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70弗 돌파..하반기 경제회복 `먹구름`

고유가, 소비회복세에 `직격탄`
"정부, 소비 위축 막는데 집중해야"
  • 등록 2005-08-29 오후 2:49:50

    수정 2005-08-29 오후 4:06:39

[이데일리 최한나기자] 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하늘을 향해 치닫고 있다. 유가가 1달러만 올라도 크게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로서는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태생적 특성상, 고유가로 인해 올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에도 못미칠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나름대로 에너지 효율화 방안을 내놨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최고치를 경신하는 유가 앞에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등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고유가로 인해 간신히 살아나고 있는 소비기운이 꺾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가 파죽지세.. "내수 불씨 꺼질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셰브론, 엑손모빌 등 주요 석유업체들이 몰려있는 멕시코만으로 돌진하면서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10월 인도분 가격이 28일(현지시각) 배럴당 70.8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주말 종가보다 4달러 이상 급등한 것으로, 1983년 원유 선물이 처음 거래되기 시작한 이래 최고 가격이다.

우리나라 도입 원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바이유 역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26일(현지시간) 거래된 두바이유는 배럴당 58.42달러로 전날보다 0.06달러 올랐다.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배럴당 70달러가 깨지면서 국제 경제는 물론 국내 경제도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기업들은 치솟는 원자재 가격이 부담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총소비 중 산업부문 소비 비중이 45.2%로 일본 37.6%, OECD 평균 29.9%에 비해 훨씬 높다. 이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유가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의미다.

기업들의 수출 채산성 악화는 국내 물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동기대비 2.5% 상승해 3년내 최저를 기록했지만 석유류는 8.9% 급등하면서 유가상승분을 반영했다. 고유가 상태가 지속되면 다른 제품가격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물가 상승은 살아나려 꿈틀대고 있는 소비에 직격탄이다. 투자와 고용이 바닥인 가운데 수출 둔화를 메워줘야 할 소비마저 죽어버린다면 하반기 경기회복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고유가는 특히 소비심리에 독(毒)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달초 발표된 `7월 소비자전망`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기대지수는 95.2로 넉달째 하락행진을 계속했다. 소비자들은 상반기내 계속된 고유가가 하반기 장바구니 물가를 압박할 것으로 판단했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상대적으로 고유가 영향을 덜 받는 고소득층을 제외하고 전 소득계층의 소비심리가 나빠졌다"며 "이는 유가가 소비심리 위축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정부 속수무책.. "소비 위축 막아야"

현재로선 고유가 상황이 단기간에 종식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빡빡한 수급조건을 해소시켜 줄만한 재료가 보이지 않는데다 카트리나로 인해 발생한 원유 생산중단이 올 연말까지 가격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기 때문. 이는 우리나라가 목표로 하고 있는 하반기 5% 성장에 치명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경제주평`에서 "올 하반기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평균 50달러 이상 오르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3%도 어렵다"고 전망했다.

연구원은 "두바이유가 배럴당 1달러씩 오를 때마다 국내 물가는 0.15%포인트 상승하고, 경상수지는 8억달러 줄어들며, 경제성장률은 0.15%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만약 하반기에 두바이유가 배럴당 60달러 수준까지 오르면 올해 우리나라GDP는 2.8%에 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두바이유 가격이 연평균 50.55달러에 이를 때 국내총생산이 0.8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무역수지는 28억4900만달러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이번달 두바이유 평균가는 56.44달러로 지난해 평균가 33.64달러보다 20달러 이상 급등한 상태다. 현 추세가 지속될 경우, 연평균 배럴당 50달러를 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고유가와 관련해 정부는 해외 에너지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에너지 소비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석유수입이 완전히 중단됐을 상황에 대비해 원유 비축에도 보다 적극 나서기로 했다. 또 백화점 은행 주유소 찜질방 등 에너지소비가 많은 업종에 대해 자발적 절약을 유인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 대책은 중장기적 추진안에 불과해 당장 치솟고 있는 유가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책없이 치닫고 있는 유가가 국내 소비자 물가로 전이되거나 소비심리를 꺼뜨리지 않도록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유가가 치솟더라도 수요쪽이 워낙 침체돼있는 상황이라 물가가 급등할 가능성은 적다"며 "그러나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보장은 할 수는 없으며, 더욱 문제되는 것은 에너지절약과 관련해 추진되는 대책들이 내수를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상재 현대증권 거시경제팀장도 "세제개편안을 비롯해 최근 나온 일련의 정책들은 정부가 경기회복에 지나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며 "원유 소비 효율화 및 장기적 에너지안정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유가상승으로 소비가 위축되는 일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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