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마다 신용대출 규제, 비 오는데 우산 뺏을건가

  • 등록 2020-11-24 오전 6:00:00

    수정 2020-11-24 오전 7:50:23

은행들이 신용대출 줄이기에 속속 나서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다음주부터 신용대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은행들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NH농협은 이미 지난주부터 신용대출 한도와 우대금리 축소에 나섰다. KB국민은행은 어제 신용대출에 강화된 소득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고, 그 밖의 은행들도 이번 주 안에 신용대출 제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이번 신용대출 규제는 개인별로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에 연간 소득 대비 총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DSR) 40%(비은행권은 60%)를 적용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신용대출뿐만 아니라 주택담보대출 등 모든 부채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이 비율을 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연간 소득이 8천만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자가 규제 대상이라고 했지만, 은행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규제 적용의 범위를 중·저소득자 쪽으로 넓히고 있다. 예를 들어 KB국민은행은 소득과 상관없이 신용대출이 1억원을 넘기만 하면 DSR 40%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은행들이 금융당국이 설정한 기준보다 더 인색한 기준을 채택하면서까지 신용대출 조이기에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올해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의 부작용으로 신용대출 수요가 급증한 탓에 은행별로 금융당국의 통제를 받는 신용대출 규모가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은행들로서는 연말 결산에 대비해 올해 대출 관련 장부상 숫자를 문제가 없도록 적절히 맞춰놔야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번 신용대출 규제는 금융당국이 밝힌 의도와 달리 중·저소득 계층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로 수입이 줄어 살림살이에 지장이 생긴 사람들이나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로 내집마련 계획에 차질이 생긴 사람들은 신용대출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런 이들에게 이번 신용대출 규제는 비 오는데 우산을 빼앗아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금융 당국이 걱정해야 할 만큼 은행들이 부실한 상태에 빠진 것도 아니다. 이번과 같은 일률적 신용대출 규제는 은행의 독자적 심사기능과 자율경영을 훼손할 소지도 있다. 보다 시장친화적이고 비충격적인 방식의 금융정책과 은행 건전성 관리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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