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 | 이 기사는 08월 16일 08시 44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
지난해 현대건설부터 올해 대한통운까지 최근 국내에서 진행된 대형M&A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기업규모나 자금력면에 열세가 분명했던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로 역전승을 일궈냈다. 그것도 일반적인 사적 M&A에 비해 비가격적 요소의 평가비중이 높은 탓에 누가봐도 다윗이 불리한 공공딜(Public deal) 성격의 M&A에서 일궈낸 승리였다. 승리의 원동력은 압도적인 가격이었고, 가격 결정권자는 반드시 인수해야한다는 오너의 의지였다.
CJ 관계자는 "이 회장이 외부에는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룹 성장과 연계된 M&A딜에서는 직접 실무진에게 연락해 현안을 챙길 정도로 정도로 적극적"이라며 "특히 대한통운 인수는 그룹이 대형M&A를 통해 외형 확장을 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 과감한 결단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지위임도 불사
수년 전 계열사 매각을 추진하던 E사 실무팀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유력 인수후보였던 C사 회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내용은 `내 사인이 담긴 서류 보낼테니 가격은 그쪽에서 알아서 적어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백지 위임이었다. 깜짝 놀란 E사 실무팀은 가격을 적어서 보내진 못했지만, 그만큼 인수후보기업 오너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결국 C사는 경쟁자에 비해 압도적인 가격을 써내며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M&A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오너형 기업의 경우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가능해 비오너형 기업에 비해 막판 극적인 전략 수립이 가능하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본다. 이는 오너형 기업(CJ)과 비오너형 기업(포스코)간 대결로 압축됐던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포스코의 M&A 역사에서 대내외적으로 인수 타당성을 설득해야하는 과제는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2000년대 초반 한국통신 지분매각과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도 그랬다. 대한통운 인수전 관계자는 "안팎으로 회의론에 공격받던 포스코가 막판 삼성SDS와의 컨소시엄 구성이라는 깜짝 변수를 연출하며 인수 명분 보강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는 되레 이재현 회장의 승부욕을 자극한 꼴이 됐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11월 현대그룹이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현대건설(000720)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도 오너의 벼랑끝 전술이 발휘된 대표적 사례다. 현대그룹은 인수전 막판 전략적투자자 M+W의 불참이라는 돌발 악재에도 불구하고, 100% 가까운 프리미엄을 얹어 5조5100억원이라는 파격 베팅으로 현대차(005380)그룹을 제치고 우선인수협상자에 선정됐다.
현대건설 딜에서 세간을 놀래킨 것은 비단 현대그룹의 베팅액 뿐만 아니었다. 현대차그룹 역시 자문을 맡은 삼일회계법인이 산정한 적정 인수가격 4조3000억원을 뛰어넘는 5조1000억원을 제시했다. 그만큼 현대차 역시 오너의 인수 의지가 높았다는 얘기다. 현대건설 인수전이 국내 대형 M&A 역사상 유례가 없는 우선협상대상자 교체라는 파동을 겪은 배경에는 현대그룹은 물론 현대차 오너의 절박함이 담겨 있었던 셈이다.
◇축배로 든 잔 독배였다
파격적 베팅이 언제나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었다. 축배로 알고 마신 잔은 때로 치명적인 독배가 되기도 했다.
20008년 금호그룹이 한진·현대중공업·STX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4조1000억원에 인수한 대한통운(000120)도 마찬가지였다. 시장가치는 2조원 수준이었지만, 박삼구 회장은 또한번 재무적투자자들과 풋백옵션을 맺으며 풀배팅했다. 당시 금호그룹이 2년간 자신들의 자산(12조원)에 육박하는 총 10조원을 쏟아 부으며 연기푸 대형 M&A를 성사시킨 대가는 인수기업 재매각과 함께 모기업은 워크아웃이라는 처참한 결과였다.
◇야누스의 두얼굴
M&A딜에서 오너형 기업이 비오너형 기업을 상대로 언제나 승리를 독식하는 공식은 없다. 대표적 사례가 롯데다. 최근 수년간 오너형기업 가운데 가장 활발한 M&A를 펼쳐온 롯데는 유독 대형딜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대우인터내셔널(047050) 인수전에서는 포스코에 가격경쟁에서만 2000억원 이상 뒤지며 패배를 맛봤고, 2년전 오비맥주 인수전에서도 KKR에 승리를 내줬다. 상대는 비오너형 기업이거나 시너지를 가격에 파격적으로 반영하기 어려운 사모펀드(PEF)였다. 가격경쟁력만 놓고 보면 롯데가 아쉬울 것이 없는 상대였던 셈이다. 반면 이같은 M&A의 쓴 경험은 지난해 GS스퀘어·마트, 타이탄 등 조단위의 딜의 승리를 가져다주며 주력사업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출사표를 던진 두 기업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냉혹하다. 통신·에너지를 기반으로한 SK와 조선·해양을 바탕에 둔 STX 모두 하이닉스 인수전은 경쟁자에 앞서 시장의 혹평과 맞서야하는 전쟁이다.
M&A는 두얼굴을 지니고 있다. 인수 후 성공적 시너지를 발휘할 경우, 오너에게는 매물의 숨겨진 가치를 발굴해냈다는 찬사가 쏟아진다. 반면 무리한 인수로 시너지는 커녕 그룹을 사지로 몰고 간다면 경영권마저도 위태로워 질 수 있다는 점을 불과 2년전에 금호가 증명했다.
M&A업계 관계자는 "CJ의 대한통운 인수도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며 "하이닉스 인수전 역시 누가 가져가느냐의 `승패`개념이 아니라, 인수후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느냐의 `생존` 개념의 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4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4호 마켓in은 2011년 8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81, bond@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