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대는 ''갈치 양복''의 원조는?

-이 시대의 알 수 없는 패션 트렌드-
[박은주·신정구의 ''무리한 농담'']
  • 등록 2007-07-12 오전 11:19:00

    수정 2007-07-12 오전 11:19:00


 
[조선일보 제공] 스키니: 오늘 문득 청바지를 입다가 이런 생각이 듭디다. ‘내가 이 스키니진을 언제까지 입을 수 있을까? 마흔? 미친 거 아냐? 서른 다섯? 아냐 그것도 주책이야…’라고 생각하다 보니 이미 저는 서른 다섯이 넘었다는 거.

통바지: 그거 알어? 그대가 스키니 진<사진>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광화문에 나타나 날 아는 척 하면, 어디 얼굴 가릴 전단지라도 하나 없나 하는 심정이야. 입는 사람 힘들고, 보는 사람은 식은 땀 나는 그 스키니 진, 대체 왜 입는 거니?

스키니: 마른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평생 가슴에 한처럼 품고 살다 그게 유행이라니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요즘 패션잡지에서 스키니 유행은 끝났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입영통지서 받는 기분이에요 참! 참고로 저는 절대 유행 땜에 스키니진을 입는 게 아니랍니다… 라고 말하고 보니 역시나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던, 듣고 나서 뭔가 한참 허전했던 누군가의 변명이 생각나네요.

통바지: 유행에 대한 집착이 카피를 만들고, 그 카피력이 우리나라 언니들을 멋쟁이들로 만들고, 더불어 한국의 디자인을 끌어 올린 것도 사실이지. 하지만 문제는 한다하는 디자이너의 쇼에서도 그런 게 보여지는 게 문제가 아닐까. 서울 컬렉션이 파리나 밀라노보다 늦은 걸 두고도 ‘베낄 시간을 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까. 우리 디자인파워, 놀라울 만큼 훌륭하지만 정말 파격적으로 베낀 것들도 너무 많단 주장이야. 때론 혐의를 벗기 위해 질 샌더같은 깔끔한 라인에 프릴 붙이는 이상한 행동으로 표절 혐의를 벗는 분들도 생겨나고.

스키니: 마치 표절곡 시비와 비슷한 케이스네요. 4소절 이상 일치하는 부분이 있으면 표절이고 그 이하면 표절이 아니라는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 애매모호한 기준처럼 말이죠. 하지만 ‘패션=양장’이라는 고정관념은 결국 뭘 해도 흉내내는 것 같다는 선입견을 주는 건 아닐까요?

통바지: 어맛 의상협찬 받는 데 있니? 너무 옹호한다.

스키니: 저는 이렇게 나름대로 패션피플을 자처하며 밑도 끝도 없이 옹호하는데 막상 한국패션계에선 약간 절 거부하는 분위기더군요. 패션에 대한 나쁜 선입관만 준다면서.

통바지: 표절도 일종의 패션일까. 외국 디자이너들도 베끼는, 그들 용어로는 영감을 받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아. 천에 스포티한 줄무늬를 넣어 가죽에 대는 건, 발리가 먼저인지, 구찌가 먼저인지 샤넬이 먼저인지 인제 구분도 안된다.

스키니: 최근엔 크리스 반 아쉐(Kris Van Assche)나 안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사진)처럼 누가 미리 읽어주기엔 어떻게 읽는지도 헷갈리는 디자이너들의 열풍이 못지 않아요. 만들다 만 것 같거나, 소매 있을 곳에 주머니가 있는 아방가르드한 디자인들이죠. 그건 색다른 창조라기 보단, 만들다 확 중단한 데서 오는 일종의 충격일 뿐이죠. 완성하지 않은 것으로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한다고나 할까? 요샌 오히려 오리지널에 대한 새로운 기득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는 게 전 더 재미있어요. 지난해부터 패션계는 본격적으로 실버와 메탈이 핫 트렌드인데, 몇 년 전부터 세상의 모든 실버와 골드를 사랑했던 패션지 기자는 자기가 그 유행의 선두주자이며 오리지널이라 주장하더라구요.

통바지: 원조는 카바레 아니니? 신바람 이박사님이나?

스키니: 로보캅일수도….(지난주에 이어 2회나 연속 등장한 로보캅)

통바지: 그런데 난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구찌 모델같은 홀쭉이들이 입으면 그런대로 볼만한데, 우리나라 아저씨들이 입으면 키 크면 갈치, 작으면 삼치를 연상시키는 그 양복의 원조는 누구니?

스키니: 전남 곡성에서 작게 양조장을 하시는 양춘복씨가 막내딸 양순옥양의 결혼을 맞아 특별히 맞춘 것이 유행의 시작이란 말이 있더군요. 그 화려한 금속성 광택으로 결혼식 당일 신부보다 빛났다는 후문이. 결국 따지고 보면 모든 계층별로 유행이란 것도 따로 있죠. 노래교실 아주머니들 사이에선 골프 브랜드에서 나온 피케셔츠가 유니폼이고, 어느 모임에선 샤넬의 트위드 재킷을 교복처럼 맞춰입으시고 보란 듯이 바라~바라~ 하시죠. 갈치 양복 역시 누군가에겐 ‘스키니진’처럼 핫한 아이템일 것이고. 막상 유행이라면 치를 떠시면서도 며칠전 ‘통바지’님이 신었던 생뚱맞은 실버 구두에 대해선 뭐라 변명하실건가요?

통바지: 무슨 소리야. 그건 내가 정확히 67개월전 팔휘의 어느 길 모퉁이에서 필이 꽂혀서 샀던 구두라구. 근데 유행 아이템이라고는 은색 구두 하나밖에 없는 내가, 얼굴 빼곤 전부 다 유행아이템으로 감싼 ‘스키니’씨께 왜 훈계를 듣는 분위기가 연출되어야 하는 거니?

스키니: '통바지'씨는 외모가 유행 아이템이잖아요. 영원한 스테디셀러로 통하는 ‘백치미’를 가지셨잖아요. 아니다, 백김치였나?

통바지: 나 요즘 코드 바꿨어. 요즘은 ‘윤리적 소비’가 유행이잖아. 자본주의적 가치 기준을 맹신했던 데 대한 반성이라고나할까. 그래서 나 결심했어. 허벅지와 복부, 둔부가 자유롭게 유영하는 윤리적 몸매를 갖기로. 몸으로 자본주의에 항거하기로. 동참하련?

스키니: 공정거래, 자본주의, 항거, 전문적 용어들이 나오니까 거의 못 알아듣겠네요. 아무래도 제 인생엔 한 번도 학문과 학습이 유행이었던 적이 없었나봐요.

[스키니-신정구] 방송작가로 ‘안녕 프란체스카’등을 썼다.

[통바지-박은주] 엔터테인먼트부 부장으로 ‘발칙칼럼’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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