. 바닷가 근처 돌을 쌓아 시멘트를 바르며 시간과 함께 완성되어 가는 거대한 성은 마치 유럽의 성벽을 연상케 하듯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전문 건축가 그 누구의 작품보다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된 곳이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자연재해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의미도 있지만, 주변 환경과의 조화로움에 찬사가 이어진다. 동선을 따라 걷는 즐거움, 성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바다풍경, 작은 아치형 공간 너머 핫 스팟 등 순수한 백순삼 씨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따스함마저 든다. 세삼 사람의 힘은 얼마나 위대하고 창의적인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한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매미성은 현재도 미완성이다. 설계도 없이 백순삼 씨의 감성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며 만들어가고 있기에 곳곳이 촬영장소다. 아름다운 사진도 남기고 의미 있는 여행을 원한다면 이곳은 꼭 방문해보자. 성벽 아래 몽돌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해변을 거니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거제 황제의 길 아름다운 드라이브거제시 일운면의 ‘황제의 길. 아직 떨어지지 않은 벚꽃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3km에 달하는 거리는 일운면 망치리 고개에서 학동 몽돌 해수욕장, 해금강, 여차, 흥포해안까지 구불구불한 길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은 절로 난다. 봄이면 벚꽃으로 여름이면 실록이 아름다운 길로, 가을이면 붉은 상사화 꽃으로도 유명하다. 황제의 길은 해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경치에 반한 에티오피아 황제가 ’원더풀‘을 외쳐 이후 ’황제의 길‘이라 칭하고 있다.외도 앞바다가 보이는 거제도펜션 원더풀여행지에서 최고의 휴식은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원더풀 펜션은 산 중턱에 위치해 뒤는 산, 앞은 바다를 향하고 있다. 탁 트인 바다 전망을 감상하며 온전한 휴식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펜션 객실은 커플이 이용할 수 있는 커플룸과 가족, 단체룸으로 다양하다. 인원에 따라 어느 객실을 선택하더라도 개별테라스와 아늑함은 동일하다. 신규로 오픈한 객실은 침실과 거실이 분리되어 숙면을 취하기도 좋고, 개별테라스에 월풀과 바비큐장이 함께 있어 동선이 자유로워 편리하다. 외도를 바라보며 따뜻한 욕조에서 여행의 피로도 풀 수 있어 인기가 많다.숙소에서도 가장 민감한 것이 잠자리라 오픈할 때부터 호텔형 시트 관리를 하며, 뽀송뽀송한 침구류가 준비되어 있다. 봄꽃이 활짝 핀 야외 정원에는 대형 통나무 원두막이 있다. 시원한 봄바람 맞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벼운 티타임을 즐겨도 좋다. 저녁이면 개별 바비큐장에서는 아름다운 거제의 야경을 바라보며 맛있는 바비큐를 즐겨보자. 객실마다 주방시설과 조리기구가 준비되어 있어 맛있는 요리를 해 먹어도 불편함이 없다.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랑하는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도 전한다면 이보다 행복한 여행은 없을 것이다.
2019.04.29 I 심보배 기자
 ③연둣빛 봄이 피어오르는 제주오름 `족은노꼬메오름`
  • [진서우의 제주살이] ③연둣빛 봄이 피어오르는 제주오름 `족은노꼬메오름`
  • [이데일리 트립 in 진서우 기자] 유채꽃이 노란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봄이다.지금쯤 숲은 연둣빛 세상으로 변했을 테지. 그런 생각으로 족은노꼬메오름에 갔다. 그러나 오름에는 봄이 더디게 오고 있었다. 겨울을 떨쳐내지 못한 숲은 이제야 깨어나고 있었다.촌장과 나는 짧은 길도 긴 시간을 들여 걷는다. 숲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몸속으로 밀려드는 공기도 상큼한 초록이다. 숲에 들 때면 내가 호흡을 하며 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꽃냄새와 더덕 향기에 코가 벌름대고, 발에 밟혀 사그락 대는 화산송이와 삼나무 숲이 부르는 바람의 노래에 귀가 즐겁다.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숲에 마음을 디밀어 보고,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며 숲에 스며든다.족은노꼬메오름은 섬의 서북쪽인 애월읍에 있다. 주차장이 따로 있지만, 궷물오름도 함께 올라갈 생각이어서 궷물오름 주차장에 차를 댔다. 탐방로에는 화장실이 없으므로 주차장에 있는 간이 화장실을 미리 이용해야 한다. 뾰족하고 높아 보이는 오름이 큰노꼬메오름이고, 그 옆에 완만해 보이는 오름이 족은노꼬메오름이다. 햇살이 잘 드는 소나무 길을 잠시 걸어가자 족은노꼬메오름과 궷물오름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으로 오름 정상에 오르고 오른쪽으로 내려와 궷물오름에 가려고 길을 잡았다. 숲에 들자 넓은 길이 나오고, 꽤나 힘들 거라는 예상과 달리 평탄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나는 조금 후의 일을 모른 채 가볍게 걸었다.촌장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유수암 목장이 나왔다. 그때야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족은노꼬메오름은 갈림길이 엄청 많은데 안내 표지판은 부족하다. 오름을 왔으니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는데, 내리막의 유혹에 길을 잃은 거였다. 한참을 되돌아와서 오름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았다. 족은노꼬메오름은 평범한 오름이 아니다. 초입만 평지이고 올라가기 시작하면 경사가 꽤 험하다. 엉뚱한 길로 가지 않는다면 말이다.1km쯤 올라가자 경사가 더욱 가팔라졌다. 땀이 나고 숨도 차올랐다. 그때마다 멈춰 서서 돌아보면 제주 들녘의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노루 녀석들은 모두 어디 간 거야? 가끔 뱀도 몇 마리 기어 다니면 좋을 텐데….”촌장이 숲을 올라가면서 투덜댔다. 나는 발 없는 짐승에 대한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있다. 무심히 걷는 사이에 발밑에 있는 뱀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비명을 질러댈 것이고, 필경 펄쩍 뛰어올랐다가 땅으로 쿵 떨어질 것이다. 뱀이 아직 동면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었다.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활엽수들이 잎을 떨군 채 서 있고, 그 밑 세상은 조릿대들이 장악하고 있다. 나는 항상 겨울의 숲을 걸을 때면 봄의 숲을 생각한다. 봄이 되면 활엽수의 마른 가지에 물이 오르고, 일시에 깨어나는 연둣빛 새싹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겨울의 흙길에서 봄의 흙냄새를 맡으며 터벅터벅 걷는다.드디어 오름 정상이다. 미세먼지로 시야가 뿌옇다. 길을 잃지 않았다면 1시간 정도 걸렸을 텐데, 우리는 2시간이 지나서야 정상에 도착했다. 모든 오름 정상에는 경이로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한라산의 백록담이 보이고, 푸른 바다와 마을들이 섬의 치맛자락으로 아득히 흔들리고 있다.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오소리 서식지라는 안내 표지판이 있다. 허물어진 듯한 저 굴이 오소리 굴이다. 입구의 흙이 촉촉한 걸 보니 조금 전까지도 오소리가 드나든 게 분명했다. 오소리는 비탈지고 배수가 잘되는 곳에 굴을 판다. 중심 굴 주변에 작은 굴들을 그물 모양으로 파서 여러 세대가 모여 산다. 동면을 위한 겨울 굴과 번식을 위한 여름 굴을 구별해서 파고, 굴 청소도 자주 한다고 한다. 나보다 청결한 녀석이다.가파른 내리막길을 한참을 내려오니 주변은 어느덧 활엽수의 길이 끝나고 삼나무 숲이 시작되었다. 나무들은 훌쩍 커지고 밑동은 굵어졌다. 삼나무가 빽빽한 곳은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일렬로 늘어선 나무 사이를 걸으니 멋진 병사의 호위를 받는 듯 기분이 좋았다.숲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삼나무가 여기저기 뿌리가 뽑힌 채 쓰러져 있다. 제 생을 다 살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 나무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삼나무에게 영혼이 있다면 온 몸이 뽑히는 순간에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고 싶다. 거친 바람에 무심한 상태로 쓰러졌을까? 그 죽음에는 미련도 고통도 없었을까? 쓰러지는 순간까지 물을 빨아들이고 광합성으로 초록 잎을 부양하고 있었을 것은 자명하다.나무들이 죽었다는 건 사람의 관점일 뿐이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시간 속에서 허물어져 가고 있지 않은가? 저 나무들은 온몸으로 우뚝 서서 한 생을 살았고, 시간이 되어 다른 생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제 저들은 숲에 누워서 이끼와 버섯에게 몸을 내어주고, 개미에게 안락한 집을 제공할 것이다. 그렇게 또 오랜 세월이 흐르면 흙으로 돌아갔다가 다른 모습으로 숲에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숲에는 낡아가는 것도 죽어가는 것도 없다. 숲의 모든 것이 생명의 순환이 아닐까?오름을 다 내려오면 족은노꼬메오름과 궷물오름 사이에 겨울에도 싱싱한 풀이 자라는 넓은 초지가 있다. 지금도 노루 한 마리가 숲에서 나와 풀을 뜯고 있다. 노루의 저 눈빛은 마치 뒤편에 있는 나를 보는 듯하다. 내가 움직이자 풀을 뜯던 일을 멈추고 정지해 있다. 카메라를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데 갑자기 수풀에서 꿩 한 마리가 요란스럽게 울어 재끼며 날아올랐다. 그 소리에 나보다 더 놀란 노루가 숲으로 숨어버렸다.이곳 초지는 `효리네 민박`프로그램에서 이효리와 아이유가 촬영을 했던 곳이다. 유명세를 탄 덕분일까? 올라오는 젊은 남녀마다 내려가는 내게 촬영장소를 물었다. 삼나무와 전나무숲에 둘러싸인 초지에는 깔깔대며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들이 보였고, 셀프 웨딩촬영을 하는 신부의 모습이 눈부셨다. 멋지게 차려입은 청춘들이 인생의 한 순간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초지를 지나서 궷물오름에 올랐다. 높이 57m의 낮은 오름이다. 분화구 바위틈에서 샘물이 솟아나는데, 이 샘물을 궷물(괸물)이라고 부르는 대서 유래됐다. 궷물오름 정상에 서자 큰노꼬메오름이 무시무시한 자태로 솟구쳐 있다. 주차장에는 차량이 많지만 족은노꼬메오름 정상을 밟는 여행객이 별로 없었다. 오름이 험한 탓도 있을 거다. 하지만 험한 만큼 숲이 깊고 오르는 즐거움이 있다. [여행 팁] ·경사가 꽤 가파른 오름이므로 트레킹화를 신고 올라가는 게 좋다.
냄비 걷어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예술였던 적 있느냐
  • 냄비 걷어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예술였던 적 있느냐
  • 설치미술가 최정화가 수원 아트스페이스 광교 개관전 ‘잡화’에 내놓은 ‘타타타’(2019). 누군가 쓰다 버린 철제 그릇과 주전자, 냄비 등을 배배 꼬아 만들었다.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의 연결과 대립, 무한순환이란 의미를 담아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뫼비우스의 띠’를 형상화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수원=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쓸데없는 것이 한 데 뒤섞인 것, 또는 그 물건.” 세상은 ‘잡동사니’를 이렇게 부른다.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온갖 잡것, 골동이란 뜻이다. 방향을 조금 틀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여러 가지 잡다한 물품.” 그래, ‘잡화’다. 그다지 쓸데없진 않은, 그래서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쓰임새가 있을 법한. 그런데 말이다. 잡동사니든 잡화든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눈물겹도록 생활밀착형이란 점이 아니겠나. 쓰다가 쓰다가 멀리 던져놔도 전혀 아깝지 않은, 어차피 ‘예술’과는 거리가 한참 먼 그것. 그런데 여기 뭔가 좀 이상하다. 세상의 모든 ‘아깝지 않은 생활밀착형 물건’들이 모여 저마다 ‘예술’을 외치고 있으니. 크고 작은 초록색 소쿠리부터 한눈에 봐도 오래된 조명기구, 구겨진 페트병과 그 뚜껑, 녹슨 철판과 절름발이 나무의자, 플라스틱 빗과 빗자루 또 파리채, 찌그러지고 칠이 다 벗겨진 갖은 냄비까지. 자, 일찌감치 ‘까고’ 시작하자. 이곳은 경기 수원 영통구 광교중앙로, 최근 문을 연 수원컨벤션센터 내 아트스페이스 광교다. 그 1872㎡(약 566평) 규모 중 실내 지하전시장(약 300평)을 이들 잡다한 물건이 입추의 여지없이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는 얘기다. 일상의 참 보잘것없는 소재를 예술의 장면으로 끌어내 승화시킨 현장. 아마 누군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테다. 맞다. 여기는 설치미술가 최정화(58)가 또 다시 ‘한 판’을 벌인 곳이다. 수원시미술관사업소가 연 아트스페이스 광교 개관전 ‘잡화’다. 최정화의 ‘오뚜기 알케미’(2019). 작가 최정화를 만든 그 발단이라 할 초록색 ‘소쿠리’를 쌓아 푸른 숲으로 형상화했다. 이른바 생활용기탑이다. 누군가 툭 치고 지나가면 다양한 사운드가 울리고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흔들흔들 움직이기 시작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소쿠리의 반란, 빗자루의 혁신 전시에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아니 그 이상의 잡동사니가 총출동했다. 그나마 명찰을 달고 나온 작품만 100여점. 미처 이름을 챙기지 못한 물건, 또 한 작품에 든 수많은 가짓수를 포함하면 족히 수백 점은 넘어 보인다. 한 줄로 세우고, 길게 엮고, 뭉텅이로 엉켜 올리고. 이들을 진두지휘한 최 작가는 이 분야에서 일찌감치 ‘세계적’이란 타이틀을 거머쥔 이다. 현대사회가 생산하고 소비하고 버리기까지 하는 사물을 변신시키자, 그 시작은 1990년즈음이었단다. 플라스틱 소쿠리를 쌓아 만든 설치물부터였다. 어지럽고 너저분할 듯한 그 물건은 작가 특유의 조형감각으로 아름답게 ‘환골탈태’했다. ‘일상의 예술화’를 넘어 ‘예술의 일상화’를 코드명 삼아 30여년을 이어온 작업의 발단이었다. “최정화다운 ‘짓’과 ‘것’을 펼치는 축제의 장”은 이후론 더욱 거침이 없었다. 가히 역모급이었다. 소쿠리의 반란, 냄비의 반역, 빗자루의 혁신을 꾀하는. 2005년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옥상에는 한국선 거들떠도 보지도 않은 붉은색 소쿠리를 올려 거대한 성벽을 쌓기도 했고(‘욕망장성’). 2008년에는 잠실종합운동장 주 경기장 외벽에, 2009년에는 옛 기무사 건물(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옥상에 플라스틱 잡동사니를 탑처럼 ‘구축’했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8’로 소개한 작품으론 정점을 찍었다. 낡은 가정용 식기를 집합시켜 9m 3.8t의 거대한 꽃을 피워냈으니(‘민들레’·2018). 설치미술가 최정화가 세상의 잡동사니를 동원한 자신의 작품 앞에 섰다. 다듬이돌, 촛대, 플라스틱 솔로 만든 꽃장식까지. 뒤로 ‘바를 정이기 어려운 바를 정’이란 작품이 보인다. “그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곳에서 사물을 만나게 해줘야겠다 했을 뿐, 내 작품에는 답이 없다”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왜 굳이? 세상에 많고 많은 소재 중 작가는 왜 굳이 이 하찮은 것들에 눈과 손을 돌린 건가. 아마 “창조는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다”란 그의 철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상의 삶에 모세혈관처럼 퍼져 스민 것이 창조니, 누구라도 관여하고 또 개입해야 하는 영역이란 얘기다. 그이의 작품은 그 철학 위에 그저 그렇게 쓰이고 버려지는 잡스러운 물건에 특별한 애정을 듬뿍 얹어냈다는 것이고. 한 가지가 더 있다. 세상의 물건은 ‘내 것이되 내 것일 수만은 없다’는 공유경제 개념. 이번 전시 대표작인 ‘빛의 묵시록’(2019)을 두고 최 작가는 그 점을 강조했다. “단순히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의 빛을 모아 만든 작품”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시민 참여 공공미술프로젝트 ‘모이자 모으자’를 통해 기증받은 스탠드·조명 300여점으로 꾸며낸 것이니. 최정화의 ‘빛의 묵시록’(2019). 시민 참여 공공미술프로젝트 ‘모이자 모으자’를 통해 기증받은 스탠드·조명 300여점으로 꾸며낸 작품이다. ‘나의 빛이 너의 빛을 만나 우리의 빛이 된다’는 취지였다고 했다. 빛으로 태고의 풍경과 미래의 풍경을 연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예술은 삶과 치밀하게 맞닿아 있어야” ‘잡화’란 게 그렇지 않은가. 어차피 누구 한 사람의 소유일 순 없다. 쓰다 버린 철제 그릇과 주전자, 냄비 등을 배배 꼬아 만든 ‘타타타’(2019)가 그렇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한순환의 ‘뫼비우스의 띠’란 의미가 괜히 따라붙은 게 아니다. 예의 그 초록색 소쿠리를 탑으로 형상화한 ‘오뚜기 알케미’(2019), 각이 제대로 잡힌 빨갛고 파란 바구니를 피라미드처럼 세운 ‘나의 아름다운 21세기’(2019)도 마찬가지다. 소쿠리든 바구니든 평생 한두 개 쓰는 게 고작일 터. 검붉은 녹까지 내려앉았지만 우주의 진리를 띄운 둥근 수레바퀴 모양은 포기하지 않은 ‘삭은 페트병 만다라’(2019)는 또 어떤가. 결국 이 모두는 우리 삶과 치밀하게 맞닿아 있는 예술이고 미술이란 뜻을 품었다. 최정화의 ‘삭은 페트병 만다라’(2019). 페트병에 내려앉은 검붉은 녹이 인상적이다. 녹슬고 삭이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한 우주의 원만한 진리, 둥근 수레바퀴 모양은 포기하지 않은, 만다라를 상징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당연히 관건은 조화와 화합이다. 움직임과 고요함의 변화, 상반된 것들의 공존, 부조화의 통일 등이 뿜어내는 생명력을 끄집어내는 일. 여기에 최 작가는 소소한 물건에 대한 찬사만도 아닌 자본만능에 대한 비판만도 아닌 중간관리자 역할까지 기꺼이 담당한다. 이런 식이다. 미세먼지를 첩첩이 겹쳐 놓으면 종유석 정도는 우스울 거고(‘미세먼지기념비’·2019), 동글동글한 구슬도 모아두면 이처럼 눈이 부시게 반짝일 순 없을 것이며(‘눈부시게 하찮은’·2019), 어느 대형미용실이 이보다 더 알록달록하고 다채로운 빗을 구비했다고 할 건가(빗, 움, 빛·2019). 최정화의 ‘미세먼지기념비’(2019·왼쪽). 미세먼지를 첩첩이 겹쳐 놓으면 종유석 정도는 우스울 거란 비아냥이 들어 있다. 가운데에 ‘눈부시게 하찮은’(2019)이 보인다. 반짝이는 미러볼 탑 12개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키네틱 설치작품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머릿속을 한바탕 뒤집어놓은 ‘정신 사나운’ 전시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의 메시지는 직설적이고 단순하다. “존재는 서로 만나게 돼 있고, 모든 것은 빛나게 돼 있다.” 그래서 이 난장판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는 거 아닌가. “사물이 먼저 말을 걸었고 난 귀를 기울였을 뿐, 그래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곳에서 만나게 해줘야겠다 했을 뿐”이라고. ‘최첨단 민속박물관’ 같은 전시장을 빙빙 돌며 어떤 고물을 건져내든 그것은 분명 ‘빛’이다. 전시는 8월25일까지. 최정화의 ‘달팽이와 청개구리’(2019). 빠른 성장과 경쟁시대에 필요한 느림의 미학을 거대한 달팽이와 그 위에 올라앉은 청개구리로 표현했다. ‘달팽이와 청개구리’를 비롯해 ‘잡화’ 전은 수원 아트스페이스 광교를 둘러싼 대형 야외작품 ‘러브 미’(2019), ‘과일나무’(2005), ‘무의열반’(2016) 등을 전시하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2019.04.15 I 오현주 기자
대한민국 맥주 전쟁
  • [문정훈의 맛있는 혁신]대한민국 맥주 전쟁
  •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2019년 봄, 대한민국 맥주 시장은 실로 치열하다. 150여개에 달하는 각 지역의 수제맥주 제조사들이 전격적으로 기존의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주류 3사가 삼분하고 있던 맥주시장을 뚫고 들어가려고 하고 있고, 해외 수입맥주의 한국시장 공략 역시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이 덕택에 마트와 편의점의 맥주 매대는 더 다양해지고 있어 소비자는 행복하다. 반면에 기존 맥주 3사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대한민국 맥주시장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맥주시장의 재편기는 향후 2년 간 아주 흥미롭게 전개될 것이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기존 3사의 업소용 맥주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보 전쟁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용 맥주시장에서의 수제맥주 및 수입맥주의 진입 경쟁일 것이다.하이트진로와의 끊임없는 경쟁에서 주류영업의 달인 장인수 전(前) 오비맥주 부회장(그는 진로 영업맨 출신이다)은 ‘하이트’를 완전히 녹다운 시켜버렸다. 시장 점유율에서 오비맥주의 ‘카스’는 하이트를 더블 스코어로 밀어내버렸다. 카스는 대한민국 맥주시장의 최강자가 되었으나 실은 상처뿐인 영광이다. 오비맥주는 업소용 맥주시장에서 대세를 잡긴 했지만, 편의점에서 주로 판매하는 가정용 맥주시장에서는 수입맥주에 계속 밀리고 있다. 더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한 2위 하이트진로는 배수의 진을 치고 맥주 신제품 ‘테라’를 출시했다. 초록색 병, 청정 호주의 맥아를 썼고, 전분이 들어갔으며, 탄산을 인공적으로 주입하지 않았다고 광고하고 있다. 병의 전면에 붙어 있는 라벨에 한글은 보이지 않는다. 전부 영어다. 테라는 잘 만든 맥주임에는 분명하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이스팅 하면 카스를 딱 이길 맛으로 만들었다. 카스보다 더 쌉쌀하고 더 풍부한 향을 가지고 있다. 청량감도 좋다. 그러나 제품으로써의 식품은 더 맛있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카스가 맛이 최고라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인 것은 아닌 것과 같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소비자들에게 맥주의 브랜드를 공개하지 않고 맛을 보게 한 후 선호를 물어 보면 대부분은 맛이 옅은 라거 맥주보다 맛이 진한 에일 맥주를 선호한다고 답한다 한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전 세계 맥주 시장은 옅은 맛의 라거가 에일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전 세계 라거와 에일의 맥주 시장 점유율은 대략 9대 1 수준이다. 인간은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더 많이 먹거나 마시지는 않는다. 두뇌는 진한 맛의 맥주가 좋다고 하지만, 실전에서 몸은 다르게 반응한다. 게다가 가정용 맥주시장이 아닌 업소용 맥주시장은 ‘브랜드 마케팅’보다 ‘영업력’이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 시장이다. 새롭게 무장하고 시장에 출시된 테라의 마케팅이 장인수 전 부회장이 심어 놓은 카스의 최강 영업력을 이길 수 있을까? 주류산업에는 많은 규제가 있고, 특히 국내 업소용 맥주시장은 과점 상황이기 때문에 신제품으로 승리의 공식을 짜내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최근 국내 맥주시장에선 ‘카스 테라’ 전쟁이 한창이다. 하이트진로가 신제품 ‘테라’를 출시, 시장 1위 오비맥주 ‘카스’와 정면대결에 나섰다.(사진=각사)과점 상태인 맥주시장에서 하이트진로가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일이다. 선택권이 늘어난다. 하이트진로가 사활을 건 테라를 출시하고 강력한 브랜드 마케팅을 시작하며 ‘우리는 절대 지지 않는 차별화를 해나간다’고 마켓 시그널를 뿌렸을 때, 오비맥주의 카스는 어떤 전략을 펼쳤을까? 카스가 더 맛있다? 아니면 우리도 새로운 맥주를 낸다? 아니면 전격 할인 판매?오비맥주는 대한민국 식품음료시장의 역사에 길이 남을 기막힌 전략을 구사했다. 테라의 브랜드 마케팅 캠페인이 각 매체를 통해 시작되자 오비맥주는 ‘카스의 가격을 곧 올리겠다’고 예고 발표를 했다. 할인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가격을 올리다니, 이런 실책이 있나? 그러나 순간 시장이 희한한 방향으로 들썩인다. 카스가 비싸니 사지 않겠다는 반응이 시장에서 왔을까? 놀랍게도 시장은 그 반대로 움직였다. 각 식당과 술집에서는 카스 사재기를 시작했다. 맥주 제조사와 업소들을 연결해주는 주류 도매상들도 가격이 오르기 전에 카스를 선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창고에 카스가 가득 쌓이기 시작했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 미리 주문해서 가지고 있다 팔겠다는 것이다. 인지상정이다. 이렇게 되니 주류 도매상과 각 외식업장에는 테라를 적재할 공간이 없어진다. 국내법상 맥주 제조사는 맥주를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없으며, 반드시 주류 도매상을 거쳐서 유통시켜야만 한다. 그런데 이미 도매상의 창고는 카스로 가득 차 있다. 하이트진로는 테라를 어떻게 팔 것인가? 그리고 지난 2019년 4월 4일, 오비맥주는 예고한대로 카스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업계 초미의 관심사는 테라가 아닌 카스가 되어버렸다. 손님들이 식당에서 ‘테라 주세요’라고 해도 ‘저희는 카스 밖에 없어요. 카스 드세요’가 된다. 카스를 미리 준비해 둔 각 업장에서는 카스를 소비자에게 팔면 더 많은 마진을 남긴다. 테라에는 관심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하이트진로의 테라 브랜드 마케팅 전략이 오비맥주의 강력한 영업 전략에 무력화되고 있는 것이다. 마켓리더 카스의 위용이 느껴진다.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맥주시장에 변수들이 많다. 먼저 최근 수제맥주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며 기존의 맥주 3사를 크게 압박하고 있다. 또 동시에 수입맥주와 경쟁해야 한다. 또한 외식업계에서는 이번 오비맥주의 전격적 가격인상을 불편해하고 있다. 외식업체 입장에서는 재고비용이 커지게 되니 카스의 가격 인상이 반갑지 않다. 또한 국내 주세법 개정이 눈앞에 보인다. 만약 현행 주세법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면 알코올 도수가 낮은 맥주 가격을 자연스럽게 낮출 수 있는 요인이 생긴다. 그리고 새로운 경쟁의 룰에서 새롭게 경쟁해야 한다. 흥미진진한 한 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다.
2019.04.11 I 최은영 기자
  • [미리보는 이데일리 신문]복제약에만 기대던 중소 제약사 “회사 팝니다”
  •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다음은 11일자 이데일리 신문 주요 기사다.△1면-복제약에만 기대던 중소 제약사 “회사 팝니다”-“3년내 경영정상화 안되면 아시아나항공 내놓겠다” -한·미→남·북→북·미 ‘릴레이 정상회담’ 열리나 -노인 진료비 감면기준 65→70세로 상향조정 △줌인&-왜 마스터스에 열광하나…①브랜드 고급화 ②독점적 지배력 ③철저한 상업화 -국세청, 유명 유튜버·BJ 신종 고소득자 176명 세무조사 △중소제약사 매물 쏟아진다 -약가인하·공동시험 폐지 앞두고…“독자생존 어렵다” 속속 백기 -보약같은 벤처 잡아라…덩치 키우는 대형제약사 -제약사보다 8배 많은 제약유통업체도 칼바람 직면 △국민건강보험 종합개편안 발표 -모든 MRI·초음파 건보 적용…외상외과 등 기피 진료과목 보상은 강화 -국고지원 법적 최대한도 20%, 올해 13.6% 그쳐…개선 필요 △금호아시아나그룹, 자구안 제출 -채권단 압박에 ‘백기’…각별한 애정 가진 아시아나항공 매각 첫 언급 -당장 현금화 가능한 에어서울·에어부산 매각 유력-저비용항공사와 겹쳐 돈 안되는 단거리 노선 먼저 정리할 듯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9시 30분에 멈춰선 시계 아래…‘일제 침략의 원흉’ 쏜 총성 아직도 생생 -문희상 의장 “3·1운동 정신 완성도 높이고 국가 기틀 다진 기둥” -곳곳 쓰레기…임시정부기념관 건립지 흉물 전락 △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 -적극 행정 막는 감독관실 기능 축소…방위산업 발목잡는 규제 고칠 것 -내수포화…‘수출 지원’ 팔걷은 방사청 -매주 기업체 방문…“애로사항, 속시원히 답해드립니다” △정치 -트럼프와 120분 ‘포스트 하노이’ 담판…북·미 대화 불씨 되살릴까 -‘일하는 국회’ 만든다더니…국회 여전히 개점휴업, 왜 -김정은 “긴장된 정세, 새 전략적 노선 관철” -벼랑끝 패스트트랙 다음주 마지막 승부 △경제 -홍남기 경제부총리 “추경 규모 7조원 넘진 않을 것”-노인 일자리가 끌어올린 고용률 ‘경제 허리’ 40대·제조업은 줄어-韓商도 전문무역상사 된다-부자국사, 가난한 국민…가계 ‘여윳돈’ 9년 만에 최소 △금융-제로페이에 묻혔나…QR페이 흥행 ‘빨간불’ -부동산임대업자, 저축은행 대출 힘들어진다 -지역사회 반발에…수출입銀 ‘조직 축소’ 사실상 좌초 -신한銀 구내식당의 변신…출근 땐 간식가게, 퇴근 땐 반찬가게 △산업&기업 -조정호 ‘한진그룹 경영권 승계’ 키맨 되나 -성대근육 센서·중금속 정화필터…삼서전자, 44개 미래기술 키운다 “나부터 회사 주식 산다”…민경준 사장 책임경영 속도 -‘독야청정’…1인용 공기청정기 불티 -경총 “ILO 핵심협약 비준 주권적으로 결정할 사안” -TV인가, 미술품인가…삼성전자 QLED에 담긴 ‘진달래 고봉밥’△산업 -가성비 중시, 자급제 확산 열기에…중·저가폰 전쟁 후끈 -회원 1000만명 훌쩍…‘푹+옥수수’ 통합법인 7월 1일 출범-쏘카 손잡은 일렐클, 전기자전거 공유서비스 첫 페달 △소비자생활-진짜 고기만큼 맛있는 ‘식물성 고기’ 쏟아진다 -이마트 굴비·양파 ‘봉투에 양껏 담으세요’ -‘동영상 제작, SNS에 능숙한 유통 인재 찾습니다’ -여성 골퍼엔 편안함, 예비 신부엔 우아함…‘엘라코닉’ 속옷 어때요 △중소기업·벤처 -‘영역 확장’ 밥엔지니어링 獨컨티넨탈에 車장비 공급 -올해 완구시장 대세는 ‘팽이’…‘조립형’ 경쟁 뜨겁다 -주목! 유통기업 토종 프랜차이즈 ‘고피자’ -제조데이터 수집·활용 클러스터 구축…‘스마트산단’ 기반 닦는다 △증권&마켓 -美유니콘 줄줄이 상장…“FAANG 지고 PULPS 뜬다”-전자담배계 아이폰 ‘쥴’ 상륙 임박에…KT&G 주가 ‘발목’ -안전자산 선호심리 커져 펀드자금 주식→채권 이동 △증권 “분식회계 재판때 회계 전문가 의견 반영해야…제2 삼바 사태 막아” -메리츠증권 ‘공격 앞으로’ 美호텔에 2608억원 투자 -정부, 제약·바이오 지원 소식에…관련株들 ‘함박웃음’-투자안전판 덕에…초록뱀, 허공에 날릴뻔한 60억 회수 △문화 -배우·관객 하나되어 떼창을 …렛츠 록!-나이만 많으면 다 어른인가요 -이미경 CJ부회장, 3년 만에 한국영화 복귀…영화 ‘우상’ 제작투자 △스포츠 -‘SON이 넣으면 이긴다’…새벽 잠 깨운 “손흥민~굿” -김시우가 말하는 마스터스에서 필요한 네가지 -쓰러진 케인…시즌 아웃 위기 △피플 -박원순 서울시장 “독립운동가 혼 담은 일상 속 추모공간 만들겠다” -수상재단, 올해 ‘수상당’ 3명 선정 -한화, 성금 5억원…봉사단 600명 구호 손길도 -두산, 재해구호協에 2억원 기탁 -LS, 공동모금회에 2억원 전달 -태영건설, 복구비 5억원 지원 -한국감정원, 5000만원 전달 -방송인 박명수, 3000만원 기부 -펄어버스, 구호금 1억원 지원 -‘선현문화나눔협회 후원의 밤’ 열려 -“미스코리아 뽑듯 트로트 오디션…재미·감동 다 잡아” -이경수 맥쿼리투자신탁운용 대표 △오피니언 -접입가경 맥주전쟁 -공보육 확대 포기한 ‘사회서비스원’ △부동산 -“분산된 평가 주체 일원화해야” VS “정부 전횡 우려, 검증절차 확대해야” -韓경제 양호…공유오피스 시장 확대 가능성 커 -3월 주택 임대사업자 5474명 등록…전월比 7% 증가 △사회 -6년간 67개 종목 주식거래…“워런 버핏처럼 투자하시라” 여당조차 한숨 -‘年 2조원’ 고교무상교육 재정분담 논란 -벚꽃보러 갔다가 쓰레기구경 전단지에 몸살앓는 한강공원 -춘사월 눈 내리는 대관령 -‘유령주식 매도’ 삼성증권 직원 집행유예 -박유천 “마약한 적도, 권유한 적도 없다” -“추경, 경유차 저감 등 미세먼지정책 집중 활용”
2019.04.10 I 이윤화 기자
 '꼬닥꼬닥' 제주의 봄을 걷다
  • [여행팁] '꼬닥꼬닥' 제주의 봄을 걷다
  • 녹산로 유채꽃길[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제주의 4월은 걷기 좋은 계절이다. 봄바람 맞으면서 천천히 걸으면서 즐길 수 있어서다. 이에 제주관광공사는 ‘4월 제주 관광 추천 10선’을 선정해 발표했다. 이번 테마는 ‘제주의 봄날, 꼬닥꼬닥 청춘은 걷는다’.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꼬닥꼬닥(천천히를 뜻하는 제주 방언) 걸으면서 제주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읽어 내려가시라”고 말했다.오라동◇핑크빛으로 물든 오라동, 기억을 걷다사월, 오라동은 온통 핑크빛이다. 연삼로 가로수길의 벚나무와 종합경기장 일대를 분홍으로 물들이는 벚나무는 화사하다 못해 눈이 아릿하다. 여기, 영주 10경 중 제3경 ‘영구춘화’로 꼽히는 방선문 일대의 진달래와 영산홍, 철쭉은 신선을 홀린다. 따뜻한 햇살 의 이야기다. 지난해, 오라동 연미 마을엔 화해와 상생을 위한 4·3길이 개통됐다. 총 12㎞의 2개 코스로 ‘오라리 방화사건’ 등 제주 4·3 당시 아픔이 서려 있는 현장과 역사 유적을 둘러볼 수 있다. 꽃들이 앞다퉈 피어나는 계절, 기억의 길을 걸으며 그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아픈 역사를 가슴 깊이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제주 4·3의 기억, 그 봄의 아련한 기억이 사월 오라동 떨어지는 벚꽃잎에 애달프게 겹친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푸른 물결 굽이치는 청보리밭◇꽃의 정원을 노닐다사월의 제주는 꽃의 정원이다. 형형색색 화려한 꽃들이 자태를 뽐내며 세상을 밝히고 향기로운 내음이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문을 열고 나가면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샛노란 유채꽃은 황금빛 바다를 이루고, 선명한 원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튤립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다. 푸른 물결이 굽이치는 청보리밭은 또 어떤가. 봄은 한순간에도 일렁인다. 약 3만여 평의 드넓은 부지에 펼쳐진 유채꽃밭의 환상. 4월 4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제주 유채꽃 축제는 봄꽃들의 향연 속 단연 으뜸이다. 녹산로를 따라 이어진 유채꽃길 드라이브, 유채꽃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까지 즐길 수 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만개한 튤립을 즐길 수 있는 서귀포 상효원과 튤립 축제가 펼쳐지는 한림공원도 빼놓기엔 아쉽다. 왕관 모양을 한 우아한 튤립, 그 화려함을 눈에 담자. 3월 30일부터 가파도에선 청보리 축제가 시작됐다. 국토 최남단에서 가장 먼저 전해오는 봄소식을 맞이하고 싶다면 기꺼이 배를 타자. 부지런히 봄을 실어 나르기에도 짧은 봄이다. 궷물오름◇청춘, 시선을 빼앗기다완연한 봄을 느끼려면 오름을 오르자. 오름은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선보이지만, 봄의 오름은 푸릇푸릇한 생명력으로 기운이 충만하다. 최근, 제주의 360여 개 오름들 가운데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곳은 궷물오름. 높이 57m의 낮은 오름으로 삼나무와 잡목 자연림이 울창해 가볍게 오르기 좋다. 오름 정상에선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주변을 둘러보자. ‘노꼬메’와 ‘족은(작은) 노꼬메’ 오름이 든든한 배경이 되어줄 것이다. 반면, 조금 색다른 풍경을 원한다면 잠시 샛길로 빠져도 좋다. <효리네 민박> 겨울 시즌의 배경지로 유명세를 탄 궷물오름의 하이라이트는 다름 아닌 산허리의 너른 들판.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눈앞에 펼쳐진 초록 카펫 위에선 인생샷이 필수다. 풍경이 이미 다 했지만, 제대로 폼 한 번 잡아보시길. 나의 ‘리즈시절’이 갱신될지 모른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제주의 4월은 딸기 수확이 한창이다◇달콤 소확행! 딸기체험 어디까지 해봤니봄철 과일의 여왕, 딸기가 한창이다. 아이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봄나들이 코스로 딸기체험만 한 것이 또 있을까. 달콤한 향과 손끝을 붉게 물들이는 탐스러운 딸기의 빛깔은 어른들까지 심쿵하게 만든다. 딸기는 비타민C, 안토시아닌 등의 성분이 풍부해 봄철 피로회복제로 손색이 없다. 먼저, 딸기 따는 방법을 익힌 후 주렁주렁 매달린 딸기를 또 흙 위에서 빼꼼 얼굴 내민 딸기를 따보자. 플라스틱 용기에 쌓이는 딸기만큼 행복도 충전된다. 그리고 잘 익은 딸기는 그 자리에서 한 입 베어 물어보시라. 봄의 맛에 눈뜨게 될 것이다. 제주에선 4월 말까지 다양한 딸기체험을 할 수 있고, 가까운 체험장의 문을 두드리면 된다. 다만, 개인 체험은 안 되고 단체 예약만 가능한 곳이 있으니 예약은 필수. 온 가족이 함께 봄을 맛보고 신나는 농촌체험도 즐겨보시길. 제주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에코파티’◇제주 마을로 떠나는 힐링여행길고 지루했던 겨울. 도심의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쉼표를 찍고 싶다면, 에코파티를 주목하자. 제주의 자연과 생태, 문화, 사람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4월 에코파티는 20일 유수암리 농촌체험휴양마을에서 즐기는 ‘나무야 놀자’로 시작된다. 27일에는 ‘곶자왈과 함께 하는 복사꽃 꿈의 마을 무릉2리 에코파티’가, 28일엔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의 ‘봄바람 타고 떠나는 마라여행’을 즐길 수 있다. 4월 29일부터 5월 3일까지 매일 2회씩(오전 10시, 오후 2시) 머체왓숲길영농조합법인에서 주최하는 ‘유채꽃향기로 가득한 머체왓 에코파티’가 예정돼 있다. 단순한 파티이길 거부하는 에코파티.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는 마을 탐방, 제주 마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이 에코파티만의 특별한 매력이다. 제주의 속살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에코파티가 정답이다.돌과 바람이 빚은 ‘고살리 숲길’◇흐르는 물소리에 마음까지 촉촉해질 고살리 숲길숨겨진 비경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게다가, 초록 에너지로 긴장을 풀어주는 숲이라면 설렘은 배가 된다. 남원읍 하례리에 숨겨진 숲길. 고살리 숲길은 하천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멸종 위기종의 식물과 다양한 식생, 곶자왈, 하천, 잣성 등 제주의 자연을 제대로 느끼며 걸을 수 있다. 자연환경과 생태가 잘 보존돼 있어 지난 2013년 환경부 지정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추가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돌과 바람이 빚은 고살리 숲길은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걷을 수 있는 낭만의 숲길로, 일상에 지친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줄 생명의 숲길로 추천한다. 안 걷고 배길 수 없는 고살리 탐방로는 전체 구간 2.1km로 한 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5·16도로 남서교(선덕사 맞은편)에 숲길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으니, 눈 크게 뜨고 찾아보시길.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산 54-2.성산 수마포해안◇자연의 신비가 선사하는 위로, 성산 수마포 해안제주를 대표하는 상징, 성산일출봉. 세계자연유산이자 빼놓을 수 없는 제주의 명소로 그 명성이 자자하지만 그 안에 또 다른 비경이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정말로 운이 좋거나 제대로 알고 와야만 볼 수 있는 숨은 비경이 있다. 다름 아닌, 수마포 해안이 그 주인공. 성산일출봉 우측 해안으로 내려가면 기슭을 따라 해안이 펼쳐진다. 삼박자가 맞아야 하지만, 썰물 때 맞춰 들어가면 환상적인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에 깎여 오롯이 자신을 드러낸 해안 지질층. 그 속에서 시간의 깊이와 세월의 주름이 읽힌다.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은 수월봉 화산쇄설층과 같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화산쇄설층이다. 바닷물에 잠겨 있다 썰물이 되면 드러나는 화산쇄설층의 신비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자연의 경이는 걷는 당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삼다공원 야간콘서트◇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긴 겨울잠을 자던 도심 속 공원이 화려하게 깨어난다. 제주의 금요일 저녁을 환하게 밝혀줄 도심 속 축제 <삼다공원 야간 콘서트>가 4월26일 막을 올린다. 8월 23일까지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펼쳐지는 2019 삼다공원 야간 콘서트는 ‘Every Friday, Healing day’라는 축제 콘셉트에 맞춰 다양한 변주를 선보인다.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삼다공원은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포크, 락, 트로트, 힙합 등 장르 불문의 문화공연으로 뜨겁게 달아오를 예정이다. 야간 플리마켓 ‘야몬딱털장’을 비롯한 다양한 즐길거리와 먹거리도 마련되는 만큼 불금을 가장 힙하게 보내고 싶은 도시의 자유로운 영혼들이라면 꼭 찾아야 할 장소다. 특히, 이번 콘서트는 공공캠페인과 공공미술 프로젝트까지 준비돼 즐거움에 의미를 더한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힐링을 선사하는 삼다공원 야간 콘서트 놓치지 말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301-15봄 소풍 장소로 제격인 ‘에코랜드’ ◇봄봄, 봄나들이 떠나요따사로운 햇살, 살랑이는 바람이 몸과 마음을 간지럽힌다. 일상탈출, 심신 충전을 위한 봄나들이를 계획한다면 이곳을 주목하시라. 봄 소풍 장소로 제격인 이곳은 2017부터 2018년까지 2년 연속 한국 관광 100선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에코랜드. 돌과 바람의 하모니로 태어난 숲과 곶자왈을 제주의 유일무이 링컨 기차를 타고 달릴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작은 물병 하나 들고 구석구석 걸으며 곶자왈의 신비를 느끼고, 수상카페, 에코 풍차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덤으로 가져가자. 작년에 문을 연 포레스트 사파리도 좋은 봄 소풍 장소다. 이곳엔 진짜 동물 같은 모형 동물들이 가득하다. 모형은 실제로 움직이는데,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애니멀 라이더 체험, 공룡 화석 모래 체험, 동물 페인팅 체험 등 다채로운 체험거리가 있어 진짜 동물원에 온 것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온 가족과 함께 떠나는 행복한 봄나들이, 지금 바로 길을 떠나자.
2019.03.30 I 강경록 기자
 봄볕에 반짝이는 푸른 봄…동백숲따라 문향에 빠지다
  • [여행] 봄볕에 반짝이는 푸른 봄…동백숲따라 문향에 빠지다
  • 전남 장흥 용산면에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인 동백나무 자생지인 천관산 동백숲. 봄 볕에 활짝 핀 동백꽃과 동백기름을 바른 듯 반짝이는 동백숲이 초록기운을 내뿜고 있다.[장흥=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장흥은 문학의 고장이다. 전국에서 처음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될 만큼 문학인의 발자취가 진하다. ‘장흥에서 글 자랑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등단한 작가만 100명이 넘는다. 그만큼 빼어난 문장가가 많이 나오는 고장이 장흥이다. 이 가운데 장흥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소설가 이청준과 한승원을 꼽는다. 이청준은 영화 ‘서편제’, ‘밀양’ ‘천년학’을, 한승원은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썼다. 두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장흥 남부 지역을 가로질러 여행할 수 있다. 가장 남쪽에 위치한 회진면은 두 사람의 발자취가 깊은 곳이다. 한적한 고갯길과 오붓한 숲길, 시원한 바닷길이 펼쳐지는 곳이다. 두 작가의 작품 속 배경이 고스란히 녹아든 길을 찾아간다.전남 장흥 용산면 묵촌마을의 동백림은 지금 절정에 달해 가지도 바닥도 온통 붉은 물결이다. 이 동백림은 마을의 액운을 막고자 조성한 인공림으로 수령 250~300년 이상된 140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전국 최대 동백 군락지 ‘천관산동백숲’장흥읍에서 23번 국도를 따라 회진면으로 가는 길. 차로 30여 분 내려가면 용산면 묵촌마을이 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동백 숲 때문. 마을의 액운을 막고자 조성한 인공림으로 수령 250~300년 된 동백나무 140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 동백숲은 지금 절정에 달해 가지도 바닥도 온통 붉은 물결이다. 여기에 주변은 온통 보리밭이어서 붉은 꽃잎이 한층 돋보인다. 이 마을은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한 이방언(1838~1895)의 고향이자, 송기숙의 대하소설 ‘녹두장군’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전남 장흥 용산면 묵촌마을의 동백림은 지금 절정에 달해 가지도 바닥도 온통 붉은 물결이다. 이 동백림은 마을의 액운을 막고자 조성한 인공림으로 수령 250~300년 이상된 140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관산읍에서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오르면 골짜기를 뒤덮은 짙푸른 동백 숲도 만날 수 있다. 이곳이 국내 최대 동백 숲인 ‘천관산 동백숲’이다. 얼핏 보면 초록빛 호수에 들어온 듯하다. 지난 2007년, 열명의 인원이 열 달 동안 매달려 3만그루까지 세다 ‘그만하면 됐다’는 통보를 받고서야 작업을 그쳤다고 할 정도로 동백나무가 빼곡해서다. 과거에는 이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대대로 동백나무로 숯을 만들었다. 지금도 드넓은 동백 숲에는 7개의 숯가마 터가 남아있을 정도다. 마을 주민들이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무협영화처럼 동백나무 가지를 밟고 걸어 다녔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다. 지금 남아있는 동백나무의 수령은 대부분 60~80년에 불과하다고 하니 당시 얼마나 많은 동백나무가 잘려나갔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국내 최대 규모인 동백나무 자생지인 천관산 동백나무 숲이 봄 햇살에 동백오일을 바른듯 반짝이고 있다.천관산동백숲에 편의시설이라곤 2개의 전망대와 일부 구간에 목재 산책로를 설치해 놓은 것이 전부다. 산책로라고 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원시의 산을 걷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둑한 숲으로 들어가면 아직 떨어진 꽃도 매달린 꽃도 많지 않다. 4월은 돼야 더 풍성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신 3만 그루 동백 숲이 내뿜는 초록 기운은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햇살에 반짝이는 동백 잎이 기름을 발라 놓은 것처럼 눈이 부시다.한승원 문학 헌정비◇소설 속 배경이 된 마을 포구한승원의 흔적과 가장 처음 마주하는 곳은 넓바우포구. 한 작가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원래 덕도라는 섬이 있던 자리로, 40여년 전 관덕방조제가 생기면서 육지가 됐다. 이곳에서의 삶은 그에게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 됐다. 단편소설 ‘목선’의 배경도 넓바우포구다. 마을 주민이 세운 ‘해산한승원문학현장비’가 득량만을 바라보고 서 있다.한승원 생가로 가는 길에 ‘앞메잔등’을 만난다. 마을 앞산 고개를 뜻한다. ‘앞산’을 의미하는 앞메와 ‘고개’를 뜻하는 잔등이 더해진 말이다. 중편 ‘폐촌’에서 겨울에 김을 가득 담은 구럭을 짊어진 사람들이 헐떡거리며 넘은 고개로 나온다. 고개를 넘어 신상 버스 정류장 건너편 신상마을로 들어서면 곧 한승원 생가가 나온다. 어느 시골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고, 한승원 생가도 전형적인 농가다. 그런데도 특별해 보이는 것은 남해 특유의 구성진 언어가 살아 있는 그의 소설이 이곳에서 태동해서다.장흥 회진면 한재공원에 핀 할미꽃. 한재공원 정상 주변은 할미꽃 군락지로, 전국 최대 규모다.생가에서 나와 한재공원으로 가려면 한재를 올라야 한다. 한재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큰재산과 한재산 사이에 놓인 고개다. 산 동쪽의 신상리·신덕리·대리 사람들이 회진으로 장 보러 가고, 산 서쪽의 덕산리 아이들이 대리에 있는 학교(현 명덕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 고개를 넘었다. 단편 ‘앞산도 첩첩하고’, 장편 ‘동학제’, ‘그 바다 끓며 넘치며’에 한재를 넘는 애달픈 사연이 나온다.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한 굽이 크게 돌면 한재 정상이다. 신상마을과 앞메잔등, 그 너머로 득량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재공원은 한재 정상 주변 10만㎡에 이르는 할미꽃 군락지다. 단일 규모로 전국 최대다. 해마다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자줏빛 꽃망울을 틔운다.득량만 끄트머리에서 바닷물이 천관산 자락으로 파고드는 작은 포구인 회령포에 있는 회령진성한재공원에서 덕산마을 입구까지는 내리막이다. 이 마을을 지나 덕산삼거리에서 다리를 건너면 회진읍내가 지척이다. 읍내를 지나면 한승원문학길 종점인 회령포다. 회령포는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병선 12척을 인수해 출정한 곳이자, 명량해전 출정지다. 회령진성(전남문화재자료 144호)은 회진리 마을 뒷산에 있다. 조선 성종 때 축조한 수군진으로, 이순신 장군이 병선 12척을 이곳에서 수리했다고 한다. 현재 남은 성벽은 616m로, 동벽은 벼랑 위에 쌓았다고 하나 모두 없어지고 동문 터만 남았다. 회령진성 정상에서 너른 들판과 그 너머 천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바다 내음에서 이순신 장군의 굳은 결심이 묻어나는 듯하다.천년학 촬영장◇이청준의 소설 속 길을 따라가다이청준의 흔적은 회령포에서 회진면 진목리까지 이어진다. 한적하고 평탄한 도로가 나그네와 함께한다. 길은 점점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푸른 바다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노력도와 다도해가 보이는 아름다운 길이다. 바다 풍경에 취해 걷다 보면 선학동 마을이다. 임권택 감독이 100번째 영화 ‘천년학’ 촬영지로 유명하다. ‘천년학’의 원작은 이청준의 단편 ‘선학동 나그네’로, 소리꾼 유봉 밑에서 자란 동호와 송화의 아픈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선학동은 소설의 실제 무대로 원래 이름은 산저마을인데, 영화 ‘천년학’ 이후 선학동으로 바뀌었다.선학동을 부르는 이름 가운데 하나가 유채마을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마을 주변에 유채가 많다. 영화로 유명세를 탄 뒤 마을 사람들이 유채와 메밀을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봄이면 노란 물결이 넘실대고, 가을에는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진다.전형적인 시골 농가 풍경의 마을에 있는 이청준 생가.이청준 생가가 있는 진목마을 입구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다. 마을은 전형적인 시골의 농가 풍경. 생가 내부는 단편 ‘여름의 추상’, ‘잃어버린 절’ 등의 작품 일부와 신문에 기고한 칼럼, 영화 ‘천년학’의 주연배우와 임권택 감독, 이청준의 사진이 있다.작가의 묘소가 자리한 이청준문학자리에서 여정은 끝난다. 진목마을에서 나와 내리막길로 가면 반듯반듯한 논이 이어진다. 그 너머로 바다와 섬이 보이는 곳, 바로 갯나들이다. 1970년대 간척 사업 전만 해도 이곳은 갯내 물씬 풍기는 바다였다. 바다를 메워 거대한 논이 된 지금, 황량한 농로를 따라 이청준문학자리로 이어진다. 작가는 세상을 떠난 뒤 갯나들에 잠들었고, 사람들은 그의 묘소 앞에 이청준문학자리를 만들었다. 묘소 앞으로 넓은 바닥 돌에 작품 속 배경을 직접 그린 문학지도와 작가의 초상, 그리고 ‘해변 아리랑’의 한 대목이 새겨진 직사각형 돌기둥, 작가의 호 ‘미백(未白)’을 새긴 바위가 있다.이청준 묘지와 그의 부인 가묘◇여행메모△가는길=남해고속도로 장흥IC에서 나와 장흥IC교차로 장흥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장흥대로다. 여기서 2km 직진해 장흥교를 건너 칠거리에서 11시 방향으로 800m 더 들어간다. 신람리외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관산 방면 국도 23호선으로 들어서 장흥대로를 따라가다 정남진 방면으로 좌회전해 직전한다.△먹거리= 장흥 삼합은 장흥 9미 중 으뜸으로 꼽는 장흥 별미다. 장흥에서 키운 한우와 표고버섯, 득량만에서 채취한 키조개를 구워 함께 먹는다. 장흥 으뜸 요리로 정남진토요시장에 한우거리를 조성했다.장흥 정남진 만나 숯불갈비의 장흥삼합
2019.03.29 I 강경록 기자
1980년대, 시대를 고민한 민중미술의 시장가치
  • [알면 돈 되는 미술이야기]1980년대, 시대를 고민한 민중미술의 시장가치
  • 미술품에 투자하는 미술시장은 흔히 일부 선진국 부유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계층과 지역에서 여러 형태로 투자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시장 양상도 변화하는 모양새다. 국내에서는 최근 미술품에 대한 소액 부분 투자를 제공하는 ‘아트투게더’라는 서비스가 최근 문을 열고,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서비스 운영사인 투게더아트의 주송현 아트디렉터가 근래의 시장동향과 전망을 다룬 내용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한다.<편집자 주>[아트투게더 주송현 아트디렉터] 매년 3월이 되면 전 세계 미술 애호가와 주요 인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테파프(TEFAF), 아모리 쇼(Armory Show), 아트 두바이(Art Dubai) 그리고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 등 대규모의 아트페어가 곳곳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이번 아트바젤 홍콩 2019(3월 27일~31일)에 참여하는 국내 갤러리 중 하나인 학고재는 민중미술 작품을 전면에 내세워 부스를 꾸민다고 한다. 이 외에도 홍콩에 위치한 서울옥션의 상설 전시장 SA+의 최근 전시(2월 15일~3월 16일)에서는 민중미술 작가인 임옥상의 작품들로 구성하여 국제 미술시장에 민중미술을 소개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민중미술은 한국의 독특한 현실주의 사조로서 미술의 서술성을 회복하고 장르를 확장하여 한국적 현대미술의 맹아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장르이기에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시대적이고 독창적인 미술로 인정받고 있다.이에 본고에서는 민중미술과 관련해 국내 미술시장에서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작가인 오윤, 임옥상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작가의 시선을 통해 구현된 시대상과 민중미술에 내재된 시장가치를 알아보고자 한다. ◇민족문화의 움직임이 촉발하던 시기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정치, 사회,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혼란했던 격정의 시대로 기억된다. 일제 식민지시대와 6.25 전쟁을 직면했고, 18년간의 독재 시대를 거쳤으며, 신군부독재 세력에 의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아픔을 경험했다. 이에 “진정한 민주주의에 입각한 독립 국가를 순수, 청정한 애국적인 국민이 스스로 건설하는 것”이 시대적 당면 과제였다.특히 1980년대는 사회 전반에 걸쳐 민족 고유의 언어를 되찾고 과거 역사를 회고하는 등 일제 청산을 위한 민족문화의 움직임이 촉발하는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개혁의지는 미술계 내부의 변화를 재촉하면서 고립과 정체의 불안, 현대로의 이행, 외래사조의 수용이라는 문제와 함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고민하는 현실주의적인 민중미술을 발아시켰다.민중미술은 1980년대에 진보적인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미술변혁운동이자, 민주화운동과 맥을 같이 한 사회변혁운동이다. 미술을 통한 사회 문제의 참여와 해결방안을 모색하면서 사회비판적인 성향을 작품 속에 적극 투영시켰다. 이들은 1970년대 모더니즘 미술의 한계를 직시하며, 기성 미술계에 만연한 소통의 부재를 개혁하고자 대립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비판적 형상주의와 비판적 현실주의 계열의 미술운동이 새로운 가치화 작업의 주(主)를 이루었다.미술인들의 자각을 통해 일어난 민중미술은 1969년 오윤, 임세택, 김지하 등이 결성한 ‘현실동인’이 단초가 되었고, 1979년 9월 광주에서 홍성담, 최열 등으로 구성된 ‘광주자유미술인협회’, 서울에서 김정헌, 오윤, 주재환 등의 작가 및 성완경, 최민 등 평론가들이 모여 발족한 ‘현실과 발언’이 중핵을 담당한다.이 두 단체의 결성이 곧 민족 · 민중미술사의 출발이었다. 그 이후 1982년 ‘임술년’, 1983년 ‘두렁’ 등의 소집단이 잇따라 창립하고 평론가들이 힘을 모으면서 현실과 역사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민중미술이 한 시대를 대변하는 미술사조로 전화(轉化)하게 된다. ‘미술을 위한 미술’을 넘어 ‘삶의 미술’을 지향한 민중미술은 협동 창작론과 공동체 신명을 주장하여 시민판화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의 걸개그림(1987년 이한열을 형상화해 낸 최병수의 「한열이를 살려내라」,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걸린 가는패의 걸개그림 「노동자」) 등 민중과 함께 하는 미술로 발전되었다. 기법 상으로는 사실적 묘사, 콜라주(collage), 사진, 전통미술 도상의 차용 등 복제와 차용의 방법을 통해 대중 문화적 이미지 및 대량 생산 오브제를 도입하여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했다.■오윤(1946~1986)오윤은 1980년대 한국미술계를 주도한 민중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그는 현실 비판에 머물지 않고 한국 고유의 미의식인 ‘신명’을 표현한 작품들로 민중들의 애환을 담아냈다. 서울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했으나 미술의 언어적 소통 기능에 관심을 두고 복제가 가능한 판화 제작에 전념했다. 간결하고 투박한 칼 맛이 느껴지는 목판화는 그의 전형적인 표현방식이었다.이는 서양미술의 형식과 방법에서 벗어나 전통미술에 담긴 고졸한 아름다움을 독자적인 노력으로 계승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담긴 흔적은 풍속화적, 불교적, 민화적, 민중연희적, 전통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무속적 전통 형식을 반영한 작품들로 드러난다.오윤, <칼노래>, 1985 오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칼노래, 1985>는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지은 노래 가사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칼노래>는 최제우가 동학의 박해를 피해 전라도 남원에 피신하여 있을 때 ‘검결’이라는 제목으로 지은 한글 가사이다. 이에 동학농민운동에 관한 그의 깊은 관심을 <칼노래>라는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본 작품은 한 농민이 강렬한 붉은 색의 배경으로 날이 시퍼런 칼을 들고 신명나게 칼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때 칼로 베어버리려는 것은 한자로 쓰인 인간의 탐욕, 성냄, 어리석음, 증오, 간사함, 악함, 추함, 사악함, 근심 등이다. 오윤에게 민중은 소외되고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역경과 부조리에 굴하지 않는 잡초같은 강인한 생명력과 소박함을 무기로 삶을 헤쳐가는 존재이다. 이에 목판화 특유의 간결하고 칼칼한 선으로 이루어진 <칼노래>에서 독특한 민족적 정서와 색채감을 느낄 수 있다. <칼노래>는 지난 해인 2018년 12월에 열린 한 경매에서 7500만원에 낙찰되어 자체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 외에도 다양한 판화작품들이 경매에 출품된 기록이 있으며, 대체로 1000만원에서 3000만원대 구간에서 경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임옥상(1950~)한바람 임옥상(1950~)은 ‘현실과 발언(1979~1990)’의 창립동인을 시작으로, 과감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당대 정권과 현실을 비판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 대표적인 민중미술 화가이다. 그는 군사정권이 끝난 후 대다수의 민중미술 작가들이 새로운 예술적 방향을 모색하는 와중에도 2016년 촛불과 함께 작품을 들고 광화문에 나갈 정도로 꾸준히 미술을 통한 현실개혁 의지를 보여왔다.작품 내용이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된 것과는 다르게 작품의 형식은 다양하고 실험적이며 광범위하다. 특히 초창기 회화 작품부터 종이 부조, 조각, 행위예술, 현재의 공공미술까지 장르의 구분 없이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근현대의 혼란한 사회상을 형상화하는 점이 미술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임옥상, <보리밭>, 1983임옥상의 작품 <보리밭>은 보리-남자(아버지)-하늘의 삼단구조로 되어 있다. 초록빛 보리밭 너머로 반백의 농부가 서 있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농부의 얼굴과 파릇하게 잘 자란 보리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화면을 상하로 과감히 분할하여 하단에는 보리를, 상단에는 농부를 배치한 구도가 절묘하다. 윗옷을 벗어젖힌 채 화면 밖 감상자를 응시하는 농부의 불편한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보릿고개는 가난을 의미하며 참기 힘든 굶주림을 상징한다. 이에 본 작품은 1980년대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소외된 가난했던 농촌의 모습을 시사한다.2018년 6월의 한 경매에 출품된 임옥상의 작품 <보리밭>은 4500만 원에 경매를 시작해 치열한 경합 끝에 1억 9500만 원에 낙찰되어 해당 경매현장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이는 현재까지 경매 시장에서 거래된 임옥상의 작품 중 가장 높은 금액을 기록해 작가 레코드를 경신한 작품이다. 임옥상, <광장에, 서>의 일부(가운데 부분)이 외에도 시대별로 주요한 작품이 많지만, 특히 <광장에, 서>라는 작품은 일관되게 현재의 시간에 집중하고 사회 곳곳의 문제를 자신만의 예술 언어로 발언하는 임옥상의 작가적 존재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이는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를 그린 대형 작품으로 2017년 청와대 본관에 전시되어 연일 화제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촛불 정부’라는 상징성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면서, 청와대 핵심 건물인 본관 그 중에서도 왕래가 잦은 로비 한켠에 설치되어 정치적으로도 의미하는 바가 상당하다. 이에 대해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기념비적인 역사 기록화”라고 평가했다.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다소 진부한 표현이 가지는 영향력이 21세기에도 유효한 듯하다. 다양한 서사를 담은 민중미술이 시대를 거듭할수록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급변하는 시대적 소용돌이 속에서 민중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작가의 시선으로 구현한 민중의 삶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어 다수의 공감을 이끌고, 새로운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이에 민중미술은 한국 내에서 뿐 아니라 일본, 미국, 프랑스 등 세계에 소개되어 ‘Minjung Art’라는 용어가 고유명사로 정착될 만큼 한국 현대 미술의 주요한 성과로 인식되고 있다. 1980년대 운동으로서의 민중미술은 한 시대를 그려낸 미술사조로 기록되었지만,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의 빛나는 예술혼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주송현 아트투게더 아트디렉터
2019.03.23 I 이재운 기자
"우리는 다 유기견이야"…동화 같지만 슬픈 '그 개'
  • "우리는 다 유기견이야"…동화 같지만 슬픈 '그 개'
  • 서울시극단 연극 ‘그 개’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우리는 다 유기견이야.”시도 때도 없이 욕이 튀어나오는 틱 장애 때문에 왕따가 된 16세 여중생 해일. 해일의 유일한 친구는 동네 뒷산에서 우연히 만난 유기견 무스탕이다. 둘을 이어주는 것은 바로 ‘혼자’라는 사실. 해일은 무스탕과 함께 펼치는 상상의 세계를 웹툰으로 그리기 시작한다.지난 5일 개막한 서울시극단의 신작 연극 ‘그 개’는 중학생 해일의 성장담을 그린다. 풀밭을 연상케 하는 초록색 무대, 무대 한편에 놓여 있는 미끄럼틀과 시소, 비탈길로 산을 형상화한 무대 배경이 동화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러나 작품은 마냥 밝지 않다. 이별을 통해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잔인하면서도 슬픈 성장담이기 때문이다.작품은 해일과 무스탕의 이야기와 함께 해일의 아버지를 운전기사로 둔 제약회사 회장 장강과 그의 충견 보쓰, 수입이 변변치 않은 학원강사로 힘겹게 살지만 막 태어난 아이와 함께 꿈을 잃지 않는 젊은 부부 영수와 선영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는다. 경제적, 사회적 지위는 제각각인 이들은 한 동네에서 살며 서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지금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다.이번 공연은 연극 ‘로풍찬 유랑극장’ ‘뺑뺑뺑’ ‘썬샤인의 전사들’ 등으로 함께한 극작가 김은성과 연출가 부새롬이 2년 만에 의기투합해 공연계의 관심을 모았다. 부 연출은 “이 작품은 중학생 해일의 성장 드라마로 가장 친한 친구를 버림으로써 어른의 세계로 진입해가는 과정을 그린 슬픈 성장 드라마다”라고 소개했다.김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영감을 얻어 극본을 썼다. 그는 “성북동 비탈길에서 만난 사람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라며 “북악산에 버려진 유기견과 성북동의 커다란 저택을 지키고 있는 개, 그 사이에 어중간하게 서 있는 내가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담았다”고 말했다.작품에 등장하는 ‘개’를 배우가 직접 연기해 눈길을 끈다. 부 연출은 “갑자기 등장하는 인물도 많아서 만화적인 요소를 과장적으로 표현하는 분장과 의상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무대는 장강의 저택을 주요 배경으로 삼아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펼친다. 김 작가는 “연극적인 놀이가 가능한 공간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부 연출과 김 작가의 만남을 가능케 한 것은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이다. 김 예술감독은 2016년 김 작가와 함께 ‘햄릿’을 재해석한 ‘함익’을 서울시극단 정기공연으로 선보인 적 있다. 김 예술감독은 “그동안 눈여겨 봤던 김 작가와 부 연출의 아름다운 작업이 서울시극단에서도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번 작품에 창작진으로 모시게 됐다”고 말했다.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막을 여는 작품은 후반부 예상치 못한 전개 속에서 다소 무겁게 막을 내린다. 일상적인 인물의 현실적인 이야기가 공감대를 자극하지만 설명 형식의 대사가 많아 늘어지는 느낌도 없지 않다. 윤상화, 유성주, 김훈만, 박선혜, 신정원, 안다정, 이지혜 등이 출연하며 서울시극단 연수단원들이 다양한 역할의 ‘팝업 인물’로 등장해 연기 앙상블을 펼친다.10월 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서울시극단 연극 ‘그 개’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서울시극단 연극 ‘그 개’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서울시극단 연극 ‘그 개’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2018.10.07 I 장병호 기자
 10월의 어느 멋진날, 제주의 색에 빠지다
  • [여행팁] 10월의 어느 멋진날, 제주의 색에 빠지다
  • 마라도 전경[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제주관광공사(사장 박홍배)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 제주 컬러보레이션(Colorboration)‘이라는 테마를 주제로 관광지, 자연, 체험, 축제, 음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제주 관광 추천 10선을 발표했다.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이번 10월 10선은 제주의 가을 색을 표현해 봤다”며 “10월의 어느 멋진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제주에서 만들어 보시라”고 전했다. 제주관광공사의 10월 추천 관광 10선은 제주관광정보 사이트(www.visitjeju.net)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푸른 바다 끝, 마라에서 만나는 작은 평온 ‘마라도’번잡한 내 마음에 위안과 평화가 필요할 때, 빽빽한 회색 건물 사이로 두 눈이 피로할 때. 우리는 자연이 너무나 그립다. 제주 남쪽 끝, 짙푸른 바다 위에 살포시 안겨있는 마라도는 평온의 기운이 섬 전체에 흐른다. 모든 감각을 깨우고 평소보다 보폭을 줄여, 연둣빛 들판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한 눈에 담기는 산책로를 걸어보라. 거센 제주의 파도가 깎아낸 유려한 해안절벽과, 그 틈 속에서 기어코 뿌리내린 선인장 군락, 마라도 주민의 섬 살이 애환이 묻어나는 할망당 그리고 하늘과 맞닿을 듯 솟은 등대와 고즈넉한 성당까지. 어느새 당신 마음에 부는 거센 바람은 가라앉고 평온이 자리한다. 마라도는 10월 20일~11월 4일까지 가을여행주간에 일출, 일몰, 별빛체험, 버스킹 공연 등을 마련했다. 마라도에서의 어느 멋진 가을 하루, 기대해도 좋다. 주변 관광지는 마라도 등대, 성당, 할망당, 최남단비 등이다.핑크뮬리◇가슴까지 밀려들어 넘실대는 핑크빛 ‘핑크뮬리’‘가을 탄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을은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힘이 눈에 보인다면 분명 핑크색이리라. 가슴 설레는 제주의 따스함을 고스란히 닮은 핑크색은 10월 제주 하늘 아래서 슬며시, 그리고 깊게 빛을 뿜어낸다. 핑크빛 꽃을 피우는 억새, 핑크뮬리가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핑크 억새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깨끗한 하늘 속 유유히 흘러가는 새하얀 뭉게구름과 얼굴을 맞대고 청량한 바람에 넘실대는 핑크 물결은 제주만의 자랑. 그 모습은 마치 CG로 입혀진 영화 속 한 컷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서귀포에 위치한 노리매 공원과 휴애리는 제주 속 핑크뮬리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스팟. 공원 한편에 자리한 핑크뮬리 안으로 들어가 가족, 연인과 함께 이 순간을 핑크빛으로 남겨보자.감귤박물관◇설문대할망의 주홍빛 선물 ‘감귤’쏟아지는 가을볕을 한가득 머금어 마치 아이의 발그스름한 뺨을 닮은 주홍빛 감귤이 제주를 하나둘 수놓는 계절이 찾아왔다. 제주의 대표 특산물, 감귤은 설문대할망의 지혜가 담긴 한수. 제주를 오고가기 힘들었던 그 옛날에도 사람들이 제주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이유는 육지에서는 맛보기 힘든 ‘감귤’이 제주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서귀포에 위치한 감귤박물관은 감귤의 역사와 종류 및 재배법, 감귤산업의 동향 등을 쉽고 재미있게 구성해 제주에 방문했다면 들러볼만 하다. 감귤테마전시관뿐만 아니라 세계감귤원, 민속유물전시실, 아열대식물원 등이 함께 있어 볼거리도 풍부하다. 또한 10월 15일부터 12월 31일까지 감귤따기 체험이 운영된다고 하니, 10월에는 감귤박물관에서 설문대할망의 주홍빛 선물을 만끽해보자.아끈다랑쉬오름◇금빛 언덕 위, 오롯한 가을과 마주하다 ‘아끈다랑쉬오름’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더욱 사랑하게 된 건, 제주 구석구석 작지만 독보적인 감성을 가진 히든플레이스가 더욱 눈에 띄어서다. 오름의 여왕이라 불리는 다랑쉬오름에 가려진 아끈다랑쉬오름은 다랑쉬오름에 딸린 야트막한 언덕으로 ‘작은’이란 뜻의 제주 말 ‘아끈’을 붙여 부른다. 5~10분이면 충분히 오르는데, 정상에 서면 높은 곳에서 놓치기 쉬운 동쪽 제주의 진짜 모습이 펼쳐진다. 땅 모양새에 따라 구획한 밭의 경계, 다랑쉬오름을 비롯한 주변 오름과 마을의 전경,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까지. 오히려 시야를 좁히면 눈부신 제주의 모습이 꼼꼼하게 보인다. 특히 10월에는 억새로 가득 차 바람의 리듬에 몸을 맡긴 금빛 군무를 감상할 수 있어 더 없이 좋다. 올 가을, 작은 언덕 위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제주를 찬찬히 음미해보는 경험을 해볼 때다. 한라산천아숲길◇만개한 붉은 단풍, 한라에서 무르익다 ‘한라산 천아숲길’신령한 정기가 서린 한라산도 가을 여신의 붓놀림을 피해가지 못하는가. 영원할 것만 같던 짙푸른 녹음이 가을 햇볕을 닮은 붉은빛으로 무르익기 때문이다. 한라산은 단풍명소로 손꼽히는 곳으로 그 명성이 대단하지만 왕복 6시간이 넘는 등산코스가 부담스럽다면, 한라산 ‘천아숲길’을 대신 추천한다. 5개의 한라산 둘레길 중 하나로, 천아수원지에서 돌오름까지 10.9km 구간이다. 숲길 초입부터 단풍의 빛깔이 은은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걸음을 옮길수록 붉은빛이 점점 짙어져 무수천 상류 계곡인 천아계곡에서 진정한 가을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올해 한라산 단풍은 10월 중순부터 시작해 11월 초에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늦은 시기까지 만개한 단풍을 볼 수 있는 제주로 단풍놀이를 떠나보자.구실잣밤나무터널◇초록잎 사이로 비켜드는 볕의 따스함 ‘구실잣밤나무 숲터널’이상한 나라에 들어설 준비가 되었는가? 준비 됐다면 신비로운 세상으로 한 발 내딛어보자. 구실잣밤나무가 드리운 그늘로 말이다. 그곳에는 가을 햇살이 비추는 선명한 세계와는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맑은 초록빛의 숲이 아니다. 나무 밑동 낮은 곳에서 양옆으로 뻗은 가지들과 짙고 어두운 초록의 잎이 이룬 숲이 하늘을 가려 신비롭고 은밀한 공간을 만든다. 자연이 빚은 초록숲 터널. 그 사이로 비켜드는 볕은 천상에서 내려온 한줄기 메시지인 듯 성스럽다. 상덕천삼거리를 중심으로 8자 모양을 그리는 덕천리의 ‘팔자 좋아 길’ 남쪽에 있는 숲터널은 길 가운데 숨어 있어 더욱 비밀스럽다. 터널을 지나 걷다 보면 억새밭, 연못, 오름과도 만난다. 구간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하는 이곳에서라면 길을 잃어도 좋겠다.신천리벽화마을◇바람 따라, 벽화 따라, 기분 따라 ‘신천리 벽화마을’오롯이 내 기분과 느낌에 의존해서 걸어보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 제주의 한 동쪽마을 가보자. 신천리는 ‘바람코지’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정도로 바람이 거센 해안마을로 알려져 있다. 몇 년 전, 바람에 순응하며 조용히 살아가던 마을이 한 영화촬영지로 선정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촬영팀이 영화에 필요한 벽화를 그린 것을 계기로 젊은 예술가와 지역 화가들이 힘을 보태 작은 어촌마을에 오색빛깔 생기를 불어넣었다. 해녀, 말, 동백꽃, 그리고 만화 캐릭터와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그림들로 채워져 골목을 들어설 때마다 어떤 벽화로 채워져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더불어 마을 신당인 본향당과 천미연대도 꼭 만나보길. 바람 따라, 벽화 따라, 기분 따라 발길을 옮기다 보면, 새로운 풍경과 시선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이호내도해안도로◇감춰두었던 뷰포인트가 열리는 순간 ‘이호~내도 해안도로’제주 바다가 매력적인 이유는 동서남북 어느 쪽에서 바라봐도 하나도 같은 바다를 볼 수 없다는데 있다. 제주 신들의 손길은 얼마나 세심하기에 이 섬을 이토록 다채롭게 빚어낸 걸까. 제주와 만난 바다는 장소마다, 볼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얼마 전, 숨겨졌던 새로운 뷰포인트가 열렸다. 이호테우 해안부터 알작지까지 해안도로가 뚫린 것이다. 올레꾼에게도 희소식이다. 이 부근을 지나는 올레 17코스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 해질녘, 푸른빛을 깊이 머금은 바다와 검은 몽돌이 내는 목소리, 그리고 지는 태양이 물들인 오색빛 하늘의 조화로 두 눈은 물론 귀까지 호사롭다. 어렵게 모습을 보여준 이호-내도 해안도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바다와 대지, 빛과 바람 그리고 소리에 집중하며 자연의 경이로움에 한껏 심취해보라.칠십리축제◇ 제주의 진가를 엿볼 수 있는 ‘서귀포 칠십리축제&탐라문화제’ 오랜 시간 제주도민을 한데 묶어준 축제가 높푸른 10월 하늘 아래 다시 열린다. 1962년 ‘제주예술제’로 출발한 탐라문화제는 올해로 57회, 서귀포칠십리축제는 24회를 맞이했으니 벌써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 했다. 바다와 맞닿은 자구리문화예술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서귀포칠십리축제는 도민과 함께하는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10월 5일(금)~10월 7일(일) 3일간 이어진다. 탐라문화제는 10월 10일(수)~10월 14일(일), 제주 원도심의 탐라문화광장에서 계속된다. 각종 공연과 전통문화 체험, 제주어 말하기 대회 등 제주도만의 즐길거리가 준비된 두 축제. 제주 문화의 명맥을 잇고, 방문객들에게는 전통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온 축제가 그 자체로 전통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제주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10월의 축제로 당신을 초대한다. 갈치국◇빛을 쫒는 은빛 생선의 귀환 ‘갈치요리’ 칠흑보다 까만 제주 밤바다를 본 적 있는가? 수평선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불빛들. 까만 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으로 은백색 갈치를 유혹하는 갈치잡이 배들이다. 제주 갈치는 주로 봄, 가을에 낚는데, ‘가실갈치’ 즉 가을에 잡히는 갈치를 최고로 친다. 제주민들은 예로부터 갈치와 가을철 늙은 호박을 함께 넣은 갈치호박국을 별미로 끓여 먹었는데 그 맛이 비리지 않고 시원하면서 달큰한 것이 특징. 갈치는 주로 구이나 조림으로 먹는데 산지에서만 즐길 수 있는 갈치회도 일품이다. 그 외에도 갈치 외형을 그대로 살려 조리한 통갈치구이나 통갈치조림, 그리고 갈치조림에 왕갈비를 넣은 ‘갈갈조림’도 이색갈치요리로 인기다. 통통하게 살 오른 갈치의 속살, 제주에서 다양하게 즐겨보자.
2018.09.26 I 강경록 기자
 대추로 '보양'하고, 사과 먹고 예뻐지다
  • [추석맛기행③] 대추로 '보양'하고, 사과 먹고 예뻐지다
  • 즐거운 대추 수확(사진=보은군청)황토에서 자라 미네랄이 풍부한 보은 사과[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충북 보은을 달리다 보면 대추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살이 포동포동 오른 대추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올해 비가 많이 와서 흉작을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대추는 풍작이다. 초록색 대추가 빨갛게 익어가는 시월,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보은으로 떠난다. 보은은 예부터 대추로 이름난 고장이다. 보은 대추는 임금님 진상품이기도 했다. 허균의 음식 품평서 《도문대작》에 “대추는 보은에서 생산된 것이 제일 좋고 크다. 보은 대추는 뾰족하고 색깔은 붉고 맛은 달다”고 기록되었다. 보은에는 “비야 비야 오지마라 대추 꽃이 떨어지면 보은 청산 시악시들 시집 못 가 눈물 난다”는 민요도 전해 내려온다.과자처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대추 칩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보은 대추는 한때 가지와 잎이 빗자루처럼 마르는 빗자룻병으로 주춤했으나, 농부의 정성과 지자체의 노력으로 옛 명성을 되찾았다. 보은 대추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는 ‘2017대한민국과일산업대전’에서 최우수상과 우수상, 장려상을 휩쓸기도 했다. 보은 대추는 자연과 기술의 합작품이다. 보은은 일조량이 많고 토양이 비옥해 대추가 자라기 좋다. 대추대학을 열어 재배 기술을 보급하고 비가림막 설치를 지원하는 등 고품질 대추를 만들기 위한 지자체와 농부의 노력이 더해져, 알이 굵고 당도가 높은 보은 대추가 탄생했다.대추 하면 말라서 주름진 대추가 떠오르지만, 보은에서는 아삭하고 달콤한 생대추가 더 인기다. 양지촌농원 전형선 대표는 “과거에는 대추를 한약재로 많이 이용했지만, 지금은 과일처럼 먹는 추세”라며 “대추는 생으로 먹어야 가장 맛있다”고 설명했다. 생대추는 말린 대추와 달리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막 수확한 대추는 당도가 30브릭스에 이른다.즐거운 대추 수확(사진=보은군청)또 대추는 비타민 A·B·C, 사포닌, 마그네슘이 풍부하고 장 기능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계탕을 비롯해 음식 재료로 폭넓게 이용될 뿐만 아니라, 제사상에 꼭 필요한 과일이다. 과자처럼 먹는 대추칩, 씨만 제거한 통대추, 달콤한 대추시럽 등 보은에서는 대추를 이용한 가공식품도 다양하게 생산한다. 대추는 폭에 따라 분류한다. 22mm인 중초부터 32mm 왕별초까지 2mm 간격으로 나뉜다. 폭이 좁은 대추는 대부분 말려서 판매하고, 폭이 큰 대추는 곱게 포장해 생대추로 내놓는다.10월은 보은이 자랑하는 생대추를 맛보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보은 대추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축제도 열린다. ‘2017충북농특산물판매활성화최우수축제’에 선정된 보은대추축제가 10월 12일부터 21일까지 열흘 동안 보은읍 뱃들공원과 속리산 일원에서 펼쳐진다. 축제 기간에는 대추왕선발대회, 조신제, 대추떡 만들기 등 대추를 주제로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고, 싱싱한 생대추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즐거운 대추 수확(사진=보은군청)대추와 함께 보은에서 손꼽히는 과일이 사과다. 사과는 ‘하루에 사과 하나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건강에 좋다. 산화방지제와 안토시아닌 성분이 있어 당뇨 위험성도 낮춰준다. 특히 수확 철인 10월에 사과는 달콤하고, 비타민과 식이 섬유가 더 풍부하다. 가을 사과를 놓치면 안 되는 이유다.삼승면에 가면 사과 과수원이 줄줄이 이어진다. 걸음을 멈추고 사과 한입 베어 물면 청량한 소리가 퍼진다. 윤기 나는 붉은빛에 눈이 즐겁고, 달콤한 맛에 혀가 행복하다. 보은 사과의 특징은 단단하다는 것. 보은 땅이 황토라서 그렇다. 땅에 있는 미네랄 덕분에 사과가 잘 자란다고 한다. 보은은 겨울에 -20℃ 이하로 떨어질 정도로 춥고, 봄에는 남부 지방만큼 따뜻하다. 청정 지역 속리산 인근에서 나는 보은 사과는 큰 일교차와 긴 일조시간 덕분에 당도 역시 높다.보은 사과를 직접 수확하고 맛보는 기회가 있다. 사과나무체험학교에 신청하면 사과 농가와 연결해준다. 기간은 10월 12일부터 21일까지. 수확 체험은 2kg에 1만 원이며, 전화로 예약하고 방문해야 한다. 수확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맛있는 사과도 먹고 일석이조다. 사과 수확 체험은 아이들이 있는 가족 여행객에게 특히 인기다. 사과를 따는 팁 하나. 손바닥 전체로 가볍게 잡고 위로 들어서 딴다.삼년산성에서 내려다본 보은군생대추와 사과를 맛본 뒤에는 보은 여행을 즐길 차례다. 발길이 먼저 향한 곳은 보은 삼년산성(사적 235호). 신라 시대 산성으로 높이 13~20m, 위쪽 너비 8~10m에 이르는 난공불락의 요새다. 돌을 쌓은 정교한 기술과 산성의 웅장함이 놀랍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토기를 비롯한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보은이 과거 요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고즈넉한 성벽을 천천히 걸으며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도 좋다. 성벽에 오르면 보은읍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삼년산성에서 내려오면 보은 우당고택(국가민속문화재 134호)으로 향한다. 고택 입구에 우거진 소나무 숲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소나무에 둘러싸인 우당고택은 1919~1921년 당대 훌륭한 목수를 뽑아서 지었다. 안채와 사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한옥으로, 안채에는 ‘선행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는다’는 위선최락(爲善最樂) 현판이 걸렸다. 현재 부분적으로 공사 중이라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다.한옥의 미를 엿볼 수 있는 우당고택보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소나무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보은 속리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과 서원리 소나무(천연기념물 352호) 외에도 곳곳에서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소나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솔향공원에 있는 소나무홍보전시관에 들르자. 소나무의 생태와 전국의 특별한 소나무 이야기를 정리한 곳이다. 아이와 함께한 가족 여행자라면 스카이바이크도 놓치지 말자. 모노레일과 레일바이크를 합친 것으로, 약 30분 동안 소나무 향기에 푹 빠질 수 있다. 높이 2~9m에 길이 1.6km로, 오르막길은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동으로 올라가도록 설계되었다.올해 8월 보은군농경문화관이 준공되었다. 보은의 기반인 농경문화 관련 내용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으며, 대장간도 마련되었다. 10월부터 대장간에서 농기계를 만들어보는 체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관심 있다면 전화로 문의하고 출발하자.마지막으로 가볼 곳은 오장환문학관이다. 1918년 보은에서 태어난 오장환은 백석, 이용악과 함께 1930년대 후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해방의 감격과 혼란을 그린 〈병든 서울〉을 비롯해 여러 작품이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문학관에서는 오장환 시인의 생애와 아름다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솔향공원에 있는 스카이바이크◆여행코스= 은대추축제→보은 삼년산성→보은군농경문화관→솔향공원→숙박→사과 수확 체험→보은 우당고택→오장환문학관◇여행메모△가는길= 경부고속도로 청주 JC→청주(당진)→당진영덕고속도로 보은 IC△먹을곳= 한정식은 내북면 온제향가, 대추정식은 속리산면의 배영숙산야초밥상, 한정식은 속리산면의 경희식당, 능이칼국수는 보은읍의 능이칼국수가 유명하다. △주변 볼거리=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말티고개, 펀파크, 보은 속리 정이품송, 세조길, 법주사
2018.09.23 I 강경록 기자
 눈 감아도 즐거운 ASMR 여행지 '베스트3'
  • [여행팁] 눈 감아도 즐거운 ASMR 여행지 '베스트3'
  • 태국 코사무이의 W 코사무이 (W Koh Samui)[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회사원 김모(31, 여) 씨는 지난달 초 휴가를 이용해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힐링’을 위해 떠났던 여행은 빡빡한 일정과 기록적인 불볕더위, 무거운 캐리어에 ‘극기 훈련’이 되어버리고 말았다.유독 무더웠던 휴가철이 지나갔다. 연이은 불볕더위와 쉰 것 같지 않은 휴가에 더 지쳤다면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진정한 휴식을 취해야 할 때다. 호텔의 사각거리는 이불 위에서 시원한 빗소리와 새소리를 벗 삼아 잠에서 깨면 어떤 기분일까. 불볕더위와 휴가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이들을 위해 자연의 소리를 벗 삼아 진정한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행지 3곳을 소개한다..태국 코사무이 만트라 사무이 리조트 (Mantra Samui Resort)◇파도소리·향긋한 바다내음은 덤 ‘방콕, 코사무이’태국의 떠오르는 휴양지 코사무이(Ko Samui)는 푸켓이나 끄라비만큼 유명세를 타지 않아 번잡함에서 벗어나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코사무이는 태국말로 ‘깨끗한 섬’이라는 뜻으로 그 이름만큼이나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깨끗하다. 리조트 대부분 해변과 바다와 인접해 있어 시원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유럽인들에게 사랑받아온 코사무이는 최근 신혼 여행객들을 중심으로 인기 휴양지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 알리라 우붓 발리 (Alila Ubud)◇바람소리와 새소리 가득한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자연과 휴양의 여행지라고 하면 인도네시아 발리를 빼놓을 수 없다. 발리는 올여름 트립닷컴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여행지 13위에도 올랐다. 그중에서도 ‘우붓(Ubud)’은 울창한 밀림과 라이스 필드 등 발리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자연에 파묻혀 쉬고자 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보통 발리를 떠올리면 에메랄드 빛 바다와 풀빌라 등 화려한 휴양지의 모습을 그리기 쉽다. 하지만 우붓에서는 초록빛 밀림에서 들려오는 새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소리를 배경으로 평화롭게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우붓에는 가성비 좋은 리조트가 넘쳐난다. 5성급 리조트의 스위트룸은 10만 원대에, 풀빌라의 경우 30만 원대에도 예약이 가능하다.일본 오타루 긴린소 료칸 (Ginrinso Ryokan Otaru)◇오르골 선율을 만들어내는 도시 ‘일본, 오타루’삿포로 여행을 하면 짝꿍처럼 가게 되는 도시 ‘오타루’. 이곳은 자연과 어우러진 천국의 선율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마을이다. 바로 천국의 음악이라고 알려진 오르골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사계절 내내 선선한 바람이 부는 조용한 운하마을. 매시간을 알리는 오르골 종소리는 조용하고 차가운 공기를 통해 퍼져나가 여행객들을 낭만에 빠지게 한다. 매시간 작은 마을에 울려 퍼지는 오르골 종소리의 진원지는 여행객들이 오면 꼭 들린다는 오르골당의 시계탑에서 흘러나온다. 오타루는 홋카이도의 도시답게 온천과 료칸으로도 유명하다. 올가을 오타루에서 오르골 소리를 벗 삼아 느긋하게 온천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2018.09.03 I 강경록 기자
부산에서… 세계일주 즐겨 볼까~
  • 부산에서… 세계일주 즐겨 볼까~
  • [이데일리 뷰티in 정선화 기자]폭염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잠재우기 위해 가까운 동남아시아부터 유럽이나 미주 등 해외로 힐링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들이 늘고 있다. 여름휴가 시즌에 맞춰 모처럼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다면 국내 이국적인 장소들을 찾아가 보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름 휴가지인 부산 곳곳에는 해외여행 부럽지 않은 장소들이 숨겨져 있다. 바다 도시의 명성대로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하니 아직도 부산하면 ‘해운대’만 떠오른다면 아래 장소들을 순서대로 ‘도장 깨기’ 해보자.[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동에 위치한 작은 포구]▲한낮의 그림 같은 풍경 감상… 이탈리아 베네치아 부라노섬 빼닮은 부산의 베네치아 ‘부네치아’최근 부산의 핫플레이스로 등극한 ‘장림포구’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동에 위치한 작은 포구이다.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진 창고와 건물들이 마치 베네치아 부라노섬을 꼭 빼닮았다고 하여 ‘부산의 베네치아’ 또는 ‘부네치아’라고도 불린다. ‘부네치아’는 수질 및 악취개선을 위해 일대를 공원화하고, 편의를 위한 판매·휴게시설을 도입하는 ‘장림포구 명소화’를 위해 특별히 꾸며진 장소이다. 아직은 입점 안 된 건물들이 많지만, 먹거리 상점도 운영될 예정이라고 하니, 곧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한적할 때 미리 인생샷을 건지는 것이 좋겠다. 장림포구는 다채로운 색감들이 햇살을 받아 더욱 돋보일 수 있도록낮에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부산 광역시 동구 홈페이지 출처]▲작은 소품에서 미국 중부 감성 물씬… 새로운 세계문화거리로 떠오른 ‘텍사스 거리’부산 동구에 위치한 ‘텍사스 거리’는 이름은 생소하지만 과거 미군들의 해방 거리로 유흥가가 들어서며 자연스레 만들어진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장소이다. 옛날에는 유흥가가 대부분이어서 학생이나 한국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도 있었으나, 현재는 상업지구 문화관광 기반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13억 원이 투입돼 최근 아치형 게이트와 다양한 외국인 상점들이 들어선 관광 장소이다. 관광객들에게는 이색적인 세계문화 체험을 선사하고 외국인들에게는 이방인의 흔적 속에 익숙한 문화를 찾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부산광역시 동구 차이나타운 특구]▲저녁은 유서 깊은 중화요리 맛집에서… 강렬한 레드로 시선 사로잡는 ‘차이나타운 특구’‘텍사스 거리’와도 이어지는 ‘차이나타운 특구’는 중국의 상징인 강렬한 빨간색으로 꾸며져 초입부터 중국에 여행 온 듯한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풍경뿐아니라 실제 중국인 셰프들이 운영하는 중국요리 음식점이 즐비해 있어 부산 시민은 물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실제로 영화 <올드보이>의 촬영지이기도 해 이곳에서 ‘군만두’를 찾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오래된 음식점이 많지 않은 ‘텍사스 거리’와는 달리 수십 년 이상의 전통을 잇는음식점들이 있으니 맛집 탐방 삼아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저녁이 되면 빨간 등이 거리에 켜져 더욱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니 저녁에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하이네켄 팝업스토어]▲광안리에서 만나는 네덜란드 정통 맥주… 초록초록한 공간에서 신나는 여름밤 DJ파티를 즐겨보자 ‘하이네켄 팝업스토어’행복하면서도 고된 여행의 피날레에 심신을 달래주는 시원한 ‘맥주’가 빠질 수 없다. 이국적인 장소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8월부터 약 두 달 동안만 바닷가 근처에서 운영될 ‘하이네켄 팝업스토어’를 강력 추천한다. 부산 광안리에 위치한 ‘퍼지 네이블(Fuzzy Navel)’에 전격 오픈한 하이네켄 팝업스토어는 도심에서 만나는 하이네켄 포레스트 컨셉으로 여름의 청량함을 가득 표현하는 ‘초록색’으로 꾸며져 한여름 바닷가에서 무더위를 피할 힐링 장소로 제격이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92개국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하이네켄은 동일한 맛과 품질을 유지해 하이네켄의 특유의 시원한 목넘김과 톡 쏘는 청량감을 선사한다. 매주 금·토요일에는 DJ 공연 파티가 열린다고 하니 하이네켄 팝업스토어에서 잊지 못할 네덜란드의 여름밤을 기대해보자.
2018.08.14 I 정선화 기자
④ 땅 끝에서 만난 해남 달마산 달마고도
  • [등짐쟁이 기파리의 유랑]④ 땅 끝에서 만난 해남 달마산 달마고도
  • [이데일리 트립 in 정기영 기자] “어서 와, 달마고도는 처음이지?”지쳐가는 길 위에 달마대사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 웃음에 뭔가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답할 힘이 없었다. 서울에서 해남 땅끝까지 가는 길이 너무 먼 거리감에 걷기도 전에 이미 어지러움과 현기증의 멀미가 시작되었다. 산사로 오르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예상한 숙영지와 거리를 만만히 보고 너무 여유를 부려 늦게 시작한 탓에 달마산 미황사에는 결국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땅 끝 마을 전라 해남의 달마산은 명칭답지 않게 까칠한 바위 능선이 압권이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덕룡산, 주작산, 두륜산, 대둔산의 꿈틀거리는 바위 능선이 도열하듯 늘어섰는데 그 바위산들의 맥이 마지막으로 뭉쳐지는 곳이 달마산이다. 그러니 암릉 산들의 꼬리는 바다에 떨어지기 싫어 사나운 개의 꼬리처럼 치켜 올라가 까칠하기가 이태리 때 타올 보다 더 까실대지만, 벌벌 기면서 오르면 아름다운 남해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이 무척 좋은 산이다.달마고도는 이 까칠한 달마산의 미황사를 출발해 미황사로 돌아오는 17.74km의 트레일로 달마산의 7부 능선을 걸어 달마산을 한 바퀴 도는 길이다. 마치 불자들이 염주를 한 바퀴 돌리듯 이 달마산을 한 바퀴 돌면 깨달음이 내게 있을까. 싱겁게 먹는 식성에 미황사 달마선원에서 먹은 연밥은 공양주의 덕이 넘쳤는지 몇 걸음 걷기 시작하면서 갈증이 났지만 희한하게도 달마고도의 숲 그늘에 들어서면 갈증이 수그러졌다. 목마름보다 그늘의 시원함이 앞섰다.숲을 나오면 너덜겅을 만나고, 너덜겅을 지나면 숲을 만났다. 너덜겅에 이르면 마치 공룡의 등뼈를 보듯 울퉁불퉁 각진 돌들이 수없이 많이 무너져 내렸고, 그 위를 척추가 지탱하고 있듯 암릉들이 펼쳐졌다. 햇볕이 얼마나 강한지 초록이 짙어진 계절에 초록이 바래 보이기까지 했다. 숲으로 들어서면 이 까칠한 암릉 산에 어떻게 이런 숲 그늘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숲이 우거졌다.걷다 보면 달마고도의 정성이 보인다. 곡괭이와 삽, 호미만으로 돌을 메꾸고 채워서 손으로 다져 오롯이 수작업으로 길을 낸 정성이 이 길에 숨어 있다. 숲을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의 흐름에 맡긴 흔적도 더러 있다. 어느 길이든 뭔가를 만든다고 하면 깨끗하게 그리고 최대한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요즈음의 길과는 달랐다. 마치 순수혈통을 만난 격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간혹 부러진 나무가 길에 뻗정다리마냥 널려 있어도 치우지 않았고, 걷는 이는 겸손함을 가리키는 줄 알고 지레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익살스러운 달마대사 몇 분을 만났다. 누가 진짜 달마대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새겨진 면면의 웃음을 보니 내 보기엔 다 달마대사였다. 그가 걷는 내게 말을 걸었다. “어서 와, 달마고도는 처음이지?” 그는 내게 사람이 걷는 길은 사람 손으로 만드는 게 정석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달마고도는 순전히 사람 손으로만 만든 길인 탓에 그 폭이 넓지 않다. 그러니 이 넓지 않은 길에 마주 오는 사람과는 소통과 양보를 해야 온전히 걸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소통과 양보. 인생살이의 가장 기본을 달마고도는 체험이 아닌 경험으로 가르친다. 1km를 걸을 때마다 한 개씩 거리를 알리는 표지목 17개가 나와야 달마고도는 끝난다. 10km를 알리는 표지목 10개째가 나오고 너덜겅을 지나면서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분홍색 이정표가 나왔다. 도솔암 300m. 오늘 목적했던 곳까지 남은 거리다. 잠시 쉬고 올라가는데 언제나 정상 직전은 치받는 고개가 있는 게 정석이라는 듯 마지막 남은 300m가 지친 사람을 죽이고도 남을 마음의 거리 3km가 되었다.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는 길은 사나운 바위 절벽 아래를 아주 길고 느린 갈지(之)자로 휘돌아 오른다. 숫자 세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1, 2, 3... 300. 300이 지났는데도 도솔암이 나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숫자를 더 센 후에야 도솔암 종무소의 공사장이 나왔다. 먼저 도착한 길벗들은 도솔암 삼거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절벽 위에 세워진 도솔암을 돌아보는 중이었고, 나는 이제껏 지고 왔던 배낭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여기까지 왔다는 안도감보다 실망감이 앞서서였다. 내가 이 풍경을 보려고 오후 내내 걸어왔단 말이던가.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조용한 암자보다 관광지가 되기를 택한 공사 현장이었다. 사진발이었어. 목적지를 도솔봉으로 바꿨다. 몸은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지쳐 있었고, 마음은 도솔암 삼거리에서 공허해졌으며 발바닥은 불이 났다. 그러는 중에도 땅 끝 바다에 떨어지는 일몰은 놓치지 않으려고 고개는 연신 바다 쪽으로 돌리기 바빴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풍경으로 실망감을 위로받았다. 도솔봉 임도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찼다. 걷는 내내 옷을 적시고 흐르던 땀이 어느샌가 쏙 들어가면서 몸이 으실대 재킷을 꺼내 입었다. 구름이 도솔봉을 넘나들며 바람을 몰고 왔다가 몰고 갔다. 잠시 쉬며 어떻게 할지 머리를 맞대고 얘기 중에 송지면 개인 콜택시 번호를 보자마자 모든 게 ‘멈춤’이 되었다. 숲, 너덜겅의 반복적인 길을 내일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지루하고 심심해진 탓이다. 우리는 땅끝 송호리 해송 숲에서 머물기로 했다. 기다리던 택시가 오고, 방법이야 어찌되었던 낮에 출발했던 미황사로 돌아왔다. 어둠이 내린 지 한참 후라 관광객도, 산객들도 떠난 미황사 주차장은 조용하고 어두컴컴했다. 차를 출발하려다 하루 종일 땀을 흘려 끈적거리는 몸뚱이가 찝찝해 불이 켜진 지린내가 진동하는 미황사 아래 주차장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나니 그제야 나갔던 정신줄이 되돌아왔다. 지독한 지린내 속에서도 몸을 닦고 시원해하는 서로를 보며 ‘세상 별것 아닌 것으로도 행복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숙영지로 가는 내내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조차 없다던 우리는 텐트를 펼쳐 놓고 나니 맥주 한 캔에 노곤한 하루를 풀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앉아 있을 수도 없는 피곤함이 몰려와 텐트 안에 몸을 눕히며 떠올랐던 건 암벽에 드문드문 드러난 나무들, 나무가 우거진 숲이었다. 마치 달마대사의 눈썹 같고, 수염 같고, 털 같았던 달마산의 암봉들과 숲이 지겨워 중탈하고는 생각이 나다니 우스웠다. 잠결에 달마고도를 걸으면서 보았던 한 구절이 지나갔다. ‘달마고도, 생각이 멈추는 그곳에 보리수가 자란다.’ 나의 보리수는 지금 어디에서 자라고 있을까.
 여름철 낭만 여행 ‘제주의 별 헤는 밤’
  • [별헤는밤①] 여름철 낭만 여행 ‘제주의 별 헤는 밤’
  • 1100 고지에서 올려다 본 하늘(사진=채지형 여행작가)[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제주는 별 보기 좋은 여행지다. 넘치는 불빛에 별을 만나기 힘든 도시와 달리, 조금만 움직여도 캄캄한 공간이 나타나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마주할 수 있다. 가로등도 많지 않고 조용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초저녁, 밤하늘이 맑다면 별을 보러 떠나야 한다. 수많은 별이 밤하늘을 장식하는 동화 같은 장면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제주의 푸른 밤을 즐기기에 이보다 좋을 수 없다.바닷가에서도 별을 볼 수 있지만, 아름다운 밤하늘이 탐난다면 불빛이 없는 장소를 찾아보자. 여름철 제주 바다는 고깃배의 불빛이 점령해서 별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맑은 밤이면 어디서나 별을 만날 수 있지만, 그중에도 마방목지와 제주별빛누리공원, 1100고지휴게소, 새별오름이 별 구경 명당으로 꼽힌다. 혼자보다 친구나 가족과 동행하기를 권한다. 황홀한 광경을 혼자 보기 아깝고, 어두운 밤길이라 함께 가면 더 안전하다.마방목지의 말들, 뒤로 한라산이 보인다.(사진=채지형 여행작가)5·16도로에 위치한 마방목지는 제주축산진흥원이 관리하는 초원이다. 드넓은 초원에 천연기념물 347호로 지정된 제주 조랑말(제주마)이 한가롭게 노니는 광경을 보면, 마음이 절로 평화로워진다. 흰 눈이 살포시 내린 겨울 풍경도 멋지지만, 역시 마방목지의 진면목은 여름에 드러난다.이곳의 매력 중 밤하늘을 빼놓을 수 없다. 낮에는 말이 풀을 뜯는 풍경(고수목마)을 보기 위해 많은 여행자가 찾지만, 밤에는 인적이 끊겨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고개를 들면 주차장을 지키고 선 키 큰 나무 너머로 별이 반짝인다. 가끔 자동차가 지나며 불빛을 비춰도 별 구경에 방해가 되진 않는다. 마방목지는 제주시에서 그리 멀지 않아, 문득 별이 생각날 때 가볼 만하다. 주차장도 널찍해 여유롭게 별을 즐기기 좋다.제주별빛누리공원(사진=채지형 여행작가)아이와 함께 별을 보고 싶다면 제주별빛누리공원에 가자. 별과 우주를 주제로 한 천문 공원으로, 여행자뿐만 아니라 제주도민에게도 사랑받는 공간이다. 외부에는 태양계 광장이 조성되어 아이들에게 우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내부에는 우주와 별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전시실, 우주선을 타고 달까지 여행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체험하는 4D입체상영관, 사계절 별자리를 소개하는 천체투영실이 갖춰졌다. 3층 관측실에는 600mm 카세그레인식 반사망원경과 소형 망원경이 마련되어 별을 가까이 볼 수 있다. 신나게 떠들던 아이들도 망원경 앞에 서면 성운을 찾기 위해 숨을 죽인다.벽에 걸린 그림이 눈길을 끈다. 여름과학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이 제주 신화를 바탕으로 ‘나만의 별자리와 신화’를 캔버스에 표현한 작품으로, 풍부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3층에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맑은 날에는 아름다운 제주의 야경을 즐기기 좋다. 4~9월에는 오후 3시부터 11시까지 문을 연다.1100 고지에서 올려다 본 하늘(사진=채지형 여행작가)사진가들이 손꼽는 제주 별 구경 명당은 1100고지휴게소다. 한라산 중턱에 있는 1100고지휴게소는 제주와 서귀포를 오가는 자동차로 분주한 낮과 달리, 밤이 되면 한없이 고요하다. 맑은 날에는 감탄사 없이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모습은 물론 은하수도 볼 수 있다. 별이 비처럼 쏟아진다. 1100고지휴게소 앞 노루 조형물마저 별을 바라보는 멋진 모델로 변신한다. 1100고지휴게소에 별을 보러 갈 때는 시계를 챙겨야 한다. 하염없이 별을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굽이굽이 올라야 하므로 운전에 주의한다.별 이야기를 할 때 빠뜨리면 안 되는 장소가 새별오름이다. 서부 중산간 오름 지대를 대표하는 이곳은 이름만 들어도 별이 떠오른다. 저녁 하늘에 외롭게 떠 있는 샛별 같다고 해서 ‘새별’이라는 앙증맞은 이름이 붙었다. 대보름 전후에 펼쳐지는 장엄한 들불축제로 유명하지만, 별 구경 명소로도 널리 알려졌다. 새별오름의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519.3m.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가팔라도 잘 정비되어 30분이면 도착한다. 정상은 사방에 거칠 것이 없어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주차장에서도 반짝이는 별로 물든 하늘이 보인다. 날이 맑으면 대다수 오름에서 별을 만날 수 있으니, 나만의 별자리 여행을 오름으로 떠나보자.사려니숲길을 걷고 있는 방문객(사진=채지형 여행작가)마방목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한적한 사려니숲길이 있다. 초여름에는 보랏빛 산수국 꽃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제주시가 선정한 ‘제주시 숨은 비경 31’ 중 하나인 사려니숲길은 울창한 원시림이 펼쳐져 산림욕을 즐기기 좋다. 빽빽한 삼나무를 비롯해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편백 등 수종이 다양하다. 비자림로에서 트레킹을 시작하거나 붉은오름 쪽에서 들어갈 수 있다. 조금만 걸어도 초록에 흠뻑 젖어, 제주의 청정한 공기를 마시며 복잡해진 마음을 다독이기에 안성맞춤이다.이니스프리제주하우스에서는 제주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즐겨보자. 해녀가 물질하러 갈 때 챙기던 도시락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해녀바구니’, 한라산 모양의 ‘한라산케이크’ 등 메뉴가 독특하다. 스탬프를 이용해 엽서를 꾸미거나 제주 천연 재료로 비누를 만드는 등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건물도 현무암과 나무, 통유리로 만들어 제주의 자연이 떠오른다. 건물 앞에는 싱그러운 녹차 밭이 있어 잊지 못할 추억 사진을 남기기 좋다.이니스프리제주하우스가 자리한 서귀포시 안덕면에는 여행자를 부르는 건물이 있다. 건물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찾는 방주교회다. ‘예술로서 건축’을 추구한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이 만들었으며,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했다. 잔잔한 수면에 반짝이는 지붕을 올린 배 한 척이 떠 있는 모습이다. 현대적인 모자이크 지붕과 고전적인 목재를 사용한 외벽으로 기술과 자연이 어우러졌다. 크기는 작지만, 장인의 손길로 한 땀 한 땀 작업한 공예품처럼 정교하다. 교회에 담긴 지극한 정성이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여행메모△당일 여행 코스▷마방목지 코스=사려니숲길→마방목지→제주별빛누리공원▷새별오름 코스=이니스프리제주하우스→방주교회→새별오름→1100고지휴게소△1박 2일 여행 코스= 마방목지→사려니숲길→제주별빛누리공원→숙박→1100고지휴게소→ 방주교회→이니스프리제주하우스→새별오름△가는길= 제주국제공항→오남로→한북로→5·16도로(마방목지), 제주국제공항→오라오거리→제주시외버스터미널→제주시청→제주대학교병원→제주별빛누리공원(제주별빛누리공원)△주변 볼거리= 절물자연휴양림, 서귀포치유의숲, 제주신화월드, 물영아리오름, 오설록티뮤지엄, 제주항공우주박물관, 산천단곰솔
2018.07.01 I 강경록 기자
 꽃바다에 밀파도 '넘실'…눈길 머무는 곳마다 '초록바다'
  • [여행] 꽃바다에 밀파도 '넘실'…눈길 머무는 곳마다 '초록바다'
  • 한쌍의 연인이 강원도 정선의 대촌마을 앞 어천을 건너고 있다. 마을을 중심으로 높이 100m는 족히 넘을 깎아지를 듯한 석회암 절벽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그 앞으로는 어천이 휘감아 흐른다. 이 절벽이 바로 옥순봉이다.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른 절벽의 위용이 장관이다.강원도 정선과 평창 경계에 자리한 장전계곡 상류에는 태곳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끼계곡이 있다. 이끼 가득한 바위를 훑고 내려오는 계곡물이 마치 주름치마를 펼친 모습이다.강원도 정선의 하이원리조트 제우스 슬로프 일대는 순백의 데이지가 끝도 없이 피어나 아예 바다를 이뤘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꽃밭에서 데이지 꽃대는 바람에 힘없이 흔들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초여름 더위는 저만치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린다.[정선=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이제 본격적인 여름철이다. 햇살도 부쩍 강렬해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벌써 산과 바다가 그리우니 걱정이다. 하지만 습도와 열기가 뒤섞인 아열대 날씨도 범접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 고원 도시들이 그렇다. 대표적인 곳이 강원도 정선이다. 정선 곳곳에는 여름 들꽃이 별처럼 피었다. 싱그러운 연둣빛으로 가득한 마을과 계곡을 둘러보고 나면 무더위는 어느새 가시고 가슴에는 시원한 바람이 가득 찬다. 이번 정선 여행의 콘셉트는 ‘삼색여행’이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 꽃 바다와 태곳적 모습을 간직한 초록의 이끼, 그리고 그림같이 일렁이는 연둣빛 밀밭에서 더위를 잊는 여정이다.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대촌마을도 벌써 여름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높은 뼝대와 산세, 그리고 물길로 둘러싸인 이 마을은 아늑하게 고립되어 있어 마음을 평온을 얻고자 하는 이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원빈·이나영도 반한 연둣빛 밀밭한쌍의 연인이 강원도 정선의 대촌마을 앞 어천을 건너고 있다. 마을을 중심으로 높이 100m는 족히 넘을 깎아지를 듯한 석회암 절벽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그 앞으로는 어천이 휘감아 흐른다. 이 절벽이 바로 옥순봉이다.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른 절벽의 위용이 장관이다.정선읍에서 59번 지방도를 타고 화암면 방면으로 향한다. 10분여를 달리다 바로 옆 샛길로 빠지면 아담한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정선읍 덕우리, 일명 대촌(大村)마을이다. 이 마을을 중심으로 높이 100m는 족히 넘을 깎아지를 듯한 뼝대((강원도 사투리로 ‘바위 절벽’이라는 뜻)가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그 앞을 어천이 휘감아 흐른다. 이 뼝대가 바로 옥순봉이다. 정선의 동계십이경(군청소재지에서 동쪽 방면의 비경) 중 첫손에 꼽히는 비경이다.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른 절벽의 위용이 장관이다.좁은 농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선다. 몇해 전 방영했던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 촬영장을 지나면 어천이다. 이 어천을 건너면 반선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경치 좋은 곳에 정자 하나 꼭 있다’는 말처럼 덕우리(대촌)의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자리했다. 역시 정자 주변 풍경은 최고다. 앞으로 옥빛 물결이 넘실대고, 뒤로는 재월대의 바위 절벽이 비호하듯 내달린다. 또 옆으로는 병풍을 친 모양의 ‘구운병’이 어천 물길과 함께 어울려 그 경치를 뽐내고 있다.원빈과 아니영이 결혼식을 올린 대촌마을 밀밭. 반선정 뒤로 드넓게 펼쳐진 밀밭은 마치 고흐의 ‘밀밭’ 그림 같은 일렁임이 파도 처럼 벌판을 뒤덮고 있다.반선정 뒤로는 밀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마치 고흐의 ‘밀밭’ 그림 같은 일렁임이 파도처럼 벌판을 뒤덮는다. 이국적인 풍경이다. 초여름 밀밭의 색깔은 더 아름답다. 초록의 밀과 연노란 이삭이 햇살에 어우러져 파스텔 톤 빛깔을 담아낸다. 밀은 어느새 훌쩍 자라 알이 배고 이식이 팼다. 통통한 이삭의 무게를 못 이겨 한소끔 씩 불어오는 바람에도 쉬이 흔들리며 파도를 이룬다. 이 모습에 반해 원빈과 이나영도 이곳을 배경으로 결혼식을 올렸다방죽 위로 어천을 건너가면 눈앞에 거대한 뼝대가 나타난다. 재월대다. 시계가 없던 오래전 재월대에 달이 걸리고 넘는 방향과 높이에 따라 시간을 가늠했단다. 제월대 앞마을 이름은 ‘은내뜰’이다. 산에서 나와 재월대를 바라보며 왼쪽으로 걸어가면 집이 한 채 나오는데, 그 앞이 ‘삼합수’다. 본류인 어천 물길과 덕산기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길, 여탄에서 흘러드는 물길 등 세 물길이 모인다고 해서 ‘삼합수’라는 이름이 붙었다.강원도 정선과 평창 경계에 자리한 장전계곡 상류에는 태곳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끼계곡이 있다. 이끼 가득한 바위를 훑고 내려오는 계곡물이 마치 주름치마를 펼친 모습이다.◇태곳적 모습 간직한 초록세상강원도 정선과 평창 경계에 자리한 장전계곡 상류에는 태곳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끼계곡이 있다. 이끼 가득한 바위를 훑고 내려오는 계곡물이 마치 주름치마를 펼친 모습이다.무더위를 잊기에 계곡만 한 곳도 없다. 수정 같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백두대간 허리를 이루는 정선에는 수많은 계곡을 품고 있다. 그중 평창과 정선에 걸쳐 날개를 펴고 있는 가리왕산(1561m)은 여러 골짜기를 품고 있다. 장전계곡은 가리왕산의 북쪽 기슭을 흐르는 계곡이다. 여름철이면 더위를 피해 찾아온 피서객뿐 아니라 상류의 이끼계곡을 찾는 사진작가들이 줄을 잇는 곳이다. 이끼계곡이 있는 상류까지 승용차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찾아가는 법도 어렵지 않다. 59번 국도를 타고 나전 방향으로 향한다. 나전삼거리에서 59번 국도로 갈아탄다. 10여 분 달리면 장전교차로다. 좌회전해 길을 따라 오르면 오른쪽으로 시원한 계곡이 힘차게 흐른다.장전계곡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일단은 빼어난 자태가 그 이유다. 오대천의 지계곡으로 맑은 옥류와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계곡미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편이어서 호젓한 피서를 겸할 수 있어 더없이 좋다.강원도 정선과 평창 경계에 자리한 장전계곡 상류에는 태곳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끼계곡이 있다. 이끼 가득한 바위를 훑고 내려오는 계곡물이 마치 주름치마를 펼친 모습이다.또 다른 이유는 장전계곡의 상류에 숨어 있는 이끼를 보기 위함이다. 이끼를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다. 계곡 하류에서 도로를 따라 상류까지 올라가야 한다. 길은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좁은 편이다. 그래도 낙엽송 울창한 숲길은 맑고 시원해 가는 길이 마냥 지루하지 않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간이 화장실이 있는 지점에서 차를 세워야 한다. 이끼계곡은 울타리 너머에 있다. 진입을 통제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이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계곡에 닿기 전 걱정이 앞선다. 초여름이라 계곡물이 마르지는 않았을까. 혹여 이끼가 없을까. 노심초사다. 다행히 계곡으로 내려서자 물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나뭇잎 사이로 짙푸른 소가 언뜻언뜻 시야에 들어온다. 조심스럽게 계곡으로 내려선다. 다행히 계곡은 이끼로 융단을 깐 듯 초록세상이다.이끼 가득한 바위를 훑고 내려오는 계곡물은 마치 주름치마를 펼친 모양이다. 가뭄에도 끊임없이 내려오는 물줄기가 반갑다. 숲은 울창해 한낮에도 어둑하다. 세찬 계류를 온몸으로 받는 크고 작은 바위마다 초록 이끼가 수북히 붙어 있다. 찾는 이가 드물어 시간이 멈춘 듯 태곳적 모습 그대로다. 이만한 규모에 온전한 모습을 갖춘 이끼계곡은 강원도 땅에서도 보기 드물다. 그저 바라만 봐도 눈이 호사를 누리는 풍광이다. 강원도 정선의 하이원리조트 제우스 슬로프 일대는 순백의 데이지가 끝도 없이 피어나 아예 바다를 이뤘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꽃밭에서 데이지 꽃대는 바람에 힘없이 흔들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초여름 더위는 저만치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린다.◇향기로운 순백의 바다에 ‘풍덩’정선에도 바다가 있다. 물론 쪽빛 바다는 아니다. 대신 하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바다를 찾아가려면 고한읍의 하이원리조트로 가야 한다. 겨울철 스키어들이 활강하던 슬로프에 샤스타데이지가 만개해서다. 샤스타데이지는 프랑스의 들국화와 아시아의 섬 국화를 교배해 만든 개량종. 노란 꽃술과 흰 꽃잎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미 제우스 슬로프 일대는 순백의 데이지가 끝도 없이 피어나 아예 바다를 이뤘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꽃밭에서 데이지 꽃대는 바람에 힘없이 흔들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초여름 더위는 저만치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린다. 해발고도 800m 이상의 고원 지대라 가능한 풍경이다. 이런 환경 덕분에 하이원리조트 일대에는 수레국화, 루드베키아, 에키나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곳곳에 피어 있다.하이원리조트에서는 슬로프에 수놓은 야생화를 둘러보는 ‘하늘길 카트투어’를 운영하고 있다.이 꽃 바다를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직접 걸으며 천천히 둘러볼 수 있고, 전동 카트틀 타고 편하게 감상할 수도 있다. 하이원리조트는 ‘하늘길 카트투어’라는 유료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약 50분 동안 전동 카트를 타고 슬로프에 수놓은 야생화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숲해설가가 동행해 야생화와 수목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도 풀어놓고, 추억이 담긴 사진도 찍어주면서 1일 투어 매니저로 활약한다. 올해는 가족이나 단체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8인승 대형 카트도 새로 도입해 편의성을 높였다. 또 카트 내 안전바도 설치해 안정성을 높였다.매월 코스도 다르게 운영한다. 리조트 전체가 초록빛으로 물드는 6월에는 마운틴콘도 스키하우스~밸리허브를 왕복한다. 금낭화·민들레·나도냉이·분홍장구채·샤스타데이지 등의 봄철 야생화를 둘러보는 약 7km의 코스다. 겨우내 품고 있던 생명력을 아름다운 꽃으로 피워내는 봄 야생화의 매력을 느끼기 그만이다. 무더위가 절정인 7~8월에는 마운틴허브~마운틴탑을 왕복하는 코스를 운영한다. 원추리·해바라기·춘자국 등의 노란 물결과 꽃유·비연초·갈퀴꽃 등의 보랏빛 물결이 눈을 즐겁게 한다. 여기에 해발 1340m에 있는 마운틴탑에서 불어오는 하늘 바람은 한여름 무더위를 기분 좋게 식혀준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9~10월에는 마운틴탑~밸리탑을 왕복하는 코스를 운영한다. 가을을 대표하는 코스모스와 함께 메밀꽃·부처꽃·각시투구꽃 등을 만날 수 있다.강원도 태백의 강산막국수 (033-552-6680)는 막국수와 수육으로 이름난 집이다. 감자전도 바삭하고 고소해 찾는 이가 많다.◇여행메모△가는길=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제천 IC로 빠져나와 영월 방면으로 차를 달린다. 영월을 지나 정선의 남쪽 입구인 남면에서 59번 국도를 따라가면 정선 읍내로 들어설 수 있다. △잠잘곳=가족과 함께라면 하이원리조트나 파크로쉬리조트를 추천한다. 하이원리조트는 2개의 호텔과 3개의 콘도가 보유하고 있는 객실은 모두 1577실이다. 내장객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북카페도 있다. 2300여권의 도서를 구비한 북카페 1층에는 카페와 영상실, 그리고 3곳의 서가가 있다. 오는 7월에는 하이원 워터파크도 개장할 예정이다. 올해 3월 개장한 파크로쉬리조트는 웰니스리조트를 표방한다. 지하 2층에서 지상 12층으로 총 204실 규모이고 레스토랑과 바, 연회장 등 부대시설을 갖췄다. 요가와 명상, 스파, 숲, 치유 등의 웰니스 프로그램에 특화한 시설과 인력을 충실하게 갖췄다.△먹을곳= 정선 동막골식당(은 곤드레밥으로 유명하다. 태백의 강산막국수 (033-552-6680)는 막국수와 수육으로 이름난 집이다. 감자전도 바삭하고 고소해 찾는 이가 많다.태백의 강산막국수 (033-552-6680)는 막국수와 수육으로 이름난 집이다. 감자전도 바삭하고 고소해 찾는 이가 많다.
2018.06.29 I 강경록 기자
③ 황금의 섬에서 제주를 바라보다, 가파도 백패킹
  • [등짐쟁이 기파리의 유랑]③ 황금의 섬에서 제주를 바라보다, 가파도 백패킹
  • [이데일리 트립 in 정기영 기자] “바람에 일렁이는 황금빛에 출렁,새파란 바다 빛에 하늘이 퐁당,바다 건너 한라산과 오름을 바라볼 수 있는 섬”비행기를 타고 섬으로 가고, 그 섬에서 다시 배를 타고 이동했다. 제주도 여행은 늘 특별한 계획 없이 여행 당일 날씨에 맞춰 즉흥적으로 목적지를 결정하곤 했는데 늦은 봄의 제주도 여행에서는 좀 특별한 곳을 선택했다. ‘청보리의 섬 가파도’가 그곳이었다. 세찬 바닷바람을 이기고 겨우내 잘 버텨준 보리가 초록초록해지면 가파도의 봄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초록을 보기 위해 가파도를 찾지만, 어느 해인가 청보리 축제 때 이 섬을 찾았던 기억은 섬에 머물렀던 몇 시간 동안 시끄럽고 북적이던 소리에 내내 불편했었다.그런 기억 때문이었을까. 계절 좋은 날, 한가한 가파도를 찾고 싶었다. 훑듯이 지나가는 사람들과 풍경을 나누고 싶지 않았던, 순전히 내가 보고 느끼는 것으로 기억하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어쩐지 가파도는 초록이 지나도 좋을 것 같았다. 황금 보리밭 계절. 이 계절이 지나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가파도의 황금 보리밭을 보기 위한 걸음은 그렇게 시작이었다.청보리 축제가 끝난 가파도는 한산했다. 어디에서부터 걸을까. 올레 코스를 따라 걷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걸으며 하루 저녁 머물 곳을 찾기로 했다. 이 계절에 가파도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신이나 마을까지 걸어가며 멈추기를 수십 번, 걷기보다 한눈팔기가 우선이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구멍 숭숭 뚫린 검은 돌담 안에서 황금빛이 담을 넘을 듯 넘실댔고, 뒤를 돌아보면 송악산과 한라산이 있는 제주도 본섬이 아릿하게 보였다.보리가 영글기 시작하면 초록의 가파도는 황금의 가파도로 변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밭에서는 제주 바다가 만들어낸 바람이 황금 보리와 마주치며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몸을 살짝 낮춰, 보리와 눈 맞춤이라도 하면 또 어떻고. 가파도의 해안과 황금 보리가 만나 부서지면 파도마저도 황금빛으로 변했다. 이 계절의 가파도 앞바다는 내가 이제껏 기억하던 제주도의 푸른 바다가 아니다. 금빛의 계절, 가파도는 금가루를 만들어 여기저기 뿌리는 요술을 부리는 섬이 된다.마을 안 가파도 파출소에서 화장실 사용을 하며, 섬을 돌아볼 동안 배낭을 맡겨도 되겠느냐고 슬그머니 여쭈었더니 흔쾌히 맡아 주신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는데 이곳을 오며 봐두었던 집이 있었는지 일행이 담이 없는 마당에 평상이 놓인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소라와 해삼을 주문한다. 평상에 앉아 잔잔한 가파도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새 테이블 위 접시에는 가파도 해녀가 채취한 바다와 여행의 정취가 차려졌다.낮술 한 잔까지 더하니 안 그래도 좋은 가파도가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살짝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섰다. 해수면보다 낮고 평평한 이 섬에 우리가 생각하는 언덕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섬의 다른 곳보다 높다면 그곳이 곧 가파도의 언덕이었다. 공사로 인해 마구 파헤쳐지고 가파도라는 돌비석까지 있는 이곳은 가파도 전체와 제주도 본섬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숙영지로 삼을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공사장의 어지러움과 들쥐의 흔적으로 인해 이내 포기다.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며 만난 풍성한 갯바위를 가진 평지가 보이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여기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마치 구슬을 받치고 있는 듯 송악산에 산방산이 쏙 들어간 모습은 이곳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한라산은 제주도의 어느 곳에서라도 볼 수 있지만, 바다에서 불쑥 올라온 듯 해안 절벽을 가진 송악산, 둥그런 산방산과 그 주변으로 펼쳐진 모슬봉, 단산, 군산, 형제섬까지 한눈에 볼 여러 곳이라니. 말이 필요 없는 곳이었다. 하늘은 파랬지만 미세먼지 탓에 바다 건너 풍경들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도 제주도 본섬에서는 마주할 수 없는 풍경들을 볼 수 있는 곳.일행들은 한껏 탄성이다. 숙영지를 결정한 후 배낭을 가지러 오가면서 섬을 구석구석 헤집듯 다녔는데도 마지막 배 시간까지 시간 여유가 남았다. 섬 백패킹을 할 때는 숙영지를 결정해도 바로 텐트를 펼치지 않는다. 관광객을 실은 마지막 배가 섬을 떠나야 하루 저녁 머물 잠자리를 펼치는 건 섬을 여행하면서 지키는 내 나름의 원칙 탓이다.배낭을 내려놓으니 시장기가 돌았다. 가파도 유일의 짜장면집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과 한라산을 주문했다. 톳이 들어간 초록색 면의 짜장면을 1회용 기가 아닌 가게에서 쓰는 그릇에 담아 배달해 주신 덕분에 쓰레기 걱정을 덜었다. 제주 본섬을 바라보고 먹는 짜장면 맛을 어느 산해진미와 비교할까. 맛으로도 맛있고, 눈으로도 맛있으니 한라산이 호로록 눈으로 입으로 잘도 넘어갔다.그러는 사이 마지막 배가 본섬으로 출발하는 소리가 들려 배낭을 풀어 하루 저녁 머물 집을 지었다. 그것도 가파도 최고의 조망처에서. 해가 제집으로 돌아가고 가파도에 어둠이 내렸다. 제주 본섬에서 흐르는 불빛이 바다를 물들였고, 모슬봉의 군기지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검은 허공에서 흔들렸다. 보리밭이 있는 곳에 올라 마을을 바라보니 네온사인 간판이 하나도 없는 가파도는 깜깜하고 고요함이 감쌌다.텐트 안에 누워 듣는 갯바위에 찰랑대는 파도 소리는 듣기 좋은 귀 간질거림므로 다가왔다. 잠시 조용했던 바다는 밤샐 준비를 마쳤는지 이내 분주해졌다. 조그마한 어선들이 내뱉는 통통거리는 엔진 소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였다. 새벽녘, 잠이 깨어 텐트 밖으로 나가보니 바다가 전등을 켠 듯 환하며 장관이 펼쳐졌다. 매번 먼 곳에서 바라보던 제주 앞바다의 밤 풍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진다니.날이 밝은 후 몸을 일으켜 보리밭이 있는 길섶으로 올랐다. 그래 봤자 스무 걸음도 안 되는 곳. 숨을 들이켜니 바다 냄새와 이슬에 젖어 비릿하면서도 구수한 보리 냄새로 코가 벌렁거렸다. 가파도에서 맞는 아침은 그랬다. 잠이 덜 깬 머리는 달달한 다방 커피 한 잔으로 깬 후 첫배로 제주 본섬으로 가기 위해 짐 정리를 끝내며 머문 흔적이 남지 않은 걸 확인 후 선착장으로 향했다.누가 가파도를 초록의 청보리 섬이라고 했을까. 혼자 실컷 보려고 꼭꼭 숨겨 놨던 가파도의 황금 보리밭과 제주 본섬의 풍경들은 막걸리 한 잔, 해산물 한 접시에 풍경 나누는 인심을 팍팍 쓴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닳지 않았다. 배를 타는 내 손에 들린 건 집에 가면 끓여 마시려고 구매한 가파도 청보리로 만든 보리차였다. 가파도를 떠나는 배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섬이 멀어지는 게 아쉬워 봉지를 들어 보리차 냄새를 맡는 나를 본 일행의 웃음소리가 바다 위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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