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이 본 '휴먼 푸가'…"광주의 영혼, 무대 온 듯"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원작 연극
21일 관객과의 대화로 감상 전해
"배우의 몸짓이 된 문장, 신비로워"
"볼 때마다 존재가 흔들리는 공연"
  • 등록 2020-11-24 오전 6:00:00

    수정 2020-11-24 오전 6:00: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어떤 소설이 될지 모른 채 1년 반 동안 쓴 문장들이 배우들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다시 태어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받았어요.”

소설가 한강은 자신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무대로 옮긴 연극 ‘휴먼 푸가’에 대해 “신비로웠다”고 말했다. 한강은 지난 21일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휴먼 푸가’ 공연 이후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해 이번 공연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전했다.

연극 ‘휴먼 푸가’의 한 장면(사진=남산예술센터).
‘소년이 온다’는 2014년 출간된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1980년 광주에서 세상을 떠난 소년 동호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다. ‘휴먼 푸가’는 ‘소년이 온다’를 바탕으로 극단 공연창작집단 뛰다와 남산예술센터가 공동제작한 연극으로 지난해 초연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 ‘2019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선정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아 지난 18일부터 재공연 중이다.

한강이 ‘소년이 온다’의 무대화를 승낙한 것은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대표인 배요섭 연출과의 각별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강은 “배요섭 연출과 뛰다의 작업에는 깊은 신뢰가 있었다”며 “다만 동호라는 인물이 특정 배우의 얼굴로 나오는 게 걱정됐는데 배 연출이 ‘그렇지 않게 연극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좋다고 했다”고 말했다.

‘휴먼 푸가’는 원작 소설을 연극적 서사로 재구성하지 않는다. 대신 배우들이 소설의 문장을 각자의 방식으로 체화해 무대 위에서 각기 다른 목소리와 몸짓으로 표현해낸다. 배요섭 연출은 “‘휴먼 푸가’는 소설을 무대서 표현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었다”며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 텍스트는 우리를 광주로 안내해주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초연과 연습, 그리고 이번 재연까지 세 차례에 걸쳐 공연을 봤다는 한강은 “볼 때마다 매번 다른 연극 같다”며 “존재가 흔들리는 감동을 받았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소년이 온다’ 속 문장들은 광주에서 영혼이 된 분들, 또는 그 사건을 목격한 것만으로 영혼이 부서진 분들의 마음이 내게 들어와서 쓰게 된 것”이라며 “‘휴먼 푸가’ 또한 그분들의 마음이 무대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쓴 경험을 바탕으로 새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한강은 “지극한 사랑, 죽은 자도 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며 “오늘 본 연극에서 한 배우가 누워 있는 다른 배우의 몸을 반듯하게 펴주는 장면이 지금 쓰고 있는 소설 속 장면 같아 마음을 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휴먼 푸가’는 올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지난 5월 서울과 광주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연기돼 11월 관객과 만나게 됐다.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이번 ‘휴먼 푸가’를 끝으로 활동을 중단할 예정이다. 한강은 “‘휴먼 푸가’가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매년 5월 공연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휴먼 푸가’는 오는 29일까지 공연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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