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말기심부전 환자, 희망은 '심장 이식'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 등록 2021-10-30 오전 7:45:53

    수정 2021-10-30 오전 7:45:53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어린 시절 두 차례의 수술을 받은 후 성인이 되어 추가 수술을 받았던 50대 환자가 있었다. 지속적인 양 심실 부전으로 두 다리는 점차 부어오르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찬 증상이 있어 입·퇴원을 반복했다. 게다가 심부전이 심해 식사하기도 어렵고, 근육들도 점차 야위어가기 시작했다. 우심실 부전으로 다리도 부었지만 간 기능이 점차 나빠지기 시작했다. 부정맥이 발생하고, 심박동 수가 느려지면서 실신을 해 박동기를 삽입했다.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심장 이식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으나 여러 차례 심장 수술을 하면서 이미 항체가 많이 형성돼 있어 거부 반응이 생길 확률이 컸고, 또다시 심장 수술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심장 이식의 위험성, 언제 이식을 받을지 모를 불확실성에 환자와 그 가족들은 이식을 포기하기로 했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심장 수술을 받아 숨이 찬 상태로 살아왔기에 우울감이 늘 있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여 외래 때마다 힘들어하던 분이다. 겨우 유지를 하고 있었으나 내가 해외에 연수를 다녀온 이후 환자는 점점 더 나빠져서 심장 이식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고, 더 미루게 되면 환자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와 가족들을 불러 손을 꼭 잡고 마지막 기회이니 이식을 대기하고, 더 나빠지면 나 또한 도와드리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드렸다. “현재는 말기 암과 같은 말기 심부전 상태입니다. 더 나빠질 경우, 다른 장기의 손상으로 심장 이식은 어렵습니다. 여러 차례 심장 수술을 해서 인공 심장은 현재 어렵고, 뇌사자의 심장은 제가 만들어 드릴 수 없기 때문에 대기 기간이 오래도록 이어진다면 환자분의 심장이 견디지 못할 경우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환자분의 상태가 나빠져서 이식이 성공할 가능성이 떨어지면 뇌사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식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공여자가 기증한 귀한 장기를 반드시 살려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와 심장이식팀은 누구보다 있는 힘을 다해, 온 정성을 모아 도와드리겠습니다” 가족과 환자 모두 오래 함께 치료를 해 온 나를 믿고 이식을 결정하였다. 워낙 고위험군이었기 때문에 주치의인 나 또한 심적 부담이 매우 컸던 환자다.

심장 이식은 여러 가지 심장 질환으로 인해 심장 근육이 심하게 손상돼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건강한 심장을 뇌사자로부터 제공받아 이식을 하는 수술이다. 말기 심부전 환자들의 1년, 2년 생존율이 각각 25%, 8%에 불과하지만 외과적인 치료로 좌심실 보조 장치를 적용하면 1년 생존율은 70% 이상 증가한다. 또한, 이 환자들이 심장 이식을 받을 수 있다면 심장이식을 받은 말기 심부전 환자의 1년 생존율은 90% 가까이 되고, 우리나라의 경우, 중위 생존은 이식 후 15년 이상으로 다른 치료보다 월등한 성적을 보여 심장 이식은 말기 심부전 환자의 마지막 희망과도 같다.

이러한 심장이식은 1967년 남아프리카의 Barnrad라는 의사에 의해 처음 시행되었으나 그 당시에는 면역 억제제도 없고 이식과 감염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여 환자는 18일 만에 사망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싸이클로스포린이 이식한 후, 면역억제제가 쓰이기 시작하면서 심장 이식 후 성적이 급격히 향상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에 비해 늦은 1992년 처음 심장 이식을 시행하였으나 다른 나라에 비해 예후가 좋고, 그 수는 점차 증가하여 현재는 매년 180례 이상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이나 미국 등과 비교하면 장기 기증 희망자 수가 모자란 것이 현실이며, 2020년에는 약 600여 명의 환자가 심장이식을 대기하였으나 이식을 받지 못하고, 대기 중 100여 명이 넘는 환자가 사망하였다.

심장 이식을 기다리는 말기 심부전 환자들과 가족들에게는 심장 이식이 매우 절실하고 간절한 일이겠지만, 다른 고형 장기와는 다르게 뇌사자의 심장만을 이식받을 수 있는 심장 이식은 누군가가 사망했을 때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뇌사자가 많이 발생해 달라고 원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고를 당한 뇌사자의 심장을 말기 심부전 환자에게 이식하여 반드시 살려 고귀한 생명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심장이식팀의 역할이고, 이식이 잘 이루어지도록 병원의 많은 인력이 한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노력해야만 한다.

말기 심부전 환자는 심장이 언제라도 멎을 수 있고, 혈액과 영양 공급이 줄면서 점차 다른 장기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이식 이후에도 감염에 취약하고, 잘 견디지 못할 수 있다. 아울러 뇌사자의 심장 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변할 수 있고, 뇌사자와 수혜자의 심장 크기 또한 경험적으로 예측할 수밖에 없어 심장 이식은 늘 여러 가지 변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한 변수를 조금이나마 줄여 보고자 뇌사자가 발생하고, 우리 병원 환자가 받을 확률이 생기면 2시간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병원이라면 반드시 직접 가서 심장 초음파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우리 병원의 환자와 적합한 환자라는 판단이 들면 팀을 활성화시켜 심장 이식을 진행한다. 중환자실 밖에는 불의의 사고로 뇌사가 된 환자의 가족들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의 장기를 안면도 없는 다른 사람에게 기증하도록 결정한 가족과 뇌사자를 보면서 반드시 그 심장이 내 환자에게로 들어와 오래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정성을 다해 우리 팀 모두가 이식에 임하게 된다. 이식을 받는 환자 또한 자신의 심장을 모두 꺼내기 때문에 이것이 마지막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누구보다 클 수밖에 없어 수술장에 들어갈 때는 꼭 손을 잡고 함께 기도를 해드린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정성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런 기도와 정성으로 환자는 수개월이 지난 후에 심장 이식을 성공적으로 받고 한달이 지나서 퇴원을 했다. 이식 후 다소 어려움은 있었으나 잘 견뎠고, 지금은 살면서 이렇게 몸이 가볍고, 숨쉬기 편한 날이 없다고 하신다. 외래에서 만난 환자는 2시간 이상 걸어도 숨은 전혀 차지 않고, 하루하루가 감사한 날들로 공여자의 삶을 뜻깊게 이어갈 수 있도록 누구보다 봉사를 많이 하고, 살아가겠다고 기쁜 마음으로 이야기하신다. 밤을 새워서 환자분들을 돌보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도록 정성을 다하는 우리 심장이식팀이 감사하고, 이로써 보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심부전 환자가 심장 이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식을 대기하는 중에 심장이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들도 있고, 상태가 악화되어 이식을 받지 못하게 되는 환자들도 분명 있다. 이식을 받을 수 없을 때 오열하는 환자의 가족들을 보면 주치의로서 누구보다 마음이 아프고, 사람이니까 힘들 수밖에 없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고 하늘의 뜻이 있어 의학 지식도 중요하겠지만 정성이 하늘에 닿는다는 심정으로 환자들을 살피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들이 있다. 하루를 살더라도 편안하게 숨 쉬며 살고 싶고,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말기 심부전 환자들을 보면서 오늘 하루도 숨 쉬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해 보며 하루하루 값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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