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낙하산 천국, KB의 운명

  • 등록 2017-09-07 오전 6:00:00

    수정 2017-09-07 오전 7:28:06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금융산업은 불완전 경쟁산업이다. 정부로부터 발급받은 라이선스, 그에 따른 독과점적 지위만 획득하면 별다른 노력없이 꿀단지(지대·rent)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리그, 낙하산 인사는 공정한 경쟁 없이 이 꿀단지를 향유하려는 권력의 ‘갑(甲)질’이다. 물밑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권력의 암투, 반칙과 변칙의 파노라마다.

2013년 1월 대통령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인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KT, 포스코, KB금융…. 전 정권으로부터 인계받아야 할 리스트에 정부 지분 1%도 없는 민간기업들이 대거 들어 있었던 거다. KB금융은 외국인 지분 60%가 넘는 다국적 금융기관. 하지만 정권의 전리품으로 분류되며 정치권력의 놀이터로 변질된지 오래다.

KB금융이 정권의 노획물이 된 건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1년 국민·주택 합병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산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주택의 김정태 행장이 초대 통합 은행장에 오르면서다. 청와대 실세와의 학연이 결정적이었다. 호남정권에서 광주일고 출신이 득세하던 바로 그 시절이다. 정치권력이 국민은행 최고경영자(CEO) 인선에 노골적으로 관여하는 관행. 선례가 만들어지니 관례로 굳어졌다.

KB금융 10년은 외풍의 잔혹사다. 초대 황영기, 2대 어윤대, 3대 임영록. 이들은 이헌재사단, 고려대 인맥, 모피아를 각각 등에 업고 화려하게 등극했다. 그러나 모두 당국의 문책이나 내부 갈등을 이유로 불명예 퇴진의 우를 범했다. 물밑 치열한 파워게임을 예단할 수 있는 대목이다. 코드인사, 정실인사의 전형적인 폐해다.

KB금융은 낙하산 천국이다. CEO는 물론 감사나 주요 임원까지 줄줄이 타고 내려온다. 2013년 이후 4년간 임원급 이상 낙하산 인사가 가장 많은 금융기관이 바로 KB다.(국회 정무위 국감자료) 자연히 능력과 전문성 있는 인재는 뒤로 밀리고 정치적 연줄에 따라 신분이 상승하는 불공정과 비효율이 비일비재하다. 정치권 줄대기, 조직의 경쟁력은 약화된다.

KB금융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외압을 막고 독립적인 금융그룹으로 도약하느냐, 권력실세들의 안식처로 계속 남는냐는 갈림길. 관전포인트는 윤종규 회장의 연임이다. 그는 2014년 KB사태 이후 우여곡절 끝에 첫 내부 출신 CEO에 올랐다. 임기 내내 끊임없는 정치권력의 견제 속에서도 무너진 조직을 재건했다는 평이다. 그룹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KB를 리딩뱅크로 이끌었다. 그래도 연임을 낙관하는 건 이르다. 권력실세와의 끈끈한 연이 없다는 점은 결정적인 약점(?)이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 금융기관의 회장 인선 기준이 능력과 실적보다 정치적 연줄이라는 점은 금융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이사회보다 권부의 움직임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우울한 현실. 관치의 망령이 떠도는 상황에서 ‘정권에 줄 대지 않으면 CEO가 될 수 없다’는 금융계의 속설을 이번에는 뒤집었으면 한다. 정권 스스로 적폐로 규정한 관치금융 척결은 낙하산의 근절 없이는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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