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자 10명 중 3명꼴로 다주택자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다주택 보유 억제로 집값을 안정시키려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정작 공직사회 내부에서조차 약발이 거의 먹히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어제 공개한 ‘2019년 정기 재산변동사항’에 따르면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86명 가운데 25명(29.1%)이 다주택자로 나타났다. 심지어 5채를 신고한 경우도 없지 않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2017년 8·2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사는 집이 아니라면 처분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호소했지만 공직자들에겐 잔소리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특히 부동산정책을 담당하는 국토부와 그 산하기관에서는 다주택자 비율이 무려 40.1%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긴 꼴이다.
다주택자인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간부들이 각자의 다주택 사유를 일일이 해명한 것도 이례적이다. 국민의 불편한 시선을 의식했겠지만 이들의 해명이 속 시원한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자녀 교육 목적에서부터 부모 거주, 주말농장 운영 등 여느 다주택자와 다를 게 없는 구차스런 변명이다. 지금껏 다주택자는 무조건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몰아대던 청와대에서 간부들이 억울하다며 해명에 나선 모습은 애처롭기 짝이 없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부동산 투기의혹에 휩싸인 것부터가 당혹스럽다. 그가 서울 흑석동의 26억원짜리 건물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것도 청와대 입성 5개월 만인 지난해 7월의 일이다. 국민들 앞에서 부동산 억제대책의 당위성을 늘어놓으면서도 뒤로 돌아서선 재개발지역 건물 ‘몰빵 투자’에 나섰다는 자체가 부적절한 선택이었다. 무주택자였던 입장에서 할 말이 적지 않겠으나 일반 국민들의 눈높이에 어긋나는 처사다.
문재인 정부는 장관급 인사와 블랙리스트, 민간인 사찰 의혹 등으로 ‘내로남불’ 논란을 빚어 왔다. 그중에서도 국민의 재산권이 걸린 부동산은 또 다른 문제다. 고위 공직자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투기에 열을 올리면서 힘없는 국민에게는 세금과 대출을 무기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대서야 어느 누가 정부를 믿고 따르겠는가. 국민을 더 이상 바보로 알아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