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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펀딩 규모, 밸류 ‘DOWN’
투자 규모나 밸류가 쪼그라든 건 이들만의 사정이 아니다. 최근 6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한 토스도 본래 9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최대 1조원을 조달하고자 했지만, 아직은 이를 채우지 못했고 기업가치도 작년 투자받을 당시 8조원가량에서 보다 소폭 올랐다. 지난 6월 투자에 성공하며 비교적 숨통이 일찍 트인 직방의 펀딩 규모도 1000억원으로 본래 목표로했던 투자 규모 3000억원에서 3분의 1로 줄었다.
물론 펀딩 규모나 밸류가 기대 수준에 못 미쳤으나 비관론만 있는 건 아니다. 거듭된 금리인상과 경기침체, 증시 악화로 유동성이 급감하면서 VC들마다 옥석 가리기에 나섰고 투자 의사결정에 대한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졌다. 드라이파우더가 많은 하우스들도 연말이나 내년이면 보다 밸류가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관망적 태도로 유의미한 규모의 투자는 중단한 경우가 많다. 이 와중에 펀딩에 성공했다는 것 자체가 투자자들을 상대로 성장 가능성을 입증한 것 아니냐는 평가다.
9부 능선에서 투자 ‘STOP’, 위기감↑
문제는 깔딱고개 문턱을 넘지 못한 스타트업들이다. 펀딩에 나선 지 한참이 지났고 여러 굵직한 투자자들을 거쳤으나 아직 소식이 없는 스타트업이 수두룩하다. 왓챠와 메쉬코리아, 발란, 매스프레소, 오늘식탁 등이 대표적으로, 경영권 매각 카드를 꺼내 든 왓챠와 메쉬코리아는 자회사 및 적자 사업부문을 정리하며 현금흐름 개선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상횡이 이렇게 되자 투자자들은 펀딩 중인 포트폴리오 기업에 옛 밸류를 고집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기관투자가가 다른 기관투자가와 함께 펀딩 중인 기업에 필요한 규모 만큼의 자금을 모아둔 뒤 밸류 등 투자조건에 있어 눈높이를 낮추라고 요구하는 등 협상에 나서는 경우도 일반화하는 상황이다.
기업가치를 직전 라운드보다 낮춰 투자를 받는 디밸류에이션(평가절하)의 공포감도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디밸류에이션이 이뤄질 경우 기존 투자자들의 리픽싱 조항이 발동돼 결국 창업자의 지분이 희석될 수 있는데, 스타트업 입장에서 이를 감안하고 펀딩해야할 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 현금흐름을 어떻게든 개선해내거나 펀딩을 통해 버티는 스타트업과 사장되는 스타트업으로 나뉘며 자연스럽게 1등이 승자독식하는 판이 펼쳐질 것이란 의견이 많다.
VC 관계자는 “기존 투자자들이나 신규투자자들을 모아 매치 협업해 투자할 수 있을 만한 조건을 만들어놓고 스타트업과 협상테이블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며 “시장 상황에 맞게 유연히 대응해야 한다. 지금은 조건과 밸류가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는 것 자체가 화두”라고 전했다. 이어 “현금 흐름 탄탄한 기업들엔 지금이 저가에 좋은 기업을 사들여 마켓 1위로 올라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자리를 어느 정도 잡았고 돈이 있는 회사들에는 가만히 있지 말고 이번 기회에 확실한 리더가 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돈이 필요하면 지원해줄테니 M&A에 나서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