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GE의 몰락과 삼성전자의 위기

  • 등록 2018-01-18 오전 6:00:00

    수정 2018-01-18 오전 6:00:00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돌다리만 두드리지 말라. 그 사이에 남들은 결승점에 가 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다. 너무 오래 생각하다 보면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21년 전인 지난 1997년 쓴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삼성 특유의 ‘스피드 경영’을 강조한 말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 초(超) 격차 전략을 무기로 △반도체 △중소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TV 등 첨단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우뚝 섰다. 특히 지난해에는 연간 매출 239조 6000억원, 영업이익 53조 6000억원이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 반도체 제왕으로 군림하던 미국 인텔마저 왕좌에서 밀어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작년 한해 최고의 성적표를 받고서도 2018년 무술년 새해를 웃으며 맞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반도체를 뺀 삼성전자의 2017년 영업이익은 전체 ‘3분의 1’ 수준인 18조 6000억원에 그친다. 영업이익률은 반도체를 제외하면 ‘22.4%→11.3%’로 반토막이 난다.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IM(인터넷 모바일) 부문과 TV 사업 등을 맡는 CE(소비자 가전) 부문의 매출 및 영업이익은 수 년째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선 변동폭이 큰 반도체 경기가 꺾이거나 중국발 메모리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나면 삼성전자는 언제든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 구속에 따른 총수 부재 상황이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M&A(인수합병) 등을 통한 ‘미래 먹거리’ 발굴이 어려운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총수 부재가 삼성 전반에 지나친 ‘신중’ 기류를 형성해, 특유의 스피드 경영이 동력을 잃은 부분이 더 뼈아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피드 경영의 원조인 글로벌 기업 ‘GE(제너럴일렉트릭)’의 몰락은 현재의 삼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삼성의 롤모델이었던 GE는 잭 웰치 전 회장의 과감한 결단과 리더십으로 그의 재임기간 1700여건의 기업 인수 합병을 성사시키며 20세기 최고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GE는 2001년 웰치 전 회장이 퇴임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부실한 금융 사업의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쳤고, 새로운 동력이 될 혁신 사업도 찾아내지 못했다. 이후 때늦은 사업구조조정은 오히려 경영부실로 이어졌다. ‘경영학 교과서’로 불리던 GE의 주가는 작년 한해 40% 이상 급락하며, 한 때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의 명성은 옛말이 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 직전 해인 2016년까지 삼성전자 프린팅솔루션사업부를 HP에 매각하고, 각종 투자 지분을 정리하는 등 사업구조조정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7년 2월 구속 기소된 이후 이 부회장이 추진하던 사업 재편은 올스톱된 상태다. 분사 또는 매각이 예상됐던 적자 사업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늦어져 내부적으로도 불만이 커지고 있다. 몇년 째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삼성의 한 사업부 직원은 “분사 할 것이란 근거없는 소문만 무성하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의사결정 자체를 못하고 있는 것이 더 문제”라고 내부 분위기를 토로하기도 했다.

영원한 1등은 없다. 기업이 속도를 잃고 돌다리만 두드리려는 순간, 어느새 경쟁자들은 결승점에서 환호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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