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촛불시위대는 왜 화가 났을까

  • 등록 2008-06-29 오전 6:21:53

    수정 2008-06-29 오전 11:43:58

[이데일리 좌동욱 정원석 기자] 28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경찰이 강경대응에 나섰고, 시위대도 극렬하게 저항하면서 시위는 점차 과격해졌다.

한 40대 가장은 "촛불이 줄고 있다"는 소식에 처음으로 시위에 참석했다. 다른 아버지는 초등학생 4학년 아이와 함께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 한복판에 나섰다. 물대포가 날아오고, 경찰-시위대간 물병과 쇠붙이가 난무하는 상황이었지만 아버지는 위험해도 `산교육`이 될 것이라고 했다.
 
커피를 나눠주거나 자비로 신문을 만들어 집회상황을 알려주는 이들도 생겨났다. 대통령이 사과하고, 불법·폭력시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대응방침을 천명했지만 고시 강행을 계기로 다시 타오른 촛불이 금방 꺼질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 격렬해진 촛불시위.."의료진" "카메라" 외쳐 

28일 밤 10시10분경 종로 교보문고 앞 8차선 도로. 길을 차단한 전경 버스 6대를 사이에 두고 경찰과 촛불 시위대들이 서로 대치했다. 버스 창문은 성난 시위대가 소화기, 몽둥이로 두들겨 부순 탓에 앙상한 골격만 남아 있었다.        

경찰은 1시간 째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아댔다. 처음 한대로 시작한 물대포는 3대로 늘어났다. 경찰이 소화기를 뿌려대는 탓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제대로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머리위로는 버스 건너편에서 경찰이 던진 물병, 쓰레기 등이 떨어졌다. 시위대도 그것을 주워 다시 던졌다. 누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전경 상호간에 부상자가 발생했다. 

누군가 한명이 "의료진"을 외치자 시위대 모두가 함께 외쳤다.  누군가가 "카메라 기자"를 외쳤고, 또 다시 모두가 따라 외쳤다. 카메라 기자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었다. "의료진"을 외치는 횟수는 점점 많아졌다. 이날 촛불집회가 벌어진 종로 거리는 전쟁터의 '전선'을 방불케 했다. 
 
◇ 다양한 집회 참가자들..주말맞아 가족단위 참석
 
전선 앞에 모인 사람들은 다양했다. 화물연대나 민주노총의 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격한 시위를 예상한 듯 나온 사람도 있었지만 팔짱을 낀 연인, 부부, 노인들, 아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 등 일반 시민들이 훨씬 많았다.  
 
박동학(42세)씨는 이 위험한 현장에 초등학교 4학년생 아들과 함께 서 있었다. 경찰과 시위대를 가르는 전경버스로부터 불과 10여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위험한 것은 알지만 현장의 민주주의를 직접 배우라고 (아이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고 했다.

100미터쯤 뒤로 가니 여성, 노약자, 학생 등 일반 시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홍성희(32세)씨는 지인 지연화(45세)씨 부부와 함께 촛불을 들고 있었다. 홍씨는 왜 왔냐는 질문에 "신문, 방송을 보고 화가 나서 왔다"고 했다. 그는 "정부와 언론에서는 우리를 폭력 시위대로 몰아가지만 실상은 경찰들이 물대포를 쏘면서 시위대를 도발했기 때문"이라며 말했다.

남편과 함께 온 지연화씨는 "대통령은 잘못했다고 반성했지만, 곧이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강행, 시위대 강경 진압을 지시했다"며 "이제라도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했다.

김종갑(45세, 서울 방학동)씨는 시위 현장에서 DSLR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느라 부산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값비싼 카메라가 비에 흠뻑 젖었다. 고가의 장비가 망가질 수도 있었지만 김씨는 "그래도 찍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심상정, 노회찬 민노당 전 의원도 현장을 지켰다. 심 의원은 "대통령의 강경론이 촛불시위를 키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 갈수록 격렬해지는 시위

시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렬해졌다. 시민들이 전경버스를 밧줄로 묶어 전복한 후 청와대로 몰려가도는 시도가 이어졌다. 밧줄 길이만 족히 100미터는 돼 보였다. 처음엔 버스가 넘어질 듯 크게 흔들렸으나 넘어지지는 않았다. 버스에 묶은 밧줄을 두개로 늘리자, 반대편 경찰측도 쇠밧줄로 지지대를 설치했다. 일부 시위대가 경찰 살수차를 부수고, 경찰도 물대포와 소화기로 적극 대응하면서 양측의 감정은 이미 격해져있었다. 
 
경찰이 방송 마이크로 "불법 집회를 해산하라"고 경고하자, 시민들은 '우'하는 함성으로 응수했다. 밤 10시44분경에는 종로 거리에서 종로구청쪽으로 우회, 청와대로 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화물연대가 "대책위만 믿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가 길을 열어보자"며 앞장섰다. 하지만 종로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은 전경 버스로 모두 막혀 있었다.

종로구청 앞에는 집으로 가려는 사람들 십여명이 "집에 어떻게 가라는 말이냐"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은 휴대전화로 "빨갱이들 때문에 집에 못가고 있다"고 말했다가 사람들이 쳐다보자 "말 조심해야 겠다"며 소근소근 통화하기도 했다. 
 
◇ "80년대와 비교하면 오합지졸..그것이 사회 발전"

밤 11시50분경 버스로 차단된 바리케이트가 뚫렸다. 시위대가 밧줄로 당긴 힘에 못이겨 전경 버스 한대가 70도 정도 돌아간 것이다. 시위대쪽에서 '와'하는 환성이 터져나왔지만 정작 장애물을 치운 후 시위대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 틈을 타 경찰들이 방패와 경찰봉을 휘두르며 시위대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한순간 시위대가 100여미터나 뒤로 밀렸다.

남자들이 앞으로 나와 스크럼을 짰지만 엉성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혼재했다. 사고를 우려한 경찰들도 더 이상 시위대를 밀어내지 못했다. 앞에 서있는 전경들에게 오물을 던지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것을 말리는 시위대도 함께 있었다.

86학번이라는 박동학씨는 "87년 민주항쟁 등으로 대학 시절 시위를 많이 참가했다"며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 시위대는 오합지졸이다. 참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오합지졸로 조직적인 경찰에 맞서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한단계 발전된 것 아니냐"며 "하지만 경찰들은 20년전 그대로"라고 꼬집었다.
 
이날 시위는 종로 뿐 아니라 시청 앞 태평로 거리와 안국역에서도 열렸다. 집회 참가자 들 중 몇몇은 '프레스(PRESS)' 완장을 찬 기자들에게 시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진화하는 촛불 집회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오후부터 삼삼오오 나타나기 시작, 집회가 시작된 오후 7시경엔 시청 앞에서 동아일보 사옥 앞까지 태평로 8차선 도로를 가득메웠다. 다양한 연령대, 남녀, 노소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이미 유명해진 유모차 부대가 눈에 띄었다. 유모차 부대엔 출산을 앞둔 산모도 있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도 연단에 올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바뀌고 있다"며 "현장의 비정규직이 곧 광우병"이라는 말을 전했다.

박원석 대책위 공동상황실장은 "집회 참가자가 10만여명"이라고 말했고 경찰이 추산한 참석자수는 2만여명이었다. 촛불이 서울 도심을 뒤덮은 6.10 이후 최대 규모의 인원이 촛불시위에 참석했다.
 
김영록씨(42세) 가족은 포장마차에서 통닭을 먹고 있었다. 부인, 아들, 딸까지 4명이다. 김 씨는 "오늘 집회에 처음 나왔는데 촛불이 줄고 있다는 보도를 듣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매번 가자고 했지만 직장생활 때문에 오지 못했다"며 "순진한 아이들이지만 알 것은 다 안다. 이젠 쇠고기 먹으러 가자고 해도 안간다"고 말했다.

공짜커피를 주는 곳도 있었다. 직장인 이정우씨(30세)는 시청 잔디마당에 '목마른 시민에게는 커피가 공짜'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촛불다방'을 운영했다. 오늘까지 11일째라고 했다. 이씨는 "자비로 물과 커피를 나눠주는데 하루 30~40만원 정도가 들었다"며 "혼자서는 힘들어 26일부터 아고라에서 후원을 받고 있는 데 이틀만에 100만원 정도가 모였다"고 말했다.
 
대학 4학년생이라는 엄모씨(21세)는 자비로 공짜 신문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엄씨는 "촛불집회 상황을 알리고 싶어서 아고라에서 네티즌들과 함께 돈을 모아 신문 10만부를 만들었다"고 했다. 촛불집회에서 신문을 직접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그는 말했다. 

29일 현재시각 새벽 4시까지도 집회는 계속됐다. 초여름이지만 빗방울이 굵어진 탓에 날씨가 쌀쌀했다. 시위대 수는 현저히 줄었지만 그럼에도 종각역 사거리에서 SK 본사건물까지 8차선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광화문 곳곳의 술집과 커피숍에는 추위를 피해 온 집회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촛불집회가 시간이 지나면서 동력이 떨어지고, 집회에 '시위꾼'들만 참석하고 있다는 인식은 이날 현장 상황과는 거리가 있었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다양했고, 화도 많이 나 있었다. 촛불집회는 상황에 따라 대응을 달리하면서 계속 진화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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