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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이 3015㎡밖에 안 되고 밑이 불룩한 자루 모양의 이 논에는 지난달 추수 때 오간 콤바인 바퀴 자국들 사이로 벼 밑동들이 바싹 말라 있었다. 논 위를 걷자 메뚜기들이 여기저기서 폴짝 뛰며 달아났다. 보기에는 그냥 작은 논일 뿐이지만 4~5월이면 이곳은 온통 하얀 매화마름 꽃밭이 된다. 논 아래서 겨울잠을 잔 씨앗들이 따뜻한 봄볕과 물기를 받으면 갑작스레 눈을 틔우고 자라고 꽃을 피워 논을 뒤덮는 것이다. 꽃이 질 때가 되면 모내기가 시작된다. 같은 장소에서 매화마름과 벼가 시기를 달리하며 공존하는 것이다.
이 논은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청년회가 맡아 관리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청년회 이준성(40) 회장은 "논을 갈 때나 이앙을 할 때 거추장스러운 풀이긴 하지만 꽃이 하얗게 뒤덮은 모습은 참 예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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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마름은 꽃이 물매화와 비슷하고 잎은 붕어마름같이 생겨 갖게 된 이름으로 미나리아재비과의 야생 식물이다. 환경부에 의해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됐다. 국내 서해안 일부 지역과 일본 등지의 늪이나 논 등에 산다.
이 단체와 매화마름 군락지와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흔했던 매화마름은 습지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져 한때 국내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98년 한 전문가에 의해 강화도에서 발견되면서 보존운동이 시작됐다.
발견 당시 이곳은 강화군의 경지정리사업으로 곧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에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이곳을 보존 대상 후보지로 선정한 뒤 주민들에게 생태적 중요성을 알리고, 군청을 찾아가 경지정리사업 대상에서 빼 줄 것을 요구했다. 2002년 대상 지구에서 빠지자 내셔널트러스트는 토지 소유자 사재구(68·초지리)씨에게서 일부를 기증받고, 나머지 2400여㎡는 시민 성금으로 사들여 시민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매화마름은 오염이나 농약에 약해 이 논에서는 철저한 친환경농법이 시행되고 있다. 주변 논 32만3400여㎡에서 농사를 짓는 30여 농가도 역시 우렁이 등을 이용한 친환경농법을 쓴다. 매화마름 논에서 나오는 한해 평균 1100㎏의 쌀은 '매화마름쌀'이란 상표가 붙여져 80㎏ 한 가마에 40만원이다. 이 판매수익금은 모두 군락지 보존·관리사업에 쓰인다. 주변 논에서 나는 쌀도 한 가마에 23만7000원이다. 가마당 17만6000원인 일반 쌀에 비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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