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 버텨보자' 집념…나파밸리 새역사 쓴 韓여성 [실리콘밸리 사람들]

'韓여성 첫 나파 와인메이커' 세실박 와인포니아 대표
쿠베·비오니에 등 희소와인으로 나파밸리서 주목받아
"동양인이라 불리했지만..이젠 다양성 측면서 장점돼"
중국·한국으로 수출…와인메이커에 포도밭 컨설팅까지
  • 등록 2023-06-19 오전 4:00:00

    수정 2023-06-19 오후 2:49:04

세실박 와인포니아 대표. 사진 김혜미 기자
[실리콘밸리=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나파밸리는 로버트 몬다비처럼 유럽계 백인 남성 이민자들의 와인 메이커들이 널리 알려져있고, 또 인정받는 곳이죠. 프랑스와 이탈리아식의 와인 제조기술을 엄격히 적용하기에 품질을 인정하는 것인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제한적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고 주목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동양의 농업기술을 연구해 건강한 포도 재배에 활용해 볼 생각입니다.”

세실 박(한국명 박수연·49) 와인포니아 대표는 최근 이데일리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박 대표가 최초의 한국계 여성 나파밸리 와인메이커로 자체 와인브랜드 ‘이노바투스’를 만들었다. 이노바투스는 라틴어로 ‘혁신’이라는 뜻으로, 2014년 첫 생산을 시작했다. 나파밸리의 기업가 정신을 기리는 한편 자신을 비롯한 이민자들의 혁신을 의미한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박 대표를 만난 이노바투스의 와인 저장고 ‘더 케이브즈 앳 소다 캐년’(The caves at Soda Canyon)은 ‘cave’라는 단어 뜻 그대로, 서늘한 동굴 속에서 이노바투스를 비롯한 7개 와인메이커들의 연도별 와인이 오크통에 담겨 한창 숙성 중이었다.

이노바투스의 대표 와인은 피노누아와 시라 품종을 블렌딩한 쿠베(cuvee)다. 그 어디에서도 생산되지 않는 특별한 와인인 덕에 미국 현지 언론에서도 특별한 와인으로 소개되며 주목받았다. 이노바투스 비오니에(Viognier) 역시 나파밸리 전체 생산량의 2%도 되지 않는 품종으로 만든 보기 드문 와인이다.

박 대표는 “동양인으로서 와인을 처음 접한 시기가 서양인들에 비해 너무 늦은 편이었고, 음식에 있어서도 동양과 서양의 맛이 다르기 때문에 와인을 만드는 데 불리한 것이 사실이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다양성 측면에서 장점이 되고 있다. 쿠베는 아마도 나파에서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노바투스는 품종에 따라 병당 65달러~205달러로 현지에서도 결코 저렴한 와인이 아니지만 맛을 아는 와인애호가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보통의 나파밸리 와인이 묵직하고 강렬한 맛으로 남성적이라는 평을 받는다면, 이노바투스는 나파밸리의 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섬세함을 느낄 수 있어 중성적이란 평을 듣는다. 연간 판매량은 800~1200상자(상자당 12병)로, 최근 중국과 한국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미국과 중국, 한국의 매출 비중은 5:3:2 정도다. 한국에서는 주요 백화점과 전문 와인매장에서 판매된다.

와인포니아의 이노바투스. 왼쪽부터 2020년산 쿠베, 2020년산 비오니에, 2020년산 피노누아, 2021년산 브뤼 로제. 사진 김혜미 기자
이노바투스가 이렇게 하나의 와인 브랜드로 인정받기까지는 ‘주변을 보지 말고 10년만 버텨보자’는 박 대표의 끈기와 집념이 크게 작용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를 다니다 미국에 와서 28세에 처음 와인을 접하고 들어선 길은 암흑 같았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고 작은 것 하나 물어볼 곳도, 친구도 없었다. 이때 박 대표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 역시 와인이었다. 와인 한 잔을 마시며 ‘결심했다면 10년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그때 다시 판단하자’고 다짐을 되뇌곤 했다. 그런 다짐 속에 시작한 와인 제조는 2007년 컬트 와인으로 시작해 2014년 이노바투스 제
세실박 와인포니아 대표가 4월27일(현지시간) 오크통에서 이노바투스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사진 김혜미 기자
조로 이어졌다. 박 대표는 “너무 잘 알면 함부로 도전할 수 없듯이 잘 몰랐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결심이 참 잘한 일인 것 같다”며 웃었다.

박 대표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와인 제조뿐만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를 ‘비티컬처리스트’(viticulturist)라고 소개하는데, 한국어로 단순 번역하면 ‘포도 재배자’다. 와인 애호가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소믈리에가 되고, 소믈리에보다 발전된 단계가 와인메이커라면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간 단계가 비티컬처리스트라는 것이다. 포도 재배에도 엄청난 열정을 가진 그는 이노바투스 제조 외에 나파밸리 내 포도밭 컨설팅과 위탁 관리를 동시에 맡고 있다. 그래서 박 대표는 1년의 절반 이상을 포도밭에서 지낸다.

박 대표는 “나파밸리에는 작은 포도밭을 가진 집들이 많이 있는데, 이 밭에서 나는 포도를 와인으로 만들 수 있도록 설계하고 관리해주거나 아예 포도밭 구매부터 와인 제조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며 “한국 기업들도 관심을 갖고 연락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편 유달리 캘리포니아에 비가 많이 왔던 올해 나파밸리 와인의 맛은 어떨까. 박 대표는 “와인 맛이 훌륭한 것으로 알려진 2018년 만큼 기대되는 해”라고 말했다. 2018년에도 올해처럼 비가 많이 왔고, 그덕에 땅이 깨끗해지고 좋은 무기물을 흡수하면서 포도 생산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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