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지난해 말 서울 마포구에 있는 오피스텔에 월셋집을 얻은 박모(33)씨. 그는 월세 계약을 맺을 때 집주인에게서 “절대 전입신고를 하거나 월세 세액공제를 받아서는 안된다”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당신에게 청구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계약서에는 이와 관련한 특약사항까지 적혀 있었다. 알고 봤더니 박씨가 얻은 월셋집은 주거용이 아닌 업무용으로 신고돼 있었다. 집주인이 분양가에 포함됐던 부가가치세를 환급받고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를 피하기 위한 처사였다. 고민하던 박씨는 다른 새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집주인과의 마찰도 원치 않아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민간 임대주택사업자 등록제가 도입된 지 올해로 23년이 지났지만 전체 민간임대주택에서 등록 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6%에 불과하다. 박씨의 사례처럼 임대소득을 노출하지 않기 위한 편법 역시 공공연하게 판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8·2 부동산 대책을 통해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임대주택에 대해서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및 장기보유특별공제 배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세금을 과하게 매기지 않고 감면 혜택도 주겠다는 이른바 당근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거 사례를 돌이켜봤을 때 이런 조치만으로는 실질적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동안 ‘눈먼 소득’으로 분류됐던 임대소득이 노출된다는 심리적 저항이 그만큼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노무현 정부 시절 효과 ‘미비’실제로 과거 노무현 정부도 이같은 정책을 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2003년 10월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기 위해 1가구 3주택 이상의 다주택자에게 양도세를 60%로 중과세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제도에서 배제하는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다만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할 경우 양도세 중과를 배제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도 유지하도록 했다. 지난 2일 정부가 내놓은 대책 내용과 완전히 같다. 그러나 이같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임대주택사업자 수는 2004년 2만 5105명에서 2006년 3만 636명로 2년간 5531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일년 동안 임대주택사업자 수가 3360명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연평균 증가 폭은 줄어든 셈이다.
김재언 미래에셋대우 VIP컨설턴트팀 수석매니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세법 개정 사항이어서 국회 논의 과정에 따라 내용이 다소 바뀔 소지가 있는 데다 집값이 상승하느냐 하락하느냐에 따라서도 다주택자의 선택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며 “올 연말까지 정책 움직임과 시장 상황을 보고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과세 저항 줄일 제도 개선 필요”민간 임대주택사업자 등록제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장애 요인을 없애 과세 저항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다. 현재 정부는 연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에 대해서는 오는 2018년 말까지 소득세 부과를 유예하고 있다. 그러나 유예기간이 끝나고 2000만원 이하에 대해서도 소득세를 부과하면 현재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되며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지난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임대소득 2000만원 이하 분리과세자에게 부과되는 연간 소득세와 건보료는 각각 56만원, 276만원이다. 소득세보다 건보료 부담이 5배 이상 많은 셈이다.
특히 은퇴한 노년층의 경우 임대소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건보료 상승에 따른 타격이 만만찮다. 이를 고려해 민주당 역시 2014년 임대사업자 등록제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만 60세 이상이면서 3주택 이하 소유자의 임대소득이 연 2000만원 이하일 경우 건강보험상 피부양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규정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 서울·수도권 기준 공시가 6억원 이상 주택의 경우 주택 가구 수에 제외되는 것 외에는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하는 데에 따른 세제 혜택이 없어 다주택자가 자발적으로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할 유인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서울 아파트 가구당 평균 매매가격은 6억 5903만원이다. 이 중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와 광진·마포·중·용산·종로·성동·영등포·양천구 등은 아파트 한 채 평균 매매가격이 6억원을 넘는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소득(임대소득) 있는 곳에는 세금 있다’는 과세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은 활성화돼야 한다”며 “정부는 민간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하기 위한 보다 현실적인 방안 마련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