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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다임의 방식과 같이 이미 나와 있는 약을 새로운 질환에 적용하는 것을 영어로 ‘드럭 리포지셔닝’(Drug Repositioning)이라고 한다. 약을 재배치한다는 의미다. 비슷한 의미로 약의 쓰임새를 새로 찾는다는 의미로 ‘드럭 리퍼퍼싱(Drug Repurposing)이라고 한다.
드럭 리포지셔닝은 낯선 개념이 아니다. 대표적인 게 아스피린이다. 아스피린은 버드나무껍질에서 추출한 살리실산이 주성분이다. 아스피린은 히포크라테스도 해열진통제로 썼을 만큼 역사가 길다. 물론 당시에는 원료물질인 버드나무껍질을 약재로 썼다. 1830년대 약효성분이 살리실산이라는 게 밝혀졌고 1890년대에 버드나무 껍질이 없어도 화학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아스피린은 진통효과가 우수했지만 약을 쓰면 피가 잘 굳지 않는 부작용이 있었다. 제조사는 이 부작용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바로 심혈관질환 치료제다. 혈액응고를 방해하기 때문에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아스피린은 현재 진통제 시장보다 심혈관질환 치료제 시장이 더 크다. 이 외에도 협심증 치료제에서 발기부전치료제로 방향을 틀어 성공한 비아그라를 비롯해 고혈압 치료제에서 탈모치료제로 방향을 튼 미녹시딜 성분 등 드럭 리포지셔닝 사례가 있다.
과거에는 경험으로 이뤄지던 드럭 리포지셔닝이 AI와 결합해 효율성을 높인 것도 드럭 리포지셔닝이 활성화한 요인이다. 바이오비스타, 힐엑스, 랜턴파마, 파넥스트, 리커션 등 글로벌 바이오벤처 기업이 AI를 활용해 드럭 리포지셔닝에 도전 중이다. 몇몇 기업은 꽤 진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아토마이즈는 다른 질병 치료에 쓰던 약의 구조를 AI로 분석해 하루 만에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 후보물질 두 개를 찾아내기도 했고 영국 베네볼런트AI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로 개발하다 중단된 약으로 불면증 치료제의 임상2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주철휘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인공지능신약개발지원센터 부센터장은 “신약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급격히 느는 데 비해 성공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줄어들면서 약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며 “AI로 효율성을 키우면서 앞으로 드럭 리포지셔닝 성공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