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관의 세계] 움직이는 '막강'파워.. 움찔대는 '막장'신세

  • 등록 2013-07-05 오전 6:00:10

    수정 2013-07-05 오전 7:49:44



[이데일리 이도형 정다슬 기자]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 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 부속비서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지내던 시절 내내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왔다. 대선 기간 중 교통사고로 숨진 고(故) 이춘상 보좌관을 포함해 이들은 ‘4인방’으로 지칭됐다.

대선 기간 동안 ‘4인방’은 당내 초선의원보다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을 거치지 않고서는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와 연락이 안 된다는 말이 나돌았고, 재선급 의원들도 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 때문에 ‘3선급 파워’라는 말도 여의도 정가에 회자됐다.

그들이 ‘보좌’하는 국회의원의 정치적 파워에 따라 보좌관의 힘도 비례하는 대표적 경우다. 그렇다고 해서 국회 보좌관들이 마냥 갑(甲)인 것은 아니다. 소속 정당이나 의원실에 따라 보좌관들의 권력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피감기관..대관담당에게 그들은 甲

국회의원들의 힘이 가장 잘 표출되는 국정감사나 예산심의때는 정치적 파워와 관계없이 보좌진들의 발언권이 세지는 시기다. 해당 상임위에 소속된 공무원들은 이기간 동안 보좌진들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의원회관을 제집 다니듯이 들락거리기 일쑤다.

정부 중앙부처 등 규모가 큰 피감기관은 아예 사무관(5급)급 공무원 등에게 힘있는 의원실별로 ‘1인1실 마크맨’을 붙여 보좌진들의 식사를 챙기기도 한다. 이 기간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보좌진들을 위해 피감기관 직원들이 야식을 나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난 18대 국회 당시 국정감사 기간 때 A의원실에 피감 공기업의 한 직원이 수고한다고 피자를 돌렸다가 보좌관이 해당 공기업 부사장을 의원실로 불러 ‘이러지 말라’고 크게 화를 낸 적도 있다.

17대 국회때는 한 야권의원 보좌관이 비협조적인 피감기관 관계자들을 혼쭐내기 위해 1.5톤 트럭 분의 자료를 요구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기업체 대관(對官)담당자들에게도 보좌관은 갑(甲)이다. 특히 19대 국회들어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각종 대기업 규제 법안이 쏟아지면서 국회를 담당하는 대관직원들은 실무 보좌관들 앞에서 철저한 을(乙)이 되고 있다.

최근 ‘갑(甲)의 횡포’ 주요 기업으로 지목된 모 대기업 대관업무 담당임원이 B 의원실을 어렵사리 방문해 보좌관들을 상대로 ‘오해가 있다’며 해명을 시도했지만 면박만 받고 쫓겨난 경우도 있다.

최근 다른 업계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거나 석·박사 출신, 공인회계사·변호사·노무사 등 전문자격증을 보유한 보좌진들의 국회 입성이 늘어나는 것도 보좌진의 발언권이 강해지는 배경 중 하나다.

해당 대기업에게 면박을 준 보좌관 역시 과거 유명 회계법인 상무 출신으로 해당 기업의 내부 시스템에 정통해 기업 임원들에게 ‘내가 잘 아니까 이것을 고쳐오면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며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또 최근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발의를 주도하고 있는 한 야권의 C 의원실 보좌관은 경제학 석사 학위자로 학원가에서 이름을 날리던 스타 강사 출신이다.

이 때문에 역으로 국회 보좌진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경제민주화’ 바람에 기업들이 발이 넓은 보좌관들을 대관 업무 등으로 기용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높아진 연봉 약속을 받고 몇몇 베테랑 보좌관들이 자리를 옮겼는데 이들 중 일부는 변화된 업무에 정신과치료까지 받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의원실 보좌관이라는 갑(甲)의 생활에 익숙하다가 하소연을 주로 해야하는 을(乙)로 처지가 뒤바뀌다 보니 스트레스를 못 견뎌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업무.. ‘재하청업체 직원’ 하소연도

모두가 갑(甲)은 아니다. 특히 비교섭단체에 속해있는 소수정당의 국회의원 보좌관은 피감기관마저 무시하기 일쑤다. D 보좌관은 “국감기간마다 해당 기관과의 신경전에 진을 뺀다. 보여줄 수는 있지만, 자료를 줄 수는 없다고 해서 몇 백 페이지의 자료들을 모두 일일이 복사했던 적도 있다”고 푸념했다.

쉴 새 없이 몰려드는 민원의 1차적인 처리 역시 보좌관들의 몫이다. 민원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곧 다음 선거의 표심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막무가내’식 요구에도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책 개발 등의 업무는 일과시간 이후에나 비로소 마음 편히 할 수 있다는 호소도 나온다.

실제로 민원이 많기로 유명한 국토교통위를 담당하는 한 보좌관은 몇해 전 늦장가를 들었지만, 결혼을 앞두고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그는 “밀려드는 일에 예비신부와의 데이트, 결혼준비는 늘 밤 10시이후 자정까지 심야시간을 이용해야 했고, 이후 다시 의원회관으로 복귀해 남은 업무를 처리해야했다”고 토로했다.

자신이 모시는 의원의 법안이 얼마나 통과되느냐 역시 보좌관의 노력에 달려있다. 발의되는 법안은 많은데 그 법안을 심사하는 기간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입법조사처나 국회도서관에 자료요청을 해놓고, 담당사무관들을 닥달하거나 관련 상임위원회의 전문위원들에게 “우리 의원실이 내놓은 법안을 먼저 봐달라”고 사정하는 것도 일상이다.

그러나 보좌진의 업무처우 개선 등을 호소할 수 있는 구속력 있는 조직은 사실상 전무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보좌진들이 각각 운영하고 있는 보좌진협의회가 사실상의 노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국회의원의 마음먹기에 따라 ‘밥줄’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선 한계가 있다. 주5일 근무는 바로 국회가 도입한 제도지만 가장 지켜지지 않는 곳이 국회 의원회관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국회에 입성했지만 기껏 자신이 열심히 고생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모두 의원들의 이름으로 나온다는 것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보좌관도 있다. G보좌관은 “내가 하는 일이란 위에서 내려오는 원하청을 그대로 받아 재하청하는 일”이라며 “나는 ‘외국인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고 자조 섞인 평가를 내렸다.

▶ 관련기사 ◀ ☞ [보좌진의 세계] 시민운동가에서 보좌관.. 그리고 국회의원 ☞ [보좌관의 세계] "국민에게 언제나 乙이죠" ☞ [보좌진의 세계] 그들, 甲인가 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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