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월 23일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운전을 하는 데 안개가 가득해 방향을 모른다면, 차를 세워 안개가 사라진 것을 보고 길을 봐야 하지 않겠나”라며 금리 동결 결정을 안개 낀 길을 가는 자동차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금리 인상기가 끝났다는 해석을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언제든 ‘물가 안정’을 위해선 칼을 꺼낼 것이란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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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시장 등 전문가들은 11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기준금리가 동결될 가능성이 우세하다고 보고 있다. 이데일리가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경제연구소 연구원 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100%가 금리 동결을 점쳤다. 금융투자협회가 채권 보유 및 운용 관련 종사자 100명을 설문한 결과에선 응답자 중 83%가 동결을 전망했다.
이들은 통화정책의 ‘가늠자’가 됐던 물가의 둔화 흐름이 뚜렷하다는 점에 특히 주목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4.2%(전년동월대비)로 2월(4.8%)에 이어 두달 연속 4%대를 보였다. 작년 7월(6.3%) 정점을 찍은 물가상승률은 5%대를 유지하다 2월 들어 4%대로 내려오는 등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르면 4월 3%대 진입도 바라보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긴축 의지가 약화된 점과 은행시스템 붕괴에 따른 금융안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도 금리 동결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연준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당초 예상인 ‘빅스텝(50bp 금리 인상, 1bp=0.01%포인트)’이 아닌 ‘베이비스텝(25bp 인상)’을 단행, 정책금리를 4.75~5.0%로 결정했다. 최종금리 상단은 작년 12월 수준(5~5.25%)으로 유지했다. 5월 25bp 인상 이후 금리 인상이 종료된다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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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통위가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금융안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시장에 긴장감을 주는 ‘매파적’(긴축 선호) 메시지를 낼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물가 둔화 흐름은 뚜렷하지만 여전히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상승률 둔화세가 뚜렷하지 않고, 비은행 부동산 PF 등 금융불안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향후 3개월간 최종금리 상단을 3.75%로 열어둬야 한다고 보는 금통위원 수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김진욱 씨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7일 보고서를 통해 “최종금리 3.75%까지 가능성을 열어뒀던 금통위원이 3~4명으로 줄어들 것”이라며 “주상영, 신성환 등 비둘기 위원들이 3.5% 금리를 선호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지난 2월 금통위 당시 최종금리를 3.75%로 열어둬야 한다고 본 금통위원은 6명 중 5명이었다.
결국 금통위 직후 열리는 기자회견에서의 이 총재 발언이 주목된다. 매파적 메시지를 던지되 겁을 주는 선에서 그칠지, 5월 추가 금리 인상 등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 2월 금통위 당시 채권시장은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이 총재 메시지를 매파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오는 20일 임기가 만료되는 주상영·박기영 위원의 마지막 금통위라는 점에서 ‘소신발언’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다만 주 위원은 ‘비둘기파’로, 박 위원은 중도적 성향의 ‘매파’로 임기 동안 소수의견을 낸 적이 없다는 점에서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