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회식비 내주고 자리 뜬 상사, 속에선 열불

"이것들아, 우리 땐 최루탄 연기로 피부 관리했단다"
  • 등록 2010-01-27 오전 9:41:00

    수정 2010-01-27 오전 9:41:00

[조선일보 제공] 회식 자리는 늦게 참석해서 빨리 빠져주는 것이 예의라고 하니 1차 끝물에 얼굴을 내민다.

걸어들어온 카드에 직원들은 손뼉을 치고 2차를 간다. 자리 예절은 있어서 늘 아저씨 자리는 정중앙 상전석이다. 거국적으로 쨍했더니 김 대리가 소극적으로 한마디 한다. "신입사원 술 잘 드시네. 어휴 근데 20대가 좋긴 좋다. 저 피부 탱탱한 것 좀 봐. 화장품 뭘 써요?"

그 질문을 받기 위해 천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얌전했던 신입이 말문을 연다. " 뭐 특별히 선호하는 브랜드는 없지만, 아이 크림과 에센스는 '비오텡'을 쓰고 스킨하고 로션은 모공관리에 탁월한 '츄리니크'를 쓰는 정도요? 겨울에는 '쇼넬'의 수분 크림을 썼는데 얼마 전부터 '띠올'에서 나오는 젤 타입을 썼더니 번들거리지 않아 좋더라고요. 대리님도 30대 피부치고는 관리 잘하셨네요."

신입의 말에 연방 어쩐지 저쩐지 하며 추임새를 놓던 김 대리가 얼씨구나 자진모리 휘모리로 화답한다. "나는 뭐 특별하게 관리하는 건 없어요. 그냥 세수를 조금 신경 쓰는 정도? 퇴근하면 우선 비누로 세안하고, 그다음에 폼 클렌징으로 각질 제거를 겸해서 세수 한 번 더 하고, 찬물로 마무리 세수를 하죠. 그런데 진짜 피부가 끝내주는 건 팀장님이에요. 서른 중반이 넘었는데도 완전 아기 피부라니까요."

다들 오도방정 깨방정을 오케스트라로 떤다. 팀장은 아이 크림은 이십대부터 발라야 한다는 등, 선크림은 겨울철 집에 있을 때에도 발라줘야 한다는 등 술집에 혹시 자외선이라도 쳐들어올까 봐 사주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말을 한다.

아니 대체 사내놈들이 무슨 화장품 타령이야. 화장품은 전국의 목욕탕에 공통적으로 비치돼 있는 영롱한 녹색 통의 '캐남'이면 다 되는 거 아니야? 등산 갈 때도 선크림 바르는 것이 어색해 죽겠는데 무슨 날마다 그걸 처바르고 앉아 있대? 말 한마디 안 하고 앉아 있는 것도 고역 중에 상고역이어서 옆의 여직원에게 묻는다. "그런데 저렇게 화장품을 신경 쓰면 피부가 좋아지긴 좋아져?"

여직원은 '헐!' 하는 신음을 애써 삼키며 대답해준다. "어머 그럼요. 그리고 요즘은 남자들도 피부 관리에 얼마나 신경 쓰는데요. 그리고 벌써 피부 톤을 보세요. 신경 쓴 것과 안 쓴 것은 완전 차이 나잖아요."

여직원의 왼쪽 검지는 아저씨 얼굴을, 오른쪽 검지는 신입직원 얼굴을 가리킨다. 모든 직원의 눈동자는 왼쪽을 향했다 오른쪽을 향한 후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수술 전과 수술 후의 사진까지 봤으니 앞으로 피부 관리에 더더욱 일로매진하겠다는 결의도 엿보인다. 서둘러 2차 계산까지 해주고 나오면서 아저씨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야 이것들아. 그런 좋은 거 있으면 샘플이라도 하나 갖다주면서 비교를 하든 구박을 하든 해라. 술 얻어먹는 건 부하니까 당연한 거고, 피부 거친 건 상사니까 당연한 거냐? 우리 땐 최루탄 연기로 피부 관리했어, 이 나쁜 쌍쌍바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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