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검색결과 5,728건
- "판사를 AI로 교체하자" 현직 판사에게 물어보니
-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차라리 판사를 AI로 교체하자” “AI가 판결해도 저것보단 낫겠네”최근 전해지는 흉악범 판결 소식마다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 댓글들이 심심치 않게 달리고 있다. 모든 업무를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AI(인공지능) 판사’를 도입하면 납득할만한 판결과 형량이 나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오세용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24일 이데일리가 만난 오세용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이들 댓글에 대한 심경을 질문받자 착잡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사법부는 항상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신뢰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고개 숙였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판결을 내리기란 대단히 어렵다, 판사들의 숙명과도 같은 문제”라고 짚은 뒤, 실제로 AI 판사가 도입되더라도 또 다른 불만과 불신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 문과 끝판왕, 공학의 문을 두드리다 1976년 서울 출생인 오 부장판사는 대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32기로 수료해 부산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수원지법 판사,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판사,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공주지원장, 대전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총괄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재 인천지법에서 부장판사로 근무하고 있다.오 판사는 법학뿐만 아니라 공학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201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미래학, 미래예측방법론 등을 공부하고 ‘인공지능기술의 발전에 따른 법관의 미래’를 주제로 연구성과를 내 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관련 논문은 ‘인공지능시대, 법관의 미래는?’ 제목의 단행본으로도 출간됐다.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는 “법학과 공학은 패러다임이 다르고 요구하는 지식도 차이가 있어 적응하기 매우 힘들었다”고 회고하면서도 “덕분에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나노, 인공지능 등 다양한 첨단과학기술에 대해 배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이른바 ‘문과 끝판왕’으로 불리는 판사가 공학에 도전한 계기는 무엇일까? 오 부장판사는 “재판은 과거의 사실관계를 밝혀내는 과거지향적 업무인데, 저는 미래에 관한 전망과 통찰을 요구하는 법인회생·통일사법 업무를 맡았었다”며 “이들 업무를 하면서 미래전략이라는 학문을 더욱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통일사법은 한반도 통일이 이뤄진 후 남북한의 법을 어떻게 통합·구축할지 다루는 업무를 일컫는다.◇ AI 판사, 실제 도입까지는 ‘산넘어 산’… 국민적 동의와 헌법적 결단까지 필요해 그러면 일각의 주장대로, 당장 흉악범 재판에 AI 판사를 보내면 모두가 만족할 만한 판결이 나올까? 오 부장판사는 “아마도 더 낮은 형량이 선고되고 더 많은 불만이 제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누적된 데이터를 학습해 결론을 도출하는 AI 작동원리상 현 사회 분위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선례에 묶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그는 “사법부 역시 흉악범들에게 엄벌을 촉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중이고, 실제로 과거에 비해 형량이 높아지는 추세이기도 하다”며 “다만 급진적인 형량 상향은 ‘왜 나한테만 갑자기 중형을 선고하느냐’ 같은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점진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게 적절한 방향일 것”이라고 부연했다.이어 오 부장판사는 판사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하는 AI의 등장은 시기상조라고 평가했다. 음성인식, 이미지인식, 자연어처리 등 기술 수준이 아직도 인간에 못 미치고, 인간과 동일한 사고방식과 고도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강인공지능’ 구현 역시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선례 없는 사건이나 시대상에 맞춰 판례를 바꿔야 하는 사건에서 현 AI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기술적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기계가 내린 판결·처벌을 인간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규범적 문제에 봉착한다. 실제로 법정에 AI 판사를 세우려면 헌법적 결단과 국민 대다수의 동의가 필요할 것이라는 게 오 부장판사의 전망이다.강인공지능이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은 시대를 상상해 볼 수는 있다. 오 부장판사는 조광희 변호사가 쓴 SF 소설 ‘인간의 법정’을 인용해 “1심은 AI 법관이 맡되 상급심은 인간이 맡으며 병존하는 방식의 사법 체계가 만들어질 것”이라면서도 “사람처럼 사고하고 자아를 가진 AI를 어떻게 얼마나 받아들여야 할지 사회적 갈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오세용 인천지법 부장판사 저서 ‘인공지능시대, 법관의 미래는?’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다만 오늘날 법원에 AI가 도입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오 부장판사는 형벌의 양을 결정하는 양형 업무에서 AI가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AI를 활용하면 양형 업무 효율성이 극대화되고 재판부별로 양형 편차가 감소해 사법 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판사가 AI가 내놓은 결과에 얽매일 위험성도 있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AI가 판사의 역할을 완전히 대신하는 것은 아직 먼 훗날의 상상으로 남아 있는 가운데, 오 부장판사는 자신의 공학 지식으로 사법 시스템 첨단화의 주춧돌을 놓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그는 “법조계와 법원은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가 느리고 아직도 시스템 전산화가 완성되지 않았다”며 “AI가 불러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많지만 기술을 올바르게 잘 활용할 수 있다면 국민에게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부장판사는 이어 “새로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여러 지식을 연결해 새로운 지식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한다”며 “앞으로도 틈틈이 과학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면서 인공지능의 발전 추이를 계속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서경환 대법관 후보자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명심"
- [이데일리 김윤정 기자] 서경환 신임 대법관 후보자(57·사법연구원 21기)가 “재판당사자는 1심부터 대법원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면 최종적으로 재판에 이기더라도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을 항상 명심하겠다”고 밝혔다. 서경환 대법관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12일 오전 서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인사말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그는 “한국에는 계층 간, 세대 간, 남녀 간, 지역 간의 갈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 등 암초가 많이 도사리고 있다”며 “이러한 갈등이 양보와 타협으로 원만히 해결되지 못하고 증오의 골이 깊어진 채 사법부의 영역으로 밀려오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고 했다.그러면서 “사법부가 첨예한 갈등 상황을 방치하지 말고 신속히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결론을 내려서 사회통합과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서 후보자는 “사회적 약자의 구제와 배려에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겠다”고도 밝혔다.그는 “저는 젊은 나이에 판사가 돼 줄곧 법관 생활만 해왔으니 장애인 차별, 빈민 문제, 노사 문제, 성차별, 세대갈등 등의 다양한 문제를 접할 경우에 공감능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시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많이 부족하겠지만 여러 체험이나 간접 경험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했다.그러면서 “지체장애인이 버스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재판을 맡았을 때,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입장에서 겪을 불편을 여러모로 고민해 보고 전향적인 판결을 한 것도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회상했다.이어 “광주고등법원에 근무할 때 모든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 세월호 사건의 재판장을 담당했던 경험도 잊을 수 없다”며 “당시 재판이 열릴 때마다 광주까지 오신 유가족들에게 돌아가면서 심경을 진술할 기회를 드렸는데 유가족들의 상처를 모두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조금이나마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 드리고자 함이었다”고 말했다.서 후보자는 “1997년 많은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줄지어 도산하던 IMF 위기 당시 서울지방법원에서 법정관리를 담당했다”며 “이를 계기로 도산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게 됐으며, 2003년 카드대란 당시에는 개인회생제도의 초안 작업을 담당했다”고 했다.또 “서울회생법원에 근무할 때는 채무자의 구제와 배려를 위한 제도 개선에 헌신했다”며 “특히 코로나로 힘들었던 자영업자와 좌절한 청년들의 신속한 구제를 위하여 노력했고 지역경제에 큰 파급효과를 미치는 자동차 회사의 회생절차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 [마켓인]'회생 개시' 플라이강원, 새 주인 찾기 '순항'
- [이데일리 김근우 기자] 자금난에 시달리다 여객기 운항이 중단된 플라이강원의 회생절차가 본격 개시되면서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법원이 매각 추진 상황 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인 만큼, 스토킹 호스(Stalking-horse) 방식의 매각이 성사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플라이강원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항공 업황이 점차 개선되는 효과를 온전히 누릴 마지막 LCC(저비용항공사) 매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참여형 PEF(사모펀드) 운용사들이 LCC 인수에 적극 나서는 등 최근 항공사들의 손바뀜 사례가 다수 있는 만큼, 인수 의향이 있는 원매자들과의 가격 협상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회생 개시 결정’…스토킹 호스 매각 흥행 가능성서울회생법원 14부(이동식 부장판사)는 최근 플라이강원 대주주인 주식회사 아윰이 낸 기업회생 신청을 받아들여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관리인은 따로 선임하지 않아 주원석 플라이강원 대표가 맡게 됐다. 법원은 회생채권자, 회생담보권자 및 주주 목록을 이달 30일까지 받게 된다. 회생계획안은 오는 9월 15일까지가 제출 기한이다.매각 절차는 예비 인수자를 먼저 정해 조건부 투자 계약을 체결한 뒤 공개 입찰을 진행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인수자가 확정되는 스토킹 호스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미 인수 의향이 있는 다수의 원매자가 LOI(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플라이강원은 최근까지 투자 유치를 통해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PEF 운용사 JK위더스와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하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결국 거래가 성사되지 못하면서 지난달 23일 회생절차 개시 신청서를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했다. 현재 플라이강원의 자산은 234억원, 부채는 453억원 수준이다.현재 플라이강원의 최대주주는 주 대표와 관계사 아윰(옛 플라이양양개발) 등 특수관계인으로 지분 약 44.21%를 보유하고 있다. PEF 운용사 세븐브릿지프라이빗에쿼티(5.71%)와 VC(벤처캐피탈)인 나이스투자파트너스(4.75%)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SBI인베스트먼트는 우선주 지분 8.33%를 가지고 있다.다시 한 번 PEF 운용사가 구원투수로 나설지도 주목된다. 최근 이스타항공은 VIG파트너스를 새 주인으로 맞아 1100억원을 수혈받은 뒤 AOC(항공운항증명)을 발급받아 운항 재개에 성공했다. JKL파트너스 역시 티웨이항공에 1000억원 가량의 자금을 보탠 바 있다. 에어프레미아 지분 50% 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JC파트너스는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이다.◇‘하늘의 레고랜드(?)’ 오명 벗고 날아오를까강원도의 혈세가 투입됐다는 점을 두고 일각에서는 플라이강원을 ‘하늘의 레고랜드’로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는 플라이강원 출범 이후 재정지원금으로 145억원을 지원한 바 있다. 이 밖에도 국토교통부 등과 항공화물운송사업 재정지원금을 신설해 22억원의 예산도 추가로 확보했다. 다만 레고랜드는 강원도가 채무 보증을 섰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플라이강원은 삼일회계법인을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인수자를 찾고 있다. 강원도의 한 건설사를 포함해 해외 SI(전략적 투자자)와 국내 자산운용사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앞서 MOU를 체결하며 투자에 관심을 드러냈던 JK위더스의 참전 여부도 주목된다.플라이강원은 양양국제공항을 허브로 하는 항공사로, 국내로 입국하는 외국인 탑승객을 주축으로 하는 인바운드 항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판매 대상은 국내를 방문하는 중국, 일본, 태국 등의 단체관광객 위주다. 2016년 ‘플라이양양’으로 설립돼 2018년 ‘플라이강원’으로 사명을 바꾼 뒤 2019년 첫 취항했지만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었다. 매출이 급격히 하락하며 항공기 리스료와 보험료가 연체됐고, 이에 따라 신용도가 하락하는 등 경영 상황이 나빠졌다.IB(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항공업은 관의 영향력이 큰 규제 산업이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일정 부분 관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측면도 있어 하방이 막힌 투자로도 볼 수 있다”며 “반면 상황에 따라 자본 투입이 많이 필요할 수 있고, 비행기가 뜰 만큼 뜨고 좌석을 다 채운다면 추가 상승 여력은 제한되는 면도 있다”고 밝혔다.
- [마켓인]파산 카드 '만지작' 의료서비스사에 골머리 앓는 글로벌 PE
- [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회사·시장·경기 상황 모두 (인수 후 시나리오를) 받쳐주지 못한 것이죠.”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투자한 기업들이 산업을 막론하고 ‘파산’ 카드를 꺼내드는 가운데 유독 의료기업 머릿수가 많은 이유가 무엇이냐를 묻자 국내 한 자본시장 관계자가 한 대답이다. 장밋빛 전망에 부채까지 떠안으며 인수했으나 금리 상승과 미국 내 의료 규제 변화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북미 기반의 의료 서비스 업체를 인수한 글로벌 운용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재무 위기에 놓인 곳은 기본이고, 파산을 바라보는 투자 포트폴리오까지 속속 생겨나면서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높은 수요와 이에 따른 수익 창출, 애드온(동종 기업 결합) 유연성 등 여러 측면에서 적합한 투자’라는 업계 인식이 무색하게도 파산을 선언하는 곳이 늘고 있지만, 산업 성장성이 두드러지는 만큼 운용사들의 의료산업 관련 투자는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사진=픽사베이)◇ 발목 잡은 차입매수…악재 겹치며 뚝 글로벌 PE들은 약 10년 전부터 인구 고령화로 세계 의료 시장이 지속 성장할 것으로 보고 의료 서비스사에 집중 투자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북미 지역은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인력 공급 문제가 두드러지는 만큼,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본 것이다.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장기간 이어진 경기 침체와 의료산업 규제 변화, 금리 상승 여파로 글로벌 PE들이 차입매수(LBO) 방식 등으로 인수한 포트폴리오사들이 유독 휘청이기 시작했다. 차입매수란 인수 기업의 자산 혹은 현금흐름을 담보로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는 M&A 기법이다. 소액자본으로도 큰 자본이득을 취할 수 있지만, 피인수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과다한 부채를 조달하는 만큼, 해당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 및 도산 위험이 증가한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가장 골머리를 앓는 곳은 지난 2015년부터 의료 서비스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해온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다. 우선 KKR이 지난 2018년 99억달러(약 12조6000억원)에 차입매수한 엔비전헬스케어는 지난달 미국 파산법 11조(챕터11)에 따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파산법 11조는 청산보다 이익이 크다고 판단될 경우 미국 정부 관리 아래 기업회생을 꾀할 수 있는 제도다. 막대한 부채를 떠안은 상황에서 환자 급감, 인건비 상승, 미국 연방정부의 ‘의료비 폭탄 청구’ 관련 규제까지 겹치면서 회사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스톤의 상황도 좋지만은 않다. 블랙스톤이 지난 2017년 약 7조원을 들여 차입매수한 팀헬스는 글로벌 최대 채권운용펀드인 퍼시픽인베스트먼트 등과 함께 부채 상환 방안을 두고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로부터 잠재적 파산 위험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만큼, 회사가 내년 2월로 예정된 만기일에 맞춰 부채를 상환하기 어렵다고 본 것으로 분석된다. 팀헬스는 중소형 병원에 응급, 마취, 외래, 입원 행정 등 일정 분야에 특화된 의료진과 전문가를 파견하는 업체다. ◇ 돌파구 마련 노력도…“어려워도 투자 지속”시장에선 돌파구를 마련하며 기사회생하는 모습도 종종 포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8년 블랙스톤이 인수한 미국 기반의 CARD(자폐 스펙트럼 장애 센터)는 블랙스톤에 주요 지분을 넘겼던 초대 설립자를 상대로 스토킹호스 방식의 매각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토킹호스는 회생기업이 인수의향자와 공개입찰을 전제로 조건부 인수계약을 맺는 방식을 일컫는다.앞서 회사는 팬데믹 여파로 최근 1년간 8200만달러(약 1060억원)의 순손실을 입었다며 휴스턴 파산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바 있다. 미국 전역에 걸쳐 130개의 센터를 운영하는 해당 기관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은 아동 및 성인을 대상으로 응용 행동 분석 서비스 및 관련 치료를 제공한다. 이 밖에도 지난 2012년부터 KKR이 주요 주주로 활동해온 암치료 서비스업체 제네시스케어 미국 법인은 파산보호를 신청한 상태다. 미국 파산법 11조에 따라 구조조정에 나선 뒤 매각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호주와 미국, 영국, 스페인 등에 암 치료 센터를 둔 이 회사는 지난 2020년 동종 산업의 ‘21세기 온콜로지’를 인수한 후로 부채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본시장에선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글로벌 운용사들의 의료 산업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국내와 달리 해외에선 차입매수 방식을 통한 기업 인수가 빈번하다”면서도 “금리 인상으로 발목이 잡히는 것은 (PE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분간 디폴트에 빠지게 되는 기업이 늘겠지만, 의료산업 성장성은 그 어느 산업보다도 뚜렷하기 때문에 투자는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준법경영, 이제는 기업 경쟁력·생존 걸렸다"
-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사외이사도 준법감시 의무가 있다는 법원 첫 판결을 제가 주심으로 담당했어요. 그 뒤로 ‘사외이사 구하기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을 많이 듣습니다(웃음). 그동안 사외이사는 이사회에 출석하고 의결에만 좀 참여하면 된단 인식이 있었는데 이제는 무거운 책임을 부담하니까요”법무법인 율촌 최웅영 변호사 (사진=율촌)전 세계적으로 ESG 경영(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불면서 우리 기업들에도 글로벌 수준에 맞는 준법경영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타워 율촌 사옥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최웅영 변호사는 “그동안 우리 기업가들은 ‘법적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마인드로 기업을 성장시키고 이끌었지만, 이제는 준법경영이 기업 경쟁력과 생존을 좌우하는 필수 요소가 됐다”고 조언했다.고(故) 최선정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아들인 최웅영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33기로 2004년 서울동부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해 서울중앙지법, 수원지법 성남지원 등 각급 법원에서 재판을 담당하고 법원행정처 심의관, 서울고법 기획법관, 서울중앙지법 파산공보관으로도 근무했다. 이어 창원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서울고법 고법판사를 마지막으로 19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친 그는 올해 초 법무법인 율촌에 송무부문 파트너 변호사로 합류했다.서울고법과 서울중앙지법의 기업 사건 전담부, 서울중앙지법 파산부(현 서울회생법원)에서 근무하며 기업·금융 관련 분쟁에 폭넓은 경험을 쌓아온 최 변호사는 “기업들에게 요구되는 준법경영 기준이 점점 더 엄해지고 있음이 체감된다”며 “과거에는 기업 경영의 관행으로 봐주고 넘어가던 것들이 이제는 법률적 문제로 떠오르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 변호사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배임죄’를 꼽았다. 과거에는 배임죄가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폐지론이 거론됐지만, 이제는 기업이나 금융기관 임직원이 기업·고객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배임 혐의에 휘말리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사의 준법감시 의무 위반, 투자상품 불완전 판매, 운용상 주의의무 위반, 기업인수합병 분쟁 등 사건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단 진단이다. 최 변호사는 “검찰 수사 범위가 부패·경제 범죄로 축소되면서 그만큼 수사역량이 경제 범죄에 집중되고 더 엄정한 잣대를 적용하는 듯 하다”며 “최근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부실 사모펀드 사건이 잇따라 사회적 논란이 된 만큼 법원 역시 비슷한 사안들을 더 엄하게 다룰 것”이라고 내다봤다.이러한 법률 리스크는 기업이 어렵게 쌓아온 신뢰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경영을 뿌리째 흔드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최 변호사는 “신산업 등장과 함께 급성장한 회사들은 대부분 내부통제나 준법감시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있다”며 “이제는 법률비용을 아끼지 않는 게 더 큰 손실과 경영상 위기를 피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율촌 최웅영 변호사 (사진=율촌)최 변호사는 앞으로 기업들이 주로 직면하게 될 법률적 이슈 중 하나로 회생과 파산을 짚었다. 실제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은 326건으로, 전년 동기(216건) 대비 51%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회생 신청은 193건으로 전년 동기(131건) 대비 47% 증가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많은 기업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회생 대신 파산을 선택한 사례가 크게 늘은 점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한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근무 당시 한진해운, STX조선해양 등 우리 기업의 몰락 과정을 안타깝게 지켜봤다고 회고한 최 변호사는 “한진해운 파산 후 국내 해운산업이 기나긴 침체기를 걸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기업들의 줄파산은 더욱 걱정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가뜩이나 채무가 많은 나라다, 자력으로 회생하기 어려운 경제활동 주체들의 채무를 빨리빨리 조정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건 아주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최 변호사는 이어 “법원의 오랜 노력으로 파산·회생 절차가 이전에 비해 훨씬 빨라지고 투명해졌지만, 채무자 입장에선 여전히 이것저것 내야 할 서류가 많고 조사도 많이 받아야 해 복잡하다면 복잡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며 “어려움을 겪는 고객을 도우면서 제도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게 앞으로 제가 할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