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진의 Tour & Culture)다보탑, 실내에 들여놓아야

  • 등록 2008-12-22 오후 2:29:11

    수정 2008-12-22 오후 2:29:11

[이데일리 정장진 칼럼니스트] 경주 불국사에 있는 다보탑이 해체 수리 작업에 들어갔다. 8세기경에 세워진 다보탑은 그동안 풍화와 누수로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오래 전에 받았고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붕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지난 12월 10일 마침내 전면 수리에 돌입한 것이다.

▲ 다보탑

83년 만에 다시 수리를 받게 된 다보탑은 국보이기 이전에 수많은 한국인들의 뇌리에는 수학여행과 관련된 추억의 명소다. 교복을 입은 채 친구들과 함께 다보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을 누구나 몇 장씩 앨범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또 다보탑 하면 으레 석가탑이 떠오를 정도로 석가탑과 함께 초등학교 교과서는 물론이고 관광엽서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국보 중의 국보다. (지금도 그런가?) 다보탑이 화려하고 여성적인 탑이라면 석가탑은 남성적인 탑이라고 말씀을 해주시던 초등학교 선생님의 설명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그 설명이 얼마나 멋지게 들렸던지……

수리 작업을 하시는 분들께 박수를

마치 환자처럼 초음파로 곳곳을 진단하고, 한 조각을 떼어 내기 위해 나흘 넘게 준비를 한 다음, 떼어 낸 조각은 랩으로 싸고 그것도 모자라 혹시 있을지 모르는 파손에 대비해 압박붕대로 감싸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작업에 임하는 분들의 전문지식도 놀랍지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멀리서라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이렇게 떼어 낸 각 부위를 다시 원형대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로 정밀하게 실측도를 작성해서 역순으로 재조립해야 한다고 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경주석탑보수정비 사업단에 따르면 해체할 부위가 사각 난간만 35개, 팔각 난간이 16개, 상륜부가 9개라고 한다.

이 초음파 진단은 석재로 된 부분과 시멘트 모르타르로 된 부분을 구분하기 위한 핵심 과정이다. 1972년 다보탑의 난간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난간을 구성하는 부위 사이의 이음매를 모르타르로 채웠기 때문에 이를 제거해야 난간을 해체할 수 있다고 한다. 모르타르를 접착제로 사용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인데, 모르타르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제거하다가는 국보를 망칠 수도 있어서 사업단원들은 한층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건축문화재 연구실장의 말에 따르면 “팔각 난간, 상륜부 등 해체 대상 부재는 다보탑 조형미의 핵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원 상태로 조립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한다. 이를 위해 “원 위치에 갖다 놓으면서 조형미를 되살리는 데는 3차원 스캐너를 통해 얻은 정밀실측 자료를 사용한다”고 한다.

다보탑, 실내로 들어올 때도 된 것 같은데……

1300년의 풍상이면 그동안 잘도 견딘 셈이다. 서구의 장식 조각들처럼 석회암이나 대리석이 아닌 경도가 센 화강암이어서 천년을 넘게 견디었을 것이다. 물론 그동안 불자들의 기도와 무사함을 빌며 탑돌이를 한 정성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크게 한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심초사하며 정성을 기울여 작업에 임하는 건축문화재 연구실 분들의 노고를 덜어드리는 의미에서도 다보탑은 이제 실내에 들여놓아야 하지 않을까.

▲ 다보답 세부
천년 세월 앞에서는 화강암도 견디기 어렵다. 더 이상 풍화와 누수에 손상되지 않도록 원본을 실내에 들여놓을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그 자리에는 원형을 그대로 복제한 레플리카가 들어서야 할 것이다. 3차원 스캐너를 통한 정밀실측도를 바탕으로 복제품을 만드는 작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숭례문에서 보았듯, 한국의 문화재들은 목조가 많아 화재에 취약하다. 또한 석재로 만든 것이라 해도 다보탑처럼 노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비바람은 물론이고 심한 기후 변화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공해도 무시 못할 훼손 요인 중 하나다. 논의를 거쳐 레플리카를 대신 세우고 원본은 실내로 들여놓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박물관에 들어온 노트르담의 <왕들>과 마를르 <기마상>들

파리에 가면 누구나 노트르담 성당에 들르게 된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과 영화, 뮤지컬 등으로 유명한 성당이고 무엇보다 프랑스 역사 교과서라고 할 정도로 온갖 사건들이 일어난 곳이다. 성당 앞 광장에는 프랑스의 모든 도로가 시작되는 기점인 제로 포인트가 상징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판으로 표시를 해 놓았는데, 이 기점을 밟으면 파리에 또 올 수 있다고 해서 움푹 패여 있다.
▲ 쿨뤼니 중세 박물관에 있는 노트르담 석상 조각들
▲ 노트르담 성당의 유대왕 석상들

노트르담 성당을 보면 한군데도 빼놓지 않고 성당의 벽이 구약과 신약을 나타낸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이었고 양피지에 쓴 고가의 성경책을 구입할 수도 없었던 중세에, 성당이 성경책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면에 자리잡고 있는 세 개의 문 위에는 수많은 조각들이 모두 왕관을 쓴 채로 길게 도열해 있다.
 
이 석상들은 구약의 열왕기에 나오는 유대 왕들인데,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민중들이 프랑스 왕들인 줄 알고 끌어내려 부숴버린 것을 복원해 놓은 것들이다. 당시 한 이름 없는 사람이 폭도들이 갖다 버린 석상 조각들을 모아서 땅에 묻어놓았는데, 1970년대에 발견되어 현재는 소르본느 대학 인근에 있는 클뤼니 중세 박물관에 갖다 놓았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는 그런 때였다. 나폴레옹이 노트르담에서 대관식을 할 때도 다 허물어진 성당을 가리기 위해 임시로 그림을 그려놓고 식을 거행해야만 했다. 이후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계기로 노트르담 성당을 복원하게 되었고 당시 문화재 청장으로 일하던 소설가 메리메와 고딕 복원 전문가인 비올레 르 뒤크 등이 앞장서서 복원 작업을 했다.

다보탑은 프랑스 대혁명 같은 사건으로 파손되지는 않았다. 일본 놈들이 가져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고 6.25도 잘 견디어 냈다. 그러나 이제 풍상과 공해라는 또 다른 적을 만났으니 보존을 위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 루브르에 있는 마들리 기마상 원본
파리에서도 콩코드 광장에서 샹젤리제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마를리 궁의 기마상들을 루브르로 들여다 놓았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원작이 손상될 것을 우려해서다. 어쩌면 파리 문화재 당국에서는 누군가 팔아 치우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지도 모른다.

20세기 초, 한 미국인이 파리로 여행을 왔다. 이 미국인은 마를리 기마상에 홀딱 반했고, 이를 눈치 챈 한 프랑스 사기꾼이 마를리 기마상을 팔겠다고 접근 해왔다. 돈까지 다 지불한 미국인은 다음날 일꾼들을 데리고 다시 와서 사다리를 놓고 기마상 위로 막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말을 탄 기마경찰이 달려왔고 그때서야 프랑스인에게 속은 것을 안 미국인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개 신세가 된 자신을 깨달아야만 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지하 층에서 400년 가까이 된 마를리 기마상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예는 카르포의 유명한 조각 <춤>에서도 볼 수 있다.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장식 조각이었던 <춤>은 이젠 오르세 박물관 안에 들어와 있다. 워낙 빼어난 작품이어서 실내로 들여다 놓은 것인데, 원래 조각이 있던 곳에는 원작을 그대로 재현한 모각 작품이 들어가 있다.
 
원작을 보존하려는 의도도 작용했지만, 카르포의 <춤> 역시 19세기 말에 휘장을 걷는 날 밤, 한 가톨릭 신자가 걸레에 잉크를 잔뜩 묻혀 조각을 검게 칠한 사건이 일어났었다. 이유는 벌거벗은 남녀를 조각했다는 것이었다.

파리를 비롯한 유럽에서 유난히 옛 조각들을 실내로 들여다 놓고 보존하는 데에는 김선달 같은 사기꾼이나 광신도들 혹은 풍화로부터 보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비둘기 똥 때문이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퇴비로 썼던 비둘기 똥이지만 이젠 유럽이나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큰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 조각상 위의 비둘기들

그렇다고 평화의 상징이자 성령을 나타내는 비둘기를 마구 죽일 수도 없다. 또 동물보호협회에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엽사를 고용하고 독극물을 타서 먹여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파리에서는 지상에 있는 전철 역사 같은 곳에는 뾰족한 바늘을 꽂아서 아예 비둘기들이 앉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차 위에 떨어진 비둘기 똥은 여간 해서는 잘 지워지지가 않아 정말 골칫거리다.

경천사지 석탑도 들여다 놓았다

▲ 경천사십층석탑국보86호
다보탑을 서울 중앙박물관에 갖다 놓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경주에 있어야 할 것이다. 마음이 넓은 경상도 사람들이 서울에 양보를 할 수도 있겠지만, 다보탑이나 경주 출토 문화재들은 고향에 있는 것이 좋겠다. 어쨌든 경천사지 석탑도 실내에 들어온 전례가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다보탑을 이번 기회에 실내에 들여다 놓는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 봐야 하지 않나 싶다.
 
다보탑만이 아니라 석탑이든 석물이든 보존 가치가 있는 유물들은 이제 실내로 들여다 놓아야 할 것이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처럼 피어리어드 룸, 즉 시대실을 별도로 꾸며서 통째로 옮기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그리고 중앙박물관이나 기타 적당한 장소에는 불국사를 통째로 다시 짓는 것이다. 연못 위에 떠 있는 불국사는 볼 만한 장관이 될 것이다.

파리 퐁피두 센터 인근에 있는 레지노쌍 분수는 분수를 장식하던 장 구종의 조각을 루브르박물관으로 들여다 놓은 후 옛 분수를 원형대로 복원해 놓았다. 포스트모던 건축의 효시인 퐁피두 센터 곁에 자리한 레지노쌍 분수는 500년 세월을 건너뛰어 파리가 옛 것과 새 것을 조화시켜 나가는 도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복원이 능사인 것만은 아니다. 다보탑은 이제 실내에 들어와 불국사의 석탑이 아니라 한국의 국보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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