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금융위원회가 산업은행에 ‘메스’를 대기로 한 것은 체질 개선을 통해 정책금융의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산은은 지난 1960~70년대 정부의 경제개발 정책에 발맞춰 한국 경제를 고도성장으로 이끄는데 선도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존재감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은이 15년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던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누적으로 4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낸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물론 이 같은 결과의 근저에는 산은 퇴직임원들이 자회사 요직을 꿰차는 등 ‘모럴해저드’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금융위원회는 일단 산은이 지난 5년간 민영화를 추진하다 올해 정책금융공사와의 통합으로 정체성이 애매해짐으로써 역할 재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산은 자회사 118곳 판다…신속 매각은 ‘글쎄’
산업은행은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거나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시중은행들이 꺼리는 기업을 떠맡으면서 현재 377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산은이 15% 이상 출자한 비금융자회사는 118개로 장부가로는 2조3000억원에 달한다. 금융위는 이들 118개사중 투자기간이 5년 이상이 넘은 91개사를 3년 내 집중 매각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자회사 매각과 관련해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워크아웃처럼 구조조정이 끝난 기업은 신속히 매각하되 ‘시장가치 매각’ 원칙을 따른다는 거다. 매각 대상 기업의 시장가격이 애초 샀을 때(장부가)보다 낮아도 적정 손실을 반영한 뒤 바로 매각을 추진한다는 얘기다. 금융위는 기업 매각 때 임직원 면책권도 줄 방침이다. 연도별 매각 실적을 경영평가에 반영해 산은이 자회사 매각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하기 위한 방안이다.
이처럼 금융위가 산은 자회사를 신속히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긴 했지만 시장에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본다. 대부분 산은이 지원한 자회사의 업황이 여전히 좋지 않은데다 적정손실을 얼마나 반영할지 내부 기준도 없어서다.
실제로 대우조선의 경우 몸집이 너무 크고 업황도 좋지 않아 매수자를 찾기 쉽지 않다. 산은 관계자는 “그동안 자회사를 팔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며 “이번에 적극 매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 회장과 외부전문가 등이 포함된 ‘자회사관리위원회’를 꾸리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자회사관리위원회는 산은 퇴직임원이 자회사로 이동하는데 따른 각종 부작용을 막기 위해 원칙적으로 필요한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 퇴직임직원의 재취업은 제한할 방침이다.
산은, 중견기업 지원금 30조원까지 늘린다
반면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조선·해운과 같은 경기민감산업에 대한 여신은 전면적인 재점검토에 들어간다. 정부 지원이 중소·중견기업에 집중되는 만큼 앞으로 대기업을 포함해 조선·해운과 같은 경기민감산업에 대한 정부 대출은 확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기민감산업에 대한 산은·기은 대출 규모는 55조4000억원으로 은행권 전체 대출(168조3000억원) 중 32.9%를 차지한다.
정부는 경기민감산업에 대한 금융권 전체 지원규모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다. 11월부터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은행권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현재 부실 징후가 있는 웬만한 기업은 구조조정 대상으로 걸러지기 때문이다. 손병두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기간·방위산업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정부 내 협의체를 통해 구조조정 추진방향을 정하고 이번에 구조조정 대상이 정해지면 채권은행이 채권회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이와 함께 조만간 구조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대적인 조직개편에도 나선다. 제2의 대우조선 사태가 나지 않도록 구조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업종과 기업군을 상시 점검하는 체계를 갖추고 기업의 여신심사를 강화하기 위해 신용평가부도 신설한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정부가 산은 자회사 매각에 나서는 건 투자 선순환 측면에선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산은 주도의 구조조정 역할을 강화하는 건 또 다른 관치금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