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PB]부실펀드 팔아놓고 나몰라라…"PB 믿느니 직접투자"

사모펀드 사태·코로나, 상반기 WM 수수료 수익 ↓
"PB 못 믿겠다"…금융상품 수요·신뢰 모두 흔들
"무용론은 글쎄…영업 아닌 관리 능력 평가해야"
  • 등록 2020-11-13 오전 12:02:00

    수정 2020-11-13 오후 1:33:02

[이데일리 김윤지 권효중 유준하 기자] 사례1. “엊그제까지도 PB가 수익률 8%라고 연락해오던 펀드가 만기 열흘 전에 ‘사실은 말한 대로 운용이 안됐다’면서 얼마나 돌려줄지 모르겠다고 환매연기한다고 합니다. 상품판매할 때에는 ‘안전장치 ABC가 있어요’라고 팔아놓고는 이제 와서 그게 하나도 작동하지 않았다며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하네요. 누가 책임져야 하나요.” 최근 모 증권사가 판매한 미국 소상공인 대출채권 펀드의 환매연기 소식을 들은 한 투자자는 답답함에 투자 카페 여기저기에 글을 올려 조언을 구했다. 사기를 당한 기분이라는 것이다.

사례 2. 1조원 이상 판매잔고를 기록한 프라이빗 뱅커(PB) A씨는 소위 ‘간판 PB’였다. 일찌감치 매출채권 등 대체투자 사모펀드를 적극적으로 고객들에게 소개했다. 나쁘지 않은 수익률은 입소문을 탔다. 수익률 좋다던 그 펀드는 어느날 환매중단됐다. 까보니 황당할 만큼 부실한 상품도 있었다. 그 PB는 이미 다른 증권사로 이직한 후였다. 1965억원 상당 라임자산운용 펀드를 불완전판매한 혐의로 기소돼 검찰로부터 징역 10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 받은 장영준 대신증권 전 반포WM센터장이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코로나19 여파에 PB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PB는 예금, 주식, 부동산 등 고액 자산가들의 자산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전담자를 말한다. 고객의 투자 성향에 맞춰 적절한 상품을 안내하는 것이 본업이다. 하지만 그동안 붐처럼 일었던 사모펀드에서 지난해 말부터 사건이 터졌고, 올해 코로나19로 투자 환경까지 급격히 달라졌다. “전문가인 PB 말만 믿고 가입했다 낭패를 봤다”는 고객들이 하나 둘 나오면서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 심리가 얼어붙다 못해 상품을 추천했던 PB에 대한 신뢰도까지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마트 개미 늘었지만 PB 통한 투자 줄어…최대 58%↓

펀드 등 간접투자 선호 급감은 수치에서 확인된다. 1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공·사모 펀드에 대한 개인 판매잔고는 라임 사태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지난해 8월 116조481억원을 기점으로 서서히 줄어들어 올해 8월 현재 105조1441억원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비중 역시 19.81%에서 16.37%로 감소했다. 반면 법인과 금융기관 투자자를 더한 전체 판매잔고는 증가 추세다. 전반적으로 펀드 투자는 늘었지만 개인 투자자는 이를 회피하는 셈이다.

증권사에서 사모펀드 등의 판매 통로인 자산관리(WM) 부문 실적도 뒷걸음질쳤다. 올해 상반기 국내 주요 증권사 7곳의 집합투자증권(펀드) 취급 수수료·자산관리 수수료·신탁보수를 더한 자산관리 순수수료 이익을 살펴보면 미래에셋대우를 제외한 6곳 모두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신한금융투자(-58.10%), KB증권(-33.78%), 삼성증권(-12.56%), 한국투자증권(-10.16%) 순으로 떨어졌다.

WM 순수수료 수익이 가장 높은 미래에셋대우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전체 순수수료 수익 중 WM이 차지하는 비중은 16.96%였으나 올해 14.35%로 줄었다. 액수는 늘었지만 비중은 감소했다. 시중 은행 고위 관계자는 “최근 WM이 벌어들인 돈이 그대로 사건이 터진 사모펀드 충당금으로 빠져나갔다”면서 “고객의 요구는 까다로워지고 판매사의 책임은 강화되면서 고액 자산가 유치 외 WM 조직이 가진 재무적 가치에는 물음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투자처·월급 다 줄었다…차라리 현금 선호도”

전반적으로 WM을 통한 투자 움직임이 위축됐다는 것이 공통된 이야기다. 모 증권사 강남 지점 PB는 “안정적 투자 선호하는 고객 중 수백억원을 그냥 현금으로 쥐고 있는 이도 있다”면서 “예금 금리가 1%도 안된다는 걸 알지만 그만큼 투자할 곳이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PB들이 자충수를 둔 것이라는 지적이 높다. 금융상품에 대한 고민 없이 본사가 미는 상품을 무조건 많이 파는데 중점을 두면서 빚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상품 대부분은 판매 수수료가 높아 PB의 실적으로 이어진다.

한 증권사 PB는 “다수의 추천 상품이 ‘끝물’에 나오기 때문에 수익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시점과 프로모션 시기가 현실적으로 일치하기 어렵다”며 “핵심성과지표(KPI)는 영업 중심이어서 ‘잘 관리한 사람’이 아니라 ‘많이 판 사람’이 좋은 인사 평가를 받기에 당연히 부실한 상품도 섞인다”고 털어놨다.

PB들이 느끼는 무력감도 적지 않다. “간접 투자의 목적이 안정적인 수익률인데 사기에 가까운 라임·옵티머스 사태에 투자자·판매사 모두 사모펀드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금융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짜는 PB들은 말 그대로 ‘죽을 맛’” 등의 토로가 이어졌다.

‘동학개미’, ‘서학개미’ 열풍처럼 주식 투자는 늘어난 것도 PB 위기론의 근거다. 증시가 우상향한 데다 유튜브, 스마트폰 메신저 등 투자 정보가 곳곳에서 쏟아지면서 주식, 특히 해외 주식으로 자산 배분 움직임이 일었다. 공모주, 비상장 기업, 스타트업 기업 투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초고액 자산가일 수록 PB 수요↑, 실력 키울때“

금융 환경이 급변할수록 베테랑 PB를 원하는 초고액 자산가의 수요는 여전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위험 회피 차원에서 PB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PB는 “‘PB무용론’도 있지만 그럴수록 본사 추천 상품을 기계적으로 팔 게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스스로 찾아내고 직접 투자도 해보면서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마음으로 폭 넓게 공부해야 한다”며 “PB의 차별성을 느끼지 못한 고객들은 ‘이럴 바에는 이것저것 다해주는 ‘집사형 PB’가 낫다’고 하는데 PB들 스스로 되돌아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PB는 “상위 1% 고객에 집중하면 금융회사 차원에선 비용은 줄이고 수익은 더 올릴 수 있다”면서 “전사 차원에서도 WM을 ‘찍새’(구두닦이에 빗댄 은어로, 계약을 모아오는 조직)로만 취급한다면 사모펀드 사태와 같은 일은 또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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