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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공] 섬진강은 성급히 휘돌지도, 바삐 여울져 흐르지도 않고 한 굽이 돌 때마다 정갈한 모래톱을 속살로 드러내는 강이다. ‘가장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강’이라 하긴 어렵지만, ‘누군가 가장 깊게’라고는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강이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도 내 고향의 강 같다고 말하게 하는, 깊고 깊은 강이 섬진강이다.
그 섬진강을 따라 꽃 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매화꽃이 만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벚꽃 소식이 들려온다. 겨울과 봄 사이에 낀 어정쩡한 계절. 지루했던 등산인이나 유산객들에게 이보다 기쁜 소식은 없을 것이리라.
때를 놓치지 말고 섬진강변의 산을 올라보자. 가까이서 바라보는 섬진강도 좋지만 산릉을 따르며, 산정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섬진강은 또다른 감흥을 일으킨다. 너른 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협곡 안의 가는 물줄기처럼 바라보이기도 하며 한결 깊고도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그 강물 따라 하얀 꽃잎이 둥둥 떠다닌다고 생각하니 섬진강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람과 차량이 뒤엉켜 시끌벅적한 벚꽃 길을 피해 호젓한 산길을 따르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점만으로도 의미있는 여행일 것이다.
산록에 꽃이 핀다고 긴장을 완전히 풀지는 말자. 산릉 곳곳엔 아직도 얼음이 녹지 않은 곳이 있다. 특히 낙엽 쌓인 북사면이나 바윗길에 접어들 때에는 발 밑을 잘 살펴 낙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4월 초까지 산밑은 벚꽃에 진달래가 활짝 필만큼 날이 포근하더라도 산 위에는 간혹 찬바람이 쌩쌩 불어댄다. 장갑은 물론 모자 달린 덧옷도 준비하고, 흙길에 엉덩방아 찧을 경우에 대비해 여벌 바지를 준비하도록 한다.
악양 성제봉에 올라 은빛 모래사장을 가르며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보고, 강밑으로 내려서 모래사장을 걸어보자. 고로쇠로 유명한 광양 백운산 또한 섬진강 전망대 같은 산이다. 정상인 상봉이나 억불봉에서 바라보이는 섬진강은 수십년지기 길동무처럼 정겹게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