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아르헨티나에 비상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약탈 등 현지 소요사태는 수그러들고 있다고 KOTRA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이 22일 전해왔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장이 전해온 전지 분위기를 소개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장 보고]
이곳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직 현지시간으로 21일 금요일 저녁입니다. 어제까지 시위대와 경찰간의 심한 충돌로 사망 23명 등 사상자도 많이 나고 주요 상가 거리에서는 상점 유리창을 깨고 상품을 훔치는 약탈 행위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조용해졌습니다.
20일 저녁 델라루아 대통령의 사임발표로 시위대들의 요구사항이 모두 관철되었고 노조가 주도하였던 총파업도 오늘 정오를 기해 취소되었기 때문에 시위대들이 시위를 계속할 명분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다시 예전과 같은 평온한 하루로 돌아간 것처럼 아침부터 길거리 까페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일부러 대통령 청사 앞과 시내 중심가를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어제 티브이 화면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충돌 장면을 짐작할 수 있는 잔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시내 중심가를 관통하는 대로 한가운데에 오벨리스크 첨탑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아르헨티나가 축구 경기를 이기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곳입니다. 어제 이곳에서 심한 충돌이 있었고 자동차도 한 대 불탔습니다. 그 옆의 맥도날드 가게도 불탔고 근처 은행마다 모두 유리창이 깨지고 현금출납기가 뜯기고 부서져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경찰들이 곳곳에 배치된 가운데 시의 청소원들이 모두 나와 청소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큰 행사를 치른 뒤 청소하는 모습과 별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렇게 평온을 찾게 된 것은 그나마 무능과 지도력부재로 비판을 받던 델라루아 대통령이 일찍 물러나 주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4년 임기로 뽑은 대통령을 반대당들과 노조들이 흔들고 또 그를 뽑은 국민들이 다시 쫓아내게 된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르헨티나는 과거 선진국의 하나였다고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인데 지난주부터 경찰이 수수방관하는 가운데 상점 약탈행위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수치를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물러난 델라루아 대통령은 지난 12월10일 취임 2주년을 맞아 자기는 전 메넴 대통령이 저지른 불들을 끄고 다니는 소방관역할을 하다가 2년이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는데 경제위기에 모든 사람들이 쳐다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지도자가 2년 되어 한다는 소감이 이러니 정치권과 언론에서 모두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한나라 국가경제는 아무리 망해도 없어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빠른 성장을 하는 것이고 잘하면 선진국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데 무능한 지도자를 만나면 국가경제만 좀먹다가 이렇게 물러나는 것 같습니다. 아르헨티나로서는 비극이고, 국민들만 희생이었습니다. 페론주의를 회상하는 국민들과 노조의 책임도 크고 당초 잘못은 메넴 정권부터 시작된 것이므로 델라루아 대통령만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아르헨티나의 어려운 국면을 전환시켜줄 수 있는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19일 델라루아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담화를 발표하자 이를 듣던 시민들이 거리 밖으로 뛰쳐나와 남비를 두들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나라는 파업 때와 같이 정부에 불만이 있으면 남비 두드리기를 하는 관습이 있는데 이날 시내 전체 모든 거리마다 남비 두드리기와 경적 울리기가 있었습니다. 누가 지시할 것도 없이 아이들까지 모두 나와 남비와 프라이팬을 들고 두드렸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거리로 나와 대로변에 모여 군중을 이루면서 남비를 두드리며 행진하고 또 많은 사람들은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청사 앞으로 모였습니다.
밤 2시경 경찰이 최루탄을 쏘면서 해산하기까지 수천 명이 시내로 모였습니다. 이들은 약탈자도 아니고 일반 시민들이었으니 시민들이 등돌린 정부가 어떻게 하루인들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날은 시위가 격화되어 시위대와 경찰충돌로 대통령 청사 앞에서만 4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이나 해결방안 하나 제시하지 못하고 기껏 거국내각 용의가 있다는 발표를 하자 야당에서 단번에 거절하였고 대통령은 사면초가에 몰렸음을 느끼고 결국 손을 들게된 것입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면 IMF는 어제 아르헨티나가 폭동과 소요사태를 맞은 것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IMF나 미국인들 시각으로 보면 막대한 외채규모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이라든지 최소한도 국가경제 위기를 맞아 긴장감을 보여주는 것조차 없이 계속해서 재정적자를 늘려만 가는 아르헨티나 정부나 정치권의 행태가 마음에 안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약속했던 구제금융지원을 중단한다면 아르헨티나는 디폴트로 가던지 아니면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긴축강도를 높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봐야 됩니다.
이처럼 드라마틱하게 하루 이틀 사이에 까발로 경제장관도 물러나고 대통령까지 물러나고 사상자가 발생하는 소요사태가 일어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그래도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스스로 긴축강도를 높이도록 IMF는 정부의 목을 조였는데 그 결과는 건설적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결국 소요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니까 IMF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디폴트 위기에 몰리자 아르헨티나 정부는 12월초에 예금인출제한 조치를 취했는데 이조치가 고비였던 것 같습니다. 평생 모았던 자기 돈을 찾아 쓸 수도 없다는 사실은 그동안 장기간 경제침체에도 참고 지내던 시민들의 울분을 폭발시키게 한 것입니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배경은 갚을 능력이 없는 1320억불의 외채,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연간 100억불을 넘는 재정적자, 달러화에 묶인 태환정책 때문에 현지화가 과대 평가되어 잃어비린 산업경쟁력에다가 정치권 및 사회지도층의 부패가 심해지고 경기침체가 3년반 넘게 계속된 탓입니다.
8년 이상 집권했던 메넴 정부는 자유경제 정책이란 이름아래 돈 될만한 국영기업체는 모두 팔아 많은 외화를 끌어 들였지만 생산성 증대부문에는 투입되지 못하고 모두 사라졌습니다. 민영화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가 늘어나자 국제금융기구에 손을 벌려 이미 메넴 정부 때부터 아르헨티나는 IMF 체제에 들어갔으며 외채로 재정을 운영해 온 것입니다. 외채원리금 상환 때문에 경제성장에 부담이 늘어났는데 97년 말 이후 아시아 경제위기와 브라질 경제위기로 아르헨티나 경제는 악화 일변도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빈털터리 국고를 넘겨받은 델라루아 대통령은 2년간 안 간 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으며 IMF 요구 때문에 취임기간 중 9번의 긴축조치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마다 근로자와 서민층은 희생양이 되었는데 특히 올 들어서는 급여와 연금지급액을 삭감하여 일반 국민들의 반발이 커지게 된 것입니다.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내수가 죽고 공장이 문을 닫았으며 외국인투자가들이 자본을 철수하면서 국내 실업율은 잠재실업을 포함 35%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에 이어 폭발된 사회위기 사태는 대통령까지 물러났기 때문에 최악 상황을 거쳤으므로 이제 진정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봅니다. 경제위기의 해결방법은 디폴트가 될 것인지, Devaluation이 될 것인지, 아니면 달러화가 될 것인지, 흔한 말로 3D중의 하나를 택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평가절하와 달러화를 병행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곳 은행들은 문을 닫았습니다. 성탄절 지나서 문 열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시중에서는 평가절하 단행을 위해 문을 닫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가절하가 되든 달러화가 되든 국제평가기관 등 외신에서는 아르헨티나가 곧 디폴트를 맞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델라루아 대통령은 정권유지 때문에 억지로 디폴트를 막고 있었는데 이제는 막을 필요도 없게 되었고 사실 막을 능력도 없습니다. IMF나 미국이 추가자금지원을 한다면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하므로 조만간 디폴를 선언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