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오전까지만 해도 한은법 개정안은 통과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았다. 정무위 의원들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일부 의원들이 본래 개정안에서 공동조사권은 보장하되 한은의 설립목적에 금융안정을 삭제한 수정안을 제시했고, 본회의에서 개정안과 수정안을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결국 수정안은 부결되고 본래의 개정안이 찬성표 147표, 반대표 55표로 가결됐다. ◇민감한 만큼 상징적인 `금융안정` 목적추가
국회의원들이 이처럼 개정안에 표를 던진 것은 저축은행 사태와 최근 다시 불거진 금융불안 등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발 소버린 쇼크로 제 2의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에게도 공동조사권을 허용, 거시건전성을 높여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여기에 저축은행 사태로 금융감독당국의 감독능력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정보의 독과점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도 형성됐다. 감독당국에만 맡겨놨다가는 금융위기를 막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한은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후 금리를 인하하고 유동성을 지원하면서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사후 수습에 그쳐선 안된다는 안팎의 지적이 많았다. 전세계적으로도 거시건전성 정책의 중요성이 확대되면서 이 같은 요구는 더욱 커졌다.
◇오른손엔 물가안정, 왼손엔 금융안정 김중수 한은 총재는 `단군 이래 가장 기억할 만한 사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번 한은법 개정안 통과에 큰 의미를 뒀다. 한은 내에서도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 `새로운 전기` 등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1997년 12월31일 한은법 6차 개정에 이어 1998년 금감원 설립으로 은행감독기능을 떼내면서 한은의 설립목적은 `물가안정`으로 한정됐다. 당시 이경식 한은 총재는 한은법 개악의 주범으로 몰려 퇴임후 3년동안 강당에 초상화가 걸리지 못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물론 2003년 7차 한은법 개정으로 독립성을 다소 되찾기는 했다. 부총재가 금통위원 당연직으로 참여하고 지급결제제도 총괄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하지만 이번 한은법 개정안에서 조사권을 보장받은 만큼 7차 개정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가 높다. 1998년 이후 큰 전환기를 마련했다고 보고 있다.
김 총재는 "지난 98년에 한은법이 바뀐 이후 이번이 가장 크게 바뀐 것"이라며 "이 기회가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이번 개정안 통과를 계기로 영역을 점차 확대할 수 있는 발판을 가지게 됐다고 호평하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단독조사권이 없다는 점은 아쉽긴 하지만 중앙은행 역할 확대에 진전을 이루게 됐다"며 "기재부 열석발언권 문제, 총재 임기 문제 등 한은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문제가 많은데 이번 개정안 통과로 그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