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동남서북] 끝내 배달되지 않은 ICAO 초청장

  • 등록 2016-09-26 오전 8:44:27

    수정 2016-09-26 오전 8:44:27

결국 대만 정부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27일부터 열리는 제39회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총회의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대만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키려는 중국의 압력이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5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민진당 정부가 출범한 이래 중국이 요구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 대한 보복조치의 일환임은 물론이다. 차이 정부의 외교력이 중국의 강력한 간섭에 부딪친 것이다.

대만은 마잉지우(馬英九) 총통 시절이던 지난 2013년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라는 이름으로 ICAO 총회에 참석한 바 있다. 이런 전례에 따라 올해도 ICAO 총회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어왔으나 결국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국제무대 활동을 확대하려는 차이 정부에 좌절감을 안겨 준 것이다. 유엔 산하 항공전문기구인 ICAO는 3년마다 총회를 열어 항공안전 관련 문제를 논의한다.

사실은, 지난 번 ICAO 총회에 참석할 수 있었던 자체가 예외적인 경우였다. 1971년 유엔에서 축출된 이후 처음으로 특별초청 형식으로 ICAO 총회에 참석이 허용됐다. 당시 국민당 정부가 친(親)중국 정책을 통해 양안 교류를 확대한 데 대한 하나의 선물로 받아들여질 만했다. 대만이 유엔 상임이사국 자리를 중국에 빼앗기면서 산하기구에서도 회원국 자격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차이 총통이 ICAO 초청장을 받지 못한 데 대해 “대만에 극도로 불공평한 처사”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지만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방안은 사실상 막혀 버린 상태다. 대만이 독립 노선을 추구하는 한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도 민진당 정부에 위기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차이 총통의 의지가 힘의 바탕 위에서 이뤄지는 엄연한 국제질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현재 ICAO 류팡(柳芳) 사무총장이 중국인이다.

객관적인 사실로만 따진다면 대만이 ICAO 총회에 참석해야 하는 필요성은 충분하다. 지난 한 해 동안 타이베이 비행정보구역에 153만대의 항공기가 운항함으로써 5800만 승객이 이용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그러하다. 타오위안 국제공항이 승객 및 화물수송에서 각각 세계 11번째, 6번째를 차지한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대만 호천탄(賀陳旦) 교통부장과 워싱턴 대표부의 스탠리 가오(高碩泰) 등 해외 공관원들이 해외매체에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며 국제 여론에 집중적으로 호소했어도 소득은 별로 없었다.

이번 ICAO 총회의 초청장 발급 거부는 미리부터 예견됐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이 총통의 취임 직후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WHA) 연차총회 참가를 둘러싼 소동이 전초전이었던 셈이다. 그때 세계보건기구(WHO)가 초청장을 발송하면서 ‘유엔결의안 2758호’를 거론한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1971년 10월 유엔총회에서 중화민국을 축출하고 중공(중국)을 정식 회원국으로 받아들인 결의안을 거론함으로써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각인시키고 있었다.

대만은 WHA 연차총회에 있어서도 2009년부터 다시 참가할 수 있도록 초청을 받고 있다. 그나마 옵저버 자격이다. 올해는 유엔결의안 2758호에 흥분한 나머지 민진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이 ‘차이니즈 타이베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ICAO 총회의 사례로 미뤄 본다면 대만이 내년 WHA 총회에 다시 초청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장담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놓여 있는 것이 이른바 ‘92 컨센선스’다. 1992년 11월 홍콩에서 양안 대표들이 만나 약속한 합의로, 중국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지키되 이에 대한 해석은 각자 알아서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차이 정부는 ‘92 컨센서스’에 대해 양안 대표들이 회동했다는 사실만 인정할 뿐 그 합의 내용에 있어서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차이 정부가 중국으로부터 정치적 압력을 받는 배경이다.

‘92 컨센서스’와 관련해 차이 정부가 부딪친 압력은 국제무대에서만이 아니다. 내부적으로도 압력이 심각하다. 특히 중국 관광객의 감소로 대만 관광업계가 심각한 곤경에 처하면서 차이 정부에 지원책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정치적인 압력까지 제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륙 관광객을 다시 받기 위해서는 중국 당국의 거부감을 해소해야 하고, 그러려면 차이 정부가 ‘92 컨센서스’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만을 찾는 중국 관광객은 차이 총통이 취임한 지난 5월 이래 4개월 연속 30% 이상의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대만 정부는 300억 대만달러(약 1조1400억원)를 투입한다는 긴급 지원책을 마련했으나 여행업계의 위기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결국 지난 12일에는 여행사와 호텔, 식당, 관광버스 및 가이드 등 여행업계 종사자 2만여 명이 타이베이 총통부 앞 광장으로 몰려가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진당은 그동안 대륙 관광객이 몰려온다고 여행업계가 무리하게 시설을 확대한 탓에 지금의 곤경에 처하게 됐다며 오히려 여행업계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라는 여행업자들의 요구에 대해서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과도한 주장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新)남향 정책’을 통해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다.

문제는 국제무대에서의 중국의 압력이나 양안관계 마찰에서 초래되는 내부의 경제적 불협화음이 단시일 내에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민진당 정부가 중국의 압력에 금방 굴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당분간 양안관계의 뚜렷한 접점이 찾아지지 않는 가운데 마찰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에서 양안 정책의 ‘현상 유지’를 내세운 차이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로 선출할 때부터 감안됐던 사안이다.

지난번 WHA 연차총회 사태에 이어 이번 ICAO 총회의 초청장 거부 사태는 그러한 연장선 위에서 일어난 데 불과하다. 대만을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는 중국의 압력은 여러 분야에 걸쳐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장벽을 과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가 차이 정부에 부여된 역사적 책무다. 대만이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한에서는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허영섭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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