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맨해튼의 대선주자들

  • 등록 2005-03-25 오후 4:20:01

    수정 2005-03-25 오후 4:20:01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한참 남아있는데, `차기`를 얘기하면 너무 이른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권을 향해 뛰는 주자들에게는 지금부터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이 더 없이 중요할 겁니다. 최근 야권의 대선 주자들이 잇따라 뉴욕 맨해튼을 방문했습니다. 방문 이유는 각자 달랐지만, 큰 뜻을 품고 있음을 애써 숨기지는 않았습니다. 대선 주자들을 만나 본 정명수 특파원의 인상기입니다. 유력 정치인들이 미국을 방문하면 보통 뉴욕 특파원들을 만나고 가곤 합니다. 워싱턴으로 가는 길에, 혹은 워싱턴을 들렀다 LA로 가는 길에 뉴욕에 하루 이틀 머물게 되는 것이죠. 최근 2주 사이에 차기로 꼽히는 네 명의 정치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손학규 경기지사,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고건 전 총리, 그리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 입니다. 고건 전 총리의 경우 뉴욕이 아니라 보스턴 하바드대학에서 강연을 했는데, 인터넷으로 강연의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려는 것은 `기자의 눈`에 비친 이들 정치인에 대한 단편적인 인상입니다. 네 명의 정치인을 오랫동안 지켜본 것도 아니고,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얘기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혹은 연설을 들으면서 느낀 점을 중계방송하듯이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이런 정치인들을 만나, 얘기를 나눠 볼 기회가 없습니다. 언론에서 한 번 걸러진 `이미지`만을 볼 뿐이죠. 가공된 이미지가 아니라 진짜 모습, 예를 들면 어떻게 악수를 하고, 밥은 복스럽게 먹는지, 영어는 얼마나 잘하는지, 옷매무새는 어떤 지 등이 궁금하실겁니다. 손 지사는 지난 10일 맨해튼의 한 한국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미국 서부와 동부의 여러 기업을 돌며 외자유치 활동을 하고 귀국하는 길에 특파원들과 저녁 자리를 마련한 것이죠. 손 지사는 예정에 없던 상담 때문에 한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식당에 들어오는 손 지사는 진홍빛 넥타이를 매고 있었습니다. 그 색이 너무 강렬해서 검은 양복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동료 특파원 중 하나가 "넥타이 색이 너무 좋습니다"라고 말하자, 손 지사는 "맨해튼이 최첨단 패션 도시 아닙니까. 뉴욕 특파원들을 만난다고 하기에 신경 좀 썼습니다"라고 받아쳤습니다. 손 지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외자 유치 실적에 대해 줄기차게 설명을 했습니다. 중간에 나오는 한정식 요리를 거의 먹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기자들은 대선 출마 여부, 한나라당 내의 역학 관계, 노무현 정부에 대한 의견 등 까다로운 질문도 많이 했습니다. 손 지사는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일어서서 기자들에게 맥주잔을 채워주며 시간을 벌곤했습니다. 저녁 식사 내내 서너번 손 지사가 전체 특파원들에게 맥주를 손수 따라준 것 같습니다. 손 지사는 "다른 대선 주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박근혜 대표를 의식한 질문들, 예를 들면 "한국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가능하다고 보니냐"는 질문에는 "성별이 문제냐, 능력이 문제지"라는 식의 원론적인 답만 했습니다. 저녁 식사 막바지 요리가 끝나고 밥을 먹을 즈음 손 지사는 공기밥을 게 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습니다. 질문에 답하느라 허기진 배를 순식간에 채운 것이죠. 손 지사와 저녁을 한 바로 다음날 민노당의 권영길 의원을 만났습니다. 국회의장을 수행해 워싱턴 정계 인사들을 만나고 가는 길에 뉴욕에 들러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연설을 하게 된 것이죠. 권 의원은 영어 연설문을 찬찬히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참석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권 의원의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참석자들은 미리 배포된 연설문을 주시했습니다. 권 의원 자신도 연신 목뒤로 흐르는 땀을 닦아냈습니다. 연설문에는 그러나 한미 동맹관계에 대해 아주 직설적인 의견들이 들어있습니다. 반미 감정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한국의 젊은이들이 왜 반미성향을 가지게 됐는지, 솔직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연설이 끝나고 일문일답을 하는데 한 미국인 청중이 권 의원의 연설이 매우 참신하고, 솔직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다른 정치인들은 "한미 동맹관계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에 박힌듯이 말했는데, 권 의원을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죠. 일문일답은 통역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권 의원은 연설할 때보다는 훨씬 안정된 모습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연설문에 담긴 `참신한 내용`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북핵 문제와 관련, 미국의 잘못, 미국의 실수를 조목조목 열거했습니다. 일문일답 막바지, 코리아소사이어티의 회장이자,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한 그레그 씨는 "북한의 김정일도 리비아의 카다피처럼 결국에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권 의원은 마무리 연설을 하면서 "사실은 지난 세월 노동운동을 하면서 카다피로부터 여러차례 만나자는 제의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카다피는 자신이 나서서 남북 문제를 풀어가는데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다며 권 의원을 초청을 했다는 것이죠. 권 의원은 북한을 의식해서 카다피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카다피를 만나볼까 생각해봤는데 이번에는 북한이 아마도 카다피를 신뢰하지 않을 것 같아서 리비아 방문이 꺼려진다"고 뼈있는 농담을 했습니다. 통역을 통해 번역된 권 의원의 `조크`에 미국인 청중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강연회가 끝나고 기자들과 따로 만난 권 의원은 워싱턴 방문 결과를 담담하게 전해줬습니다. 한미 동맹, 북핵 문제를 보는 제3의 소리, 진보진영의 입장을 워싱턴에 분명하게 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영어 발음은 신통치 않았지만, 권 의원의 이날 강연은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느낌, 참신한 시각을 제공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정치인들의 영어 실력 얘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지난 16일 고건 전 총리는 하바드 대학에서 북한 핵문제와 한미 동맹에 대해 연설을 했습니다. 영어 원고를 차분하고, 분명한 어조로 읽어내려갔습니다. 영어 발음도 수준급이었습니다. 준비를 많이 한 듯 했습니다. 마치 국가 기념식에서 총리가 기념사를 읽는 것처럼 안정감이 있었습니다. 고 전 총리는 그러나 일문일답은 통역을 통했습니다. 하바드 대학생들이 북핵 문제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요, 고 전 총리는 모범답안을 알고 있다는 듯이 간결하게 답했습니다. "한국과 북한 사이의 경제적 협력이 북한 정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로 인해 핵문제 해결이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고 전 총리는 통계 수치를 들어가며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개성 공단의 예를 들었습니다. "현재는 시범단지 2만8000평 공사가 완료돼 15개 남한 기업이 입주 중에 있다. 공사비는 어디로 갔는가? 한국의 토지공사, 건설업체들이 개성에 들어가서 공사를 했기 때문에 그 돈은 한국 기업에 남아 있다. 북한에 떨어지는 것은 토지 임차료 1평방미터당 1달러와 노임 일인당 월 57.5달러다. 개성 공단은 한국 중소기업들이 중국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입주를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지 한참이 됐는데도, 이런 수치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다소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 전 총리의 이날 강연 내용은 권 의원과 비교해 볼 때 새로운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한미 동맹, 북한 문제에 있어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잘 정리된 모범답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19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맨해튼의 한 중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워싱턴에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을 만나서 북핵 문제를 논의하고, 뉴욕을 거쳐 LA로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박 대표가 식당으로 들어오는데 첫인상은 "키와 몸집이 참 작다"는 것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체구가 작았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오버랩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 대표는 튀는 옷차림새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럭셔리`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패션을 잘 모르는 기자가 보기에도 "좀 비싼 옷이다" 싶었습니다. 옷 값을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박 대표의 목소리 톤은 처음에는 매우 낮았습니다. 식당 내 음악소리와 다른 참석자들의 잡담 소리에 박 대표의 말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기자는 의식적으로 박 대표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서 박 대표의 화장, 머리 모양, 밥먹는 모습 등을 세심하게 관찰(?)했습니다. 52년생인 박 대표는 옷차림만큼 화장도 그렇게 요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입술선과 눈화장 등은 매우 뚜렷했습니다. 머리 모양도 사진을 통해 본 박 대표의 어머니, 그러니까 육영수 여사처럼 고전적인 스타일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머리에 꽂혀있는 장식 핀도 튀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제법 공들여 고른 것 같았습니다. 박 대표는 연이은 연설, 언론 인터뷰 때문인지, 약간 피곤해 보였고, 식사도 그렇게 맛있게 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느라 음식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죠. 박 전 대통령 문제와 수도이전을 둘러싼 한나라당 내분 등 박 대표가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집중적으로 나왔습니다. 조용 조용하게 답하던 박 대표는 이런 질문들이 나오자 목소리 톤을 높여서 비교적 길고, 자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결혼 의향은 없는가"와 같은 질문은 "결혼을 하게 될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든다"며 여유있게 받아넘겼지만, 정치적 핫 이슈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다르다`거나 `아버지를 극복하겠다`는 식의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가 정치를 하던 시대와 지금 내가 정치를 하는 시대가 너무나 다르다. 아버지와의 차별성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자산이면서 동시에 부채라는 점을 박 대표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아버지와 다르다고 말하는 것도, 아버지를 극복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정적들에게는 공격의 빌미가 되겠죠. 박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한나라당 대표라는 정치인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질문을 벗어났습니다. "수도이전 관련 법안의 처리는 당론대로 했다.(당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일단 합의를 했으면 지키는 것이 대표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창구를 만들겠다." 박 대표의 이 말은 "합의했으면 따라야 한다"로 요약됩니다. "따르지 못하겠다면...나가라"는 뉘앙스가 숨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죠. 점심을 마치고 식당 밖 자연광 아래서 악수를 하며 박 대표를 다시 봤습니다. 식당안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박 대표의 키가 훨씬 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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