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 사이 국내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가 끌어온 해외 부동산에서 연이어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을 빗댄 한 기관투자자 대체투자본부 실무진의 지적이다. 자산의 현지 입지와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실사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해외 투자 비중을 무리하게 확대해 손실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IB의 해외 부동산펀드에서 손실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손실 확대로 논의 대상이 되는 펀드들의 특징은 지난 2017년 전후 결성된 건들이다. 2017년은 해외부동산펀드 설정액이 처음으로 국내부동산 펀드 규모를 앞섰던 시기였다. 투자 유행에 맞춰서 대거 쇼핑해온 해외 부동산들의 가치가 폭락해 상환연기 및 기한이익상실(EOD) 상태로 빠지거나 끝내 디폴트(채무불이행) 처리되는 자산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통상 5~6년 안팎인 펀드 약정 기한이 지나면 자산을 매각해 원금을 상환하고 수익을 분배해야 하지만 자산 가격이 투자 시점 대비 크게 하락하면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
가장 최근에 손실구간에 진입한 자산은 한국투자증권과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국내 기관 자금 및 해외 대출을 조달해 매입한 미국 워싱턴 소재 오피스빌딩인 센티넬2스퀘어다. 국내 투자자들이 매입하기 직전까지 3년간 공실이었던 해당 빌딩은 매입 이후에도 일정 비율 공실 문제가 지속됐다. 매입 이후 5년이 경과해 대출 및 지분투자 리츠 모두 만기를 맞았지만 빌딩 가치 폭락으로 인해 매각에 실패하고 발이 묶였다.
이 밖에도 높은 손실률로 인해 펀드 청산이 불가능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기시 펀드에 담았던 자산 가격이 폭락한 상태라면 대안은 많지 않다. 자금 재조달을 진행해 새로운 투자자를 모집하거나, 자금을 댄 국내 기관 투자자들에게 만기 연장 동의를 받는 정도다. 만기 연장에 실패할 경우 남는 대안은 상환 연기나 크게 손실을 보더라도 공매로 넘기는 수밖에 없다.
대체투자 붐 타고 덩치 키운 IB들...줄손실로 드러나는 실력부족
대체투자가 우수한 투자의 지표처럼 여겨졌던 지난 2010년 초중반 무렵, 만성적인 인력·전문성 부족에 시달리는 기관 투자자들은 덩치를 키우기 위해 공격적인 영업에 나선 국내 IB들을 믿고 투자한 건이 다수였다. 그러나 해외투자에 정통한 국내 IB는 소수였다. 최근 손실 난 자산을 여럿 안고 있는 IB들의 경우 대체투자 유행을 타고 고속 성장한 곳이 적지 않다. 체계적인 준비 없이 급하게 해외투자 전문 인력을 구하고, 조직을 확대한 곳이 많았다는 평가다. 해외 협상력 및 체계적 실사 역량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운용 규모 확대와 딜 주관 수수료, 성과보수 등을 위해 공격적인 영업에 나선 곳이 상당했다.
잇따르는 손실에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국내 IB의 실사 역량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투자처 선정 및 계약 과정에서 실사 및 리스크 대응 전략이 크게 미비함을 최근에 와서야 ‘체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손실 논의를 진행해야 할 단계에 와서야 구체적으로 제공 받지 못했던 현지 상황을 인지하게 되는 ’날벼락‘ 같은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 기관 대체투자팀 관계자는 “우리의 경우 대체투자와 부동산 부문을 포함해 실무 직원이 서너 명 뿐인데, 딜 별로 상세하게 검토할 수가 없다”며 “사실상 트렉레코드와 투자제안서(IM) 상에서 크게 문제가 없고 사고를 친 적이 없으면 믿고 갈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투자기관이 다른 대안을 갖고있었겠나”고 반문했다.
또 다른 기관투자자 고위 관계자는 “최근 손실이 난 물건은 (국내 IB가) 기존에 한 번 정도 거래했던 현지 브로커를 통해서 인근 빌딩을 제대로 된 실사 없이 가지고 온 사례였다”며”며 “시장 변동에 따른 손실은 어쩔 수 없지만, 뚜렷한 대안이 손실 처리 밖에 없는 상황에 와서야 현지 실사부족 사실이 드러나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