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수의 월가 키워드)Sleeping With the Enemy

  • 등록 2004-11-05 오후 1:13:29

    수정 2004-11-05 오후 1:13:29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이러쿵 저러쿵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솔직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나 존 케리 민주당 상원의원이 경제나 외교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공약을 했는지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았다. 다만 선거를 지켜보면서 "무척 돈이 많이 들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부시를 극도로 싫어하는 폴 크루그만 교수의 칼럼을 읽고는, 선거 시스템이 `후진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투표를 하기 위해 3~4시간 씩 땡볕에서 기다려야하다니..." 승자와 패자가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그 과정은 지저분하기 그지 없었다. 선거인 명부를 이중으로 등록하고, 흑인 밀집 지역에서는 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자동차 타이어마다 구멍을 낸 사고도 있었다. 두 가지가 궁금했다. 우선 선거 결과 미국은 얼마나 극심하게 분열됐는가. 다음은 그 분열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39억달러가 만든 분열 선거자금 감시 단체 CRP는 이번 대선에 39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쓰인 것으로 추산했다. 2000년 대선 당시 30억달러보다 30% 이상 늘어났다. 동부에서 서부 알라스카까지 투표 마감 시차만 6시간이 걸리는 넓은 땅이니, 선거 자금이 많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민주주의 최고의 정치 행위인 선거가 갈등을 해소하기는 커녕, 갈등을 증폭시켰다는데 있다. 뉴욕타임즈가 분석한 아래 표를 보자. 투표구 별로 부시와 케리의 득표 차이를 원의 크기로 표시한 것이다. 한 눈에 알 수 있는 사실은 대도시에서 케리가 압도적인 표를 얻었다는 것이다.(파란색이 케리, 붉은색이 부시) 이번 미국 대선의 득표 양상은 이렇다. 가진 자는 부시를 찍었고, 못 가진 자는 케리를 찍었다. 백인 기독교도들은 부시를 찍었고, 흑인과 소수민족은 케리를 선호했다. 남쪽은 부시를,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 그리고 북부는 케리를 찍었다. 늙은이는 부시를 찍었고, 젊은이는 케리를 찍었다. 빈부, 지역, 세대, 종교에 따라 표가 극명하게 갈렸다. "선거가 다 그런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아래 그림은 차례로 1984년 레이건-먼데일, 1992년 부시(아버지)-클린턴, 그리고 이번 선거 결과를 표시한 것이다. 공화당 후보가 선거인단을 확보한 주는 붉게, 민주당이 확보한 주는 파랗게 표시했다. 1984년 레이건은 미네소타를 제외하고 거의 미국 전역에서 지지를 받았다. 동서, 남북, 인종, 빈부 격차에 따른 지지도 차이가 크지 않았다. `강한 미국`을 내세우며 소련과의 냉전을 진두지휘한 레이건을 미국인들은 모두 존경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고, 쌍둥이 적자도 심화됐지만, 레이건은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8년간의 레이건 치세와 4년간의 아버지 부시 시대를 마감하고자, 민주당은 젊은 클린턴을 내세웠다. 1992년 중앙 정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클린턴은 돌풍을 일으키며 동부, 북부 지역을 장악했고, 남부 일부에서도 승리했다. 걸프 전쟁으로 기세등등했던 아버지 부시는 중부 지역의 카우보이와 농부들의 지지에 만족해야했다. 민주당 경선 단계에서부터 성추문에 휘말렸던 클린턴은 보수적인 남부의 표심까지도도 끌어들이는 매력을 과시했다. 조지 W 부시는 2000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남부와 중부 지역을 싹쓸이 했다. 최대의 격전지 플로리다와 오하이오에서 승리함으로써 케리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나 부시는 대도시가 밀집해 있는 태평양 연안, 대서양 연안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없었다. 지역적인 한계와 함께 계층간, 세대간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렸다. 정치의 속성이 갈등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 진영이 이번 선거에서 구사한 전략은 `갈등의 해결`이 아니라 `갈등의 증폭`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3일 워싱턴 레이건 센터에서 당선 연설을 하면서 1등 선거 참모 칼 르보의 이름을 직접 거명했다. 르보는 `전쟁을 수행한 대통령`이라는 전통적인 캠페인 전략에 만족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우익 성향을 강조함으로써 케리와의 차별화에 주력했다. 민주당이 경제, 이라크 전쟁을 이슈로 끌고 갈 때 공화당은 동성결혼, 줄기세포 복제 같은 윤리적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이것이 백인 기독교 표를 결집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선거 분석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부시는 이미 동성연애가 `기이한 일`이 아닌 미국 사회에서 전통적인 가족관과 동성애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다. 갈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극단적인 전략을 취했다. 그렇다면 이같은 갈등과 분열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적과의 동침 정치적 갈등의 극한을 생각해보자. 아버지는 공화당원, 아들은 민주당원. 세대간 갈등을 생각하면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다. 같은 이불을 덮고 사는 부부가 정치적 성향이 정반대라면 어떨까. 아내는 공화당 대통령의 일등 정치참모, 남편은 민주당 선거 핵심 브레인이라면.. 실제로 미국 사회에는 이런 부부가 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와츠제네거는 공화당원으로서 부시 지원 유세에 적극 참여했다. 슈와츠제네거의 부인 마리아 슈라이버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딸이다. 케네디 가문은 지금도 민주당의 핵심 세력이다. 슈라이버는 그러나 민주당을 위해 뛰는 정치적 인물은 아니다. 진짜 `적과의 동침`은 민주, 공화 양당의 정치 참모인 제임스 카빌과 마리 마탈린의 경우다. 마탈린은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의 정치 참모로, 이번 선거에서도 부시의 재선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마탈린의 남편 카빌은 1992년 빌 클린턴을 당선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미국 최고의 선거전략가 중 하나다. 1992년 당시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선거 슬로건을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카빌은 케리 진영이 선거 막판 부시를 따라잡기 위해 끌어들인 클린턴 사단 중 한명이다. 마탈린은 1970년대 웨스턴 일리노이 대학을 중퇴하고 제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뒤늦게 정치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용 기술을 배우던 중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지방 선거 출마자들의 참모 역할을 하다가, 1981년 워싱턴으로 진출한다. 호프스트라 로스쿨을 다니면서 공화당 선거 참모 일을 하던 그녀는 1988년 아버지 부시의 선거 운동 본부에서 중책을 맡는다. 1992년 아버지 부시의 재선 캠프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오른팔 역할을 한다. 그녀는 선거 기간 내내 대통령과 함께 이동하며 클린턴 진영과 대적했다. 공교롭게도 이때 남편인 카빌을 만난다. 카빌은 클린턴 진영의 핵심 참모였다. 카빌은 남부 루이지애나 카빌 출생으로 루이지애나 대학을 나왔다. 1970년대 말까지 법률회사에서 일하던 카빌은 어느날 "만약 내가 변호사를 선임해야한다면, 나는 절대로 나같은 변호사를 선임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일을 때려 치운다. 마흔살이 될 때까지 변변하게 승리하는 선거에 참여해본적이 없던 카빌은 1986년 펜실베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열세에 몰려 있던 로버트 케이시를 당선시키면서 정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카빌은 1992년 클린턴 선거 참모로 발탁, 클린턴 선거본부인 이른바 `워 룸(The War Room)`을 이끌게 된다. 당시 카빌과 클린턴 선거 참모들의 활약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The War Room`은 아카데미상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부시의 핵심 참모 마탈린과 클린턴의 핵심 브레인 카빌은 일생일대의 선거전을 치루면서 사랑을 키웠다.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마탈린의 신뢰성이 의심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1992년 선거에서 부시가 클린턴에 패하면서 카빌은 미국 최고의 선거 전략가로 명성을 날렸다. 1993년 추수감사절 카빌과 마탈린은 결혼식을 올렸다. 마탈린은 결혼 이후에도 공화당 선거 참모로 계속 활동했다. 2000년 아들 부시의 선거운동과 이번 재선 운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마탈린은 CNN의 정치 토론 프로그램 `Crossfire`를 남편과 같이 진행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CNBC에서 자신만의 정치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녀는 직설적인 화법과 유머로 최고의 진행자가 됐다. 대통령과 부통령 모두의 정치 자문을 맡은 것도 마탈린이 처음이다. 마탈린은 올해 부시의 재선 운동이 시작되기 전 백악관을 떠났다가, 선거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캠페인에 참여했다. 남편 카빌은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든 이후 너무나 유명해져서, 미국내 정치인 중에서는 그를 선거 참모로 쓰려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카빌은 그리스, 아르헨티나, 캐나다 수상, 심지어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까지, 해외 정치인들의 선거 참모로 활동했다. 카빌과 마탈린은 각자의 정치적 입장이 분명하게 다르지만, 11년간 두 딸을 낳고 지금까지도 충실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애정의 조건 이번 대선을 일주일 남겨두고 카빌과 마탈린이 펜실베니아의 한 대학 강연회에 동시에 참석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서, 부부라는 점 때문에 이들은 자주 이같은 강연회에 불려 나간다. 마탈린은 "이번 선거는 역사적인 선거"라며 "부시는 미국 외교사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마탈린은 "케리는 단지 `나는 부시가 아니다`고 말할 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남편 카빌은 "만약 케리가 펜실베니아에서 이긴다면 부시는 오하이오와 플로리다에서 동시에 이겨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실제 투표 결과는 케리가 펜실베니아에서 승리하고, 부시는 오하이오와 플로리다를 모두 차지했다.) 카빌은 "2000년에 앨 고어에 투표했지만, 부시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번에 부시를 찍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면서 케리의 승리를 장담했다.(실제 선거에서는 2000년에 투표를 잘하지 않았던 보수적인 백인 기독교도들이 부시에 몰표를 던졌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사람이 어떻게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4년마다, 아니 거의 매 순간 극심한 정치적 충돌을 피할 수 없을 텐데, 이 부부는 어떻게 11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마탈린은 카빌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공포영화 `딜리버런스`의 악당같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 이상의 남편 감은 없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한 HBO의 정치 드라마 `K스트리트`에서는 첫 데이트 장면이 이렇게 묘사돼 있다. 카빌은 마탈린을 보고 "당신처럼 내 어머니를 쏙 빼닮은 여자는 처음이요"라고 말한다. 마탈린은 "우리는 정치 외에는 싸우는 것이 없다"며 "남편이 출연하는 정치 프로그램은 아예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남편과 같이 쓴 책에서 남편이 쓴 부분도 읽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마탈린은 "우리는 여섯살, 아홉살 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들에게 절대로 특정 정치 이념을 주입시키지 않겠다고 서약했다"고 말했다. 카빌은 "올 가을 우리 집안의 최대 행사는 선거가 아니라 할로윈데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카빌은 "자기 형제들을 싫어하는 마누라를 얻는 것보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아내를 얻는 것이 더 쉽다"고도 했다. 이들 부부는 일상에서는 평범한 아내와 남편일 뿐이다. 마탈린은 911 테러 당시를 회고하며 이런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날 체니 부통령과 함께 있었습니다. 부통령께서는 세계 각국 지도자들과 바쁘게 통화를 하고 계셨죠. 저는 우리 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너무나 걱정이 됐어요. 부통령께 `전화를 써도 될까요? 시내 통화인데요`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성추문에 휘말려 탄핵 위기에 몰렸을 때 마탈린과 카빌은 결혼 서약, 결혼의 맹세를 재검토할 뻔한 시기가 있었다. 마탈린은 한 인터뷰에서 "제임스는 밤늦게까지 클린턴을 변호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녔죠. 파김치가 돼 집으로 돌아와서는 침대에 눕곤했어요. 피곤한 제임스가 저를 안을 때, 저는 낮으막히 이렇게 속삭일 수 밖에 없었어요. "저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난 부시를 찍었으니까" 그 당시는 정말 남편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어려운 시기였죠"라고 말했다. 극단적인 정치적 분열과 대립. 카빌과 마탈린은 일에 대한 열정과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분열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부시에 표를 준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의 백인 가장이 동성결혼을 주장하는 게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부시의 감세 정책에서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부자가 흑인 파트타임 노동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911테러 당시 아랍계 이민자에게 보복 테러를 했던 텍사스 카우보이가 뉴욕 유니온 스퀘어에서 반전 구호를 외치는 젊은 대학생을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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