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훈의 영원한 홈런왕] 아름다운 이별이란

  • 등록 2007-05-23 오후 2:31:50

    수정 2007-05-23 오후 2:31:50

[이데일리 SPN 장종훈 칼럼니스트]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러나 머릿속엔 조금 전 어느 코치로부터 들은 말이 떠나질 않았다. "이제 그만 정리할때가 되지 않았냐."

2004년 어느날 내게 있었던 일이다. 야구가 뜻대로 안돼 괴로워하고 있을 때였다. 가뜩이나 힘들어하던 내게 야구 선배이자 지도자였던 코치의 말은 정말이지 큰 상처로 다가왔다.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느낌이었다. 그 코치에게 말했다. "지금 기분으로는 경기에 나서지 못할 것 같습니다. 2군에 보내주십시오." 기다렸다는 듯 2군행 통보가 떨어졌다. 상실감이 더욱 컸다. 그리고 그렇게 그냥 세월이 흘러갔다.

나는 결국 그 다음해 현역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었다. 새로 오신 김인식 감독님은 내게 이러쿵 저러쿵 말이 없으셨다.

정확히 2005년 4월20일에 1군 엔트리서 제외됐다. 내가 날짜도 잊지 않고 있는건 내게 그만큼 중요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나를 차분히 돌아볼 수 있었다. 현재 내 실력과 팀 상황, 후배들을 위한 길까지. 그리고 나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이젠 그만 떠날때가 됐다."

2007년 한국 프로야구엔 세대교체의 바람이 거세다. 여전함을 과시하는 고참 선수들도 있지만 김태균(한화) 이대호(롯데) 등 젊은 선수들이 확실하게 자기 자리를 굳히며 간판 역할을 하고 있다.

'꽃이 피면 꽃이 지고 꽃이 지면 또 꽃이 피는 것'이 인생이다. 새로운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올수록 그만큼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선수들이 생겨나는 것이 이치다.

그러나 누구도 함부로 '물러설 때'를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모습으로 물러나라"는 건 말은 쉽지만 당사자에겐 결코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니다. "누릴 만큼 누려보고 원없이 뛰어봤으니 욕심내지 말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 같은 강요는 오히려 역효과만 나을 뿐이다.

내 경험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도 거기 있다. 물론 선수라면 누구나 많은 경기에 나서고 싶다. 그러나 결정은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하는 것이다. 안된다고 생각하면 안 쓰면 그만이다.그러나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은퇴까지 강요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마지막'은 선수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가만히 두면 선수 스스로가 물러설 때를 알게 된다.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기에 '마지막'이란 단어는 두렵고 또 외롭게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떼밀리 듯 물러나게 되면 모두에게 상처만 남게된다.

한때 팀을 위해,또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만큼 성과를 얻었던 선수들이다. 그들이 쌓은 공로까지 무시당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또 고참으로서의 팀내에서 해줄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한 '좋은 모양새'가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후배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혹시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또 팀을 위해,후배들을 위해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옳은지 마음을 열고 깊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졌으면 좋겠다.

혹 불만이 생기더라도 내부적으로 현명하고 조용하게 처리하려는 노력도 함께해 주길 바란다. / 한화 2군 타격코치

- 대전에서


* 덧붙이기 : 장종훈 코치의 글을 정리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일화가 있어 첨부합니다.

지난 1995년 시즌이 끝난 뒤 노무라 당시 야쿠르트 감독(현 라쿠텐 감독)은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방출된 쓰지 하츠히코를 영입했다. 쓰지는 골든글러브 8회,타격왕 1회를 차지하며 한때 일본 최고 2루수로 각광받던 선수였다.

쓰지는 96년 타격 2위(.333)에 오르는 등 빼어난 성적을 거두며 노무라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그러나 97년 초 쓰지는 극심한 부진에서 허덕이게 된다. 언론과 구단 일부에선 기다렸다는 듯 ‘이제 은퇴할 때가 됐다'고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쓰지의 나이는 만 38세.

그러던 어느날 노무라 감독은 기자들을 모두 불러모은 뒤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쓰지 수준의 선수 은퇴 여부는 언론과 프런트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만이 물러설 때를 선택할 수 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쓰지는 이후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고 야쿠르트가 그해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백업요원으로 2년간 더 뛴 뒤(98년 타율은 .304) 99년 '스스로 결정해' 현역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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