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여대생은 어쩌다 끔찍한 유괴 살인범 됐나[그해 오늘]

1991년 유치원생 유괴살인 홍순영 사형 확정
"대학 합격했다" 이후 수년간 거짓인생 살아
"사형시켜 달라"→판결 후 "사형만 면해달라"
  • 등록 2022-09-13 오전 12:03:30

    수정 2022-09-13 오전 12:27:26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91년 9월 13일. 서울 서소문동에 위치한 대법원 청사(현 서울시립미술관) 소부 법정, 1·2심 사형 선고를 받은 한 20대 여성에 대해 상고기각 판결이 내려진다. 사형이 최종적으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20대 여성의 죄명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약취·유인, 사체은닉 등 무시무시한 혐의였다. 해당 여성은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정신병원 의사의 감정결과까지 법정에 제출한 상태였다. 하지만 법원은 1990년 12월 1심, 1991년 5월 2심에 이어 약 9개월 만에 3심 선고까지 내리 사형 판결을 내렸다.

여성의 이름은 홍순영. 1967년생으로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이 확정될 당시 나이는 고작 만 24세에 불과했다. 아직 많은 국민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상가건물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던 홍순영은 어쩌다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사형수가 됐을까.

유치원생 유괴 살해범 홍순영 체포 당시 모습. (사진=MBC 방송화면 갈무리)
사건은 1990년 6월 25일 발생했다. 서울 송파구 한 대단지 아파트 내 유치원에 다니는 K양(당시 6세)이 귀가시간이 지났는데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K양 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은 유치원 교사는 “30분 전 엄마라고 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받고 아이를 보냈다”고 말했다. 몇 시간 동안 아파트단지를 구석구석 찾아다닌 K양 부모는 경찰에 유괴 신고를 했다. 실종 신고를 한 지 24시간이 넘도록 집으로는 어떠한 전화도 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난 6월 26일 저녁 시간이 임박한 오후에야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남자 목소리를 흉내 내는 여성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있으니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5000만원을 가지고 오라”는 요구였다. 해당 여성은 10분 후 다시 전화를 걸어 가명으로 된 계좌번호를 대며 입금을 요구했다. K양 부모는 6월 27~28일 이틀에 걸쳐 총 3000만원을 송금했다. 그리고 6월 29일 처음으로 해당 통장에서 돈이 인출됐고, 잠복 끝에 을지로입구역에서 마침내 범인을 체포했다. 당시 만 23세였던 홍순영이었다.

체포 직후에도 “공범 있다” 거짓말…자살시도

홍순영은 체포 직후 경찰을 속이기 위해 온갖 수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으려 “용변을 보겠다”며 화장실에 가 신분증과 신용카드 등 신분을 드러낼 수 있는 소지품을 모조리 버렸다. 그리고 “공범이 있다”는 거짓말로 경찰에 혼선을 주기도 했다. 왜소한 20대 여성의 단독 범행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경찰은 “공범과 만나기로 했다”는 홍순영의 말을 믿고 대학교 강당, 서울역 등으로 이동했다.

마침내 홍순영은 경찰의 공범 유인 계획 하에 서울역 승강장에 홀로 남게 되자 진입하는 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기관사의 급정거로 자살에 실패했다.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던 홍순영은 경찰의 오랜 추궁 끝에 결국 K양을 살인한 후 사체를 은닉했다고 털어놨다.

경찰 수사 결과 홍순영의 범행엔 ‘가짜 인생’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던 홍순영은 1985년 고등학교 졸업 후 두 차례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홍순영은 이 시점에서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부모 등 주변 사람들에게 “서울의 한 대학교에 합격했다”고 속이고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한 것.

홍순영이 위조해 들고 다녔던 서울의 대학교 학생증
그는 4년간 MT에 참석하거나 청강을 하는 식으로 가족 등을 감쪽같이 속였다. 1990년 2월 대학교 졸업식에 가족들을 불러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홍순영의 거짓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3월 한 주요 방송국에 기자로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에게 받은 대학 등록금으로 부족함 없이 생활할 수 있었던 ‘가짜 대학생’ 시절과 달리,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사라진 ‘가짜 직장인’ 행세를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불과 한 달 전 유괴 실패…범행 장소 바꿔 다시 범행

거기서 홍순영이 돈을 구하기 위해 생각해낸 방안은 유괴였다. 그는 5월 초 한 은행에서 가짜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며 범행 준비를 마쳤다. 당시엔 금융실명제 이전이라 통장 개설 시 신분 확인 절차가 없었다.

홍순영은 K양 이전 한 차례 다른 아이를 유괴한 적이 있었다. 가짜 대학생 시절부터 사귄 남자친구 A씨의 직장동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와 닮았다는 이유로 한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결박한 후 감금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홍순영 부친이 피해자를 발견해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홍순영은 아이를 집으로 보내면서 “내가 너를 유괴범으로부터 구해 준 것처럼 부모에게 말하라”고 겁박했다. 홍순영의 가족도 신고를 하지 않고 피해자 측도 경찰에 알리지 않아 홍순영의 1차 범행은 발각되지 않았다.

경찰 수사를 피한 홍순영은 더욱 과감해졌다. 1차 범행의 실패로 집에서의 범행이 어렵다고 보고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하며 지리에 익숙해진 대학교 옥상을 범행 장소로 계획했다. 홍순영은 다른 유괴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도중 해당 송파구 아파트 내 유치원에서 범행 대상을 찾은 것이다. K양을 꾀어내 자신이 애초 계획한 대로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한 대학교 건물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학교 안에는 이미 노끈 등 범행 도구들이 준비돼 있었다. 홍순영은 아이가 집에 보내달라고 계속 울자 아이를 살해하고 사체를 은닉했다.

홍순영 검거 소식을 다룬 1990년 6월30일자 동아일보 기사. (동아일보 기사 갈무리)


법정서 “사형제 존폐기로…사형 선고 안돼”

홍순영은 체포 후 수사기관에서 “제발 사형시켜주세요”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하지만 정작 법정에서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 홍순영은 사형 선고를 피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그는 “범행 당시 편집성 정신장애에 의한 심신미약상태에 있었다”며 전문의가 작성한 정신 감정서를 제출했다. 또 “범행 후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참회하고 있는 상황과 사형제도가 이미 존폐의 기로에 있는 추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형 판결은 너무 무겁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같은 홍순영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홍순영이 범행 당시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결정 능력이 있었고,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은 명백하다”며 “감정서 결론을 믿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범행이 지극히 반사회적이며 범행 동기를 남에게 전가시키며 별다른 뉘우침을 보이지도 않다. 또 피해자이 K양 부모가 가장 중한 형으로 처벌해 달라고 계속 탄원하고 있다”며 1~3심 모두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이 확정된 지 3개월여 후인 1991년 12월 18일, 홍순영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사형 집행을 예상하지 못했던 홍순영은 사형장에 들어온 후에 울기 시작했다. 그는 사형 집행 직전 마지막 고해성사에서야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빕니다. 부모님께 너무 큰 죄를 지었습니다”는 짤막한 사과의 말을 남겼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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