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제국 시절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는 ‘12지번 원숭이’(사진=통도사성보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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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병신년(丙申年)은 12지신의 아홉번째 동물인 원숭이의 해다. 육십갑자상 갑·을은 청색, 병·정은 적색, 무·기는 황색, 경·신은 백색, 임·계는 흑색을 의미해 올해는 천간의 3번째인 병(丙)과 지지의 신(申)이 만나 병신년이 된다. ‘병’이 색으로는 붉은색을 뜻해 ‘붉은 원숭이의 해’로 부르기도 한다. 동양의 민속학에서 원숭이는 시각으로는 오후 3시에서 5시, 방향으로는 서남서, 달로는 음력 7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며 시간신이다.
원숭이는 주로 열대 숲에 분포해 한반도에는 살지 않았다. ‘삼국유사’에 이차돈이 순교했을 때 ‘원숭이가 떼 지어 울었다’는 기록도 보이지만 국내에서 원숭이의 생태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국토지리원에 따르면 전국 140만개의 지명 중 원숭이에서 유래한 곳은 8개밖에 없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참고로 12지 중 ‘용’과 관련한 지명은 1261개, 말이 744개, 호랑이가 389개 등이다.
하지만 한자의 전래 등 중국의 문물이 들어왔던 삼국시대 이후부터 원숭이는 우리 민속 안에 자리잡았다. 특히 통일신라시대부터 원숭이상이나 조각·그림이 무덤의 호석이나 부도, 고분벽화 등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원숭이가 영장류에 속하며 가장 영리한 동물로 꼽히는 만큼 민간속담에는 원숭이를 빗대 재주를 과신하거나 잔꾀를 경계하는 내용이 많았다. 취중에 정신 못 차리는 사람을 보고 ‘원숭이 낯짝 같다’거나 재주만 믿고 신중치 못한 사람을 두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한 속담이 대표적이다.
| 봉산탈춤의 원숭이탈(사진=국립민속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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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탈춤에서는 원숭이가 등장한다. 양주별산대 제6과장 노장춤, 제2거리 신장수놀이를 비롯해 송파산대놀이의 일곱째 마당 신장수, 강령탈춤의 둘째 마당 원숭이춤, 은율탈춤 등에 등장해 대사도 없이 사람흉내만 낸다. 탈춤에 나오는 원숭이는 대부분 인간의 외설스럽고 음란한 행위를 흉내 내면서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비행을 풍자와 해학으로 폭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원숭이가 잡신이나 잡귀로부터 건강과 부귀영화를 지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특히 중국의 고전인 ‘서유기’에서 삼장법사를 도와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손오공이 바로 원숭이다. 이런 영향을 받은 뒤로는 국내 사찰이나 궁궐에서도 원숭이상을 귀신과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로 많이 세웠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을 ‘단장의 슬픔’으로 표현하게 된 배경에도 원숭이가 있다. 새끼를 잃은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끊어져 있다는 것에서 ‘단장의 슬픔’이 유래했다. 그만큼 모성애가 뛰어난 동물이라는 의미다. 고려의 청자나 조선의 백자 등에서 연적·수적, 작은 항아리에 원숭이 어미와 새끼를 묘사한 작품이 많은 것도 ‘자식사랑’을 염원한 사대부층의 바람을 담은 것이다. 민화에서는 ‘서유기’의 손오공이 3000년 만에 열리고 300년이 지나야 익는다는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은 것을 빗대 ‘장수’의 상징으로 쓰였다. 이런 이유로 민속학에서 ‘잔나비띠’라 불리는 원숭이띠 사람들은 재주와 정이 많고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다.
| 조선 후기 장승업이 그린 ‘송하고승도’의 일부. 소나무 줄기에 걸터앉은 노승에게 불경을 두 손으로 바치는 원숭이를 묘사했다(사진=국립민속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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