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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착한’ 가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대문 ‘황해 동태찜’의 동태찜과 동태탕에는 비록 촌스럽지만, 잊고 있었던 맛이 묻어있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놀라운 맛은 아니지만, 구수하면서도 푸근한 할머니의 손 맛 같은. 이제는 웬만한 가정집에서도 생태가 그 자리를 꿰 찬지 오래지만, 사실 가격이 낮다고 맛까지 천대 받을 까닭은 없지 않은가.
동태찜(中:1만8000원)은 우선 그 분량이 압도적이다. 몸매를 고민하는 남녀라면 3~4명도 나눠 먹겠고, 먹성 좋은 ‘동태 마니아’라도 2명이 먹기엔 많은 양이다. 장정 팔뚝만한 동태 한 마리 반과, 쫄면 면발 굵기의 아삭거리는 콩나물, 생김새는 구불구불, 씹는 맛은 쫄깃쫄깃한 곤(내장), 고구마, 미더덕, 미나리 등이 기본 재료. 꽁꽁 언 동태를 절반으로 가른 뒤 소금물에서 한 시간 정도 녹여 자연해동 시킨다. 여기에 주인 고향인 안동에서 가져온 고춧가루와 소고기 가루, 마늘 등 갖은 양념으로 7분 정도 쪄 낸다. 동백꽃처럼 붉은 양념을 젓가락으로 살포시 헤치자, 오동통한 콩나물과 눈부시게 뽀얀 동태 속살이 부끄러운 듯 모습을 드러낸다. 간장에 고추냉이를 풀은 종지에 엄지손가락만한 토막 한 점을 적신다. 제 모양을 허물어뜨리지 않는 탱글탱글한 살점이 쫄깃하면서도 담백하다. 동태 두 마리 반을 넣은 대(大)자는 2만 8000원. 다 먹은 뒤에는 밥(1인분 1500원)을 볶아 준다. 함께 주는 깻잎에 싸서 먹을 것.
1인분 5000원의 동태탕은 해장용으로 그만이다. 머리와 꼬리, 그리고 주먹만한 몸통 한 토막을 잘라 넣고 팽이버섯, 미나리, 무, 바지락, 콩나물을 뚝배기에 넣어 12분 정도 끓여 낸다. 찜에는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애(간)를 넣지 않지만, 탕에는 함께 넣는다. 취향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맑은 탕(지리)을 추천. 청양고추로 힘을 준 맑은 탕이 정신을 번쩍 나게 하면서, 어제 흡수한 알코올을 몸 밖으로 밀어낸다. 동태 전골(大:2만3000원, 中:1만8000원)에는 새우와 꽃게를 추가로 넣어 끓여 준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황해 동태탕’의 개업 동기는 소박하다. 동태찌개 마니아인 남편을 위해 하루 걸러 동태 요리를 만들던 주부 김윤희씨가 “맛 좋다”는 칭찬에 덜컥 식당을 차린 것. 감자샐러드, 오징어젓, 시금치 등 밑반찬도 정갈하지만, 함께 내놓은 무청김치가 입맛을 돋운다. 김씨는 “이번 추석 때 고향 안동에서 직접 네 푸대(부대)를 가져왔다”면서 “새로 수확한 가을 무의 줄기와 잎을 솎아내 직접 담궜다”고 자랑이다.
서대문 지하철역 2번 출구에서 도보 2분 거리. 신발 벗고 들어가는 방에 크고 작은 평상 16개가 놓여 있다. 신용카드 가능. 별도 주차공간은 없다. 오전 10시~오후 10시. 추석과 설날에만 쉰다. 점심시간엔 줄이 길다. (02) 313-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