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서울 강남 8학군의 어느 자율형사립고 교장의 인터뷰 기사를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다. 그가 학부모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수요자인 학부모들이 바라는 내용과는 사뭇 다른 의외의 글로 시작된다. “이제 서울대에 몇 명 갔냐는 질문은 그만둘 때가 됐습니다. 학교는 건강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잘 받도록 하는 ‘학교다운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는 명문고등학교의 기준은 ‘명문대 진학률’이 아니라 졸업생들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정도’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선한 영향력은 학교 인재상의 변화에서 그 의미를 엿볼 수 있다. 바로 창조적 글로벌 리더에서 의롭게 생각하고 떳떳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국가는 고도성장의 시대에는 그에 필요한 국정철학과 운영 방향이 있고, 이후 풍요롭고 개인의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는 수준으로 발전하면 사회의 질적 성숙을 위한 새로운 철학과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은 이런 시대적 요구와 정신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자살률 세계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으며,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 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2021 세계행복보고서’의 국가별 행복지수는 불과 4년 전 대비 24계단 하락한 62위를 기록했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진입에 빨간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인간의 ‘행복도’, 혹은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은 1929년 후생경제학자 피구(Pigou)에 의해 처음으로 대두되어, 주관적, 객관적 내용을 포함하는 종합지표체계로 발전을 거듭했다. 유엔의 SDSN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대 수명, 사회적 자유, 관용, 부정부패,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총 7가지 지표를 기준으로 지수를 산출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삶의 질(Better Life Index) 측정에는 주거, 일자리와 소득, 교육, 공동체, 대기오염, 생활 만족도, 안전, 일생활 균형 등 11개 영역, 24개 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얀테의 법칙’ 문화이다. ‘얀테의 법칙’은 한마디로 ‘당신이 남들에 비해 특별하거나 더 우월하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사회적 규범이다. 한 예로 주말 파티 모임에서 본인이 승진하였거나, 자녀가 명문대학에 합격하였다는 등 개인적 자랑은 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결국 ‘사돈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라는 속담은 동서양을 넘어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속성이다.
전국의 마을을 여행하다 보면 동네 곳곳에 게시된 플래카드를 자주 볼 수 있다. ‘○○ 아들 행정고시 합격’, ‘△△ 장남 의학박사 학위 취득’. 내 비록 못 배우고 가난할지언정 자식의 잘난 성공으로 충분한 보상이 된다는 인간의 심리를 탓할 수는 없지만, 경제강국 대한민국에서 ‘더 나은 미래와 삶’을 위해 이제는 없애야 할 ‘자랑 문화’이다. 고쳐나가야 할 소중한 것들은 멀리 있지 않다. 가까이 있는 잘못된 문화부터 고쳐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