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금은 이런 기업연구소를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의 투자로 과학기술 인재의 기반이 넓어지고 자신들이 개발한 새로운 기술을 제품으로 이전하는 것이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많아지면서 분야 전체의 연구개발을 도맡아 주도하는 대신 기업의 연구소들은 좀 더 수익과 관계된 방향으로 자신의 범위를 좁혀나간다. 그리고 범위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외부의 과학기술 역량을 활용한다. 많은 이들의 입에 회자된 열린 혁신이다.
세계 경제는 교통과 정보통신에 힘입어 글로벌화된 한 편 기업의 경쟁력은 자신과 관계된 외부 역량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업에 제공되는 사회의 생태계가 기업을 끌어들이는 핵심 요소이자 국가경쟁력이 되었다. 많은 기업들이 필요에 따라 기능을 세계 각 국에 두고 있으며 기업의 모국은 적절한 사회적 인프라가 없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장소이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산업을 고도화시키는 핵심이 창조적인 경제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느냐에 걸려있으며 창조경제 생태계를 지향하는 최근의 정부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 방향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처음부터 한 연구진을 선택해 문제해결을 맡기면 실패해서는 안 되는 연구가 되어 모험을 할 여지가 줄어든다.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 경쟁자가 있더라도 비슷한 목적의 연구가 낭비로만 간주되어 승자만 살아남는 구조라면 연구자는 비슷한 프로젝트의 수행자들이 자기 연구를 위협하는 경쟁자가 되기 때문에 외부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폐쇄적인 연구를 한다. 아이디어들이 협력할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생명체는 변이와 유전자재조합을 통해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고 이러한 변화의 풀 안에서 상호작용하면서 대부분 실패하고 그 중 일부가 자연에 적응한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생태계가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경쟁과 협력을 통해 잘 실패해서 창조적인 기술개발에 도달하는 것이다. 작은 실패들이 어우러진 창조적 생태계의 구성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