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이 타오르면 낙지가 춤을 춘다

경남 남해 해바리 마을 ‘홰바리 체험’
  • 등록 2006-07-27 오후 12:30:00

    수정 2006-07-27 오후 12:06:59

[조선일보 제공]

▲ 횃불 들고 밤 바다 위를 샅샅이 뒤지던 아빠가 낙지를 잡아 올렸다. “낙지 잡았다!”


깊이 잠든 바닷가 마을. 새벽 1시 반이다.

개구리 울음만 요란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검은 바다로 다가간다.

여자는 빨간 장화, 남자는 파란 장화. 한 손에는 기름통, 다른 손에는 기다란 대나무 막대기를 들었다. 대나무 끝에 매달린 헝겊 뭉치를 기름에 푹 담갔다가 불을 붙였다.

활활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타오르는 횃불.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게, 낙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홰바리’가 시작됐다.

‘홰바리’는 썰물 때 횃불을 들고 나가 낙지, 게 등을 잡는 전통 방식을 말한다. 경남 남해군 창선면 지족리 신흥 해바리 마을은 이 ‘홰바리’를 가족용 체험 상품으로 내걸었다. 지난 24일 새벽에는 부산, 경주에서 온 가족들이 홰바리 체험에 나섰다. 이쪽 갯벌은 서해안 뻘처럼 표면이 곱지 않고 자갈과 굴 껍데기 때문에 울퉁불퉁하다. “살살 걸어가세요. 흙탕물 만들어 놓으면 뒤에 가는 사람들은 하나도 안 보입니다.” 안내를 맡은 마을 사무국장 양명용씨가 “장마, 태풍 때문에 육수(빗물)가 많이 유입돼 낙지가 별로 없다”면서도 “지금까지 한 가족이 세운 홰바리 최고 기록은 낙지 24마리”라며 격려했다.

자녀들에게 낙지를 꼭 잡아주려는 아빠들의 눈에는 횃불보다 더 이글거리는 불이 켜졌다. 바람이 한 점도 없다. 찰랑찰랑, 장화 신은 발들이 종아리까지 오는 물속에서 조심조심 움직인다. 밤 바다 위 너울너울 춤추는 횃불을 구경하며 서 있는데 뒷짐 지고 지켜보던 김영득 마을 이장님이 가만히 손을 들어 물 속을 가리킨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왼쪽 발 옆에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웅크리고 있다. 낙지다. “여러분, 여기 낙지 있어요!” ‘심봤다’ 못지 않게 감격해서 외쳤다. 부산서 온 이미경(38)씨가 낙지를 건져 올렸다. 낙지는 포기한듯 그냥 축 늘어진 채 얌전히 플라스틱 양동이 속으로 들어갔다.
낙지를 살살 만져보던 조수범(초등학교 2학년)군은 낙지가 빨판을 대고 손에 쩍 달라붙자 ‘낙지가 문다’고 기겁을 했다. 이날 홰바리에 나선 손님은 총 3개팀. 한 팀 당 한 마리씩 낙지를 총 3마리 잡았다. 게는 더 많이 잡았다. 들어 올릴 때 게가 꽉 무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앗 따가워’ 소리가 터졌다. 가만히 지켜보니 ‘아이들 체험 시키려고’는 핑계고, 어른들이 더 신났다. 낮 동안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 구해주랴, 1960년대도 아닌데 동네 도는 소독차 따라다니랴 지쳐 뻗은 아이들은 민박집에 남겨둔 채 엄마들만 나온 가족도 있다. “다음에는 랜턴 들고 와야겠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횃불은 좀 무거울 뿐 아니라 중간중간 기름도 먹여야 하다. 낙지 발견했다고 흥분해 마구 휘두르면 옆 사람 머리를 태울지 모른다. 허리 굽힌 채 너무 몰입하면 앞 사람 엉덩이가 위험하다.

그러나 횃불에는 뭔가 마법같은 매력이 있다. 처음에 불이 확 붙는 순간은 탄성이 나올 정도로 드라마틱했고, 오렌지빛 불덩이를 들고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누비는 기분은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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