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광화문 광장에는 왜 ‘문재인 대통령’ 또는 ‘안철수 대통령’과 같은 함성이나 외침이 없었을까요? 박근혜 퇴진의 연관 검색어로 문재인 또는 안철수 대통령이 나올 만도 한데 말입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10여명의 여야 차기 주자 중 가장 많은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제외하면 두 사람 중 한 명이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러나 문재인과 안철수는 왜 활활 타오르는 촛불민심을 얻지 못했을까요?
◇‘쉽지 않은 표정관리’…文 부자 몸조심 vs 安 도박 승부수
‘표정관리’는 쉽지 않습니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최순실 게이트 정국의 장기화 속에서 표정관리를 해야 했습니다. 미소를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권 꿈이 보다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초기만 해도 야권의 호재 정도로만 여겨졌습니다. 야권의 요구사항도 간단했습니다. 내각총사퇴와 청와대 전면개편, 거국내각 구성 등이었습니다. 이후 김병준 총리 지명철회와 국회 추천총리의 수용과 대통령의 명확한 2선 후퇴 등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촛불이 활활 타오르면서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야권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박근혜 퇴진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문재인은 상대적으로 신중한 모드를 버리고 강경하게 돌아섰습니다. 안철수는 사태 초기부터 대통령 하야라는 분명한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정치적 대격변기는 아노미적 상황입니다. 정치인의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두 사람은 100만 촛불민심이 만들어준 정국에 조용히 올라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촛불정국에서 문재인은 다소 좌고우면했습니다. 문재인은 20% 안팎의 지지율로는 대선 승리가 불가능합니다. 대통령 퇴진론이 중도층 확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신중한 행보를 거듭했습니다. 제1야당 대권주자로서의 책임감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지나치게 몸을 사렸다는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개헌을 통한 대통령 임기단축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가장 강력한 반대 입장입니다. 안철수는 도박에 가까운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2012년에 이어 또다시 실패이기 때문입니다. 안철수는 사태 초기 ‘대통령 하야’라는 판을 뒤흔들 수 있는 초강수를 선택했습니다. 조기 대선이 실시될 경우 호남의 지지와 유력 주자가 없는 보수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문재인에 대한 열세 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권 단일화 없이 필패라는 온갖 반대에도 본인의 뚝심으로 일궈냈던 20대 총선 대박 신화의 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아울러 두 사람의 인식은 여전히 협력보다는 경쟁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 퇴진투쟁에 집중하고 있지만 내년 상반기로 예상되는 조기 대선을 앞둔 물밑 신경전도 치열합니다. 뒤집어 보면 두 사람의 과오도 분명합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확정되면 6개월에 이르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이후 60일 이내의 차기 대선을 고려하면 최장 8개월 동안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게 됩니다. 대통령이 야당의 반발에 김병준 총리 지명 철회와 국회 추천 총리 수용을 약속했지만 양측 진영은 대선 유불리 문제로 단일 총리 후보를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김병준 국무총리 지명 당시 이임식 취소 해프닝까지 벌였던 식물정권의 식물총리가 1년 가까이 국정 최고 책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두 사람의 판단 착오가 빚은 부메랑입니다.
대통령의 숨은 지지층을 뜻하는 ‘샤이 박근혜’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3주 연속 5%를 기록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11월 4주차 결과 발표에서는 4%로 내려앉았습니다. 역대 대통령 최저치입니다. 오차범위를 고려하면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반면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는 무려 93%였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은 당연히 차기주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재인과 안철수의 지지율은 ‘안습’입니다. 11월 24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11월 4주차 주중집계 결과에 따르면 차기 지지율은 문재인 21.2%, 반기문 17.4%, 이재명 11.6%, 안철수 11.4% 등의 순입니다. 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본격화됐던 한 달 전과 비교해보겠습니다. 리얼미터의 10월 4주차 주중집계에 따르면, 반기문 21.5%, 문재인 19.7%, 안철수 10.0%, 박원순 6.3% 등의 순입니다. 문재인이나 안철수의 지지율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문재인은 반기문의 하락세에 따른 반사효과로 지지율 1위에 올라섰습니다. 20%대 초반의 대세론을 30%대의 압도적인 대세론으로 바꿔놓지 못했습니다. 안철수는 박근혜 퇴진정국의 여파로 지지율 10%대 초반으로 유지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반기문 등장 이후 급락했던 지지율을 회복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이는 반기문이 리얼미터 차기 지지율 조사에 처음 포함됐던 6월 1주차 조사와 비교해도 비슷합니다. 당시 조사에서 차기 지지율은 반기문 25.3%, 문재인 22.2%, 안철수 12.9%, 박원순 6.6% 등의 순입니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5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촛불민심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박근혜 퇴진정국의 최대 수혜자는 이재명입니다. 박근혜 퇴진과 하야를 가장 먼저 선명하게 주장했기 때문일까요? 이재명의 차기 지지율은 마의 5%, 마의 10% 고지를 넘어섰습니다. 물론 이재명의 상승세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추세가 지속되면 야권의 차기 경쟁구도도 뿌리째 흔들릴 수 있습니다.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불가…김칫국 마실 때 아니다
정치는 내가 잘해서 승리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평정심만 유지할 수 있다면 승리 가능성은 51% 이상입니다. 힘의 균형은 상대방의 자충수로 무너집니다. 문제는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역대 선거에서도 자충수로 몰락한 사례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바둑에서 대마를 다 잡아놓고 승리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막판 끝내기 실수나 자충수로 패하는 것과 유사한 경우입니다.
2004년 17대 총선과 2016년 20대 총선도 비슷합니다.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의 전망은 불투명했지만 야권의 탄핵자충수로 승리했습니다. 선거과정에서는 200석 이상의 대압승도 예상됐지만 이른바 노인폄하 발언 논란으로 실패했습니다. 20대 총선은 야권의 분열로 새누리당의 손쉬운 과반이 예상됐습니다. 그러나 진흙탕 공천파동에 대한 국민적 심판은 강렬했습니다.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불가는 이제 상식입니다. 야권의 공동전선은 무너졌습니다. 87년 대선 당시 김영삼·김대중의 숙명적인 경쟁을 보는 듯합니다. 보수는 궤멸됐다는 판단 아래 상대방만 누르면 대통령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러나 이는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와 대통령의 퇴진 거부에 따른 착시현상입니다. 대한민국은 압도적인 보수우위의 사회입니다. 97년·2002년 대선은 야권의 경쟁력이 아니라 여권과 보수의 분열에 따른 어부지리였습니다. 2012년 대선 역시 진보 vs 보수의 완벽한 일대일 구도였지만 패배했습니다.
현 상황은 바둑으로 치면 대마를 잡은 상황입니다. 이제 끝내기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김칫국 마실 때는 아닙니다. 떡 줄 국민은 아직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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