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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7일(현지시간) TV 중계 연설에서 오는 9일 만기가 되는 12억 달러 유로본드를 상환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레바논은 유례없는 규모의 경제 위기를 받고 있다”며 “병원들은 보급품 부족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채무부를 상환할 것으로 기대하냐”고 말했다. 레바논 전역에 약 20분간 방영된 이 성명에서 디아브 총리는 채권자들에게 채무 구조조정을 위한 협상을 요구했다.
레바논은 12억달러 외에도 오는 4월에 7억달러, 6월에도 6억달러를 상환해야 한다. 레바논 공공부채는 900억달러(107조 1900억원)로 국민총생산(GDP)의 170%에 이르고 있다. 이 중 310억달러가 외화 표시 부채이다. 디아브 총리는 레바논이 2020년 갚아야 할 부채와 이자가 총 46억달러로 “레바논 빚은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레바논의 경제 위기는 하루 이틀 예고된 것이 아니다.
중동에서는 가장 민주주의적이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이지만,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기독교 의원 등으로 이뤄진 국회의 혼란은 약 2년 반이라는 대통령 공석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낳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정부 계획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야기하면서 안 그래도 어려운 국내 경제상황을 완전히 파탄냈다. 대규모 시위에 은행들이 문을 닫았고 불안해진 예금자들이 잇따라 돈을 인출하는 ‘뱅크런’(Bankrun)이 일어났다. 레바논 정부는 하루 인출 한도를 설정하는 등 대책에 나섰지만, 불안을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여기에 달러와 가치를 연동하는 고정환율제를 적용하고 있는 레바논 정부는 통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날 연설에서도 디아브 총리는 외환보유고가 “위험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즈(NYT)에 따르면 레바논 파운드의 달러 대비 가치는 공식적으로는 1500레바논 파운드이지만, 암시장에서는 1달러당 2500파운드까지 떨어진 상태다.
레바논 정부는 국제금융기금(IMF) 등과 협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레바논 정부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이끌고 있어 테러 단체로 인정하는 미국의 반대 등으로 쉽지 않다고 예상했다. 뉴욕타임즈(NYT) 는 이미 레바논 정부가 약속한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상당한 상황에서 구조조정 패키지를 설득하는 작업도 만만찮을 것이라고 봤다.
전문가들은 레바논의 작은 경제 규모로 볼 때 레바논의 디폴트 사태가 다른 신흥시장국가로까지 확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흥시장 채권 수익률을 추적하는 JP모건의 EMBI 지수에서 레바논이 차지하는 비율은 0.64%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