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실패가 어우러지는 창조적 생태계

  • 등록 2013-07-21 오후 1:41:33

    수정 2013-07-21 오후 1:41:33

[송재준 기초기술연구회 대외협력실장(박사)] 20세기 중후반, 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의 근원임을 확신하고 정부가 확충해야할 핵심적 국가인프라임을 선진국 사회들이 인지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전설적인 기업연구소들이 있었다. 13명의 노벨상을 배출한 벨연구소, 6명을 배출한 IBM 왓슨연구소 등은 자체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연구를 하면서 분야의 미래를 설계하는 한 편 기술진에 그 결과를 넘겨 모기업의 수요를 충족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기업연구소를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의 투자로 과학기술 인재의 기반이 넓어지고 자신들이 개발한 새로운 기술을 제품으로 이전하는 것이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많아지면서 분야 전체의 연구개발을 도맡아 주도하는 대신 기업의 연구소들은 좀 더 수익과 관계된 방향으로 자신의 범위를 좁혀나간다. 그리고 범위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외부의 과학기술 역량을 활용한다. 많은 이들의 입에 회자된 열린 혁신이다.

세계 경제는 교통과 정보통신에 힘입어 글로벌화된 한 편 기업의 경쟁력은 자신과 관계된 외부 역량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업에 제공되는 사회의 생태계가 기업을 끌어들이는 핵심 요소이자 국가경쟁력이 되었다. 많은 기업들이 필요에 따라 기능을 세계 각 국에 두고 있으며 기업의 모국은 적절한 사회적 인프라가 없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장소이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산업을 고도화시키는 핵심이 창조적인 경제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느냐에 걸려있으며 창조경제 생태계를 지향하는 최근의 정부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 방향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생태계가 익혀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작은 실패들을 잘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선진국의 기술을 추격할 때는 이미 검증된 목표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집중을 통해 빨리 접근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 기술을 주도하는 단계에선 우리가 시장에 맞추어 기술을 직접 진화시켜야 한다.

처음부터 한 연구진을 선택해 문제해결을 맡기면 실패해서는 안 되는 연구가 되어 모험을 할 여지가 줄어든다.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 경쟁자가 있더라도 비슷한 목적의 연구가 낭비로만 간주되어 승자만 살아남는 구조라면 연구자는 비슷한 프로젝트의 수행자들이 자기 연구를 위협하는 경쟁자가 되기 때문에 외부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폐쇄적인 연구를 한다. 아이디어들이 협력할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계들에서는 작은 실패가 없는 대신 창조성이 위축되고 나아가 큰 실패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애플은 신제품 개발시 기능이 완전히 구현되는 모형만 10가지를 만들고 이를 3가지로 좁혀 동시에 개발하여 완성한다고 한다. 최종 출시되는 안은 1가지를 위해 몇 배의 대안을 추진하면 디자이너들에게 주어진 제약이 완화되고 더 창의적인 제안을 할 수 있고 그 안들을 융합시킬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것을 작은 실패를 잘 만들어내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생명체는 변이와 유전자재조합을 통해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고 이러한 변화의 풀 안에서 상호작용하면서 대부분 실패하고 그 중 일부가 자연에 적응한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생태계가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경쟁과 협력을 통해 잘 실패해서 창조적인 기술개발에 도달하는 것이다. 작은 실패들이 어우러진 창조적 생태계의 구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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