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기찻길 위에 올라탄 표(票)퓰리즘

  • 등록 2021-05-28 오전 6:00:00

    수정 2021-05-28 오전 6:00:00

주식 투자 못지않게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을 갑자기 돈방석 위에 올라앉게 해 준 ‘도깨비 방망이’를 하나만 꼽으라면 어떤 답이 나올까? 일부 지역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철도’를 으뜸으로 치켜세우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다. 철도 중에서도 교통 오지의 낙후된 곳을 인접 대도시의 도심이나 요지와 연결해 준 신설선, 그리고 핫한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는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가 최고 주인공일 것이다.

GTX는 대단히 매력적인 기찻길이다. 출퇴근 때면 적어도 1시간 이상을 지옥철이나 콩나물시루 버스에서 시달려야 할 수도권 주민들을 20분 남짓한 시간에 경기도 북쪽 끝에서 남쪽까지(83㎞)데려다 준다니(GTX-A)이보다 더 달콤한 약속이 있을 리 없다. 이용객들의 만족과 행복감은 계획 중인 B, C, D 등 다른 노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만사가 모두 순탄할 리 없듯 D 노선에서는 최근 사달이 났다.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된 파장은 GTX에 대한 기대와 현실적 여건을 차분히 되짚어보게 만들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안에서 기존 노선과의 중복 및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GTX-D 노선을 ‘김포-하남’에서 ‘김포-부천’으로 축소 발표한 후 벌어진 사태는 설명이 더 필요치 않다. 서울 강남과의 직접 연결을 기대했던 김포, 부천은 물론 인천의 지역 주민과 지자체장, 국회의원들로부터 분노에 찬 반발, 호소가 잇따르고, 여당 지도부가 청와대 간담회에서 대책을 요청하기도 했다. 항의 전화와 문자 폭탄, 18원 후원금이 의원들에게 빗발치듯 쏟아진 가운데 유력 대선 주자들의 압박과 원안 통과를 다짐하는 발언까지 나오자 국토부는 사실상 노선 변경으로 돌아선 상태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돈’이다. 민자사업과 재정사업으로 나뉘는 철도의 경우 재정사업은 예비타당성(예타)조사를 통과했다면 진행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민자사업은 다르다. 예타를 통과하더라도 사업자가 나타나야 한다. 수익성을 따져 본 후 달려들 의지가 있는 민간 사업자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GTX 모든 노선은 민자사업이며 현재 A노선만 신한은행 컨소시엄이 파주-삼성 구간의 사업자로 참가해 2018년 12월 첫 삽을 떴다. B 노선은 2019년 8월, C 노선은 2018년12월 예타를 통과한 후 사업자를 찾고 있는 중이다.

GTX-D 노선의 해법 찾기는 가덕도신공항 때를 닮았다. 지역 주민들의 요구와 정치권의 가세, 지자체장들의 호소와 “곤란하다”며 버티다 꼬리 내리고 마는 정부 부처의 무소신 등에서 가덕도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표 계산이 중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도 역시 그렇다. 우이신설선과 의정부경전철 등 대다수 민자 철도가 거액의 적자로 신음하거나 파산한 사례를 목격하면서도 “GTX는 무조건 놔야 한다”는 주장이 28조원 이상의 돈을 쏟아부을 가덕도신공항과 흡사하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집단의 요구와 여기에 편승한 정치권의 표(票)퓰리즘이 나쁜 선례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와 지적이 오판이길 바랄 뿐이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대목은 GTX의 쓰임새다. 공항과 달리 철도는 서민들의 지친 몸을 실어줄 동반자요 일상의 ‘발’이다. 정치인들의 훈수와 정부의 오락가락을 개탄하는 마음은 변함 없지만 GTX-D가 10년쯤 후 바꿔 놓을 미래 세상을 그려 보노라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에 대한 향수가 밀려온다. 길을 내고 철도를 깔 때마다 ‘지역 균형 발전’과 ‘주민 편의’는 앞으로 반대 논리를 압도할 최강의 명분이 될 전망이다. 경제는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한다고 외친다면 “어느 별에서 왔느냐”는 핀잔과 조롱이 당장이라도 날아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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