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플방지] "정인이 양부모는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16개월 입양아 사망 사건', 우리 주변서 현재진행中
"어른들이 미안해"...드라마와 다른 현실
6년차 소아과 전문의 "우리에겐 일상"
  • 등록 2021-01-10 오전 12:10:05

    수정 2021-01-10 오전 12:13:18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정인이 양부모는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 씨는 7일 트위터에 “정인이 일로 총리와 경찰청장이 사과했습니다”라며 이같이 썼다.

전 씨는 “그들의 죄는 어떤 말로도 감경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기도’만 하면 용서받는다고 가르친 자들은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요? ‘부검 결과 잘 나오게 해달라’는 기도를 받은 하나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일갈했다.

지난 6일 오후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를 찾은 한 추모객이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가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망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일주일을 보냈지만, 사실 이 사건이 알려진 건 지난해 10월이다.

11월엔 양모 장모 씨가 정인 양 사망 당일 친구에게 “부검 결과 잘 나오게 기도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숨진 바로 다음 날 이웃에게 ‘물건 공동구매’를 제안했다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큰 반향은 일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아동학대 사건에 분노하고 슬퍼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우리 주변의 ‘현재진행형’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또 잊혀졌다. 그러다 ‘그알’을 통해 양부모의 잔혹한 폭력과 정인 양의 참혹한 죽음이 알려지자 세간의 관심이 돌아왔다.

사망 전 정인 양이 만난 ‘어른’들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온 정인 양을 맞닥뜨린 남궁인 이대부속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말에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남궁 씨는 ‘그알’에서 당시 장기가 찢어지는 등 정인 양의 심각한 상태를 언급하며 “(양부모가) 방치했다. 바로 (병원에) 오면 살았다”며 “처음 이 사진(CT)을 보는 순간 피가 딱 거꾸로 솟았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당시 정인 양 양모가) 무릎을 꿇고 울면서 ‘우리 아이가 죽으면 어떡하냐’ 소리를 크게, 많이 내서 울었다”며 “학대고 살인이라고 다 알고 있었는데 부모가 너무 슬퍼해 ‘진짜 악마구나’라고 생각한 의료진도 있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CCTV에 담긴 정인이의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 싶다’ 영상 캡처)
지난해 방송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온몸에 멍이 든 아이가 아빠와 함께 응급실을 찾은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극중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의사는 다급히 동료에 “경찰에 신고하라”고 한다. 의사는 “교통사고로는 이렇게 멍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멍이 이렇게 다른 색인 건 (폭행이) 상습적인 것”이라며 아동 학대를 의심했다. 그리고 다른 의사는 도망가는 아이 아버지를 맨발로 쫓는가 하면, 아이의 형까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인 양이 만난 의사는 남궁 씨가 처음이 아니었다. 한 소아과 전문의는 정인 양 입에 상처를 보고 신고했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양부모와 함께 정인 양을 데리고 또 다른 소아과 의원을 찾아 구내염 치료만 받았다.

‘구내염 소아과’ 원장은 정인 양의 학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면서도 “정인이를 도와줄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제가 밝힌 소견이 양부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점에 대해 깊이 책임감을 통감한다”고 했다.

6년차 소아과 전문의 ‘정인아 미안해’ 하지 않은 이유

정인 양의 고통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처럼 적극적으로 나선 어른이 없었다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드라마에 나온 그 장면 이후부터는 ‘현실’이었다.

자신에 대해 “소아응급센터에서 진료한 지 6년 됐다”고 밝힌 누리꾼 All*****의 글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는 7일 페이스북에 “학대로 숨진 16개월 아이의 일로 세상이 떠들썩하지만 사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우리에겐 일상에 가깝다”며 “다만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고, 담담해지지 않는 아주 특이한 일상”이라고 했다.

이어 “응급실에 딱 일주일만 있어 보시라. 당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오만가지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 ‘경우’에는 맞거나 싸워서 오는 아이부터 교복을 입은 채 임신해 오는 아이, 성폭행 당해 오는 아이, 학대가 의심되나 보호자가 진료를 거부하는 아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보호자가 나타나지도 않는 아이 등이 있었다.

그는 “드라마틱한 과정과 결과가 알려지는 아이만 학대당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 시간, 이 순간, 오늘도, 내일도 아이들은 학대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했다. 이어 “그렇기에 그 중심에서 매번 아이들을 마주하는 나는 ‘OO아 미안해’와 같은 SNS 챌린지나 국민청원, 가해자 엄벌을 위한 진정서 같은 것들이 역설적으로 얼마나 무의미하고 방관자적인지, 더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것이 얼마나 가벼운 셀프 속죄의 유희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정인 양의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그림이 놓여 있다 (사진=뉴시스)
소아과청소년과 전문의이자 엄마이기에 혼란스러운 경험을 반복한다는 그는 “그 정점에 학대 아동의 진료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학대당한 아이의 진료를 보고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신고를 하고 진단서를 작성하고 입원을 시키거나 혹은 사망선고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말간 얼굴로 안기는 내 자식들을 볼 때 내가 느껴야 했던 죄책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책 결정자들의 쇼 같은 법안 발의”, “실체 없는 보여주기식 행정”이라고 비판하며 “사실은 아무도 연관되고 싶어하지 않고 그래서 결국 아무도 진실로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학대받던 아이들은 대부분 돌볼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그 지옥도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탄식했다.

그는 “가해자 엄벌을 탄원할 것이 아니라 아동보호국을 정식으로 만들라고, 보호 아동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거기에 인력과 예산을 넣으라고 호소해야 한다”며 “사설기관과 민간병원에만 속수무책 떠넘겨져 있는 일을 나라에서 챙겨서 하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찰에는 과연 학대 아동과 신고자를 보호할 재량과 능력이 있는가. 의사들은 신고 후 신분비밀과 생업유지 보장이 되는가”라고 물으며, “해결책을 제시하고 나부터 행동하고 싶지만 이런 사건의 중심에서 수십 번 같은 상황을 겪고 나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뜯어고쳐야 이게 가능한가 하는 회의가 든다”고 토로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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