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단지 모시듯 가져왔던 ''마구로 시오카라'' (참다랑어 젓갈)

  • 등록 2008-05-08 오전 10:48:00

    수정 2008-05-08 오전 10:48:00

▲ 조선일보DB
[조선일보 제공] 일본 도쿄만 끝에 미사키(三崎)라는 포구가 있다. 일본에서 제일 큰 마구로(흔히 참치, 정확한 이름은 참다랑어) 포구라 한다. 길이 밀리지 않아도 도쿄(東京)에서 자동차로 족히 서너 시간은 걸리는, 큰 맘 먹고 가야 하는 곳이다.

미사키 포구 부근에는 마구로 전문식당 20여 집이 있다. '마구로 사시미(회)'는 기본이고 10여 명은 배불리 먹일만한 크기의 '마구로 가부토야키(かぶとやき·생선 머리구이)'에서 '마구로 스테이크' '마구로 샤부샤부'까지, 참치로 할 수 있는 온갖 요리를 망라한 식당들이다.

늘 특별한 일본음식을 소개하던 재일교포 친구와 함께 참치를 맛보러 미사키에 갔다. 식당 주인은 "포구에 들어온 뱃사람 외에 이 음식을 먹으러 여기까지 찾아온 한국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며 식당 앞에 '○○○씨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대형 플래카드까지 걸어놓고 성대히 맞아주었다.

아가미 언저리에서부터 자른 참치 대가리는 지름이 남자 어른 팔 한 아름이 넘는 거대한 크기. 그래서 여덟 시간 해동하고, 은근한 불에 여덟 시간을 굽는다. 참치는 종류나 조업방식, 산지, 포획계절 등에 따라서도 맛과 값의 차이가 많이 나지만,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냉동상태도 값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포획 후 냉동실의 냉동기록(frozen record)도 경매할 때 함께 제시된다.

주둥이가 하늘을 향한, 잘 구워진 가부토 야키를 두 사람이 커다란 접시에 받쳐 들고 내오는 모습은 맛에 앞서 엄청난 크기의 생선을 먹는다는 '잔인한 포만감'을 제공한다. 사시미로 나오는 야구공만한 눈알은 점액질을 씹는 듯한 독특한 식감이다. 눈알 옆에 붙은 살은 가부토 야키에서 제일 맛있다는 부위다. 부드럽기가 소 도가니 같다. 소금구이 도미의 주둥이와 삶은 돼지편육의 비계를 섞은 맛이다. 고소함이 지나쳐 느끼할 정도다. 기름기 때문에 많이 먹긴 힘들다.

마블이 촘촘한 마구로 스테이크는 겉만 살짝 구웠는데도 젓가락으로 집기 어려울 만큼 부드럽다. 입에 들어가면 별로 씹을 것도 없이 녹아 버린다. 하긴 이곳에서 마구로 스테이크에 사용하는 부위인 오도로(大トロ·지방이 많은 마구로의 앞쪽 뱃살)와 추도로(中トロ·마구로의 뒤쪽 뱃살)는 횟감으로도 최고로 치는 부위인데, 미사키가 아니면 구워 먹기는 아까운 최상품들이다.

이 식당의 최고 진미는 참치의 위(胃)를 위액(胃液)과 함께 절인 '마구로 시오카라(鹽辛)'였다. 일본식 젓갈인 시오카라는 해산물을 소금에 절인다. 청주 술지게미나 해산물 내장에서 나오는 즙, 와사비(고추냉이) 등의 향채를 넣어 독특한 풍미를 내기도 한다.

마구로 시오카라는 참치의 위액과 소금만으로 만드는데, 술지게미를 첨가한 것 같은 달착지근한 맛과 홍어의 기름집 같은 생선 내장 특유의 향미가 잘 녹아있다. 새끼손톱만한 크기로 잘게 썬 마구로 시오카라를 씹으면 약간 질긴 것이 양(소의 위)과 비슷한데, 적당히 발효된 그 감칠맛이란. 기분 나쁘게 느글느글한 맛을 제거한 화학조미료를 한 티스푼쯤 입에 털어 넣는 맛이라 하겠다. 살아있는 참치의 위에서 소화되고 있는 내용물을 한 숟갈 입에 넣으면 이런 맛일까?

"도쿄에 돌아가 숙소에서 드시라"며 선물로 싸준 마구로 시오카라 한 종지를 보물단지 모시듯 서울로 가져와 냉장고에 잘 보관해뒀다. 맛있는 사케(일본 청주) 한 병을 구하고, 감사하며 나눠먹을 친구 몇을 불렀다. 그러나 마구로 시오카라는 죽어 있었다. 아, 그 낭패감이란! 그렇게 조심스럽게 모셨건만, 종지 안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던 것이다.

몇 년 전 송광사 구경을 마치고 서울 올라가는 길에 마실 물을 페트병에 길었다. 지나던 스님은 "흐르는 물은 병에 가두는 순간 이미 죽어버린 물"이라 했다. 미사키의 마구로 시오카라는 미사키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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