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힘의 味學으로 40년 전통을 잇다 ''신설 홍어횟집''

맛과 정이 있는 음식점
  • 등록 2008-04-24 오전 11:00:00

    수정 2008-04-24 오전 11:00:00

[이데일리 EFN 홍현진 객원기자] 전라도 향토음식으로 묻혀있을뻔한 홍어가 대중화된 데에는 전라도가 고향인 전직 대통령의 공이 크다.

대통령을 따라 정치권 인사들이며 언론들이 줄줄이 관심을 가지게 됐고, 덩달아 일반인들에게까지 별미요리가 됐다.

음식점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비슷하게 흉내만 내고도 홍어전문점의 간판을 내건 곳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홍어는 없어서 못파는 귀한 몸이 됐다. 그중에서도 홍탁삼합,

즉 홍어에 초장을 찍어 돼지수육위에 얹고 묵은지로 폭 싸서 입에 넣은 후 농주 한 잔 들이키는 삼합의 인기는 단연 으뜸이다.

홍어맛 아는 사람들은 홍어어시욱이라는 홍어찜, 홍어내장으로 끓인 애탕의 맛을 우위에 두기도 한다. 그러나 찜이나 탕은 맛내기가 까다로워 제대로 하는 집을 찾기가 쉽지않다.

신설동에서 40년의 내공을 쌓은 ‘신설 홍어횟집’은 홍어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끼리 몰래 다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칼칼하고 매콤새콤 산뜻하게 무친 홍어무침의 아성은 세간의 홍어집 경쟁에 일순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이 집 홍어맛의 첫번째 비결은 재료에 있다. 국내산 홍어, 특히 귀한 흑산도 홍어를 사용한다. 홍어의 물량이 워낙 부족해 서울까지 오는 진짜배기 흑산도 홍어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칠레산이 많고, 또 일부는 가오리를 홍어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김대중대통령 시절 흑산도에서 올라온 홍어가 수컷은 청와대로 가고, 암컷은 우리집에 온다고 할 정도였지.

국내산이나 흑산도 홍어는 칼로 썰 때 인절미처럼 쫀득하게 탁 달라붙는 느낌이 나거든. 그래야 먹을 때도 달고 꼬들꼬들하게 혀 끝에 착 들러붙어. 그리고 무조건 많이 삭혀야 맛이 좋다는 말은 틀려. 꼭 맞는 온도로 제대로 된 맛을 낼때까지 삭혀야 제 맛이 나. 사람에 따라 가장 좋은 맛을 느끼는 정도도 달라.

그래서 우리집에선 손님 입맛에 따라 삭힌 정도를 달리해서 내놓는다구.”
이처럼 홍어에 대한 원칙과 자부심이 철저한 만큼 홍어삼합을 비롯해 홍어찜, 홍어탕, 홍어무침, 홍어정식, 흑산도홍어회까지 말 그대로 홍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요리는 모두 내놓는다.

◇ 제대로 된 손맛을 내는 홍어요리집

홍탁삼합은 이제 웬만한 규모의 한정식집에 가면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을만큼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김치와 돼지고기수육, 결정적으로 홍어의 산지와 삭힘 정도에 따라 명품과 하품은 차이가 크다.

<신설 홍어횟집>이 명품 홍어요리를 내놓는 데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특별한 노하우가 숨어 있다. 우선 제대로 삭힌 홍어를 쓴다.

출입문 양쪽에 턱 하니 버티고 서 있는 홍어 저장고에 차곡차곡 들어찬 항아리에 담긴 것이 바로 ‘제대로 삭혔거나 삭혀지고 있는 홍어’다.

무형문화재 옹기장인이 만든 천연옹기에 홍어를 삭히고 보관 역시 이 옹기에 넣어한다. 자연과 가장 가깝게 숨을 쉬고, 가장 알맞은 온도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삭혀진 홍어는 가장 맛있는 ‘명품’의 단계에 오른다.

독특한 냄새와 ‘입천장이 벗겨질 정도로’ 강하게 쏘는 맛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덜 삭힌 홍어를 내놓는다. 그렇다고 맛이 덜하지 않다. 홍어의 육질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며 특유의 맛을 살려내는 것이 바로 김인자 대표의 기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홍어의 독특한 냄새를 예상은 하지만 막상 맡고나면 입맛이 달아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홍어 특유의 진한 암모니아 냄새를 맡기가 어렵다.

음식점 내부 곳곳과 식기들, 직원들, 주방에서까지도 별달리 냄새가 나지 않는다. 얼마나 깔끔하고 세심하게 음식을 해 내는지 짐작이 간다. 한 두해가 아니라 테이블 4개로 홍어횟집을 시작했을때부터 김 대표가 고수해 온 원칙이다.

홍어뿐 아니다. 홍탁삼합에 필요한 김치의 재료인 배추는 한약재로 키운 무공해를, 고춧가루는 비싼 값의 자연산 태양초를 조달해 쓸 만큼 먹는 사람의 건강을 생각하며 음식을 만드니 몸에 유익하지 않을 수 없다.

◇ 오랜 세월 지켜져 내려가야 할 맛


“미국에서 우리집 홍어맛을 보기위해 배낭여행을 왔다는 사람이 있었어. 어떤 이는 오며가며 왕복 4시간 거리를 홍어 하나 먹겠다고 오기도 했지. 내가 고마워야 하는데 되려 나보고 고맙다네. 참~”

정월대보름이라고 단골들을 초대해 17가지 재료를 넣은 약밥을 대접할 정도로 정 많고 손 큰 탓에 손님들은 홍어맛에 중독되고, 정맛에 다시 중독돼 <신설 홍어횟집>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10년 이상 40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자랑하는 단골들이 모두 산증인이다.
전통음식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맛을 지켜내고, 그 맛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김인자 대표의 큰 아들인 문정일 씨가 16년째 어머니의 손맛을 배우고 있다. 탕이나 초밥 등 다른 생선요리는 모두 사부의 솜씨에 견줄 수 있지만 홍어만큼은 아직도 일일이 어머니의 손을 거쳐야 한다. 그만큼 깊은 노하우가 필요한 음식이다.

“예전에 홍어가 지천일 때는 홍탁삼합에 홍어 듬뿍에 돝고기 한점이라고 했지. 돼지고기가 귀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홍어가 너무 귀해서 작은 스티로폼 박스 하나에 백만원이 넘어. 그러니 돼지고기 듬뿍에 홍어 한 점이 됐지 뭐야. 그래서 우리집은 많이 줘. 홍어를 무슨 낚시질 하듯 찾아 먹는 것은 아주 질색이거든.”

비싼 홍어를 인심 좋게 듬뿍듬뿍 내어주니 손님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의 음식점에서야 사막에 오아시스 격으로 채소숲에서 홍어 한 점 찾기가 어려운데 이곳은 아주 쉽게 홍어 살점을 찾아낼 수 있으니 홍어 마니아들이 쉬쉬 하며 몰래 찾을 수 밖에.

요리를 하고 손님을 맞는 일이 즐겁지만 흐르는 세월에는 당할 재간이 없다. 김인자 대표 역시 40여년을 한결같이 손질하기 까다로운 홍어를 만지다 보니 손마디마디가 모두 울툭불툭해지고, 눈 코 뜰새 없는 점심시간이 지나면 진한 피곤이 몰려온다.

되도록 빨리 맛을 전수해주고 일선에서 조금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적지 않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맛을 잇는 일이 어디 한두해 갖고 될 일인가 말이다. 홍어횟집을 찾는 사람들 역시 김인자 대표가 되도록 오랫동안 홍어맛을 되살려 주기를 바라고 있다.

DATA 대표메뉴 홍어삼합·홍어찜·홍어탕 각 4만원~9만원, 홍어무침 3만원~5만원, 홍어정식 5만원, 흑산도홍어회(1접시) 13만원, 광어·우럭·농어 활어회 8만원~15만원, 보양탕 5만원~7만원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신설동 92-49 전화 02-2234-1644 영업시간 10:00~22:30

[도움말 : 월간 외식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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