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자들)헤지펀드는 예술품 애호가

  • 등록 2005-03-07 오전 11:20:01

    수정 2005-03-07 오전 11:20:01

[edaily 김현동기자] 요즘 예술품 경매시장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월가의 돈이 예술품 경매 시장으로 넘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월가의 유명한 트레이더들이 컬렉터로 이름을 날린 것은 오래전부터다. 1900년대 초 주식발행 업무로 시대를 주름잡았던 J. 피어퐁 모간은 월가 컬렉터의 1세대에 속한다. 1980년대에는 기업차입인수(LBO)으로 유명한 사울 P. 스타인버그와 헨리 R. 크라비스가 역시 컬렉터로 유명했다. 모네나 마네의 그림으로 냉혹한 기업사냥꾼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월가의 돈이 헤지펀드로 이동하면서 월가의 컬렉터도 젊고 공격적인 헤지펀드 매니저로 바뀌고 있다. 그 중 최근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인물이 SAC 캐피탈의 스티브 코헨(48)이다. 코헨은 2년전 3억5000만달러를 벌었고 지난해에는 그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헤지펀드 매니저답게 그는 컬렉션에서도 공격성을 유감없이 발휘, 이름난 작품들을 싹쓸이하고 있다. 그는 지난 5년간 잭슨 폴록의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그림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튀겨서 그리는 그림)을 비롯해 마네의 자화상, 모네의 수채화, 드가의 무용수 그림, 앤디 워홀(`슈퍼맨`)
superman
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 아트 작품을 사 들였다. 이를 위해 그가 쏟아부은 돈만 3억달러가 넘는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스타 작가 데미언 허스트가 포름알데히드에 호랑이와 상어를 집어넣고 박제시킨 14피트짜리 작품을 800만달러에 사들여 유명해졌고, 근래 가격이 크게 오른 리차드 프린스의 사진으로 관심을 넓히고 있다. 폐쇄적인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이름도 생소한 헤지펀드 매니저가 이렇게 유명세를 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돈의 힘’이다. 코헨은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십만달러를 기꺼이 내놓는다. 코헨이 폴록의 작품을 5200만달러에 사고, 워홀의 팝아트 작품을 2500만달러에 매입했을 때 미술품 딜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믿기지 않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코헨이 제시한 가격은 바로 그 작품의 기준가치로 됐고, 시장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맨하튼 박물관의 딜러인 페리 루벤스타인은 “심리적으로 보면 코헨이 어떤 작가의 작품을 샀다고 하면 그 작가의 작품 가치가 올라가고, 심지어 다른 작가의 작품 가격을 올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평했다. 유명한 작품만을 주로 매입하다보니 업계의 평판도 좋다. 라이트이어 캐피탈의 회장이자 페인웨버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고 모던 아트 뮤지엄의 수탁자인 도널드 B. 매론은 코헨의 소장품을 보고 나서 “그는 상당한 안목이 있는 컬렉터입니다. 아주 독특한 컬렉션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감성과 함께 탁월한 식견,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합니다”고 말했다. 물론 열정적인 컬렉터이면서 현대 미술관의 가장 큰 후원자의 한명인 코헨의 컬렉션에는 나름의 특징이 있다. 수집한 예술품을 여러 단체에 기증했던 앤드류 맬론이나 에스터 로더 회장 로널드 로더와 달리 코헨은 세계적으로 인정된 작품들만 수집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가 직접 보지 않은 채 유명하다는 말만 듣고서 살 작품을 선택한다는 말도 있기는 하다. 코헨은 이미 컬렉터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로널드 로더, 라스베가스 호텔과 카지노 주인인 스테판 A. 윈, 출판업자 S. I. 뉴하우스 2세, 레온 D. 블랙, 크라비스 등으로 구성된 클럽의 구성원이다. 코헨은 현금자산만 20억달러로 알려진 월가의 가장 영향력있는 투자자다. 포지션 이동이 잦은 공격적인 트레이더로 월가에서 가장 많은 수수료를 내는 매니저 중 한 명이고, 연간 투자수익률은 최저 13%에서 최고 60%에 이른다. 지난해 수익률은 23%였다. 그는 독학으로 예술사를 공부했고, 4000권의 예술사 서적과 수백권의 예술가에 대한 책을 사서 읽었다. 그는 최근 현대 미술관의 작품매입위원회 위원에 선임돼 조만간 이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월가의 새로운 예술 후원자로 떠오른 헤지펀드 매니저에는 코헨만 있는 게 아니다. 시카고에서 80억달러를 자산을 운용하는 시타델 인베스트먼트 그룹의 창립자 케네스 그리핀(36)은 최근 지난 1999년 소더비 경매에서 6000만달러에 낙착됐던 세잔의 정물화를 사들였다. 골드만삭스의 파트너였다가 지금은 에톤 파크 캐피탈을 운영하는 에릭 민디시(36)와 앤도르 캐피탈의 다니엘 C. 벤튼은 휘트니 뮤지엄의 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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