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홍콩 누아르영화 그리고 우산혁명

  • 등록 2014-10-08 오전 6:00:01

    수정 2014-10-08 오전 6:00:01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1990년대는 홍콩 ‘누아르 영화’의 전성시대였다. 1997년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 사람들이 느낀 불안이 우울한 뒷골목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영웅본색’ ‘아비정전’ 같은 수작들이 쏟아진 것도 이때였다.

20년도 더 지난 얘기를 꺼낸 것은 요즘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비슷한 불안감을 읽을 수 있어서다. 20년전에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었다면 최근 상황은 반환 후 걱정했던 미래가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이른바 ‘우산혁명’으로 불리는 이번 민주화 시위는 2017년 예정된 행정장관 선거에서 중국 입맛에 맞는 인물로 사실상 입후보를 제한하는 조치가 도화선이 됐다. 홍콩 시민이 반환 당시 약속했던 홍콩 민주체제를 보장하라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사실 중국 정부는 고도의 자치권을 인정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왔다. 홍콩인들도 중국의 정치적 간섭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여겨왔다.

그러나 시위가 정부청사를 봉쇄할 만큼 일파만파로 커진것은 중국 반환후 홍콩인들이 느끼는 정치·경제적 좌절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홍콩 시민의 삶은 최근 십 여년 사이 팍팍해졌다. 중국인들이 홍콩으로 몰려들며 집값이 뛰었고 일자리 잡기도 녹록치 않다. 리카싱(李嘉誠) 청쿵그룹 회장처럼 세계적 갑부가 등장했지만 대다수 서민들은 집 한 채 없이 전전하고 있다. 부(富)가 소수에 집중된 데 따른 것이다.

게다가 홍콩의 경제적 활용가치는 차츰 떨어져 위기감이 증폭됐다. 상하이 등 중국 동부지역 발전으로 홍콩의 매력은 갈수록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기업도 중국 본토와 비교해 비용이 더 드는 홍콩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홍콩 미래는 더 암울해 질 것이다.

그나마 홍콩 중장년층은 반환 이후 대(對)중국 교역창구 역할을 하며 수혜를 입었다. 그러나 시위의 핵심인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은 ‘도움’이 안되는 중국이 군림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이 꿈꿔온 미래가 올 지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베이징은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암담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젊은층의 노력이 20여년 전 누아르처럼 비루한 결론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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