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강민정 기자] “또 듣고 싶은 감동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힘이 됐다.”
국내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박지혜’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반응이다. 최근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중심으로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가 들려준 연주와 강연을 들은 사람들의 후기가 이어졌다. 지난 11일과 12일 이데일리가 주최한 제5회 세계전략포럼(WSF)의 연사로 나섰던 박지혜가 들려준 ‘치유, 눈물이 빛이 되어’에 대한 여운이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희망의 빛이 돼주고 있었다. 박지혜는 분명 ‘영혼을 울리는 연주자’임에 틀림없었다.
▲최고의 수식어 ‘영혼을 울리는 연주자’
“‘영혼을 울리는 연주자’는 무엇과도 바꾸기 싫은 최고의 수식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을 치유하는 힘을 인정받았다는 뜻인데, 진심이 전해졌다는 사실이 나에게도 큰 위안이 된다.” 박지혜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
박지혜는 “어떤 사람들은 음악의 힘을 실감하지 못하는데, 이는 음악이 정확한 의미와 구체적인 지향점을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라면서도 “음악은 만들어 놓은 정의가 없어서 더 순수할 수 있으며 누군가의 사고를 거치는 번역도, 해석도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슬픈 음악도 희망적으로, 활기찬 노래도 서정적으로, 나만의 의미로 소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클래식은 여전히 대중과 멀게 느껴지는 장르다. 그런 생각 때문에 마음 같아서는 내 음악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직접 찾아가고 싶다. 나를 멘토 삼은 친구들, 나와 비슷한 성장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힘든 일이다. 당장 내가 해야 할 일,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좇다보면 이루기 힘든 꿈이다. 아직은 주어진 이 자리에서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의지가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창대한 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박지혜의 마음에 유독 깊이 박혀있는 이 ‘아이들’의 실체는 10대다. 한창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이다. 이들과 같은 시기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음악도, 삶도 포기하고 살았다는 박지혜는 누구보다 이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했다. 특히 지난 4월 발생한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를 지켜보며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박지혜의 어깨엔 무거운 책임감이 얹혀 있다.
|
▲‘소통’ 위해선 언제 어디서든 연주할 것
원인은 제각각이어도 요즘 현대인들은 소통의 벽이라는 같은 고통을 분담하고 산다. 박지혜는 그러한 ‘불통’(不通)과 ‘불신’(不信)에 힘들어하는 국민을 위해 언제 어디서든 연주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아리랑’ ‘섬집 아기’ ‘나의 살던 고향은’ 등 한국인 정서에 익숙한 곡을 박지혜만의 스타일로 변주하는 시도는 이러한 다짐을 현실로 이행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때 귓전으로 흘려들었던 엄마의 노래가 날 다시 일으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18년 평생 내가 듣고 연주한 노래는 클래식이 전부였다. 가사가 있는 노래를 전혀 몰랐다. 하지만 엄마가 흥얼거린 가요 한 구절이 내 얼어붙은 마음을 한순간에 녹여버리더라. 그 후로 ‘내가 들려주는 노래는 어떤 틀에도 갇혀 있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감히 ‘아리랑’과 같은 곡에 손을 댈 수 있었던 용기도 그러한 깨달음 덕이었다.”
그의 우려와 달리 ‘박지혜 아리랑’이라 이름 붙인 새로운 스타일의 ‘아리랑’은 많은 이들을 숨죽이게 만들고 있다. 희로애락이 기승전결로 전개되는 인상적인 편곡이 귀를 사로잡는다. ‘아리랑’ 고유한 멜로디가 갖는 힘은 그대로 살아 있다. 제5회 WSF 강연에서는 물론 온라인 영상 사이트 유튜브 등을 통해 ‘박지혜 아리랑’을 마주한 모든 사람이 무언의 힐링이 갖는 힘을 실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