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4th 커버스토리]M&A 오너들 `축배와 독배` 사이

  • 등록 2011-08-16 오전 9:14:23

    수정 2011-08-16 오전 9:14:23

마켓in | 이 기사는 08월 16일 08시 44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대한통운(000120) 인수 본입찰 마감일이었던 지난 6월 27일.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실무팀으로부터 최종 보고를 받았다. 금액별로 인수 가능성을 담은 시나리오를 설명한 실무팀은 최종결정권자의 마지막 선택을 기다렸다. 본 입찰 마감시한 직전까지 서류를 검토하며 장고를 거듭한 이 회장의 선택은 가장 강력한 시나리오였던 주당 21만5000원. 실무팀이 경우의 수를 따지지 않고 확실한 승리가 보장된다고 보고한 금액이었다. CJ(001040)가 제시할 수 있는 최고치를 주당 20만원 선으로 판단한 포스코(005490) 컨소시엄은 비가격요소 우위를 바탕으로 주당 19만1500원을 제시했다. 결과는 CJ의 완승이었다.

▲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승리한 이재현 CJ 회장
대한통운 매각입찰의 최대 걸림돌인 금호터미널 문제가 분리매각으로 결론난 지난 5월말. 곳곳에서 대한통운 입찰 열기가 수그러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유력 인수후보자로 거론됐던 롯데가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하지만 대한통운 입찰에 관여하고 있던 관계자는 "흥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주당 인수가격이 20만원은 넘어설 것"이라며 "내기해도 좋다"고 장담했다. 당시 대한통운 주가는 8만원대 후반에서 9만원대 초반을 오르내렸다. 너무나 먼 얘기처럼 들렸던 주당 20만원은 인수의지가 강력했던 비더(bidder)에 의해 현실이 됐다.

지난해 현대건설부터 올해 대한통운까지 최근 국내에서 진행된 대형M&A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기업규모나 자금력면에 열세가 분명했던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로 역전승을 일궈냈다. 그것도 일반적인 사적 M&A에 비해 비가격적 요소의 평가비중이 높은 탓에 누가봐도 다윗이 불리한 공공딜(Public deal) 성격의 M&A에서 일궈낸 승리였다. 승리의 원동력은 압도적인 가격이었고, 가격 결정권자는 반드시 인수해야한다는 오너의 의지였다.

CJ 관계자는 "이 회장이 외부에는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룹 성장과 연계된 M&A딜에서는 직접 실무진에게 연락해 현안을 챙길 정도로 정도로 적극적"이라며 "특히 대한통운 인수는 그룹이 대형M&A를 통해 외형 확장을 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 과감한 결단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지위임도 불사

수년 전 계열사 매각을 추진하던 E사 실무팀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유력 인수후보였던 C사 회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내용은 `내 사인이 담긴 서류 보낼테니 가격은 그쪽에서 알아서 적어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백지 위임이었다. 깜짝 놀란 E사 실무팀은 가격을 적어서 보내진 못했지만, 그만큼 인수후보기업 오너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결국 C사는 경쟁자에 비해 압도적인 가격을 써내며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M&A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오너형 기업의 경우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가능해 비오너형 기업에 비해 막판 극적인 전략 수립이 가능하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본다. 이는 오너형 기업(CJ)과 비오너형 기업(포스코)간 대결로 압축됐던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포스코의 M&A 역사에서 대내외적으로 인수 타당성을 설득해야하는 과제는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2000년대 초반 한국통신 지분매각과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도 그랬다. 대한통운 인수전 관계자는 "안팎으로 회의론에 공격받던 포스코가 막판 삼성SDS와의 컨소시엄 구성이라는 깜짝 변수를 연출하며 인수 명분 보강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는 되레 이재현 회장의 승부욕을 자극한 꼴이 됐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11월 현대그룹이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현대건설(000720)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도 오너의 벼랑끝 전술이 발휘된 대표적 사례다. 현대그룹은 인수전 막판 전략적투자자 M+W의 불참이라는 돌발 악재에도 불구하고, 100% 가까운 프리미엄을 얹어 5조5100억원이라는 파격 베팅으로 현대차(005380)그룹을 제치고 우선인수협상자에 선정됐다.

당시 현대그룹은 그룹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현대건설 보유 현대상선(011200) 지분 때문에 인수 자체가 그룹의 운명을 쥔 선택이었다. 비록 자금 증빙 논란에 휩싸이며 우선협상자 지위를 현대차에 넘겨줬지만, 반대급부로 그룹의 경영권은 어느 정도 보장받았다.

현대건설 딜에서 세간을 놀래킨 것은 비단 현대그룹의 베팅액 뿐만 아니었다. 현대차그룹 역시 자문을 맡은 삼일회계법인이 산정한 적정 인수가격 4조3000억원을 뛰어넘는 5조1000억원을 제시했다. 그만큼 현대차 역시 오너의 인수 의지가 높았다는 얘기다. 현대건설 인수전이 국내 대형 M&A 역사상 유례가 없는 우선협상대상자 교체라는 파동을 겪은 배경에는 현대그룹은 물론 현대차 오너의 절박함이 담겨 있었던 셈이다.

◇축배로 든 잔 독배였다

파격적 베팅이 언제나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었다. 축배로 알고 마신 잔은 때로 치명적인 독배가 되기도 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2007년초 직원들에게 보낸 신년사를 통해 `아름다운 비상(飛上)`을 강조했다. 두산·한화·유진·삼환·프라임 등과 맞붙덨던 대우건설(047040) 인수전에서 승리한 직후였다. 하지만 금호의 날개짓은 높이 오르지 못했다. 금호가 써낸 대우건설 인수가격 6조4000억원 가운데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은 절반에 못미치는 2조9000억원. 대신 금호는 나머지 3조5000억원을 지원하는 재무적투자자(FI)에게 3년 뒤인 2009년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1500원이 안되면 차액을 보전해주겠다는 풋백옵션을 맺었다. 당시 M&A시장이 평가했던 대우건설 지분의 적정가치는 3~4조원대였다. 두배에 가까운 프리미엄에 베팅한 셈이다.

20008년 금호그룹이 한진·현대중공업·STX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4조1000억원에 인수한 대한통운(000120)도 마찬가지였다. 시장가치는 2조원 수준이었지만, 박삼구 회장은 또한번 재무적투자자들과 풋백옵션을 맺으며 풀배팅했다. 당시 금호그룹이 2년간 자신들의 자산(12조원)에 육박하는 총 10조원을 쏟아 부으며 연기푸 대형 M&A를 성사시킨 대가는 인수기업 재매각과 함께 모기업은 워크아웃이라는 처참한 결과였다.

한화(000880)그룹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김승연 회장은 2008년 4월 그룹 전략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한화 재도약의 마지막 기회"라며 "반드시 M&A를 성사시키겠다"고 강조했고, 6개월 뒤 약속대로 대우조선해양(042660)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경쟁상대는 세계1위 조선업체이자 6조원대의 현금보유력을 자랑하던 현대중공업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로 한화의 자금 조달 사정이 악화되면서 3개월 뒤인 2009년 1월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당했다. 2006년 이랜드의 홈에버 인수, 2007년 대한전선(001440)의 남광토건 인수, 2008년 유진의 하이마트(071840) 인수도 결과적으로 모기업을 존폐 위기까지 몰고갔던 M&A였다.

◇야누스의 두얼굴

M&A딜에서 오너형 기업이 비오너형 기업을 상대로 언제나 승리를 독식하는 공식은 없다. 대표적 사례가 롯데다. 최근 수년간 오너형기업 가운데 가장 활발한 M&A를 펼쳐온 롯데는 유독 대형딜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대우인터내셔널(047050) 인수전에서는 포스코에 가격경쟁에서만 2000억원 이상 뒤지며 패배를 맛봤고, 2년전 오비맥주 인수전에서도 KKR에 승리를 내줬다. 상대는 비오너형 기업이거나 시너지를 가격에 파격적으로 반영하기 어려운 사모펀드(PEF)였다. 가격경쟁력만 놓고 보면 롯데가 아쉬울 것이 없는 상대였던 셈이다. 반면 이같은 M&A의 쓴 경험은 지난해 GS스퀘어·마트, 타이탄 등 조단위의 딜의 승리를 가져다주며 주력사업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하이닉스 인수전에서 맞붙은 최태원 회장(좌)과 강덕수 회장
국내 M&A시장은 또 한번 오너기업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000660) 인수전에서다. 공교롭게 인수후보기업인 SK(003600)STX(011810) 모두 M&A의 `명가` 혹은 `귀재`라 불리는 곳이다. 정확히는 M&A가 곧 이 기업들의 성장 역사나 다름없다. 섬유가 주력사업이었던 SK는 1980년 유공(현 SK에너지),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하며 그룹의 기반을 다졌다. 이후에도 신세기통신, 하나로통신, 인천정유 등을 인수하며 그룹 주력사업의 외형을 키웠다. STX 역시 강덕수 회장이 2000년 자신의 직장이었던 쌍용중공업(현 STX엔진) 지분을 인수한 후 2001년 대동조선(STX조선해양),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STX팬오션) 2007년 노르웨이 아커야즈(STX유럽) 등을 연거푸 사들이며 그룹 출범 10년만에 재계순위 10위권에 올려놓았다.

출사표를 던진 두 기업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냉혹하다. 통신·에너지를 기반으로한 SK와 조선·해양을 바탕에 둔 STX 모두 하이닉스 인수전은 경쟁자에 앞서 시장의 혹평과 맞서야하는 전쟁이다.

M&A는 두얼굴을 지니고 있다. 인수 후 성공적 시너지를 발휘할 경우, 오너에게는 매물의 숨겨진 가치를 발굴해냈다는 찬사가 쏟아진다. 반면 무리한 인수로 시너지는 커녕 그룹을 사지로 몰고 간다면 경영권마저도 위태로워 질 수 있다는 점을 불과 2년전에 금호가 증명했다.

M&A업계 관계자는 "CJ의 대한통운 인수도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며 "하이닉스 인수전 역시 누가 가져가느냐의 `승패`개념이 아니라, 인수후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느냐의 `생존` 개념의 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4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4호 마켓in은 2011년 8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81, bon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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