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와 같은 미국 MIT대학 경제학박사 출신으로 피렌체 대학 교수였던 그는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를 거쳐 2011년 유럽중앙은행 총재로 임명됐다. 그는 그간 유럽연합의 고위직 임명이 지정학적 고려와 정치적 친소관계에 달려 있었다는 세간의 평가를 불식시키며 해박한 지식과 정치적인 독립성을 지닌 남유럽 출신으로 총재에 임명됐다는 사실 자체로 환영받았다. 역설적으로 그의 임명은 유럽위기의 심각성을 반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최근 연준이 양적완화를 축소하는 출구전략에 나설지 모른다는 소식과 함께 국제금융시장에 충격이 가해지며 재정위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에는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또 다시 몰려왔다. 이 상황에서 그는 과감한 발언으로 유럽 금융시장을 일단 진정시키려 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 금리를 0.5%로 동결해 저금리 기조를 분명히 하면서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적인 금리인하 가능성도 내비취고 있다.
즉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유동성 회수는 실물경기회복 조짐에 근거한 것인 반면, 유럽은 실물경기회복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대응해서 금리를 올리거나 이자율 상승 상황을 방치할 경우 실물경기회복은 더욱 어려워지고 심지어는 금융경색과 같은 비극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드라기의 정책이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움은 크다. 유럽은 재정위기라는 특성상 유럽중앙은행이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실 드라기가 이끄는 유럽중앙은행은 2011년 이후 금융시장안정을 위한 여러 조처를 취하며 비교적 격랑을 잘 헤쳐 오고 있다. 그러나 유럽위기의 본질이 단일통화체제의 한계에 기초한 재정위기여서 통화·금융정책만으로 경기회복을 이끄는 데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드라기의 고민은 우리에게 특히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생각하게 한다. 첫째,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고 출구전략을 구사하는 상황에서 국내 금리를 올리거나 또는 이자율이 상승하도록 방치해서는 매우 곤란하다. 둘째, 재정건전성 문제에 기인한 재정위기는 통화·금융정책으로 대응하기에는 결국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재정건전성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그 재정위기가 유로처럼 자국 경제사정을 반영하지 못하는 단일통화체제와 같은 통화·금융시스템의 근본적 결함에 기인할 때는 그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이러한 위기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