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물가는 경제의 체온계와 같다. 경기 회복의 온기 혹은 경기 침체의 냉기가 곳곳에 스며든 정도를 나타내서다.
적정 체온이 36.5℃인 것처럼 우리 경제의 적정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다. 고열 혹은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고 적당히 데워지는 수준이다.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2.0%를 통화정책의 목표치로 삼고, 기준금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경기를 조절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물가가 유독 정체돼 주목된다. 경기 확장에 따라 물가 상승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 때문에 한은이 정책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을 보자니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높여야 하지만, 국내를 보자니 인상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얘기다.
외환위기 수준 급락한 근원물가
근원물가는 공급 측면에서 가격 변동성이 큰 석유류와 농산물을 제외한 것이다. 수요 측면에서 기조적인 물가 추세를 알아보기 위한 지표다.
근원물가의 둔화는 소비자들이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수출 초호황에 3%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지만, 경제 밑바닥은 여전히 냉기가 돌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다른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에너지 제외지수도 이번달 1.2% 상승에 그쳤다. 2000년 2월(0.8%) 이후 거의 18년 만에 가장 낮다.
한은 측은 “예상 경로에 부합하는 수준”(박세령 한은 물가분석부장)이라고 전했지만, 다른 거시경제 전문가들의 반응은 달랐다. 국책연구기관 간부급 출신 한 인사는 “매우 심각하게 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근원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10월부터 1.3%→1.2%→1.5%→1.1%로 바닥을 기는 게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0년대 말 이후 처음으로 0%대 근원물가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준(準)디플레이션’ 경고음을 울릴 수 있는 수준이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방향을 튼 한은 입장에서 곤혹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문정희 KB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던 것보다 물가가 더 낮게 나왔다”며 “한은 통화정책도 ‘더 확인하자’는 기류가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 등 선진국 경제는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는 서서히 데워지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이날 기준금리를 1.25~1.50%로 동결하면서도, 물가는 자신감을 보였다. “물가는 올해 내내 위로 올라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의 3월 인상설이 기정사실화하는 이유다.
유로존과 일본도 경기 확장세가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금융권 고위인사는 “미국이 예상보다 인상 속도를 높이면 한은도 가만히 있기 어렵다”며 “최악의 경우 경기가 받쳐주지 않는 데도 미국에 이끌려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